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메인포스터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메인포스터

▲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메인포스터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메인포스터 ⓒ 워너브라더스코리아


*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영화 <쥬라기 공원>(1993)을 처음 만난 기억이 난다. 영화에 이용된 기술이 당시에 어떻게 활용되었는지는 차치하고 영화가 보여주는 상상력과 스케일에 압도당하는 느낌이 들었던 작품.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이 작품으로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감독이자, 블록버스터의 대부와 같은 이미지를 얻었다. - 물론 <죠스>(1975)와 < E.T. >(1982) 등의 작품으로 그는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감독이었지만, <쥬라기 공원>(1993) 시리즈는 당시 할리우드의 기술력을 총 집약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 그는 영화가 단순히 상상력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닌, 그것을 구현할 수 있는 기술과 함께할 때 완성될 수 있는 것임을 스스로 증명해내는 감독이었다.

한편, 스티븐 스필버그가 기술을 바탕으로 흥행에 기대는 작품만 연출한 것은 아니다. 최근 개봉했던 <더 포스트>(2018)는 물론, <쉰들러 리스트>(1993), <뮌헨>(2005), <스파이 브릿지>(2015)와 같은 작품들에서는 밀도 있는 스토리와 배우들의 연기력을 이끌어내는 능력을 바탕으로 작품성을 인정받는 모습 또한 보여왔다. 직접 연출하지는 않았지만, 제작을 맡았던 작품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그런 그의 재능은 더욱 빛을 발한다. <마스크 오브 조로>(1998),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2006), <아버지의 깃발>(2007)과 같은 작품들이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사람은 특별한 감독이었다. 작품성과 흥행성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세상에 몇 안 되는 인물. 그는 어느 하나를 포기하고, 남은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재능을 가진 감독이 아니라, 두 가지 모두 놓치지 않으면서 각 작품에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성에 따라 그 재능을 증폭시킬 수 있는 재능을 갖고 있었다. 자신의 오락성을 바탕으로 관객의 꿈을 실현하면서도 결코 현실의 드라마를 게을리 흘려보내지 않았던 감독이라는 뜻이다.

02.

이번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은 앞서 설명한 감독의 두 가지 재능 중 오락성이 집약적으로 표현된 작품이다.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연출되었다고 생각될 정도로 이 작품의 원작인 어니스트 클라인의 동명 소설이 그의 오락성과 상당 부분 잘 이어진 것도 긍정적이었다. 원작 속에 등장하는 모든 레퍼런스를 작품 속으로 옮겨오는 것은 힘든 일이었지만, 스티븐 스필버그가 아니었다면 이 작품을 스크린으로 만나볼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지난 세대의 대중문화를 하나의 작품 속에 녹여낸 점에 대한 찬사는 몇 번을 해도 모자랄 정도다. 수 많은 레퍼런스들의 활용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의 정수로 지목하고 있는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1980) 장면은 단순히 지난 작품에 대한 오마주를 넘어 과거 작품을 이용한 스티븐 스필버그만의 표현법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는 부분이다.

어느 한 부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수 없는 이 작품은 엔딩 크레디트와 함께 흘러나오는 음악, 'you make my dream'까지도 놓칠 수 없게 만든다. 어쩌면 스티븐 스필버그 자신이 이룩해 온 세계들에 대한 헌사처럼 들리기도 하는 이 곡은, 이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 등장하는 모든 레퍼런스들에게 바치는 마음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스틸컷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스틸컷

▲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스틸컷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스틸컷 ⓒ 워너브라더스코리아


03.

이 작품에서 활용되고 있는, 세대를 넘어 전해지는 메시지를 통해 '혼자'가 아닌 '함께'의 의미를 찾아가는 내용은 지금 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이 작품에 활용된 지난 세대의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 의문이 생기는 것과 별개로, 영화 속에서 차용되고 있는 가상 세계 오아시스의 모습은 기술적으로 더욱 진보된 것일 뿐, 현세대가 누리고 있는 SNS 문화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오아시스 내의 부정 세력을 무너뜨리기 위해 다른 이용자들을 향해 연대와 참여를 호소하는 장면은 <헝거게임>(2012) 시리즈의 캣니스를 보는 것만큼이나 낯뜨겁지만. 그 과정에서 여자 주인공인 아르테미스(올리비아 쿡 역)가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 첫 번째 열쇠를 주인공인 파시발(타이 쉐리던 역)이 따낸 이후 두 번째 열쇠를 따내며 극의 흐름을 변용하는 주역이 되는 것은 물론, 일련의 과정을 통해 파시발이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도 맡는다. – 이 작품에서 그녀의 모습이 긍정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어떤 목적을 위해 단순히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인다는 점이다. -

현실 세계에서는 가장 가까운 친척에게까지 온기를 느끼지 못해 일면식도 없는 오아시스 내의 친구들에 의지하던 주인공이 실존하는 세계의 사랑과 우정을 배우며 바뀌어가는 모습은 지금의 세대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04.

작품 속 세계에서 오아시스 다음으로 큰 회사로 등장하는 IOI의 행태는 이 작품의 뛰어난 오락성 가운데 돋보이는 날카로운 풍자 중 하나다. 봉준호 감독의 작품 <옥자>(2017)에 등장하는 미란도 코퍼레이션을 연상케 하는 그들은 성과주의에만 몰두된 채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오락성 짙은 작품들을 단순히 팝콘 무비로만 업신여길 수 없는 이유들이 여기에 있다. 이 작품에서 IOI는 주인공 파시발의 성장을 가로막는 빌런의 역할만 수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와 관련해 작품의 내용 가운데 가장 아이러니한 점은,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를 분리하려는 목적으로 오아시스가 탄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결론적으로 그렇게 되지 못했다는 부분이다. 가상 세계의 재화를 획득하기 위해 현실의 삶을 저당 잡히기도 하고, 오아시스 속에서의 관계가 현실 세계에서의 우정, 사랑과 같은 감정으로 그대로 옮겨오기도 하기 때문에. 여기에는 두 세계 사이에 종속되어 있는 물리력의 분리가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IOI 코퍼레이션은 가상 세계의 타격감을 현실 세계에서 더 실감나게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기술을 상품화해서 판매하고 있는데, 이는 곧바로 가상 세계에 더 몰입하기를 원하는 이들의 현실 세계의 삶을 저당 잡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결국, 가상 세계인 오아시스는 기술적으로 다른 세계일 뿐, 현실과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현실이든, 가상이든, 어디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겠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스틸컷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스틸컷

▲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스틸컷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스틸컷 ⓒ 워너브라더스코리아


05.

전체적으로 흠 잡을 데 없이 깔끔한 연출이지만, 다소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다. 세 번의 시험을 통하는 동안 각각의 시험의 구조가 유사하게 반복되는 탓에 이 작품 자체가 주는 스토리의 몰입이 헐거워지기 시작한다. 처음으로 등장하는 레이싱 장면만이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작품의 설정에 가장 부합하는데, 레이싱의 기본 법칙을 부수는 것이야말로 시험의 답이라는 설정은 이 작품의 '이스터 에그'의 의미를 가장 잘 차용한 설정일 것이다. 물론 이 세 번의 시험은 주인공 무리와 IOI의 대립을 이끌어내기 위한 단계적 활용이 주된 목적이지만, 그 대립 자체가 매우 단순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 역시 이 작품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볼 여지를 없앤다. – 이 작품이 단순 오락 영화로 제작된 것을 감안한다면 이 부분은 작품의 단점인 동시에 강점으로 평가될 수도 있다. -

가상 세계를 지키겠다는 주인공의 의지와 시험을 시작하게 된 이유의 충돌도 엄밀하게 따지면 매끄럽지는 못하다. 앞서 언급한 캣니스의 이미지가 교차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녀가 부르짖던 정의와는 그 시작점부터가 다르기 때문이다. 어쩐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던 과정에서 위기에 놓이자 도움을 요청하는 형태라고나 할까.

06.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을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요소 중심으로 구분한다면 취향에 따라 이 작품에 대한 평가는 충분히 달라질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의 처음에서 설명했듯이 최근의 작품들만 봐도, <스파이 브릿지>나 <더 포스트> 같은 작품들과 <마이 리틀 자이언트>(2016)나 이 작품 <레디 플레이어 원>의 쪽에 있는 작품들의 영역이 꽤 다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결코 아니다. 분명히 밝히지만, 이 작품은 감독이 그동안 쌓아왔던 오락성의 지점에서 또 하나의 반짝이는 작품이 될 것이라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그의 오락성보다 작품성에 더욱 많은 매력을 느껴온 관객들에게 이 작품이 어필할 수 있을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또 하나, 이 작품의 레퍼런스들이 등장하는 시기를 공유하지 못한 세대와 동일한 시대를 살아오기는 했으나 당시의 대중문화에 큰 관심을 가지지 못했던 이들에 대해 이 작품이 얼마나 소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물음표가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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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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