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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없이 평등한 삶을 바라는 여성으로서 인생의 선배이자 엄마로서 두 아이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편집자말]
한들, 미투운동을 바라보는 엄마의 심정은 매우 복잡하단다. 여성인권의 역사가 다시 쓰이는 중이라며 그 어느 때보다 희망차다가, 피해 여성들을 향해 2차 가해하는 모습에 분노하다가, 역차별 시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답답하다가, 이 흐름이 끊길까 불안하기도 해.  

말하지 않아도 뼛속 깊이 체감하고 있던 일이라 말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격스러워하는 여성들과 달리, 수없이 많은 여성들이 차별과 폭력에 대해 말해도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남성들이 많아.

남성중심사회를 돌아봐야 한다고, 가해자 중심이 아닌 피해자 중심 사고를 해야 한다고  인식의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는 높지만 효과는 글쎄.

이미 사회적으로 충분히 배제되고 차별받는 여성들을 향해 '펜스룰'과 같은 또 다른 배제를 만드는 일로 답하는 수준이니 갈 길이 멀지. 이미 가치관이 굳어버린 남성들의 생각을 바꾼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아.

미투운동을 꽃뱀운동, 사기운동이라고 폄하하는 남성들을 바라보면 절망스럽고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들에겐 여성의 문제는 여전히 사소하고, 개인적인 일이야. 변화할 의지가 없는 그들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은 정말 무겁단다.

'젠더감수성'에 관심 기울이는 부모들

최근 화제가 된 성폭력 예방 강사 손경이씨의 tvN <어쩌다 어른> 강연 장면
 최근 화제가 된 성폭력 예방 강사 손경이씨의 tvN <어쩌다 어른> 강연 장면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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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잘 키운다는 것은 어떻게 키우는 것일까? 부모의 역할, 엄마의 역할은 뭘까? 넌 과연 그들과 다를 수 있을까? 다르게 키운다는 것이 가능한 일이기는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해. 널 그들과 다르게 키울 자신이 없다. 엄마가 아무리 노력해도 널 둘러싼 많은 사람들이 '함께' 변화하지 않는다면 너도 힘들고, 엄마도 힘들거야.

그런 의미에서 엄마가 생각하는 미투운동의 가장 긍정적인 효과는, 최근에 성폭력 예방에 관심을 기울이는 부모들이 많아졌다는 사실이란다. 사회적 부와 권력을 누리며 '잘 나가던' 남성들이 성폭력 사실로 한순간 도태되는 현장을 목격한 많은 부모들이 이제야 절실하게 성교육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어. 물심양면으로 잘 키워놔도 성폭력으로 '폭망'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생긴 거지.

우리 사회는 계속 더 평등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중이고, 앞으로의 사회는 성범죄에 훨씬 더 엄격할 거야. 차츰 법과 제도가 더욱 강화될 테니 말야. 그러니 성차별에 관심조차 없던 부모일지라도 자식의 앞날에 민첩하게 반응하는 부모라면, 내 자식의 성공을 위해 젠더감수성이 필요함을 깨닫게 되었어. 사회적 생존을 위한 필수 교육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지.

여성인권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내 자식의 성공을 위해 젠더감수성을 키운다는 생각이 불편하긴 해도 나쁘지는 않아. 이렇게라도 관심을 갖는 부모들이 많아진다면 감사할 따름이지.

웹툰 <송곳>에는 인간에 대한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온다는 명언이 있다. 뺏어도 화내지 않고 때려도 반격하지 않으니까. 두렵지 않으니까. 존중하지 않는다고. 살아있는 인간은 빼앗으면 화내고 맞으면 맞서서 싸운다고. 상대가 두려워야 존중하게 된다고. 

그래, 그동안 가만히 잘 참던 여성들이 화내고 말하기 시작하니 이제야 여성들이 두려워 진거야. 정확히는 여성들이 두려운 게 아니라, 쌓아온 많은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겠지. 이런 두려움 덕분에 남성들은 억지로라도 '존중'의 태도를 배울 수밖에 없는 시대가 열렸다.

타인의 경계를 존중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

엄마는 네가 여성들을 두려워하길 원하진 않아. 사랑과 신뢰를 기반으로 좋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길 바라지. 그런데 그건 엄마의 소망인 거고. 만약 진심이 담긴 존중이 어렵다면 최소한 형식적인 존중만이라도 배우고, 실천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

'존중하는 태도'라는 말이 좀 추상적이라 무엇을 어떻게 존중해야 할지 어렵긴 할 거야. 여성을 존중하며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이면 많은 남성들이 차라리 여성과 관계 맺기를 포기하는 편이 더 낫다고 선언을 하겠어. 그런데 그건 너무 슬프지 않니? 세상의 반이 여자인데 반쪽 인간관계를 포기하겠다니.

한들, 타인의 경계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되렴.

'경계'는 어떠한 기준에 의하여 구분되는 한계를 말하는 거잖아. 국가 간에 침범하지 말아야 할 경계가 있듯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도 지켜야 하는 경계가 있다. 누구나 존중받아야 하는 신체적, 물리적, 언어적, 정서적인 영역이 있단다. 쉽게 말하면 사람 관계에 넘지 말아야 할 가상의 '선'이 존재하는 거지.

'남의 몸을 때리면 안 된다'처럼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경계가 있는가 하면,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나와 어떤 관계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경계도 있어. 스스로 판단이 어려운 경계. 그런 경계를 넘을 때에는 반드시 '동의'를 구하고 서로의 경계를 존중한다는 것이 '경계 존중'의 핵심이야. 이러한 존중이 상대에 대한 배려가 되는 거지.

대부분의 성범죄가 모르는 사람이 아닌, '아는 사람'에 의해 일어난다. 친밀한 사이에서는 서로의 경계가 모호해진 나머지 경계의 침범이 더 자유롭게 일어나잖아. 연인, 가족 등과 같은 가까운 사이에서 사랑이라는 이름하에 상대방을 함부로 대하는 일도 빈번하고. 직장에서는 특히 권력관계가 작동하며 경계를 넘나들지.

상대방의 감정을 무시하고 '동의'의 과정없이 자신의 기준으로 경계를 넘기 때문에 많은 문제가 생기는 거야. 이제 개인과 개인 사이의 경계를 침범하는 것은 단순히 심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윤리의 문제다. 모르는 사람이나 업무적인 관계의 사람들과는 말할 것도 없고,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해.

경계를 지키다 보면 관계가 약해진다고 염려할 수 있지만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면서 사랑과 우정을 나누는 일은 건강한 관계 맺기의 기본이란다.

사랑도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

tvN 드라마 <또 오해영>의 '벽치기 키스' 장면은 '데이트 폭력'을 미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자료 사진)
 tvN 드라마 <또 오해영>의 '벽치기 키스' 장면은 '데이트 폭력'을 미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자료 사진)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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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리거나 빼앗는 부정적인 행동이 폭력이라는 인식은 보편적인 편인데, 타인에게 관심을 보이거나 사랑하는 마음도 폭력이 될 수 있다는 부분에 대해 어려워하는 것 같아. 사랑과 폭력은 어색한 조합이라고 생각하지.

그러나 사랑을 주는 말과 행동일지라도 상대가 원치 않는 사랑이라면 폭력이란다. 네가 아무리 긍정적인 감정으로 관심을 주고 있다고 해도 상대에게는 불쾌한 경험이 될 수 있어. 사랑하는 감정에도 존중해야 할 경계가 있고, 경계를 넘을 때는 '동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한들아, 엄마가 뽀뽀해도 될까?" 엄마는 너에게 뽀뽀하고 싶을 때마다 묻는다. 그러면 너는 "좋아!" 할 때도 있지만 "싫어~ 다음에 해줄게!" 할 때도 있고, "뽀뽀 말고 안아줘~"하고 다른 대안을 줄 때도 있어.

엄마는 네가 너무 사랑스럽고 매일 매일 뽀뽀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엄마 마음대로 스킨십을 퍼붓지 않아. 엄마는 그 누구보다 너를 사랑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너의 감정을 존중하려고 노력해. 자신의 감정을 존중받아 본 경험이 있어야 타인의 감정도 존중할 수 있으리라 믿거든.

엄마가 원할 때마다 원하는 만큼 물고 빨며 너의 감정을 무시한다면 너는 일방적인 사랑의 표현에 익숙해지지 않을까. 너에 대한 엄마의 사랑이 아무리 넘친다 해도 네가 원할 때, 네가 원하는 방식의 스킨십에 만족하고 있어. 너에게 스킨십 허락을 구하는 일은 엄마가 너의 경계를 존중하는 방식이지.

가끔 아빠가 너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뽀뽀를 할 때가 있는데 그때 너는 이렇게 말한다.

"아빠! 나한테 물어보고 뽀뽀해야지~!"

엄마가 너한테 그랬듯, 네가 아빠를 혼냈듯. 누군가에게 스킨십을 하고 싶다면 상대방의 '적극적인 동의'를 얻어야 해. 네 마음만 앞세워 너의 욕구만 채우려 한다면 그 마음이 아무리 큰 사랑이라 해도 폭력인 거야.

또, 네가 누나한테 과자를 가져다주면서 "누나, 이거 먹어~"했을 때, 누나가 "싫어~ 안 먹어~"했잖아. 너는 계속 먹으라고 하고, 누나는 계속 싫다고 해서 결국 너는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 내가 주는데 누나가 자꾸 안 먹는다고 해~!" 너는 엄마가 누나를 혼내주길 바라면서 울먹였지만 그때도 엄마가 말했지.

다른 사람과 나눠먹고 싶은 마음은 예쁘지만 누나가 싫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 거라고. "누나. 이거 먹어!"가 아니라 "이거 먹을래?"하고 물어봐야 하는 거고. 상대방이 싫다는 걸 계속 강요하는 건 폭력이라고.

너의 '선의'와 '진심'도 언제든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해. 네가 좋아하는 걸 상대방이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단다.

남자들이 좋아하는 여자에게 고백했다가 거절당하면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라는 조언을 한다. 그런데 이 말은 열 번이나 상대방의 감정을 무시하라며 폭력을 부추기는 말이라고 생각해. 상대방의 '거절'을 가볍게 생각하는 이런 폭력적인 사고로 여성들과 관계를 맺는 시대는 끝났어.

한들, 폭력보다 존중이 훨씬 더 어려운 일이지만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는 네가 조금 더 불편해져야 해. 올바르게 동의를 구하는 자세와 거절에 순응하는 태도를 배우렴.

엄마는 네가 스스로의 경계를 잘 알고, 너의 온전함을 지켜나가길 바라는 만큼 너 또한 타인의 경계를 존중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과 안전한 관계를 이어가길 바란단다. 서로 존중하는 삶은 너의 삶을 더 충만하게 채워줄 거야.

오늘도 엄마는 거침없이 스킨십을 퍼붓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너의 경계를 지켜주기 위해 뽀뽀해도 되냐고 물어봤어. 쳇. 오늘도 싫다는 구나. 엄마의 마음은 무너지지만 너의 더 많은 '동의'를 위해 너의 사랑을 받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게! 내 사랑, 내일은 꼭 뽀뽀해다오.


태그:#경계존중, #미투운동, #페미니즘, #주간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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