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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머니가 나를 부를 때는 항상 '내 배로 난 아들'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셨다. 내 위로 넷을 잃고 내 아래로 자식 하나를 잃었으니 다섯 명의 자식을 잃으신 것이다. 어렵게 출생한 나를 모든 것을 바쳐 사랑하셨다. 자신의 이름은 잊어도 끝까지 내 이름은 기억하셨던 어머니셨다. 아침마다 뇌운동을 위해 어머니의 성함과 내 이름을 묻곤 했다.

"어머니! 어머니 이름이 뭐예요?"
"음... 박 ..정 ..열."
"그럼, 아들 이름은요?"
"내 배로 난 아들, 나관호지 나관호! 호호호."

그런데 어느날, 어머니가 자신의 이름을 기억 못하셨다. 그러나 내 이름은 막힘없이 말씀하셨다. 놀라웠다. 일생을 바쳐 사랑을 쏟았던 아들, 어머니 말을 빌리면 '내 배로 난 아들'의 이름은 끝까지 기억하셨다. 놀랍고도 행복한 경험이었다.

식사하시는 어머니
 식사하시는 어머니
ⓒ 나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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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웃음꽃

출가한 여동생 식구들과 함께 어머니를 위한 만찬을 자주 가졌다. 그런데 어머니는 항상 덩치 큰 사위를 보고 어색해 하셨다. 말도 꼭 존칭을 쓰셨다.

"어머니, 사위예요. 사위."
"누구시더라."
"봉의 남편, 어머니 사위예요."
"아, 안녕하세요. 우리 사위시지요."

진 서방이 웃으면서 화답한다.

"장모님! 말씀 놓으세요. 저 사위예요."
"아휴, 난 반말 싫어요."
"장모님, 사위한테는 말을 놓으시는 거예요."
"아휴, 어떻게?"

우리 모두는 어머니 때문에 늘 한바탕 웃음꽃을 피우곤 했다. 어머니의 모습은 어찌 보면 귀엽기까지 하셨다. 어머니의 이런 행동을 보면 안타깝지만 그래도 우리 식구들은 행복 코드를 찾아 함께 즐거워했다. 내 삶의 주인공 어머니는 순간순간 웃음을 던져주셨다.

아껴 드시는 어머니를 위한 묘책

식사를 주문하고 샐러드바에서 스프와 몇 가지 음식을 가져왔다. 어머니의 평소 습관이 또 나온다. 아들 먹으라고 챙기시며 값을 물어보신다. 자신이 먹는 것은 아까워하신다. 이럴 때 어머니를 위해 사용하는 묘책이 있다. 그것은 돈을 많이 내서 안 드시면 아깝다고 말씀드리는 것이다.

"어머니, 안 드시면 오만 원 냈는데 손해예요."
"이! 너무 비싸. 아이쿠."
"그러니까 맛있게 많이 드셔야 해요."
"알았어. 아들도 먹어!"

식사를 하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왼쪽 옆구리가 아프다고 하셨다. 갈비뼈를 다치신 줄 알고 순간 당황했다. 옆구리에 손만 대도 아프다고 하신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식사를 그만하시려는 꾀병 같았다. 어머니의 엄살에 우리들은 또 한바탕 웃었다. 옆자리의 다른 가족들도 우리 모습이 즐거운지 같이 웃었다.

"어머니, 이것 한 번만 더 드세요."
"나, 너무 아파. 아이구, 아이구."
"이것 한 번 더 드시면 나으실 거예요."

웃음과 미소가 아름다운 어머니
 웃음과 미소가 아름다운 어머니
ⓒ 나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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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꾀병에 웃고, 사위 용돈에 행복

어머니는 받아 드신다. 그리고는 배가 부르다며 허리를 푸셨다. 동생이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아이스크림을 가져다 드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프다는 소리 한 번 안 하시고 맛있게 드신다. 우리들은 손으로 입을 막고 또 한바탕 웃었다. 사위가 고기를 집어 드렸다. 그랬더니 이번에도 꾀병을 부리신다.

"아이쿠, 이렇게 아파. 여기 봐."
"또 아프세요? 큰일 났네요. 음식 값으로 오만 원 냈는데 아깝네요."
"어! 그럼 더 먹어."

외식을 하면 이렇게 아이 달래듯 식사를 해야 했다. 어머니는 옆구리 아프시다는 얘기 없이 남은 식사를 마치셨다. 식사를 마치자 또 옆구리가 아프시다 하셨다. 매제가 두툼한 봉투를 내밀었다.

"장모님! 이거 용돈 쓰세요."
"이게 뭐예요?"
"장모님 용돈이에요. 맛있는 것 사드세요."
"아휴, 고마우셔라."
"어머니, 사위에게는 말씀을 놓으셔야죠."

어머니가 봉투를 만지시더니 갑자기 돈을 세신다. 우리들은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또 한바탕 웃었다. 그 이후부터는 아프다는 말씀이 쏙 들어가 버렸다.

매제와 여동생과 함께 걷는 어머니
 매제와 여동생과 함께 걷는 어머니
ⓒ 나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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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힘을 냅시다

그날의 식사 후 어머니 행동에 변화가 생겼다. 자꾸 집을 나가시려는 행동을 보이는 것이다. 여쭤 보니 꾸어준 돈을 받으셔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사위가 준 돈을 세면서 옛날에 빌려주고 받지 못한 돈이 생각나신 모양이다.

젊은 날 아버지 몰래 빌려주고 받지 못한 돈이 상당히 많았다고 들었다. 그것도 어머니에게는 작은 한이다. 어머니의 돌출 행동을 보면서 어머니 머릿속 지우개와 동거하며 싸워야 할 것 같았다.

치매 노인들은 주로 기억이 흐려지지만 반대로 생각나기 시작한 기억은 시공간을 초월해 현재 사건으로 인식한다. 치매 노인을 둔 가족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부분이다. 지난 모든 기억을 잃으시는 것이 아니다. 마음에 새겨진 기억, 사랑 깊은 기억은 치매가 지우지 못한다. 특히 자식 사랑이나 큰 충격으로 마음에 새겨진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치매 노인을 둔 가족들에게 작은 위로를 전한다.

"같이 힘을 냅시다. 파이팅!" 

덧붙이는 글 | 나관호는 작가, 문화평론가, 칼럼니스트, 북컨설턴트로 '좋은생각언어&인생디자인연구소'와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대표소장이다.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강의 교수로 <나관호의 삶의 응원가>를 통해 세상에 응원가를 부르며, 따뜻한 글을 통해 희망과 행복을 전하고 있다. 또한 기윤실 문화전략위원과 광고전략위원을 지냈고, 기윤실 200대 강사에 선정된 '커뮤니케이션 및 대중문화 분야 전문가'다. '생각과 말'의 영향력을 가르치는 '자기계발 동기부여' 강사와 치매환자와 가족들을 돕는 섬김이로 강의 활동하고 있으며, 심리치료 상담과 NLP 상담(미국 NEW NLP 협회)을 통해 상처 받은 사람들을 돕고 있는 목사이며, '미래목회포럼'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태그:#치매어머니, #나관호, #좋은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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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제이 발행인, 칼럼니스트다. 치매어머니 모신 경험으로 치매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이다.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로 '생각과 말의 힘'에 대해 가르치는 '자기계발 동기부여' 강사,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이며 심리치료 상담으로 사람들을 돕고 있는 교수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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