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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은 지난 6일 2400명 희망퇴직을 추진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미 3만여 명의 조선 노동자가 직장을 잃은 상황이고, 조선 경기가 회복할 것이라는 정부 발표가 속에 강행되는 구조조정이라 지역과 정치권에서도 비판 여론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희망퇴직을 강요받는 당사자는 어떤 기분일까요? 22일 저녁 희망퇴직 강요에도 꿋꿋하게 일자리를 지키고 있는 노동자 한 분을 만났습니다. 50대 초반의 조선소에서 용접일을 하는 노동자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자상한 남편이자 아빠이기도 합니다. 지난번 희망퇴직을 권고받은 노동자 가족의 인터뷰와 같이 녹취록을 푸는 형식으로 정리했습니다. - 기자 말

(관련 기사 : "현대중공업 다니는 남편, 희망퇴직 권고 받았어요")

저는 최근에 또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회사 측은 유휴인력에 대한 재교육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희망퇴직을 하라는 교육입니다. 희망퇴직 대상자 중 퇴직을 거부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100여 명씩 묶어서 교육하고 있습니다. 이번이 벌써 3번째 교육입니다. 이렇게 교육을 받는 사람들이 회사 내에 350여 명쯤 됩니다.

회사 측이 이번에 마련한 교육 장소는 경주 산내에 있는 창고 같은 건물 지하입니다. 임시로 마련한 곳이다 보니 교육환경이 좋지 않아요. 냄새도 많이 나고 해서 공기오염도를 측정해 봤더니 교육장으로 적합하지 않을 정도의 오염 수치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이런저런 항의를 하는 상황입니다.
교육에서 사용되는 책자
▲ 교육자료 교육에서 사용되는 책자
ⓒ 이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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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이 넘도록 용접 일을 하는 제가 지금 배우고 있는 건 미분 적분, 역학 같은 것들입니다. 손바닥만큼 두꺼운 책을 2주 만에 떼는데 시험도 칩니다. 점수가 낮으면 재교육을 받게 됩니다. 사실 현장에서 용접 일 하는데 미분 적분이 필요하겠어요? 이제 10년 정도 남은 직장생활인데 제가 관리직이 될 것도 아니고 이런 내용이 필요가 없어요. 내용이 어려워서 따라잡을 수도 없고, 말이 교육이지 사실상 교육받기 싫으면 회사를 나가라는 말이에요.

협력업체로의 이직 거부 후 달라진 회사생활

저는 90년대 중반에 현대중공업에 입사했어요. 용접 일을 한 것도 어느덧 20년이 넘었어요. 늦게 결혼도 하고 해서 지금은 자녀들도 어린 나이입니다. 직장을 잘 다녔는데,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회사가 저를 괴롭히기 시작한 것은 조선 경기가 나빠지면서였습니다.

2016년 현대중공업은 구조조정을 한다면서 '현대중공업 모스'라는 협력업체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중공업에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모스로 이직할 것을 권고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부서도 모스로 옮기는 부서였어요. 저에게도 제안이 들어왔는데 저는 거부했습니다. 당시에 상사들과 싸움도 하고 얼굴도 붉히며 대들었습니다.
현대중공업앞 집회모습
 현대중공업앞 집회모습
ⓒ 이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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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협력업체보다는 중공업에서 일하는 것이 고용도 안정되고, 임금도 나았으니까요. 대부분 처음에는 이직을 거부했죠. 하지만 회사 측의 압박이 심해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절반 정도는 이직한 것 같아요. 우리 부서 말고도 크레인부서, 지원부서 등 건조 부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모스에게 넘어갔습니다.

그다음에 회사는 이직을 거부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교육을 보내는 겁니다. 그래도 처음 교육은 괜찮았어요. 용접을 배웠거든요. 저는 원래 용접 자격증이 있는데 용접 자격증을 또 땄습니다. 그런데 용접을 하지 않던 관리직 사람들이나 그런 사람들은 교육받는 내내 힘들어했죠.

교육이 끝나고 자택 대기 3개월을 하고 회사에 갔더니 관련 부서가 아닌 다른 곳에서 일하게 했습니다. 페인트칠만 6개월을 했어요. 그리고 2017년에 2번째 교육을 다녀왔고 이번이 세 번째 교육입니다. 중간에 용접 일을 하기도 했지만, 계속 교육과 휴직을 반복하고 있어요.

가끔은 잘못 선택했나 하고 후회하기도 합니다. 겁도 좀 났고요. 모스로 이직한 사람들은 기본급은 깎였지만, 야근도 많이 시켜주고 해서 임금은 잘 받아가거든요. 그런데 저는 자택 대기 3개월 동안 기본급만 받고, 교육받고 휴직하면서는 기본급의 70%만 나왔고. 임금이 정상적으로 나오지도 않거든요. 일도 손에 안 잡히고 회사에 시달리다 보니까 심리적으로 힘들고... 유휴인력이라고 하는데 제가 보기엔 회사에 일거리가 없다고 보이지 않아요.

지금 공장 안에서 용접 일하는 동료들의 경우는 특근에 야근에 밤새워 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규직들이 하는 일도 일 마치고 다음 날 오면 야간에 하청업체 직원들이 밤새 일을 다 해 놓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규직 한 명 임금이면 협력업체 직원 2명 쓰니까 회사에서 정규직을 줄이려고 그렇게 일을 시키는 것 같아요. 똑같은 용접일인데도 저희 같은 사람들을 투입하지 않습니다.

회사내에 노동조합에서 내건 플랜카드
▲ 현대중공업에 걸린 플랜카드 회사내에 노동조합에서 내건 플랜카드
ⓒ 이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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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있습니다, 희망퇴직이랴뇨?

울산 동구에는 아이들 사이에서도 현대중공업 구조조정 문제를 다 알아요. 우리 딸아이도 학교에 가면 친구들과 그런 이야기를 하나 봐요. 친구들끼리 '너희 아빠도 그래?''우리 아빠는 하청업체 다녀' 그러면서 이야기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딸아이가 아빠가 직장 안 나가고 그런 모습 보면서 '아빠도 그런 사람이야?'하는 겁니다. 그런 이야기 들으면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하고 그래요.

그래도 저는 희망퇴직 안 할 겁니다. 우리가 열심히 해서 만든 회사인데 회사가 너무 얄밉게 구는 겁니다. 다들 더러워서 희망퇴직한다고 하는데 저는 안 나가려고요. 아직 아이들도 어리고 가족이 있고, 앞으로 돈 들어갈 데도 많잖아요.

덧붙이는 글 | 회사의 희망퇴직 강요에도 꿋꿋하게 일자리를 지키려는 노동자의 이야기입니다.



태그:#희망퇴직, #현대중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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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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