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희생자를 추모하고 헌화하는 참석자들
▲ 재일본 제주4.3희생자 위령제 희생자를 추모하고 헌화하는 참석자들
ⓒ 이두희

관련사진보기


위령제에 앞서 희생자를 추모하는 묵념을 하는 참석자들
▲ 재일본 제주4.3희생자 위령제 위령제에 앞서 희생자를 추모하는 묵념을 하는 참석자들
ⓒ 이두희

관련사진보기



4월의 망자는, 앞으로도 눈을 떼지 않고
살육의 이편에서 숨 죽이고 있던 우리들을 줄곧 지켜보리라
강요된 죽임의 망자에게 시간이란 없다
그날 그때 그대로 굳어진 채 멈추어 있다
- 김시종 시 <망자에게 시간이란 없다> 중

집에서도 말할 수 없었던 금기

식민지로부터 갓 해방된 조국, 그 조국의 분단을 반대하는 민중들에게 돌아온 건 무자비한 학살이었다. 학살로부터 반세기가 지났지만 이들에게는 또다른 형벌인 '침묵'이 강요됐다. 그리고 학살 70년을 맞는 2018년 마침내 '제주 4.3은 대한민국의 역사'임이 선언됐다.

제주의 4.3 추모행사에 100여 명이 대거 참석한 자이니치들이 지난 22일, 자신들이 살고 있는 땅 일본 오사카 히가시나리 구민센터에서 '재일본 제주 4.3희생자 위령제'를 열었다.

오사카는 일본에서도 유독 자이니치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고 그중에도 제주도 출신이 많은 곳이다. 그 배경에는 '제주4.3'이라는 비극이 커다랗게 자리잡고 있다. 학살을 피해 고향을 등지고 떠나야 했던 사람들이 터를 잡은 땅. 하지만 이들이 고향을 떠났다고 해서 '학살'을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조국의 분단과 전쟁, 동포 사회의 분열은 '제주4.3'을 말해선 안 될 금기로 만들었다.

결국 이들에게 남은 것은 학살의 트라우마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뿐이었다. 자이니치 2세이면서 작은 아버지를 비롯해친척 4명을 '제주4.3'으로 잃은  '재일본 제주4.3희생자 유족회' 오광현 회장(62) 역시 막연히 알고는 있었지만 집안에서 '제주4.3'이 회자되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그들은 '숨죽여' 살아왔다. 그러나 침묵이 바로 망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침묵 속에서도 그들은 결코 잊지 않고 기억해왔다. 그네들이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것이, 오사카를 중심으로 일본의 제주4.3 피해자를 위한 위령제가 열린 1998년부터다. 당시에는 자이니치 1세들이 많이 생존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선은 그분들의 마음의 응어리를 푸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1998년 첫 번째 위령제에는 제주도에서 심방(무당)을 직접 불러 맺힌 한을 조금이라도 풀어드리는 자리를 마련했다.

"집에서조차도 4.3은 얘기할 수 없는 주제였죠" 오광현 재일본 제주4.3 희생자 유족회 회장
▲ 재일본 제주4.3희생자 위령제 "집에서조차도 4.3은 얘기할 수 없는 주제였죠" 오광현 재일본 제주4.3 희생자 유족회 회장
ⓒ 이두희

관련사진보기


위령제는 평화로운 세계의 초석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70주기 위령제. 이번 제주에서의 추모식이 그랬듯 '70년'이라는 세월과 정권교체 뒤 첫 번째라는 의미도 더해져, 600여 명이 수용가능한 행사장에는 선 채로 위령제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만원을 이뤘다.

이날 위령제에는 오사카를 비롯한 일본 각지에서 온 자이니치와 한국에서도 4.3유족회, 4.3평화재단 관계자 등이 참석해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70주기를 맞는 의미를 되새겼다.

오광현 유족회 회장은 추도사를 통해 "오늘의 위령제는 비극을 경험한 사람, 관계가 있는 사람, 평화와 인권을 소중이 여기는 사람들이 희생된 분들을 기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것을 기원하는 자리"라고 말하고, 위령제가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한 초석이 되도록 할 것을 다짐했다.

창작 판소리 '사월이야기'를 부르는 소리꾼 안성민
▲ 재일본 제주4.3희생자 위령제 창작 판소리 '사월이야기'를 부르는 소리꾼 안성민
ⓒ 이두희

관련사진보기


각계 인사의 추도사가 끝난 뒤엔 추도공연이 이어졌다.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자이니치 음악인과 한국의 성악가들이 함께 어우러져 음악으로 희생자를 추모했다. 자이니치 3세로 판소리 <수궁가> 기능보유자 남해성 선생에게 사사를 받은 소리꾼 안성민씨는 학살을 피해 어린 몸으로 혼자 도망쳐 나온 자이니치 1세 할머니의 이야기를 창작판소리 <사월 이야기>에 담아 자이니치의 수난 가득한 삶을 들려줬다.

특히 이날 공연에는 <해녀 노래> <진서우제 소리> 등 제주민요가 많이 불려져, 더이상 제주가 감추고 침묵해야 할 곳이 아님을 알렸다. 떳떳이 제주의 노래를 부르고 즐기며 고향을 그리워할 수 있는 시대가 됐음을 선언하는 듯했다. 이날 공연에는 안성민씨를 비롯해 피아니스트 한가야, 자이니치코리아성악앙상블 등 자이니치와 한국 출신 성악가 이민정, 김신규씨가 함께 무대를 꾸몄다.

올 가을 오사카에 위령비 건립 목표

김시종 시 '망자에게 시간이란 없다' 낭독
▲ 재일본 제주4.3희생자 위령제 김시종 시 '망자에게 시간이란 없다' 낭독
ⓒ 이두희

관련사진보기


유족회는 70주년 사업의 일환으로 올 가을에 오사카시 텐노(天王)지구의 통국사(統国寺)에 위령비를 세울 계획이다. 4.3이 발생한 현장이 아님에도 오사카에 위령비를 세우고자 하는 것은 이곳 오사카가 제주4.3과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분명히 하고 희생된 분들의 넋을 기리고 유족분을 위로함과 동시에 두 번 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되지 않도록 기원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특히 이번 위령비 건립은 별도 지원금 없이 전적으로 시민들의 기부로 추진된다고 한다. 2000만 원을 목표로 하는 모금 활동에 관심있는 이들의 정성이 많이 모아지길 기대한다.

기억이 바래지 않는 한
우리가 나태해지지 않는 한
4.3의 망자는 살아 있다

공연에서 낭독된 김시종 시인의 시 <망자에게 시간이란 없다>의 마지막 부분이다. 본인이 제주 4.3 당시 남로당 당원으로 참여했다가 1949년 일본에 온 김시종 시인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시로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했다. 시인은 망자의 넋은 여전히 떠나지 않고 있고, 그 넋을 살아 있게 하는 것은 살아남은 자들, 살아있는 자들의 몫임을 노래한다. 살아있는 자가 그 몫을 제대로 감당해, 억울한 넋들이 편히 쉴 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목 마르다'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한가야씨
▲ 재일본 제주4.3희생자 위령제 '목 마르다'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한가야씨
ⓒ 이두희

관련사진보기


제주4.3 평화재단 양조훈 이사장의 추도사
▲ 재일본 제주4.3희생자 위령제 제주4.3 평화재단 양조훈 이사장의 추도사
ⓒ 이두희

관련사진보기


재일본 제주4.3희생자 유족회 오광현 회장의 추도사
▲ 재일본 제주4.3희생자 위령제 재일본 제주4.3희생자 유족회 오광현 회장의 추도사
ⓒ 이두희

관련사진보기


오고무의 한애나씨
▲ 재일본 제주4.3희생자 위령제 오고무의 한애나씨
ⓒ 이두희

관련사진보기


자이니치코리아 성악 앙상블
▲ 재일본 제주4.3희생자 위령제 자이니치코리아 성악 앙상블
ⓒ 이두희

관련사진보기


행사장 입구에 설치된 제주도와 4.3항쟁 과정을 설명하는 사진전1
▲ 재일본 제주4.3희생자 위령제 행사장 입구에 설치된 제주도와 4.3항쟁 과정을 설명하는 사진전1
ⓒ 이두희

관련사진보기


행사장 입구에 설치된 제주도와 4.3항쟁을 설명하는 사진전2
▲ 재일본 제주4.3희생자 위령제 행사장 입구에 설치된 제주도와 4.3항쟁을 설명하는 사진전2
ⓒ 이두희

관련사진보기




태그:#제주4.3, #자이니치, #재일본 위령제, #오사카, #재일본제주4.3희생자유족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일본 나고야의 장애인 인형극단 '종이풍선(紙風船)'에서 일하고 있음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