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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풍경
 아침 풍경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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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들의 동네 온타나스

온타나스(Hontanas)는 황무지 계곡 아래에 있는 시골 마을이다. 순례자들이 유일한 방문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한적하다. 이들이 지나가는 거리에만 상권이 형성돼 있다. 700년 된 건물인 공립 알베르게 외에 사설 알베르게 세 곳이 영업을 한다(겨울에는 주로 문을 닫는다고 한다). 내리막길 중간 즈음에 양쪽으로 바(Bar)가 마주하고 있다. 

20여 km 메세타를 걷고 도착한 온타나스. 나는 숨을 몰아쉬며 아래쪽에 있는 공립 알베르게로 향했다. 바를 지날 때 누군가가 아는 척을 했다. 돌아보니 연석이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거의 고함을 지르다시피 아는 체를 했다. 맞은편에는 처음 본 한국인 청년이 있었다. 둥그스름한 얼굴에 웃음기 가득한 그는 얼굴이 전혀 타지 않았다. 뒤늦게 통성명해서 알게 된, 29세 성주였다. 성주는 부르고스가 첫 출발지여서 어제가 걷는 첫날이었다(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100km 전부터 걸어도 완주증을 준다). 그래서 그렇게 말끔하다면서 연석과 나는 그를 놀렸다.

그들이 앉아 있는 바는 유난히 북적거렸다. 책자에 유명한 바가 있다는 내용을 읽었다. 연석과 성주가 앉아 있는 곳인 것 같았다. 그들이 아직 숙소를 정하지 않았다고 하자 나는 공립 알베르게에서 잠은 자고 저녁 식사는 이곳에서 하자고 했다. 그리고는 먼저 알베르게로 향했다. 내게는 맥주가 우선이 아니었다. 발 상태를 점검해야 했다.

온타나스에 있는 성당 내부
 온타나스에 있는 성당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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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은 눈부셨지만 공기는 건조했다. 건조한 공기가 마른 돌바닥에서 잘게 부셔졌다. 씻고 빨래를 해놓고는 성당 뜰에 가서 발을 말렸다. 먼 곳에서 보는 것과 달리 새똥이 주변에 널려 있었지만 윗몸은 그늘에, 발은 햇볕에 말릴 수 있는 분리된 공간은 성당 지붕 아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자비심이 넘쳤다. 순례자들만 지나가는 이곳, 평화롭기 그지 없었으니깐. 저녁 식사를 바에 예약만 하지 않았다면 그지 없었을 평화를 좀 더 즐겼을까. 평화를 가장한 질투는 되레 요란하다는 것을 경험하지 않아도 됐을까.

수면 아래의 경쟁 의식 

오후 5시가 지나갈 즈음 나는 침대에서 그날 일을 정리하고 있었다. 알베르게 리셉션 여자 직원이 방으로 올라왔다. 막 낮잠을 자려는 성주에게 스페인과 영어를 섞여 가며 뭔가를 물었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을 예감한 그는 잠을 자고 있는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휴대전화만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휴대전화로 스페인어 번역을 하면서 대화를 하려던 것이었다.

그들은 알베르게 현관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이야기를 했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웃음 소리, 고양이 흉내 내는 소리, 다국적 언어 아닌 언어가 올라왔다. 2층에 있는 알베르게 침대가 들썩일 정도로 성당 종소리도 소란스러움에 동참했다. 알고 있는 몸 언어까지 섞여 가며 이야기했다던 성주가 얼마 뒤에 요점 정리를 해줬다.

우리가 숙소로 정한 공립 알베르게는 잠만 잘 경우 6유로를 받는다. 저녁 식사를 신청할 경우  6유로를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침대만 빌리고 저녁 식사는 9유로를 내고 거리에 있는 바에서 먹기로 했다. 뭔가 특별한 것을 먹고 싶어서 선택한 곳이었다. 

그 여직원이 하는 말인 즉, 똑같은 식사인데 왜 9유로짜리 식사를 하느냐, 저 식당 주인은 호객 행위까지 한다, 정식 알베르게도 아니다, 마을 사람들이 다 싫어한다 등. 성주가 전하는 말을 듣고 있으려니 직원이 지나칠 정도로 히스테리를 부리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더욱 그곳에서 식사를 하고 싶었다.

온타나스에 있는 Bar 주인(오른쪽 남자)
 온타나스에 있는 Bar 주인(오른쪽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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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예약한 시간인 7시가 다가왔다. 바 주인은 미리 예약한 사람 22명을 위해서 야외에 '빅' 테이블을 준비하고는 테이블보까지 깔끔하게 깔았다. 테이블 위에는 이미 물과 유리병에 담긴 와인이 놓여 있었다.

양상추에 토마토를 썰어 넣은 야채 샐러드가 곧이어 나왔다. 주인이자 주방장인 남자가 거대한 프라이팬을 들고 왔다. 식사를 기다리던 순례자들은 환호성을 터트렸다. 프라이팬에 우리식으로 말하면 해물 볶음밥이 납작하게 눌러 있었다. 해물과 쌀을 넣고 볶은 빠에야(Paella)였다. 

온타나스와 인접한 곳에 발렌시아가 있다. 그곳은 쌀 곡창지대다. 오래전, 이곳 농부들은 일을 하면서 새참으로 주위에서 쉽게 잡을 수 있는 것으로 뭔가를 만들어 먹었다. 쌀을 기본으로 즉석에서 잡은 물고기나 달팽이를 넣어 볶았다. 그것이 발달하여 지금의 빠에야가 됐다. 큰 프라이팬은 신에게 봉헌하는 제물을 담는 쟁반을 뜻한다고 한다.

빠에야가 본식이었다. 주인이 과장된 몸짓으로 순례자들 접시에 일일이 프라이팬에 있는 빠에야를 덜어주었다. 그 의식(?)이 끝나자 야외테이블에 둘러앉은 각국 순례자들이 서로 대화를 하면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나도 한술 떠서 씹었다. 쌀은 설익었고 해물로 몇 개 나오지 않은 홍합과 조개는 냉동식품이었다. 알도 작을 뿐만 아니라 알맹이가 빠진 껍질만 포크에 딸려나왔다. 잘게 깨진 조개껍질이 입안에서 서걱거렸다.

갑자기 공립 알베르게 빠에야 맛은 어떨까, 궁금해졌다. 뒤늦게 온 순례자가 그가 묵은 곳은 6유로인데, 저녁 식사로 빠에야가 공짜로 나왔다고 했다. 우리는 와인을 더 마셔야 본전을 찾을 수 있다면서 의기투합했다. 와인도 썩, 상태가 좋지 않았다. 제대로 된 와인 병에 담기지 않은 와인은 잔술을 섞어 통에 넣은 다음 다시 따라주는 것이라고 했다. 어쩐지 와인 맛이 거칠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가 다 있었다. 하지만 주인 매력(?)은 다른 곳에 있었다.

빠에야를 다 먹을 즈음 주인이 테이블 한가운데 앉더니 자신의 바 역사에 대해 아느냐고 물었다. 좌석을 차례대로 훑어보던 그는 심각한 목소리로 전부 영어는 하실 줄 아시니 영어로 설명하겠다고 운을 뗀 뒤, 장황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참을 이야기하더니 이번에는 아내를 옆에 앉혔다. 이야기 제2부인 그들의 러브스토리였다. 연신 아내의 팔뚝을 쓰다듬으면서 눈시울까지 붉혔다. 이야기 요지는 산티아고 순례를 하다가 사랑에 빠져서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는 거였다.

미리 공립 알베르게 직원의 비난을 듣고 온 뒤라(그녀는 그를 사기꾼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아니, 음식 맛이 엉망이라 나는 그 부부의 언행이 장삿속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오늘'의 순례자가 가면 '내일'의 순례자에게도 똑같은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닐까.

모든 이야기가 끝나자 테이블에 둘러있던 사람들은 감동에 찬 박수를 쳤다. 박수를 받은 주인은 답례로 노래를 했다. 신나는 스페인 노래였다. 성량이 풍부해서 맞은편 바는 물론 건물이 몰려 있는 거리를 온통 흔들었다. 더 큰 박수를 받았다. 그는 이번에는 나라별로 대표가 한 곡씩 노래를 부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모두들 수줍어 했지만 싫다고 하지는 않았다. 잘 부르든 그렇지 않든 대표 한 사람이 노래를 불렀다.

그때였다. 맞은편 바에서 살사댄스를 추는 커플이 보인 것이. 8시 퇴근이라는 그 여직원도 육중한 몸을 흔들면서 끼어들었다. 음악 소리가 노랫소리를 덮쳤다. 와인을 하나 더(공짜로) 주문한 우리는 맞은편에서 벌어진 춤판을 보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 주인, 동네 사람들이 미워할 만하다고, 장사를 아주 잘하시는 분이라고, 주인장 설이 5유로짜리는 더 되겠다고. 

바 주인장의 매력

경쟁하는 바의 신경전은 되레 열기를 보태줬다. 손님들의 열기는 자연스럽게 축제 분위기로 바뀌어 갔다. 나는 그 분위기에서 살짝 빠져나와 침대로 향했다. 온타나스 공립 알베르게는 성당이 내려다 보이는 맞은편에 있다. 침대가 있는 2층 창문에서 보면 바로 성당이 보인다. 붉은 노을에 붉어가는 성당 첨탑을 보며 일찍 잠들었다. 그리고 종소리에 눈을 떴다.

새벽 3시부터 종소리가 울렸다. 성당 아래 숙소라 그 소리도 컸을 뿐만 아니라 귓속에서 오랫동안 진동했다. 3시 30분은 종 한 번, 4시는 네 번, 4시 30분에는 한 번, 5시는 다섯 번... 나는 30분마다 눈을 떴다. 그러다가 떴다 감았다, 떴다 감았다를 반복했다. 코 고는 소리는 그런대로 참을만 했다. 난데없는 종소리는 알람 소리처럼 대책이 없었다. 잠이 달아난 몸은 종소리를 세면서 뒤척였다.

모스텔라레스 고개(메세타) 시작점
 모스텔라레스 고개(메세타) 시작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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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미스타로 가는 길
 프로미스타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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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또 출발해야 했다. 이번에도 메세타 고지를 걸어야 했다. 1050m 고지를 걷기 위해 1km를 올라가서 4km를 걸은 다음 올라간 만큼 내려와서 끝없는 들판 길을 걸어야 목적지인 프로미스타(fromista)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음 주에 비가 온다고 했으니 비 오기 전에 좀 더 걸어도 나쁠 것은 없었다. 그리고 궁금하기도 했다. 태양보다 비가 더 강적일지, 아님 의외로 비가 온순할지.

나는 일어났다. 다른 사람을 방해하느니, 새벽 산책을 하기로 했다. 슬그머니 침대에서 빠져나와 거리로 나 있는 알베르게 문을 열었다. 종소리가 섞여 진동하는 공기가 훅, 내 뺨을 스쳤다. 가로등을 벗 삼아 위쪽으로 향했다. 밤늦게까지 음악을 틀어놓으면서 거리를 달궈놓았던 환호성은 새근거리는 숨소리로 바뀌어 있었다. 자장가를 부르는 듯한 내 발걸음은 성당 앞에서 멈췄다.

내가 걸음을 멈추자 등 뒤에서 따라오던 시커먼 남자도 섰다. 나는 그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헉, 소리를 내며 내가 한 발 물러서자 그는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며 큰소리로 말했다. 그러면서 일찍 길 떠나는 순례자들을 위해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러 간다고 했다. 바 주인이었다.

어제 그렇게 와인 안주처럼 그를 '씹'었는데, 그는 누구보다도 일찍 일어나 새벽을 열고 있었다. 부지런함. 스토리를 만드는 힘. 좌중을 유쾌하게 만들 수 있는 유머 등. 그는 능력자였다. 똑같은 상품을 멋지게 포장할 수 있었다. 순례자들은 단순히 음식만 먹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삶까지 먹었다. 그러고 보면 장거리 걷기를 선택한 순례자들은 그들의 특별한 여행만큼이나 '아주 특별한 음식'을 먹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욕망을 그는 알고 있지 않았을까. 그것은 바로 영업의 힘이었다. 그 힘을 누가 비난할 수 있겠는가.

나는 느릿느릿 오르막길을 올라 바 문을 열고 있는 그의 등을 봤다. 상대방의 욕망을 읽어내는 힘. 그것은 능력이었다. 잘 활용하면 어디에서든 화합의 장을 만들 수 있었다. 순례자들과도 마을 사람들과도. 심지어 자기 자신과도.

그는 가로등이 그의 굽은 등을 오래도록 비추도록 놔두지 않았다. 서둘러 어둠에 휩싸인 그의 거푸집으로 스며들듯 모습을 감췄다.

프로미스타 운하 수문
 프로미스타 운하 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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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은 2017년 6월 13일에 걷기 시작해서 7월 12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습니다. 30일만의 완주였습니다. 그 다음 날, ‘세상의 끝’이라는 피니스테레와 묵시아까지(100km)까지 내처 걸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34일 동안 900km 여정을 마쳤습니다. 몇 십 년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34일의 여정은 짧을 수 있으나 걸으면서 느꼈던 것들은 제게 인생의 축소판처럼 다가왔습니다. 움츠린 어깨를 펴게 하고 긍정적인 미래를 내다보게 했습니다. 이곳에서 34일 간의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시간들을 도란도란 풀어놓으면서 함께 공유하려고 합니다.



태그:#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 길 , #온타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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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문학박사. 저서로는 소설집 《기차가 달린다》와 《투마이 투마이》, 장편소설 《죽음의 섬》과 《스노글로브, 당신이 사는 세상》, 여행에세이로는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물공포증인데 스쿠버다이빙》 등이 있다. 현재에는 광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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