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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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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입이 간지럽다.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그럴 수가 없으니 답답하구나. 어디서 배웠는지 몰라도 연세 드신 어른에게나 나이 어린 학생에게나 "이랬어, 저랬어" 하는 양이 비위가 상한다. 자신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상사에게 존댓말을 하는 걸 보면 아주 청맹과니는 아닌 듯한데,

아침에 회사 입구에서 오가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차량 유도를 하는데, 많은 학생이 등교를 한다. 학생들이 얼마나 예의 바른지 인사를 하는데 아버지는 "반갑습니다"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건만, 옆에서는 "이랬어, 저랬어" 해가며 대거리를 하니 학생들 표정이 좋지 않다.

어른들이라고 다 옳은 거 아냐.

고등학생들쯤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창피한 이야기지만 아버지가 아직 담배를 못 끊었구나. 담뱃불을 붙이려는데 라이터가 고장이 났다. 담배를 피우던 학생이 라이터를 꺼내주더구나.

"학생 센스 짱인데요. 고마워요."
"어? 아저씨 존대말하시네요? 다른 아저씨들은 눈 흘기면서 가던데....."
"그런 어른들은 무시해도 돼요. 어른들이라고 다 옳지 않을 뿐더러 나이 많이 먹었다고 무조건 반말하면 되나? 그리고 나이 먹은 사람들이 경험과 연륜을 내세우지만 그 경험이 급변하는 문화나 기술을 못 따라가요. 그렇다고 도덕적이기를 하나? 못된 짓은 나이 먹은 자기들이 다 가르쳐주면서, 쯧쯧."
"아저씨 사진관하셨지요? 그리고 오토바이 타시죠?"
"나를 알아요?"
"우리 형 오토바이 샀을 때 아저씨가 옷이랑 헬멧 주시는 거 봤어요. 히히"

알고 봤더니 아주 오래 전에 오토바이 산다며 겨울에 군고구마 장사하던 학생의 동생이었다. 그 고등학생이 오토바이만 좋아하는 줄 알았더니 공부도 제법 하는 모양이더라. 대학생을 졸업하고 법을 공부한다는구나.

나보다 어린 사람이라고 함부로 할 일은 아니다. 나이 많은 분들이야 말은 해 무엇하랴. 말과 글은 그 사람의 인격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내가 상대방을 존중해야 그도 나를 존중한다. 아버지는 엄마와 둘이 있을 때는 말을 편하게 하지만 부부동반으로 모임이 있거나 남들 듣는 데서 전화통화를 할 때는 항상 존댓말을 쓴다. 이런 아버지를 잘 아는 사람들은 부부동반 모임에서 친구들이 다른 사람들 부인에게는 반말을 찍찍해가며 농담하지만 엄마에게는 함부로 못 한다.

"네 아버지 뭐 하시는 분이냐?"

- 사랑하는 딸아, 세상 모든 아버지가 내 자식은 어디 가서 이 말만은 듣지 않았으면 하는 말이다. 예의 바르게 자란 사람에게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바르게 자란 티가 나는 법이다. -

벚꽃과 목련이 지고 나니 박태기나무꽃이 한창이다. 아버지가 시집을 뒤적이다가 재미있는 시를 읽었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시로구나.

-

아름다운 위반.

이대흠

기사양반! 저 짝으로 쪼깐 돌아서 갑시다
어칳게 그란다요, 뻐스가 뭐 택신지 아요
아따 늙은이 물팍이 애링께 그라재
쓰잘데기 읎는 소리 하지 마시요
저번착에 기사는 돌아가듬마는....
그 기사가 미쳤능갑소

노인네 갈수록 눈이 어둡당께
저번착에도 내가 모셔다 드렸는디.

시집 '귀가 서럽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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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모이, #아버지와 딸, #시집,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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