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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한 목숨 죽어서 동성애 사이트가 유해매체에서 삭제되고 소돔과 고모라 운운하는 가식적인 기독교인들에게 무언가 깨달음을 준다면 난 그것으로도 나 죽은 게 아깝지 않아요. 죽은 뒤엔 거리낌 없이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겠죠. '○○○은 동성애자다'라고요." (육우당 유서 중)


오는 4월 25일은 청소년 성소수자 활동가 고(故)육우당의 15주기 기일이다. 19살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그가 사랑하는 공동체인 성당에서 앞장서서 성소수자를 배척하는 모습에 절망하며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동성애로 성문화가 타락했던 소돔과 고모라가 하나님의 진노로 유황불 심판으로 망했다. 성경은 동성애를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 인권위는 결정을 철회해야 한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에서 성소수자 혐오를 조장하는 성명을 낸 후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15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성소수자들이 살기 조금은 좋아졌을까? 동성애 코드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영화 '아가씨'가 400만 관객을 돌파하기도 했다. 게이로 커밍아웃한 홍석천씨는 '가장 안전한 오빠'로 활발한 방송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동성애자는 죄짓고 타락한 사람들이 아니라 세련된 친구로 우리 곁에 있는 듯하다. 

2003년 4월 25일로부터 15년,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당사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현실은 어떨까. 故육우당의 15주기 기일을 맞아 2018년 성소수자들은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지 듣기 위해 대전지역 성소수자 인권활동가 시진씨 (활동명)을 만났다. 그는 대전 성소수자 인권모임 솔롱고스의 현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저는 여전히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육우당'님께서 돌아가신 15년 전에 비해서는 성소수자가 가시화된 면이 있긴 하지만, 여전히 남녀 간의 사랑만을 정상적인 규범이라고 규정짓고 이외에 모든 지향과 정체성은 비정상의 위치에 두고 있다고 생각해요."

 4월 3일에 열린 충남인권조례 폐지 찬성 도의원 낙선운동 선언 기자회견
 4월 3일에 열린 충남인권조례 폐지 찬성 도의원 낙선운동 선언 기자회견
ⓒ 현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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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무게와는 달리 아직 앳된 모습인 시진씨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시진씨는 여전히 종교를 앞세운 성소수자 혐오세력의 행동이 계속되고 있음을 짚었다.

지난 4월 3일에는 충남인권조례가 충남도의회에서 전원 찬성으로 폐지됐다고 한다(관련기사 : [모이] 충남도의회 재의결 끝에 충남인권조례 폐지). '동성애 조장', '에이즈 조장'이 충남인권조례 폐지의 이유다. 그는 이 모든 과정이 교회의 주도로 이어지고 있다며 분노를 토해냈다.

"정치와 종교는 확연히 분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헌법 제 2장 제11조 1항에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라고 명시되어 있잖아요. 또한 헌법 제 2장 제 20조에는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 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정교분리 원칙은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원칙인데 특정 종교의 입김 때문에 도의 조례가 폐지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상황이죠. 이번 충남인권조례폐지는 국민 기본권 침해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애초에 없던 것이라면 모를까. 그는 이번 충남인권조례 폐지에 대해 멀쩡히 존재하던 것까지 특정 종교 세력의 압력으로 인해 삭제될 수 있다는 끔찍한 전례를 남기는 일이라 설명했다. 충남도와 인접지역인 대전 지역에 사는 성소수자이자 가톨릭 신자인 그에게 이번 충남인권조례폐지 사건은 무겁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가 사랑하고 몸담기를 원하는 공동체에서 그의 존재를 부정하는데 앞장서고 있기 때문이다.

"저도 돌아가신 '육우당'님처럼 가톨릭 신자예요. 성당을 열심히 다녔어요. 성당 안에도 좋은 신부님들도 있었지만 그들에게 저는 항상 특이한 존재로 인식되었어요. 과도한 관심을 보이기도 했고 '자신만 좋아하지 않으면 된다.'라는 식의 태도를 보이기도 했어요. 다른 신자들을 대할 때와는 다른 태도가 저에게 그들과 다른 저의 위치를 느끼게 해 주었어요." 

어릴 적부터 부모님을 따라 성당을 다녔던 그는 청년 모임을 맡아서 진행해달라는 제안을 받을 정도로 열성 신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커밍아웃 이후 그의 신도로서의 삶은 달라졌다.

"노골적으로 저의 성적지향을 죄로 규정짓고 다른 사람에게 알릴테니 당장 그만두라며 협박한 사제가 있었어요. 그래서 성당을 떠나야 했습니다. 가톨릭 율법의 핵심은 타인과 자신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예수님은 로마에 통치 받으며 핍박받고 차별받는 바리세인의 옆에 있어주고 그들을 품에 안으셨잖아요. 즉, 죄인이라 규정된 어떠한 사람도 죄인이라 내치지 않고 차별하지 않았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진심으로 하느님을 숭배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교인이라면 사람을 혐오하고 차별하는 행위가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반하는 행위임을 깨닫고 회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당 내에서 성소수자인 시진씨를 향한 태도는 편견어린 시선, 어쩐지 낯 설은 태도뿐만이 아니라 죄인으로 보고 위협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떠밀리듯 성당을 나오게 됐지만 하나님의 뜻만은 의심하지 않는다는 그는 한국 가톨릭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성당의 행보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가깝지만 먼 가족

"저에게는 친형이 있는데 친형도 동성애자예요. 동성애자인 것과 HIV가 연결되는 건 아니지만, 몇 년 전 형이 폐결핵으로 입원한 적이 있는데 피검사에서 HIV 양성 반응이 나왔었어요. 그때 저희 어머니도 가톨릭 신자시니까 당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셨죠. 분노하셨고 욕도 하셨어요. 아들에 대한 혐오도 있지만 그런 아들을 키운 자기혐오까지 겹쳐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성소수자란 무엇이길래 가족 간의 유대마저도 이리 쉽게 끊어지는 걸까. 우리는 정말 세상이 말하는 대로 죄인이고 질병인 걸까 고민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동성애자로서 겪는 차별과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는 시진씨는 어머니와 형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한다. 형과 어머니가 갈등을 겪을 때 형을 비난하는 어머니에게 맞서 나도 게이라고 우리를 혐오하지 마시라고 얘기하지 못 했던 것, 그리고 사랑으로 자식을 키워준 어머니에게 반기를 들 수밖에 없는 것 모두 괴롭다고 했다. 왜 성소수자들은 자신이 하지도 않은 잘못에 죄책감을 느끼고 괴로워해야 하는 걸까. 

"아직도 많은 성소수자들은 사회에서 비정상으로 규정되어 우울증을 겪고 있어요. 가족에게 외면받지는 않을까 두려워하며 자살률도 굉장히 높은 상황이에요. 또한, 사회적 시선이 두려워 HIV검사를 하는 것을 막고 이는 HIV예방에 취약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시진씨는 성소수자들이 긍정적인 자아정체감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사회에 대해 얘기했다. 성소수자 인권 운동에 대해 '급하지 않은 운동', '먹고 살만하니 하는 운동'이라 폄하하는 시선이 있다. 동성애자 인권보다는 기아 인권이 중요하다며 줄을 세우기도 한다.

더 급한 것과 급하지 않은 것을 나누고 위계를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위계는 "그깟 개인사 정도는 알아서 숨기면 되잖아. 이기적인 게이들 뭘 더 바라는 거야"라는 말로 성소수자에게 침묵할 것을 강요한다. 

하지만 성소수자 혐오는 성소수자의 건강, 생명과도 직결되어 있다. 스스로를 부정하고 침묵하게 하는 성소수자 혐오는 개인들이 삶을 꾸려나갈 수 없게 만든다. 성소수자 인권운동은 자신의 삶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꾸려나갈 힘을 갖도록 하는 운동임을 강조했다.   

"그냥 남들과 다르지 않은 '사람' 그 자체로서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남녀 간의 만남일 경우 '재판'을 받지 않는 것처럼 저희도 길거리를 지나다 동성 커플이라는 이유로 불쾌한 시선이나 말들을 듣지 않고 싶어요. 평범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있고 싶어요."

시진씨가 원하는 세상은 타인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세상이다.

 전주퀴어문화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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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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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에 있다
"성소수자는 먼 나라 낯선 존재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성원입니다. 우리 모두 함께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사람일 뿐이에요. '성소수자들은 어떨 것이다.', '내 친구만, 내 가족만 아니면 된다.' 이런 식의 재단하고 규정, 분리하려는 시도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성소수자를 존재하지 않는 존재로 지워버리는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이웃을 성적 지향 과 성별정체성이 다르다고 배척하거나 차별해서 공동체 밖으로 내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 곁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것, 이것이 인권의 시작점이겠죠."

시진씨의 말은 성소수자를 TV 속의 존재로, 해외의 특이한 사례 정도로 치부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성소수자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다. 존재를 지울 수는 없다. 이제는 함께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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