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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이해 안 되는 한 마디

미국에 온 지 2주가 지난 어느 날, 아이에게 드디어 친구가 생겼다. 우리 집 한 집 건너 한국인 가족이 살았던 것이다. 그 집 둘째가 우리 큰 애와 나이가 같았다. 학교, 학년이 같았다. 그리고 같은 한국 사람. 이웃에 한국 가족이 산다는 사실을 알고는 내가 오히려 더 기뻤다. 갑자기 낯선 곳에 살게 됐는데 왠지 모를 안도감도 느꼈다. 그러나 상대도 그러했을까? 착각은 너무나 쉽게 깨졌다.

처음에는 수지(가명)가 더 적극적이었다. 방과 후면 달려와 아이를 불러 나갔다. 집 앞에 위치한 작은 공원에서 그림도 그리고, 공놀이도 하면서 재미있게 시간을 보냈다. 우리 아이들과 쉽게 친구가 되어준 8살짜리 꼬마 아이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났을까? 전혀 상상하지 못한 일이 터졌다.

어느 날 밖에서 놀던 큰 아이가 시무룩한 얼굴로 집에 왔다. 그 날도 아이는 수지와 놀려고 나간 터였다. 집에 오자마자 아이가 말했다.

"엄마, 저 이제 수지하고 못 놀아요"
"어머, 왜?"
"수지 아빠가 수지한테 밖에서는 영어만 쓰라고 했어요. 그런데 저는 영어를 못하니까 이제 수지하고 놀 수가 없어요."

아이에게 자세하게 얘기를 전해 들었다. 수지네 집 앞에서 놀고 있는데 그 집 아빠를 만났다고 한다. 아이들이 한국말로 대화하는 걸 들은 아빠가 수지를 부르더니 화를 내면서 '집 밖에서는 영어를 쓰라니까!'라며 혼을 냈단다. 왜 수지 아빠가 화를 냈는지 아이는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이해할 수 없는 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영어 못하는 설움을 왜 미국 사람이 아닌 한국 사람에게 받아야 하는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시무룩해 하는 아이에게 "괜찮아, 넌 한국말로 얘기하고 수지는 영어로 대답하라고 하면 되잖아"라고 아이를 위로했지만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걸 내가 더 잘 알고 있었다.

- 애가 뭘 잘못했나?
- 우리 애가 한국말 하는 게 그 집 애들 영어 쓰는 걸 방해한다고 생각했나?
- 우리 애를 잘 알지도 못할 텐데 우리 아이랑 노는 게 싫었나?
- 우리 아이가 행색이 초라했었나?

답을 찾을 수 없는 물음표가 머리 속에 가득했다. 한동안 아이는 어깨가 처져서 학교에 다녔다. 아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 집 아빠가 그렇게 이야기 했던 이유가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아이들이 서먹하게 멀어진 후 우연히 그 집 엄마를 만나게 되었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인사를 나눴다.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되고 모르는 게 많으니 잘 부탁한다는 나에게 그 집 엄마는 얼마 전에 있었던 아이들 이야기를 꺼냈다. 자기 남편이 우리 아이가 영어를 빨리 배울 수 있도록 자기 아이한테 영어로만 얘기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 네..'라고 대답했지만 무슨 뜻인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수지 엄마는 한 가지를 덧붙였다. 한국에서 온 주재원 엄마들, 한국에서 하는 것처럼 여기서 그러면 안 된다고 '조언'을 한 것이다. '네?'하고 물으니 몇 달 전에 어느 주재원 엄마가 학교 선생님께 선물을 준 게 있었는데 그게 문제가 되어 그 선생님이 학교를 떠났다는 것이다. 또 다시 '아.. 네..'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그 집 어른들은 한국에서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우리들과 어떤 선을 긋고 있는 거 같았다.

그 날 이후로 수지는 우리 집에 오지 않았다. 이역만리 타향에서 만난 이웃을 인연으로 생각했고 반가울 줄 알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가끔 아이에게 학교에서 수지를 만나느냐고 물었다. 수지는 아빠가 밖에서는 영어로만 얘기 하라고 해서 자기에게 말을 걸 수가 없고, 자기는 영어를 잘 못하니 수지에게 말을 걸 수가 없다고 했다.

그 와중에 다행인 것은 큰 아이, 작은 아이 모두 같은 반에 한국 친구가 한 명씩 있어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도와주기도 하고, 같이 놀기도 한다고 했다. 그러나 한 동네에서 단짝 친구를 만났다가 갑작스레 잃은 상실감은 엄마가 채워줄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

몇 개월 지나지 않아 그 집은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갔다.

'한국말 써줘서 고마워요' 1.5세대 부모들의 환대

 종교 안에서 만난 가족과는 지금도 한 가족처럼 지낸다
 종교 안에서 만난 가족과는 지금도 한 가족처럼 지낸다
ⓒ 박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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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 아빠의 '영어' 사건이 터지고 얼마 되지 않아, 우리 가족에게도 종교 생활을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갑자기 오게 된 타국. 언어와 문화가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나라에서, 같은 한국인 조차도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는 터라, 또 다시 낯선 어딘가를 찾아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곳이 종교 시설이라 할지라도 처음이라 뭐든지 조심스럽기만 했다.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고 할까.

다행히 종교 안에서 만난 많은 분들이 따뜻하게 우리 가족을 맞아 주셨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다행이었다. 아이들이 자기 말을 이해해 주고, 문화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친구가 생겼다는 것에 큰 위안을 얻는 것 같았다.

그 중에서 한 가족과 가까워 지게 되었다. 소위 1.5세대 가족, 아빠는 중학교 때, 엄마는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건너왔고 아이들은 모두 미국에서 태어났다. 아이들은 금방 친해졌다. 나이와 성별이 같다 보니 쑥스러움 많이 타는 우리 아이들도 금세 마음을 주고 친구가 되었다.

그러나 솔직히 불안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아이들은 몰라도 그 집 어른들은 한국에서 온 우리들을 불편해 할 수도 있다는 긴장감이 마음 한 켠에 자리잡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수지 아빠, 엄마의 발언을 들은 게 불과 얼마 전이었다. 비슷한 방식으로 또 상처를 받게 된다면 우리 아이들이 마음을 열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마음 한편에 불안이 켜켜이 쌓여 가던 어느 날 두 가족은 식사를 함께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우리가 먼저 감사 인사를 전했다. 친구 사귀기도 어렵고 점점 외로워지고 있을 때 그 집 아이들을 만나서 우리 아이들이 한결 편안해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또 그 집 애들을 통해 자연스레 영어도 배울 수 있는 것 같아서 고맙다고도 했다.

우리의 고마움을 들은 그 집 아빠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오히려 우리에게 고맙다고 했다. 우리 애들과 놀면서 한국말을 접할 기회가 많아져서 기쁘다고 말했다. 1.5세대 부모들은 아이들이 한국어를 잊을까 늘 걱정이라고 말했다.

부모 역시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오다 보니 어려운 한국말은 잘 못 가르쳐 줄 때가 있는데, 우리 아이들을 만나 한번이라도 더 한국말을 쓰게 돼서 너무 좋다고 했다. 매주 토요일 오전에 한글학교에 보내는데 그걸로는 부족했다고 말했다.

종교 안에서 만난 가족과는 지금도 한 가족처럼 지낸다. 서로가 서로를 만난 것이 누이도 좋고, 매부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 한 수지네 가족은 우리 가족과 좋은 인연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지금도 아쉽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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