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탐사보도 프로그램 < PD수첩>은 지난 3일 '누가 아파트 가격을 올리는가?' 편을 통해 아파트값 담합 실태를 고발했다.

MBC 탐사보도 프로그램 < PD수첩>은 지난 3일 '누가 아파트 가격을 올리는가?' 편을 통해 아파트값 담합 실태를 고발했다. ⓒ MBC


"'대한민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우리 아파트가 왜 오르지 않느냐' 물었더니 주민이 멍청해서랍니다. 멍청한 주민 여러분! 더 이상은 안 됩니다."

지난 3일 방송된 MBC 탐사보도 프로그램 < PD수첩> '누가 아파트 가격을 올리는가' 편 보도 내용 중 일부다. 이날 < PD수첩> 취재진은 아파트값 담합이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 그 실태를 추적했다.

< PD수첩>이 고발한 실태는 사뭇 충격적이다. < PD수첩> 보도에 따르면 담합은 부녀회가 주도했다. 부녀회는 치밀한 행동지침에 따라 움직였다. 먼저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저가의 매물을 지운다. 그리고 비협조적인 부동산 중개업자의 접근을 막고 우호적인 중개업자를 통해 매물을 비싸게 올린다. 이 과정에서 '똥값', '멍청한 주민' 같은 원색적 표현이 거리낌 없이 등장했다. 이런 조직적이고 치밀한 행동은 시청자들을 경악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방송은 큰 파장을 몰고 왔다. 당장 국토교통부는 5일 공인중개사협회와 함께 공인중개사에 대한 집값 담합 강요 행위를 업무방해 혐의로 처벌하도록 제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전 정부에서도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며 여러 대책을 내놓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별반 실효를 거두지 못했고 '부동산 불패신화'에 대한 확고한 믿음만 가져다줬다. 과연 문재인 정부는 이전 정권의 전철을 피할 수 있을까?

지난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본사에서 '아파트 가격 담합' 편 취재를 맡았던 김정민 PD를 만나 취재 뒷이야기와 정부 대책의 실효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 우선 취재 과정 중 가장 어려웠던 점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한 달 반 동안 취재를 진행했는데, 공인중개사와의 인터뷰가 많이 어려웠다. 우리가 접촉한 공인중개사들은 거의 예외 없이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기를 꺼렸다. 입주민을 떠올리며 공포에 휩싸인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서 말 한마디조차 쉽게 하지 못했다. 동의 하에 진행된 인터뷰에서도, 음성변조를 약속했음에도 혹시라도 이런 낱말을 사용했다가 본인임이 드러날까 불안해했다. 이토록 자신을 드러내기 어려워했던 건 자신들의 생계가 걸려 있다는 인식 때문 아닐까 한다."

김정민 PD의 말대로, < PD수첩> 방송에 등장한 수원 광교의 모 부동산 업자는 취재진에게 이렇게 말했다.

"망보고 있어요. 누가 어디 갔는지까지 다 망보고 있어요. 정말이에요. 그러니까 이쪽으로도 다니면 안 돼. 이쪽은 입주자들이 다 보고 있잖아요. 공개적으로 했다가 죽을 일 했어요? 문 닫아야 돼요, 생업인데." 

- 혹시 부녀회가 취재를 눈치 채고 압력을 가하지 않았나? 또 제보자가 부녀회로부터 보복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닌가?
"부녀회의 압박은 없었다. 또 어려움을 호소해 온 제보자들은 아직 없다. 방송 후 취재원 중 많은 분들이 고맙다는 뜻을 전해왔다. 물론 항의한 분도 없지 않았다."

- 아무리 고가의 아파트라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가격이 떨어지는 게 정상 아닌가?
"(보통의 시장에서는) 시간이 지나면 재화 가격이 내려가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아파트 시장은 특별하다. 아무래도 아파트란 재화가 가진 특수성 때문이 아닐까 한다. 아파트는 싸다고 잘 팔리지 않는다. 그보다 다소 비싸도 호가가 상승하면 이를 시세로 인식하고 잘 팔린다. 무슨 말이냐면, 당장 3억에 나온 A아파트를 사는 것보다 B아파트가 4억이지만 5~6억으로 오를 것 같다면 웃돈을 주고라도 B 아파트를 산다는 말이다.

게다가 아파트는 거래량이 많은 재화가 아니다. 거래 자체가 빈번하지 않기에 한 채만 거래가 성사되어도 이게 기준점이 된다. 이런 이유로 매도자들이 담합하면 상대적으로 가격을 올리기 쉬운 재화가 아파트다. 그리고 입주민들이 생각하는 집값의 기준은 '강남'이다. 강남의 C아파트가 20억이니까 우리는 이 정도는 받아야 한다는 식이다."

아파트값 담합, 대한민국 병들게 만들 수 있어

 아파트 담합 실태 취재한 MBC ‘PD수첩’ 김정민 PD

아파트 담합 실태 취재한 MBC ‘PD수첩’ 김정민 PD ⓒ 지유석


- 방송에선 아파트 가격 담합에 따른 피해는 결국 실수요자에게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방송에서 언급하지 않은 또 다른 폐해가 있다면?
"담합은 실수요자들이 필요 이상의 비싼 돈을 들여 집을 사게 만든다. 여기에 담합이 통한다는 인식이 좁게는 서울, 넓게는 나라 전체로 퍼지면서 불로소득에 무감각해진다. 정부는 근로소득을 장려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 전반에 활기가 돈다. 또 불로소득에 대해선 세금으로 귀속하는 게 정의다. 그러나 취재 과정에서 근로소득을 어리석은 행위쯤으로 보고 있다는 걸 체감했다. 일해서 얼마를 번다는 걸 터무니 없는 사고로 치부한다는 말이다.

부녀회는 스스로를 불로소득이 가능한 혜택 받은 집단으로 인식했고, 그래서 불로소득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고 다녔다. 이들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담합을 독려하고 온라인에서도 공공연히 이런 주장을 했다. 여기에 (입주민들은) 박수치며 환호했다.

처음 접했을 땐 그럴 수도 있겠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대로 가면 대한민국이 병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불로소득의 달콤함을 맛본 이들은 일해서 돈 벌려고 하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땀 흘려 노력하는 걸 소중히 여기는 게 상식이다. 따라서 담합행위가 공론화되지 않고 시정되지 않으면, 그래서 이번에 체감한 실태를 더 젊은 사람들이 체감하게 된다면 대한민국에 희망이 없다고 보았다."

- 진행자인 한학수PD는 클로징 멘트에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과연 이 전 정권과 달리 아파트 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을지 국민들이 준엄하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과연 이번 정부에서는 성공할 수 있으리라 보는가?
"관료들의 정서는 체감하지 못했다. 그러나 방송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10~20년 전 관련 주제로 방송을 준비했던 선배들은 관료들이 잘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장 취재를 통해 만약 아파트, 부동산 가격 정상화 기회가 있다면 지금이 마지막일 것이란 확신을 얻었다. 부동산 시장, 특히 집주인들은 이른바 '부동산 불패'를 의심하지 않았다. 새 정부가 8.2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고, 당시 혼란을 겪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정부 정책이 어떤 내용이고, 어떻게 반응해야 한다는 걸 고민하지 않았다. '잠깐 정부가 나서도 이번만 넘어가면 그만이다', '다시 우리 세상이 온다'는 믿음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번 정권마저 서민들의 열망을 외면하고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이미 체화된 부동산 불패 신화는 다음 세대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렇게 되면 차기 정부는 더욱 손쓰기 힘들게 된다."

- 언론이 부동산 불패신화를 조장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이번에 비중 있게 취재한 부분이 바로 언론이다. 언론에서 부동산 호재를 강조하면 가격이 오른다. 반대로 부정전망을 내놓으면 떨어진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호재를 예상하는 언론이 훨씬 많다.

취재 중 만난 전문가 한 분은 신문, 특히 몇몇 경제신문들이 노골적으로 부동산 경기를 띄우기 위한 기사를 쓴다고 했다. '어느 지역에 호재가 있을 것'이라고 방향을 잡고 '이 호재로 모 아파트의 가격 상승이 예정된다'고 쓰며 특정 아파트를 홍보하는 식이다. 취재 중 접촉한 모 경제신문 기자는 이 과정에서 돈이 오가기도 한다고 했다.

이뿐만 아니다. 일부 경제지들이 부동산 시장을 부추기는 행태를 객관적인 데이터를 통해 확인하기도 했다. 방송엔 나가지 않았지만 A교수는 부동산 관련 기사에 사용한 낱말들을 긍정/부정으로 분류하고, 논조를 긍정/부정으로 객관화했다. 이어 객관화된 자료를 부동산 가격과 연동시켰더니 일치하는 결과를 얻었다.

담합은 심리를 파고든다. 그런데 심리를 부추기는 데 언론이 영향을 미쳤다. 주류 신문과 경제지들의 광고주가 대기업 건설사다. 따라서 이들의 이해에 눈감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 주제를 더 파고들까, 아니면 거래 왜곡으로 방향을 잡을까 고민하다가 통일성을 위해 언론 문제는 담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후속 보도를 한다면 다루고자 한다."

아파트값 담합 이면에 도사린 '천민 자본주의' 

 MBC 탐사보도 프로그램 < PD수첩>은 지난 3일 '누가 아파트 가격을 올리는가?' 편을 통해 아파트값 담합 실태를 고발했다.

MBC 탐사보도 프로그램 < PD수첩>은 지난 3일 '누가 아파트 가격을 올리는가?' 편을 통해 아파트값 담합 실태를 고발했다. ⓒ MBC


- 방송 이후 포털과 소셜 미디어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시청자 반응 가운데 가장 기억나는 반응을 꼽는다면?
"'토할 뻔했다'는 반응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나 스스로 취재를 시작하면서 비슷한 느낌이었다. '우리 아파트 몇억 가야 합니다'는 글을 목격하고, 여기에 반응이 있는 걸 보고 놀랐다. 그러나 한 달 넘게 취재하면서 무뎌졌다. 7명이 취재를 맡았는데, 팀원끼리도 어느 지역이 담합효과가 큰지 알아보다가 10억, 12억 하니까 '싸네' 하고 넘어가더라. 그러다 '언제부터 10억을 싸다고 했을까' 하는 자조 섞인 반응이 나왔다. 아마 입주민들도 비슷한 과정을 거치지 않았을까 여긴다.

방송 후 다양한 경로로 반응을 청취한다. 그런데 이번만큼 반응이 극명하게 갈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집주인들이 모여 있는 인터넷 카페에서는 방송을 비웃었다. '정부 정책 실패를 부녀회 탓으로 돌린다', 혹은 '정당한 재산권 행사인데 사회주의를 하자는 거냐'는 식의 반응 일색이었다.

그러나 이곳을 벗어나 인터넷 포털, 주변 지인, 소셜 미디어 등의 반응은 달랐다. 많은 분들이 분노했다. '대한민국의 천박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불편했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부녀회나 입주민들이 바깥의 시선을 제대로 모르는 것 같다."

- 담당부처인 국토교통부가 보도 이후 신속하게 움직이는 모양새다. 집값 담합 강요 행위를 업무방해 혐의로 처벌하도록 제도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는데, 실효성 있는 대책이라고 보는가?
"지금 정부가 마음먹고 나서지 않으면 실효성은 없으리라는 판단이다. 부녀회나 집주인들에게 또 한 번의 승리의 증거가 될 뿐이다. 언론에서 크게 다루고 정부가 나섰지만, 곧 관심은 잦아들 것이기에 지금만 넘기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식의 반응이 또 나올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정부는 자존심을 걸고 매달려야 한다. 앞서 관료를 잠깐 언급했는데, 관료는 전문가들이 모인 집단이다. 그런데 지금은 관료들이 시장에서 어떤 평가를 받는지 반성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국민 세금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있지만, 적어도 이번 만큼은 관료들이 내놓은 정책이 시장에서 어떤 비웃음을 사는지 절감해야 한다.

정부가 개입해 시장경제를 훼손하라는 말이 아니다. 시장 경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그 어떤 왜곡 없이 아파트 시장이 시장 원리에 따라 기능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라는 말이다. 이번에도 정부가 유야무야 넘어가면 두고두고 비웃음을 사게 될 것이다."

PD수첩 국토교통부 김정민 PD 한학수 PD 아파트값 담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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