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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를 유랑하는 여행자들은 거대한 문화도시 파리 외에도 프랑스 남동부에 있는 프로방스(provence) 지방을 많이 찾는다. 온화한 날씨 속에 풍요로운 자연의 혜택을 듬뿍 받는 프로방스는 다양한 자연경관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고대 로마시대부터 발달한 도시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프로방스 지방은 많은 문화유적과 색다른 볼거리들을 지니고 있다.

프로방스 지방에서도 론 강(Rhône River) 하류 연안의 대지 위에 자리한 아를(Arles)은 오랜 역사도시의 매력을 한껏 뽐내고 있다. 나는 고도(古都) 아를을 가기 위해 새벽 일찍 숙소에서 나왔다. 아비뇽 상트르 역(Gare d'Avignon Centre)에서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사고 열차를 기다렸다. 아비뇽(Avignon)에서 아를까지는 불과 20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시골 간이역 같이 아담한 아를 역이 여행자들을 정겹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를 역을 나서는데 마침 한 한국인 젊은 부부가 눈에 띄었다.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간단하게 여정만 물은 후 헤어졌다. 프랑스 남쪽까지 내려온 젊은 부부의 얼굴에는 아를 여행에 대한 설렘이 담겨 있었다.

아를의 거리. 로마의 고도 아를은 화가의 도시이기도 한 매력적인 도시이다.
▲ 아를의 거리. 로마의 고도 아를은 화가의 도시이기도 한 매력적인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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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를 역에서 걸어서 라마르틴 광장(Place du Lamartine)을 거쳐 아를의 시가지로 들어서자 좀처럼 보지 못했던, 독특한 미감의 성벽과 골목길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원전 1세기에 로마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에 의해 로마의 식민지로 역사가 시작된 아를에는 고대의 역사적 향기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4세기경 이곳 아를은 '갈리아(Gallia)의 작은 로마'로 불려질 만큼 로마제국 시대에 중요한 도시였다. 중세시대에도 아를은 프로방스 지방의 요새 도시로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를에 남은 로마시대의 유적과 중세의 성곽은 1981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기도 하였다.

원형경기장 가는 길. 경기장 앞에 다가서자 로마인의 고대복장을 입은 사람이 갑자기 나타났다.
▲ 원형경기장 가는 길. 경기장 앞에 다가서자 로마인의 고대복장을 입은 사람이 갑자기 나타났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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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도시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중세시대의 중심 대문인 카발리 문(Porte de la Cavalerie)이 웅장하게 서 있다. 카발리 문을 지나 정면 골목으로 직진해서 걸어가자 신비한 모습의 로마 유적, 원형경기장이 길을 막고 서 있었다. 그리고 원형경기장으로 향하는 발걸음 앞에 갑자기 고대 로마인의 복장을 입은 사람이 눈 앞에 나타났다. 이 친구는 괜히 사람을 놀라게 하고는 골목 사이로 사라져갔다.

아를에 처음 도착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찾는다는 곳, 로마 원형경기장(les Arènes d'Arles). 기원전 90년에 지어졌으니 지어진 지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변치 않고 자리를 잡고 있는 역사적인 건축물이다.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원형경기장은 아를의 상징으로 본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삼국이 태동하던 시기에 지어진 건축물이다. 당시에 이렇게 웅장한 건축물이 들어서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기만 하다. 원형경기장은 타원 모양을 하고 있는데 긴 지름이 136m, 짧은 지름이 107m나 된다.

경기장을 처음 지을 당시에는 3층으로 지어졌지만, 파괴된 후에 현재 2층으로 복원되었다. 각 벽면은 무려 60개의 아치로 구성되어 있고, 각 아치들은 도리아 식의 간소한 기둥이나 코린트식의 화려한 기둥들이 떠받치고 있다.

아를의 원형경기장

아를 원형경기장. 2천년 전에 세워진 건축물이지만 놀랍도록 잘 보존되어 있다.
▲ 아를 원형경기장. 2천년 전에 세워진 건축물이지만 놀랍도록 잘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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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를의 원형경기장을 보고 있으면 당연히 로마의 콜로세움이 연상된다. 마치 작은 콜로세움처럼 보이지만 아를의 골목길을 돌다가 마주치는 원형경기장은 미감이 완전히 색다르다. 작은 마을 위에 솟은 거대한 성전 같다고나 할까?

로마시대 당시에는 건물이 3층까지 있었으니 지금보다도 훨씬 웅장했을 것이다. 이렇게 웅장한 건축물만 놓고 보면 당시 로마인들의 건축술이 현대 건축술보다 못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꽤 비싼 입장료를 내고 원형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원형경기장 안, 1층 정도 높이의 계단을 딛고 올라서자 원형경기장의 내부모습이 시원스럽게 펼쳐졌다. 로마 시대, 검투사들의 경기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렸을 경기장 내부 관람석은 예상보다도 훨씬 넓었다.

로마시대 당시에 무려 2만 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이었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요새도 막대한 예산을 들여 힘들게 짓는 국내 프로야구 구장이 보통 2만 명을 수용하니까 말이다.

원형경기장 내부. 로마시대 당시에 이미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수용하던 놀라운 시설이다.
▲ 원형경기장 내부. 로마시대 당시에 이미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수용하던 놀라운 시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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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단 걸음을 멈추고 원형경기장 한 좌석에 조용히 앉았다. 원형경기장의 좌석은 로마시대로의 상상여행을 떠나보는 재미가 각별한 곳이기 때문이다. 영화 <글래디에이터>(Gladiator)에서 검투사들이 살아남기 위해 토하던 가쁜 호흡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당시 이곳은 로마인들에게 실감 나는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는 게임의 성전이었다. 로마시대에 이곳에서는 동물을 사냥하는 게임과 함께 검투사 노예를 동원한 검투 경기가 열렸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잔혹한 게임의 현장이었던 것이다.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이 피비린내 나는 경기를 벌이는 광경이 무려 4세기 이상이나 이곳에서 계속되었다.

검투사들의 경기. 로마시대에는 노예들을 동원한 검투사 경기가 이 경기장에서 살벌하게 진행되었다.
▲ 검투사들의 경기. 로마시대에는 노예들을 동원한 검투사 경기가 이 경기장에서 살벌하게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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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살벌한 검투사 경기가 벌어지던 흙 바닥은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었다. 이 거대한 건축물은 5~6세기 이후 중세시대까지 아를의 요새로 사용되었고, 중세시대에는 이 원형경기장 한복판에 마을도 들어서 있었다. 로마제국의 멸망 이후 5세기부터 원형 경기장 내부를 주거지로 사용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경기장 중앙에는 공공 광장이 건설되고, 4개의 타워, 200채 이상의 가옥과 작은 예배당으로 이루어진 요새 도시가 만들어져 있었다. 요새로 개조되면서 원형경기장의 아름다운 아치도 적의 공격을 막기 위해 막혀있었다.

1825년에 국가 주도로 원형경기장이 역사적 기념물로 변경되면서 경기장 안 주거지는 몰수되었고, 원형경기장은 본 모습을 되찾았다. 현재의 원형경기장은 19세기의 복원작업을 통해 로마시대의 옛 모습에 가까워진 모습이다. 1층에 비해 2층의 석재 색깔이 하얀 것은 2층에 새로운 석재들이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원형경기장을 차분하게 돌아보기 위해 관람석 뒤편의 통로로도 나가 보았다. 두 단계의 층으로 이루어진 관람석의 뒤쪽은 수많은 통로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각 통로마다 로마시대의 배수 시스템이 연결되어 있었다.

통로를 이루는 복도의 독창적인 시스템은 관객들의 신속한 대피에도 이용되었다고 한다. 길게 이어진 통로들은 대피 시 군중에서 효과적으로 빠져 나올 수 있는 수많은 계단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원형경기장 회랑. 워낙 규모가 거대해서 관람객들이 콩알만 하게 보인다.
▲ 원형경기장 회랑. 워낙 규모가 거대해서 관람객들이 콩알만 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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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형경기장 구석구석을 돌며 로마 역사의 흔적을 느꼈다. 2천년 역사의 건축물 회랑 사이에서 여행객들의 모습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는 했다. 조용한 유적 속에서 가끔 튀어나오는 사람들의 크기를 보면 이 경기장이 얼마나 큰지를 비로소 실감하게 된다.

나는 원형경기장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나는 계단을 통해 테라스 같이 생긴 경기장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경기장의 사방마다 수십 개의 아치가 뚫려있어서 경기장의 정상에는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아를 원형경기장은 아를 구시가의 가장 높은 곳에 있었고, 계단 끝 전망대에서는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눈 앞에 예상치 못했던 시원스러운 풍경이 펼쳐졌다. 경기장 2층의 아치보다도 높은 곳에 올라서보니 아를 시가지 너머 론 강의 풍만한 전경까지 눈에 들어왔다. 프로방스의 낮은 산맥 아래로는 남프랑스의 햇살이 반짝거리며 퍼지고 있었다.

경기장에서 내려다 본 아를 시내. 시원스러운 론 강 앞에 밝은 벽돌색 민가들이 펼쳐져 있다.
▲ 경기장에서 내려다 본 아를 시내. 시원스러운 론 강 앞에 밝은 벽돌색 민가들이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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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트인 론 강 앞으로는 밝은 벽돌색 지붕의 가옥들이 좁은 골목길 사이로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그리고 한낮의 햇살을 받아 따뜻하게 빛나는 집들 사이로 고대 유적들이 어우러지고 있었다. 365일 중 300일이 맑다는 아를. 나는 이 축복 받은 땅 위의 풍경을 고스란히 마음에 담았다.

사람 죽이던 원형경기장이 소 죽이는 투우장으로

원형경기장 곳곳에는 아직도 이 경기장이 운영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철제 시설물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로마의 원형경기장은 가까운 스페인의 영향으로 19세기부터 투우장으로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를은 한때 스페인의 지배를 받기도 해서 스페인 문화의 짙은 영향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었다. 특히 투우는 밝은 햇살 아래 정열적인 아를 사람들의 기질에도 잘 맞아서 현대까지도 가장 인기 있는 오락거리로 남아 있다.

투우경기. 스페인의 영향을 받은 아를의 시민들은 원형경기장에서 투우를 보며 열광한다.
▲ 투우경기. 스페인의 영향을 받은 아를의 시민들은 원형경기장에서 투우를 보며 열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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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사람이 사람을 죽이던 원형경기장이 이제는 사람이 소를 죽이는 투우장으로 변해 있는 것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피를 보며 열광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이 장소의 본질에는 변함이 없다. 현재도 이곳에서는 부활절부터 9월까지 많은 인파들이 모인 가운데 투우경기가 열리고 있다. 여름에는 이 원형경기장에서 연극과 야외음악회까지 열린다.

검투사들의 대결, 투우, 음악회가 어우러진 이곳은 묘한 조화 속에 현재도 역사적 스토리를 추가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세계문화유산 건축물 안에서 유적지를 손상시킬 수도 있는 투우경기를 계속 한다는 발상 자체가 놀랍다.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이 투우장에 불세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가 열광하며 살다 간 흔적이 남아있다는 점이다. 아를에 살았던 인상파 화가, 고흐의 흔적을 쫓아 가다 보면 이 투우장에 그가 다녀간 자취를 발견하게 된다.

고흐는 한때 우정이 돈독했던 폴 고갱(Paul Gauguin)과 함께 아를의 야외에 나가 그림을 그리다가 아를 시내의 이 투우장에 함께 놀러 왔다. 1888년 고흐는 이곳에서 성난 황소와 투우사의 대결을 지켜보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열정의 투우장에서 고흐의 억눌렸던 야성은 아마도 폭발했을 것이다. 고흐는 선홍색 물레타(muleta)로 황소를 유혹하는 투우사를 보면서 그 자신의 열정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투우사의 붉은 색 천을 향해 저돌적으로 돌진하는 황소를 보면서 아마도 고흐는 자신의 삶을 연상하였을 것이다.

원형경기장 외곽. 원형 경기장의 역사에 대한 자세한 안내문을 관광객들이 읽고 있다.
▲ 원형경기장 외곽. 원형 경기장의 역사에 대한 자세한 안내문을 관광객들이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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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형경기장 밖으로 나가 경기장 외곽을 돌다가 다시 고흐를 만났다. 그가 아를에서 남긴 '아를의 원형경기장'이라는 작품이 경기장 안내문 옆, 원형경기장을 배경으로 서 있었다. 아를 경기장 그림을 보다가 고개만 돌리면 그림을 그렸던 실물 아를 경기장이 바로 눈 안에 들어왔다. 유명 화가의 명작이 그려진 바로 그 현장에 명작의 느낌을 그대로 살린 그림을 전시한다는 발상이 참으로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림 속 원형경기장에서, 투우를 즐기는 수많은 관중들은 일어서서 손을 흔들며 열광하고 있었다. 아마도 고흐는 이 작품 속에 자기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고흐의 ‘원형경기장’. 고흐는 이곳에서 투우를 즐기며 현재까지 전해지는 명화를 우리에게 남겼다.
▲ 고흐의 ‘원형경기장’. 고흐는 이곳에서 투우를 즐기며 현재까지 전해지는 명화를 우리에게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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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듯 꼼꼼한 붓 터치, 노랗게 타는 듯한 색채가 고흐 특유의 화풍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화가들의 도시, 아를 한복판에 있었다.

빈센트 반 고흐의 흔적을 따라 나는 다시 걸었다. 아를에는 다채로운 매력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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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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