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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시아로 가는 길의 고독

피니스테레에서 눈을 떴을 때 들리는 소리는 '꺼억까악' 거리는 갈매기 소리였다. 제법 큰 갈매기들이 낮게 활보하면서 불협화음을 내질렀다. 무리 지은 그들이 한꺼번에 토해낼 때는 히치콕의 <새>의 공포를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바다를 향해 있는 묵시아 성당
 바다를 향해 있는 묵시아 성당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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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시아에서의 아침도 마찬가지였다. 어찌 아침뿐일까. 성당 미사를 드리고 천천히 걸어오면서 잠시 앉았던 수변 공원 가로등에도 갈매기는 조형물처럼 앉아서 모든 이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왜 내 영역에 침범했는가, 라고.

제주 올레길에서도 그렇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때 종종 마주치는 사람들은 농부였다. 대도시 몇 군데를 경유하지만 대부분 시골 마을길을 연결해 놓았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길을 걷다보면 그들의 일상을 엿보게 된다.

숙소 옥상에서 바라본 묵시아 저녁 풍경
 숙소 옥상에서 바라본 묵시아 저녁 풍경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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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길은 사유지일 것이다. 농장 근처 길을 지나갈 때는 순례자들이 익어가는 과실에 손을 대기도 할 것이다. 쓰레기도 문제일 것이고 농기계(첨단 농기계가 많다)를 이동시킬 때 좁은 길에서는 순례자가 방해가 될 것이다. 또한 시끄러울 것이다. 알베르게와 바 주인은 이득을 보겠지만 그들은 소수일 것이고 분명 여유 돈이 있는 외지 사람들이 운영하는 것도 상당수일 것이다.

묵묵하게 현지에서 일을 하면서도 걸어가는 순례자들에게 환한 미소를 보내는 이들은 어떤 종교적인 포옹력 혹은 굉장한 배려심이 아닐까(주최 측이 아닌 순수한 마을 주민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왜 비행기 타고 와서 걸어 다녀? 라는 말을 제주 올레길을 걸었을 때 들었다. 이곳도 마찬가지 시선이 있을 수 있다. 이들이 보는 순례자들은 자기 돈 들여서 오랫동안 고생(?)하러 오는, 할 일 없는 사람들일 수도 있겠다. 이렇듯 이곳에서도 다양한 감정이 담긴 현지인들의 눈빛을 마주하곤 한다.

양쪽 화살표
 양쪽 화살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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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스테레(Finisterre)에서 묵시아(Muxia)로 가는 길은 걷는 구간 중에 가장 외로웠다. 내 영역에 왜 침범하니, 라는 눈빛조차 없었다. 멀리서 벌초 작업하는 전기톱 돌아가는 소리만 들렸다. 어느 마을을 지날 때는 여기는 경찰이 없으니 무슨 일을 당하면 긴급 전화를 이용하라는 메시지가 적힌 푯말만이 나를 반겼다.

피니스테레나 묵시아는 산티아고(Santiago)에서의 옵션(?)과 같은 길이어서 대부분 버스를 타고 오기 때문에 걷는 동안 내내 혼자라는 것도 한몫했다. 거의 30km 거리에 어떤 식당도 보지 못했다. 나는 설익은 사과를 몇 개 주워 먹어야 했다(뒤늦게 고백하자면). 표지석도 문제였다. 피니스테레에서 묵시아로, 묵시아에서 피니스테레로 이동하는 양쪽 사람을 배려하기 위해 화살표가 양쪽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것도 낡아서 보기 어려웠다. 그래서 순례자들은 길을 헷갈려 했다.

묵시아로 향하는 길목에 어떤 바도 없었다. 너무 일찍 나섰는지 몇 개 본 바는 문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오아시스 같은 무인 자판기가 있는 쉼터에서 발을 쉴 수 있었다.
 묵시아로 향하는 길목에 어떤 바도 없었다. 너무 일찍 나섰는지 몇 개 본 바는 문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오아시스 같은 무인 자판기가 있는 쉼터에서 발을 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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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스테레에서 6km 정도 걸어왔을 때였다. 맞은편에서 4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 순례자가 걸어왔다. 사람 구경하기 힘든 곳이어서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힘찬 인사를 건넸다. 그는 자꾸 묵시아, 묵시아라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걸어가는 방향을 가리키며 묵시아는 저쪽이라고 당신이 가는 길은 피니스테레라고 말했다. 휴대폰 맵을 보여주며 현재 위치를 확인시켜 주었다.

그 남자는 좀 전에 만난 사람이 길을 잘못 가르쳐줬다면서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지 굉장히 짜증을 냈다. 피니스테레에서 5시에 출발했다고 한다.

누군가가 그랬다. 지나가는 마을과 마을을 연결해서 구글맵을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자칫 잘못하면 표지석도 찾지 못하고 양쪽 화살표 때문에 헷갈릴 수 있다고.

여섯시 이십분에 출발해도 캄캄했는데 다섯 시는 얼마나 더 했을까. 다행히 나는 까미노맵을 이용했다(까미노맵으로 절반 정도 길을 찾아 걸었을 때에야 묵시아로 가는 확실한 표지석을 발견했다).

남자는 나를 따라오면서도 의심을 풀지 못했다. 새까만 동양 여자 말과 현지인의 말 중 어느 쪽을 더 신뢰해야하는지 의문스러워하는 듯했다. 2분인가 함께 걸었을까. 사거리가 나왔고 자동차 두 대가 달려왔다. 남자는 무리하게 앞차를 정차시키더니 묵시아, 묵시아라고 또 외쳤다(영어를 잘 하지 못했다).

나는 그와 함께 운전석 남자의 말을 들어볼까 하다가 그냥 내 길을 갔다. 먼저 간다고 손을 흔들어 줬다.

온전한 내 길

피니스테레를 떠나며
 피니스테레를 떠나며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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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란 여러 갈래다. 운전하는 사람이 비인기 구간인 묵시아로 가는 길을 제대로 알려줄 지 의문이었다. 그는 그가 운전했던 곳을 알려줄 지도 모른다. 또한 그 남자가 가진 상대방에 대한 불신과 길을 잘못 들어 시간을 허비했다는 그의 분노를 같이 걸으면서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나대로의 길, 내가 확신하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설렁 잘못된 길이라도 지금 내가 확신하기에 가야 했다. 믿음이 있으니 자신이 있었고 책임질 의향이 있었다. 내게 지도(혹은 나침판)도 있었다.

그 남자를 다음날 산티아고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봤다. 내 옆자리가 비워 있는 것을 보고 앉아도 되냐고 물었다. 나는 앉을 사람이 있다고 했다. 어떻게 왔냐고 물어보면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는, 한 시간 사십분 동안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지만 그 많은 한 가지 길 중에서 선택했을 것이고 어제의 분노는 찾아볼 수 없어서 그 헤맴이 이제는 지나간 추억이 되었다는 것을 그의 얼굴에서 읽었다. 나는 피곤했고 잠을 자고 싶었다.

버스는 긴 여정을 마친 사람들을 태우고 출발했다. 내가 걸었던 길, 혹은 그렇지 않았던 길이 차창 너머로 펼쳐졌다가 잽싸게 지나쳐 갔다.

또 다른 시작을 위한 파이팅

묵시아에서 묵었던 호스텔(Arribada Hostel). 직원이 너무나 친절하고 깨끗한 곳이었다.
 묵시아에서 묵었던 호스텔(Arribada Hostel). 직원이 너무나 친절하고 깨끗한 곳이었다.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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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내 길을 걸으며 미리 예약한 호스텔(Arribada Hostel(15유로))에 도착했다. 시설도 깨끗했지만 무엇보다 직원이 친절했다. 내가 들어가자 동양인이 유일한 듯 예약번호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이름을 알았다.

접수를 다 하고 난 뒤 묵시아 지도를 펼쳐 놓고는 일일이 가볼만한 곳을 설명해줬다. 성당 미사가 7시에 있다는 것을 그녀 때문에 알았다.

묵시아는 성 야고와 관련된 몇 가지 설이 있다. 첫 번째는 성 야고의 사체가 이곳으로 떠내려왔다는 것이다. 그때 중요한 역할을 했던 생물이 있다. 조가비(가리비)이다. 조가비가 빈틈없이 사체에 붙어서 갑옷 역할을 한 덕에 사체는 훼손되지 않았다. 그래서 조가비를 성 야고의 휘장으로도 사용하고 순례자들의 대표적인 상징물이 된다. 나도 배낭에 조가비를 달고 내내 걸었다. 순례 출발지였던 생장피드포르에서 순례자 여권을 만들 때 기부금을 내고 가지고 온 것이다. 

성당도 특이하다. 일반적으로 동네 한 가운데 성당이 자리한 것과 달리 바닷가에 위치하며 바다를 향해 세워져 있다. 야고보가 설교를 할 때 바다에서 마리아가 출현했다고 하여 성당은 바다를 향하게 됐다. 성당 내부에는 배가 걸려 있다. 마리아가 탔던 배를 상징한다.

묵시아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며
 묵시아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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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에 저녁 미사에 참석한 나는 바다에서 불어오는 강풍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느긋해졌다. 피니스테레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전날 피니스테레에서는 공립 알베르게(6유로)에서 잤다. 그곳에서만 완주증을 받을 수 있었다. 오래 걸어서 피곤했고 또 피니스테레 곶에 있는 '세상의 끝'에 다녀오려면 3.2km는 더 걸어야했기 때문에 빨리 결정하고 싶었다.

사람은 많은데 남녀 화장실과 샤워실이 한곳뿐이었다. 곶에 다녀와서야 알았다. 샤워실에 샤워 커튼이 없어 화장실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샤워하는 사람의 몸매(?)까지 감상할 수 있었다. 나는 대강 손발과 얼굴만 씻기로 했다.

묵시아에서 마무리하기를 잘했다. 피니스테레가 여성적인 온화한 휴양지 같다면 묵시아는 이름 어감만큼이나 묵직함이 있다. 나는 그 느낌이 좋다.

마지막 산티아고 밤을 나는, 갈매기 불협화음을 배음 삼아 잘 잤다. 그리고 아침을 그 녀석들 소리를 알람 삼아 깼다. 또 다른 시작을 위해서 녀석들이 파이팅을 외치는 소리였다. 나는 기분좋게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내 길이 또 다시 열려 있었다. 그 길을 뚜벅뚜벅 걷기만 하면 되었다.

묵시아 숙소에서 바라본 밤 풍경. 갈매기가 낮게 날고 있다.
 묵시아 숙소에서 바라본 밤 풍경. 갈매기가 낮게 날고 있다.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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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은 2017년 6월 13일에 걷기 시작해서 7월 12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습니다. 30일만의 완주였습니다. 그 다음 날, ‘세상의 끝’이라는 피니스테레와 묵시아까지(100km)까지 내처 걸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34일 동안 900km 여정을 마쳤습니다. 몇 십 년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34일의 여정은 짧을 수 있으나 걸으면서 느꼈던 것들은 제게 인생의 축소판처럼 다가왔습니다. 움츠린 어깨를 펴게 하고 긍정적인 미래를 내다보게 했습니다. 이곳에서 34일 간의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시간들을 도란도란 풀어놓으면서 함께 공유하려고 합니다.



태그:#산티아고 순례길 , #프랑스 길 , #프레그리노, #피니스 테레, #묵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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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문학박사. 저서로는 소설집 《기차가 달린다》와 《투마이 투마이》, 장편소설 《죽음의 섬》과 《스노글로브, 당신이 사는 세상》, 여행에세이로는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물공포증인데 스쿠버다이빙》 등이 있다. 현재에는 광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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