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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창진 전 사무장 "조양호 일가, 도적적 책임 모른다"
ⓒ 정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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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박창진 전 사무장
 대한항공 박창진 전 사무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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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용기를 갖고 나선다면, 저는 분명히 그 옆에 서 있을 것입니다. 같이 저항해드리겠다는 말도 드리고 싶습니다."

미세하게 떨렸지만 힘이 담긴 목소리. 박창진 전 사무장이 대한항공 동료들에게 전하는 말이었다. 그는 "선한 영향력"을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그 힘을 꼭 믿으시길 바란다"라고 힘주어 부탁했다. "살짝 울컥하네요"라면서도, 그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최근 <오마이뉴스>에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음성파일을 공개한 제보자는 "겁이 나지만 박 전 사무장을 보면서 힘을 낸다"라고 말했다. 음성파일 공개 후 만들어진 '대한항공 갑질·불법·비리 제보방(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는 1600여 명의 인원이 몰리기도 했다. 박 전 사무장은 22일 상암동 <오마이뉴스> 본사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러한 상황을 거론하며 자신의 '속마음'과 '바깥 마음'을 이야기했다.

"먼저 제 속마음을 진솔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죽음까지 생각할 정도의 처절한 시간을 겪었기 때문에 감히 쉽게 '용기를 내라'고 말씀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바깥 마음을 이야기하자면, 자신의 마음속에 의지와 사명감이 생겼는데 그걸 또 저버린다는 건..."

잠시 생각에 잠긴 박 전 사무장은 말을 이어갔다.

"그 사명감을 저버린다면 개인에게도 언젠가 후회할 날이 올 것이고, 이 사회나 조직을 위해서도 좋지 않습니다. 용기가 생기면 발현하십쇼."

박 전 사무장은 "최근 많은 직원들이 제게도 제보를 전달해주신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우리 모두가 행동으로 옮겼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채팅방에 많은 사람들이 채워진 것을 보고, 먼저 안타까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우리 내부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게 되면, 저 같이 반역자 취급 받는다는 걸 극명하게 안다는 거잖아요. 익명의 공간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참담했습니다. 그래도 이번에 많은 직원들이 자각하기 시작했으니 긍정의 신호로 생각합니다. 우리가 행동하는 양심이 돼야 대한항공이 변화합니다. 지금처럼 1000명이든 10명이든 같이 하면 혼자일 때처럼 힘들지 않습니다. 경영진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바꿔야 합니다."

대한항공 박창진 전 사무장
 대한항공 박창진 전 사무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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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선 간선제라니... 노조위원장, 직선제로 뽑아야"

그는 오랜 시간 외딴 섬에 살았다. 우리는 쉽게 '땅콩회항'을 입에 올리지만, 그 사건이 있었던 2014년 12월 이후 박 전 사무장의 삶은 한없이 무너졌다. 그럼에도 박 전 사무장은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하는 것에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인터뷰에 앞서 "제가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등 자극적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현상의 구조적 문제에 접근한 질문만 받겠다"는 의견을 확고히 내비쳤다. 그만큼 자신이 사랑하는 대한항공의 정상화에 온 힘을 집중하고 싶다는 의미다.

박 전 사무장은 2014년 벌어진 땅콩회항, 그리고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의 원인을 대한항공 안팎의 구조적 문제로 꼽았다. 그는 "저는 단지 조양호·조현아·조현민 등 일부 경영진을 비난하기 위해 이 자리에 온 게 아니다"라고 운을 떼며, 먼저 대한항공 내부에 총수 일가를 견제할 시스템이 전혀 없다고 평가했다.

"대한항공에는 월등한 권력을 가진 총수 일가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견제할 이사회, 노조 등이 형식상으로만 존재하죠. 그들이 제대로 발언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일부는 총수 일가의 편에 서 있습니다."

특히 박 전 사무장은 현재 구조로는 노조가 제 역할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한항공 노조는 위원장을 뽑는 규정이 3선 간선제(대의원 투표로 노조위원장을 선출하고 노조위원장은 3선도 가능하다 - 기자말)다"라며 "이는 개인의 의견이 발현되기 힘든, 민주사회에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제도다"라고 설명했다. 전체 노조원이 아닌 소수의 대의원들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노조위원장을 세울 수 있고, 그만큼 경영진의 입김이 발휘되기 쉬운 구조라는 얘기였다.

박 전 사무장은 "이렇게 되면 노조는 노동자들의 의견이나 고충을 반영하지 않고 (회사의) 나팔수 역할을 하게 된다"라며 "총수 일가가 마음 놓고 활개 칠 장이 만들어지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한항공 노조위원장을 뽑는 방식을 직선제로 바꿔야 한다"라며 "제 기억으로 전두환 때나 간접선거로 대통령을 뽑았다. 선진 항공사라고 스스로 이야기하는 회사에서 이런 제도가 있다는 건 정말 개선해야 할 문제다"라고 덧붙였다.

대항항공 본사 야경.
 대항항공 본사 야경.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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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전 사무장은 대한항공 바깥, 즉 법과 제도 나아가 사회의 분위기에도 일침을 가했다. 그가 가장 먼저 지적한 것은 대한항공이 2010년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된 것이다. 이로 인해 대한항공은 노동쟁의 시에도 국제선 80%, 국내선 50%를 운영해야 하는 등 노동권이 제약되는 회사가 되고 말았다.

"대한항공은 사기업입니다. 근데 왜 국가에서 공공기관인 것처럼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해 노동자의 권리를 제약합니까. 거기서 발생하는 사익은 누가 취득하고 있습니까. 일부 총수 일가가 가져가지 않습니까. 그들이 오만방자할 수 있는 건 이 때문입니다. 물론 대한항공을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하는 것도 일리 있는 말입니다. 근데 그로 인해 피해 받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도 들어봐야 할 것 아닙니까."

"조양호의 쇼, 관심 떨어지면 조현아·현민 스멀스멀 돌아올 것"

박 전 사무장은 이 문제점을 이야기하며 국회를 향한 비판도 이어갔다. 그는 "국회에 이와 관련된 문제의 전문가가 없다. 그러니 필수공입사업장으로 지정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기업 이야기만 듣는 것이다"라며 "실제 상황은 생각하지 않고 그저 관념으로, 탁상공론으로 만들어진 법이다. 입법하시는 분들이 이를 꼭 생각해봤으면 한다"라고 강조했다.

내부고발자가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에도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로 인해 오히려 정의로운 사람이 비난받는 사회가 돼 버렸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피해자를 보호할 제도가 없으니 2차 고발이 이뤄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회의 부조리와 비리가 만연한 것이죠. 제가 아무리 정의로운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하지만 어떤 회사에서 저를 쓰려고 하겠습니까. 갑이 갑을 봐주고, 을이 그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정의로운 사람을 비난하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갑의 보호망은 충분하잖아요. 어떤 법을 만들어도 갑은 그것을 벗어날 무한한 능력이 있잖습니까. 피해자, 내부고발자가 더 보호받고 권리를 인정받는 사회가 돼야 합니다."

지난 2014년 12월 12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에서 일명 '땅콩리턴' 논란을 빚은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에 대해 사과한 뒤 떠나고 있다. 이날 조 회장은 "제 여식의 어리석은 행동에 고개숙여 사죄한다"며 "대한항공 회장으로서 애비로서 너그러운 용서를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2014년 12월 12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에서 일명 '땅콩리턴' 논란을 빚은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에 대해 사과한 뒤 떠나고 있다. 이날 조 회장은 "제 여식의 어리석은 행동에 고개숙여 사죄한다"며 "대한항공 회장으로서 애비로서 너그러운 용서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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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전 사무장과 인터뷰하기 전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사과문을 내놨다. 딸 조현아·조현민을 모든 직책에서 사퇴시키고, 전문경영인제도 도입 요구를 받아들여 석태수 한진칼 대표이사를 부회장으로 앉히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사과문에는 피해자를 향한 사과가 빠져 있었다. 대책으로 내놓은 전문경영인제도 도입 또한 '눈 가리고 아웅' 식이었다. 더군다나 내용 또한 땅콩회항 사태 때와 거의 달라지지 않아 비판이 쏟아졌다. 박 전 사무장 역시 조 회장의 사과문은 "쇼"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제 사건 때도 조현아의 하수인으로 여운진 상무가 있었습니다."

여 상무는 땅콩회항 당시 박 전 사무장에 대한 강요 및 증거인멸 교사 혐의가 인정돼 1심에서 징역 8월을 선고받았던 인물이다. 그는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여 상무는 충성에 대한 대가를 받았다. 그는 '대기발령' 상태에서도 대한항공 상무직을 유지했다. 지난 3월부턴 한진그룹 계열사인 에어코리아의 상근고문 자리에 앉아 있다.

"조현아가 회사를 떠났지만 저를 회유·협박했던 사람들은 그대로 자리를 보전했고 조현아의 대리인 역할을 했죠. 이후 여 상무는 한진그룹 자회사인 에어코리아의 상근고문으로 갔고 조현아는 칼호텔네트워크 사장으로 복귀했습니다. (사과문에) 조현아·조현민이 사퇴한다는 내용이 있지만, 그냥 집에 가서 근무하겠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이 쇼가 끝나고 국민들의 관심이 멀어지면, 또 스멀스멀 자리에 복귀하겠죠.

또 (조 회장의) 사과에는 알맹이가 없습니다. 사과는 피해자를 상대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근데 조 회장은 그냥 허공에 대고 '사과한다'고 말만 하고 있습니다. 여론이 악화되고 법적인 문제가 제기될 것 같으니 부리나케 사과문을 만든 겁니다. 자신의 이윤 추구를 위해 하는 사과, 경제 논리에 입각한 사과입니다. 그리고 전문경영인은 요건을 갖춘 전문가를 외부에서 영입하는 것입니다. 내부에서 하수인을 불러다 이름만 전문경영이라고 붙이면 그게 전문경영인이 되는 게 아니잖습니까."

"파란 항공기, 하얀 유니폼... 긍지·자부심 다시 느끼고 싶어"

대한항공 박창진 전 사무장
 대한항공 박창진 전 사무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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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말미, 박 전 사무장에게 "5년 후 대한항공과 자신의 모습이 어땠으면 하나"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매일매일 현실의 문제에 직면해 있는 내게 5년 후는 정말 먼 일"이라면서도 "처음 입사했을 때 파란 항공기에 붙어 있는 대한항공 마크와 제가 입은 하얀 유니폼을 보며 느꼈던 긍지와 자부심을 다시 느끼고 싶다"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제가 대한항공에 없더라도, 저 멀리에서나마 긍지와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회사로 대한항공이 발전했으면 한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박 전 사무장은 이 말을 하면서 다시 울컥했다. 하지만 "선한 영향력"을 말하던 때처럼 눈물은 보이지 않았다. 그가 울음을 참는 이유를 전했다.

"우리나라는 약자들이 약함을 주장하면 안 좋게 보더라고요. 많이 아팠고, 많이 울었어요. 제가 평소 잘 우는 성격이 아닌데 울음이 나올 수밖에 없죠. 근데 그걸 빌미로 제 진정성을 없애고 '동정심을 사려고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박 전 사무장은 25일 오전 김포공항 내 대한항공 본사 앞에 선다. 정의당과 함께 대한항공 정상화를 위해 목소리를 높일 예정이다.


태그:#대한항공, #박창진, #조양호, #조현아, #조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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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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