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2016년 11월 19일 전국동시다발 4차 박근혜 퇴진 범국민행동(4차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의 모습.
 지난 2016년 11월 19일 전국동시다발 4차 박근혜 퇴진 범국민행동(4차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의 모습.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탄핵 촛불 광장에서 묻고 또 물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한국 사회 정점에 선 권력에 대항해, 연약하기 그지없는 촛불을 들고 광장에 서 있었다. 그조차 함께할 수 없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의 거처에서 저녁 8시에 맞춰 소등에 참여했고, 온라인 시위에 함께 했다. 촛불은 누구도 주인이지 않았고, 또한 모든 사람이 주인이었던 n분의 1 혁명이었다.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공동 상황실장으로 일하며 내내 두려웠다. 이들은 어디로 갈 것인가,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역사는 우리 모두를 어디로 끌고 가려 하는가. 그때 깨달은 것이 있다. 민주주의는 두려운 것이구나. 희망과 공포가 뒤섞인 두려움이었다.

21세기에 들어선 한국은 대규모 촛불 시위가 지속해서 벌어졌다.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2002/2003), 대통령 탄핵(2004), 평택미군기지(2006), 한미자유무역협정체결(2007),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2008). 참가자가 모두 수만에서 수십만에 이르는 대규모 시위였다.

이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사회적 반향이 컸던 시위들도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홈에버 매장 점거(2007),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철탑농성(2008), KTX 여승무원들의 고공농성(2008), 많은 희생자를 낸 용산참사(2009). 이들 시위는 대부분 대의제 바깥에서 일어났다.

정치적 긴장이 높았던 곳은 정치권이 아니라 정치권에 대해서였다."(고병권) 이 시기, 대의제 민주주의 한계는 국회와 정치권 바깥 시민들의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실천으로 광장에서 이야기되고 있었다. 끊임없이 떠들고 발화했던 이름 없는 그들이 없었다면, 지난 2016년과 2017년을 가로지른 촛불의 승리는 있었을까. 그렇기에 민주주의는 알 수 없는 길을 걷는 것이다. 질서 정연한 도로 위가 아니라 울퉁불퉁하며 닦이지 않은, 때로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길 위를 걷는 것과 같다. 아니, 기어서 가야 하고 달려서 가야 하고 때로는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기도 한다.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촛불 광장에서 꿈을 꾸었다. 저들이 망친 민주주의를 더 많은 민주주의로 복수하는 것이었다. 비단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으로, 정치 권력을 교체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 민주주의를 꿈꾸었다. 사회 바깥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분노가 열망이 되어 세상의 권력을 갈아치우는 꿈. 태어날 때부터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가 분리되어 기회조차 받지 못한 젊음이 지하철 도어문을 수리하다 사라지는 사회, 자신의 출신과 정체성으로 인해 뿌리 깊은 차별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살아야 하는 사회, 식민지를 거치고 미군정을 지나서 민주사회가 된 오늘도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성골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회….

그 사회를 뿌리에서부터 흔드는 민주주의가 광장에서 움틀 것이라 바라고 믿었다. 제주4·3에서 사라진 선조들과 5월 광주에서 스러진 선배들의 희망이 이 시대의 가장 힘없는 사람들에 의해 부활하는 꿈을 꾸었다. 박제된 시간의 그늘에 갇혀 호명되지 못한 한 사람 한 사람을 불러내 당신들이 살아냈던 시간이 오늘의 우리를 만들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었다. 어느 때는 백성, 어느 때는 국민, 어느 때는 민중, 또는 시민인 우리들이 다른 사회를 만들고 있다고.

"1947년 제주 북초등학교 3.1절 기념식에서 기마 경관의 말발굽에 어린아이가 치이는 일이 벌어졌고, 이를 본 시위 군중들은 기마 경관에게 돌을 던지고 야유를 보내며 경찰서까지 쫓아갔다."

타인의 고통을 침묵하거나 외면하지 않았던 사람들. 해방의 기쁨을 빼앗아간 지배층과 공권력에 맨몸으로 맞섰던 사람들. 지금도 헤아릴 수 없는 숫자인 4만이 참여했던 민관 파업. 학교를 멈추고 전기회사를 멈추며 부당한 권력에 맞섰던 4.3의 제주는 그래서 죽음의 사건, 학살의 역사를 넘어 민주주의를 곧추세웠던 항쟁과 혁명의 역사로 다시 기록되어야 한다. 좌우로 분단되고, 저항은 곧 '빨갱이'로 간주하였던 서슬 퍼런 공포의 시간을 뚫고 우리 모두 인간임을 선언했던 제주의 4월이 없었다면, 여전히 4월은 다만, 잔인하게만 기억되었을 것이다.

4.3으로부터 70년을 가로질러 우리는 촛불 광장에 서 있다. 용기를 내 증언하기 시작한 'me too'(미투) 운동이 그 증거다. 또 특권과 반칙을 용서하지 않는 작은 움직임들은 말하고 있다. 촛불의 광장을 일상의 광장으로 열어가는 사람들은 결국 누워있는 백비(白碑)를 일으켜 세워 글을 새기고, 이름을 지어내지 않겠는가.

"언제가 이 비에 제주4.3의 이름을 새기고 일으켜 세우리라."

'그 시대 당신들의 용기와 두려움과 희망과 열망을 우리가 잊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역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라는 대화가 오늘도 이어지고 있음을 나는 믿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박진씨는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입니다.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의 4370신문 3호에 실린 글입니다.



태그:#제주4.3, #촛불
댓글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는 2018년 제주 4·3 70주년을 맞아 아픈 역사의 정의로운 청산과 치유를 위해 전국 220여개 단체와 각계 저명인사로 구성된 연대기구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