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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30억 원의 손해배상을 갚기 위해 매달 회사로부터 임금이 압류되고 있는 전국금속노동조합 구미지부 KEC지회 소속 조합원들의 '임금압류 기록'입니다. 조합원 가운데 44명의 당사자들은 지금으로부터 1년 전인 2016년 9월 20일, 법원 조정 명령에 따라 회사가 청구한 손해배상액 301억 원 중 30억 원을 3년 동안 임금에서 갚아야 합니다. 파업을 했기 때문입니다. 노동3권이 헌법에 보장된 나라에서, 회사의 노조파괴와 부당노동행위에 맞선 노동자가 겪어야 하는 모순된 현실을 기록하고 '노조 할 권리'의 현주소를 알리기 위해 해당 조합원들이 용기 내어 노동자 손배소 당사자의 임금압류 일지를 <오마이뉴스> 지면을 통해 공개합니다. - 기자 말

☞전회 기사 : 여성이 일하기 좋은 직장? 여성이 가장 먼저 내쳐졌다

나는 구미에 있는 KEC라는 반도체 공장에서 일을 한다. 2010년에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회사로부터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다. 현재 임금압류 대상자로 17개월째 최저생계비 수준으로 생활하고 있다. 6년이라는 긴 재판기간동안 회사가 가한 온갖 협박과 회유로 동료들이 떠나는 것을 지켜봤다. 노동조합 탄압에 버티지 못하고 노조는 4분의 1토막이 났다. 그럼에도 버티는 조합원들을 지켜보며 나도 노동조합에 함께 남았다.

이성언 조합원,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이성언 조합원은 총무역할을 담당하며 2016년 10월부터 압류 당사자들의 명세서를 확인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성언 조합원,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이성언 조합원은 총무역할을 담당하며 2016년 10월부터 압류 당사자들의 명세서를 확인하는 일을 하고 있다.
ⓒ KEC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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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C지회에서 내 역할은 총무다. 손배 압류가 시작되면서 지회에서 내 역할이 하나 늘었다. 손배 압류로 공제되는 금액이 맞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회사가 얕은 수로 조합원들 최저임금마저 지켜주지 않는 일이 생기니 '최저생계비'정도밖에 받지 못하는 압류당사자들을 위한 감시역할이 필요했다. 총무이니 내게 떨어진 역할이다.

2016년 9월 급여부터 손배 당사자들의 급여를 일일이 확인하게 됐다. 제대로 공제됐는지 확인하려고 급여명세서를 다 출력하다보니, 압류 당사자들의 생계가 점점 힘들어지는 상황도 알게 됐다. 명절이 되면 더 마음이 아프다. 지난 달, 설 상여금을 지급받았다. 아니 정확히는 회사가 보낸 '설 상여금을 공제한 급여명세서'를 받았다. 30년이상 근속한 내 경우만 해도 회사가 정기상여와 설상여를 포함해 280만 원 정도를 공제해갔다.

이성언 조합원의 올해 설상여와 정기상여 압류명세서다. 총 2,931,430원이 압류됐다.
 이성언 조합원의 올해 설상여와 정기상여 압류명세서다. 총 2,931,430원이 압류됐다.
ⓒ KEC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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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들었던 성별 임금차별도 숫자로 확인하니 열악하다는 것을 알았다. 격월로 나오는 정기상여마저 떼어가니 최저임금보다 낮았다. 눈으로 보니 심각했다.

교대근무를 하는 사람들도 많이 공제됐다. 공장에는 보통조(8시반~5시반에 마치는 근무)와 교대조가 있는데, 교대조는 아무래도 야근이 많다보니 수당이 더 붙는다. 압류로 수당은 다 떼인다고 보면 되기 때문에, 임금공제에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압류 날짜를 하루라도 더 앞당기려고, 휴가를 최대한 사용하지 않는 조합원들도 있다. 연차수당도 1년에 한 번씩 나오는 연차수당이 300~400만 원 정도 된다. 조합원들은 쉬지 않고 일하고, 회사는 그렇게 쌓인 연차수당을 공제해간다.

압류도 서러운데, 최저임금꼼수까지

매달 압류가 제대로 공제되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은 고달프다. 고달픈 상황을 비웃듯, 회사는 2018년 최저임금꼼수를 부렸다. KEC의 호봉테이블은 2012년도 거다. 10년 가까이 임금인상이 없었다가 작년에 7만원이 올랐다. 오른 임금에 맞춰 새로 호봉테이블이 나와야하지만 노조가 요청해도 회사는 내놓지 않고 있다.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으니 최저임금꼼수에 대한 우려가 터져 나왔다. 올해 최저임금이 올라서 1월분 급여가 떴다. 아니나 다를까 우려는 현실이 됐다. KEC지회 소속 조합원만 따져도 7명의 최저임금 위반 사례가 나왔다. 지회는 2월 21일자로 회사를 최저임금위반으로 노동청에 고발했다. 아마 2노조(KEC노동조합)와 3노조(기업노조)까지 조사가 들어가면 더 많을 것이다.

임금이 압류되는 입장에서 최저임금 부분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압류되는 금액이 줄어들면 압류되는 기간이 그만큼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하루하루가 고통인 조합원들은 일을 하면서도 제대로 급여를 받지 못하는 것도 억울한데, 회사가 꼼수를 부릴까 초조하게 신경을 곤두세우기까지 해야 한다.

회사의 투자에 '노동자'는 없었다

되돌아보면 KEC의 경영전략에 '노동자 생존'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나는 1987년 10월 23일에 입사했다. 19살에 실습을 나왔던 게 시작이 됐다. KEC가 첫 직장이다. 올해로 32년차 근속이다.

이성언 조합원은 KEC가 첫 직장이다. 1987년 19살에 입사해 올해로 32년차 근속하고 있다.
 이성언 조합원은 KEC가 첫 직장이다. 1987년 19살에 입사해 올해로 32년차 근속하고 있다.
ⓒ KEC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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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회사생활을 되돌아보면 사업확장, 자회사설립, 외주화, 구조고도화 등 다양한 이름의 경영전략들이 있었다. 경영전략이 다양할 수는 있다. 문제는 회사가 생산을 줄이는 방식으로 경영전략을 추진해왔다는 것이다. 이게 왜 문제냐면, 제조산업에서 생산을 줄인다는 것은 생산인력이 줄어든다는 것이기에 노동자들의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나마 생존과 직결되는 일을 회사가 노조와 교섭을 통해 상의할 때는 문제가 크지 않았다. 문제는 회사가 '노조와 상의하지 않는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면서부터다.

1987년 당시 회사는 TV같은 가전제품을 생산했다. 전자기기 사업이 잘 됐다. 수출 콘테이너가 나가면 바로 돈이 들어오는 식이었다. 회사는 그 돈으로 반도체에 투자를 했다. KEC는 유독 투자와 회수, 정리가 빨랐다. LCD사업도 했고, 삐삐도 하고, 전자키보드 사업도 했고, 시대마다 각광받는 전자기기나 부품제조 분야에 잘 뛰어들었다. 투자를 조금 넣어서 효과를 보려고 하니, 결과가 좋지 않으면 바로 정리를 했다. 공정만 정리를 하는 게 아니라 해당 사업도 같이 정리하는 식이었다. 그나마 그때는 공정을 정리한다는 게 바로 생계불안정으로 오진 않았다. 제조업을 유지했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다른 공정으로 이동했다.

사업성과가 나는 분야는 분사를 시키기도 했다. 대표적인 게 전자키보드와 TV이다. 나도 처음에는 PCB(TV나 PC에 들어가는 보드)공정을 하다 90년도에는 전자키보드와 디지털피아노 생산라인으로 옮겼다. 거기서 2009년도까지 기술업무를 했다. 담당은 키보드 쪽이었다. 그러다 잘 나가는 악기파트에 대해 회사는 분사를 결정했다. 그 이후 TV쪽으로 옮겨 품질업무, 구매업무(완성품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각종 부품을 사는 업무)를 했다. 다시 회사가 TV파트 분사를 결정하며, 나는 반도체로 넘어와 정비 업무를 지금까지 하고 있다.

2010년 즈음 반도체가 호황으로 돌아선 반면 전자기기부문이 쇠퇴했다. 회사는 쇠퇴한 전자기기부문의 분사를 결정했다. 분사는 KEC로서는 사업을 접는 것을 의미한다. 과정은 간단했다. 회장님이 "우리는 반도체 사업을 주력으로 간다"고 발표를 하면 그게 결정이다. 그러면 노동자들은 회사의 방침을 따라야 한다. 분사가 결정되면 공정이 마무리되고, 공정별 라인마다 배치된 인력이 전부 이동을 하거나 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전자키보드 공정의 경우 라인만 4개였다. 그럼 사람이 라인 1개당 30-40명 정도 배치가 된다. 이런 식으로 이것저것 다양한 사업을 시도했던 90년대 노동자가 최대 3천명으로 가장 많았다. 30년간 서서히 정리하고 반도체공정 하나 남은 지금, 노동자가 700여명이다.

사업을 접는 과정은 간단했던 것에 반해 접기까지 결정에 '노동자'는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그나마 줄어드는 동안 잡음이 없었던 건 그나마 회사가 제조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서 공정이동처럼 퇴사가 아니어도 선택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쨌든 당시 회사는 형식적이나마 대화를 통해 합의를 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2010년대부터 회사가 꾸준히 추진하고 있는 '구조고도화'는 다르다. 공장부지에 복합쇼핑몰을 세운다는 것은 더 이상 제조업을 하지 않겠다는 거다. KEC에 다니는 노동자들에게 '다 나가라'는 선고나 다름없다.

노동청 압수수색으로 발견된 KEC노조파괴 시니라오 중 일부, 사측은 계획적으로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부당노동행위와 부당한 정리해고 등 법적으로 인정되었더,
 노동청 압수수색으로 발견된 KEC노조파괴 시니라오 중 일부, 사측은 계획적으로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부당노동행위와 부당한 정리해고 등 법적으로 인정되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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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C, 반도체 아닌 노조파괴에 투자

문제는 회사가 노동자 생존과 직결되는 경영상 결정을 하면서도 더 이상 노조와 대화를 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악화됐다. 그게 2010년 파업이 일어난 원인이 됐다.

2010년도는 반도체가 호황으로 물량이 넘쳐났다. 공장이 계속 돌아가던 시기였다. 그런데 당시 주력사업이라던 회장님의 말이 무색하게도 회사는 사업을 접을 조짐마저 보였다. 제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회사가 사업을 접을지 알 수 있는 바로미터는 바로 생산장비 투자다. 제조업체가 생산장비에 투자하지 않는 것은 생산을 줄이겠다는 의미다. 그리고 생산이 줄어든다는 것은 결국 생산인원이 준다는 것이고, 생산인원이 준다는 것은 사업을 줄인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2011년 생산라인이 지금과 같다. 신제품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 외주화도 많이 진행됐다. 공정 일부를 하청을 주거나, 중국, 태국 공장에 넘기며 외주화를 했다. 외주화는 인건비를 줄여서 단가를 줄이는 것이다.

전자기기 부문도 사업을 접기 10년 전부터는 투자없이 한도 내에서 운영을 했다. 반도체 공장은 장치산업이다. 설비를 가동해서 제품을 뽑아내야 한다. 풀가동해야 하는 시스템인데, 설비들이 보면 최소 20년에서 많게는 30년 된 설비다. 그러다보니 성능도 많이 저하되고 자동화도 덜 됐다. 작업자들이 직접 정비할 수밖에 없다(실제로 삼성이 설비를 투자하면 수명이 5년이다. 5년 정도 쓰면 설비가 고장 나기 시작한다). 노후한 설비를 계속 사용하는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걱정이 크다. 여러모로 불안정한 상황이었다.

이 시기 회사는 노조파괴 시나리오를 준비했다. 주력사업이라더니 반도체에는 투자하지 않던 회사가 2010년 풍문으로 2천억을 준비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노조를 박살내기 위해서라고 했다. 당시 KEC는 유니온샵으로 노동자 전체가 조합원인 셈이었다. 즉, 노조를 깬다는 것은 노동자 전체를 몰아내겠다는 의미와 다름없다.

소문은 사실로 드러났다. '인력구조조정로드맵', 노조파괴 시나리오가 발견됐다. 파업 내내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들을 정문 밖으로 내몰려고 하는 동시에 '밖에 있는 조합원 한 명도 안 받는다'고 으름장을 놨다. 그리고 뒤에서 회사가 주도한 복수노조가 등장했다. 파업 기간 동안에 대체인력투입과 신규채용은 불법임에도 회사는 거침없이 실행했고, 채용된 인원과 공장으로 돌아간 인원은 모두 2노조로 가입되고 교육을 받았다.

노조파괴 주도자는 벌금 300만원, 파업참가자는 임금압류30억원

2006년도 이OO 대표이사가 와 2013년도까지 대표이사를 했다. 이 전 대표는 사업장을 정리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악명대로 노조파괴를 주도했다. 이 전 대표는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2013년도에 기소됐고, 결국 부당노동행위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벌금을 고작 300만원 내고, 이후 자회사로 발령났다. 이 전 대표뿐만이 아니다. 노조파괴에 주되게 활동했던 관리자들 중에 몇몇은 지금도 부장을 달고 승급하고 관리자로 일하고 있다. 특히 노무담당 승급이 빨랐다. 제조부장부터 경영기획 팀장까지 주요 요직에 다 앉아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2012년 9월 24일 산업현장 폭력용역 관련 청문회를 열어 유성기업·KEC·SJM 등 산업현장에서 발생한 용역폭력 사태 관련자들을 상대로 집중 추궁했다. 장하나 의원이 KEC 당시 기획조정실장에 질의하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2012년 9월 24일 산업현장 폭력용역 관련 청문회를 열어 유성기업·KEC·SJM 등 산업현장에서 발생한 용역폭력 사태 관련자들을 상대로 집중 추궁했다. 장하나 의원이 KEC 당시 기획조정실장에 질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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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노조파괴 시나리오는 2017년 1월이 되어서야 정리해고 재판에서 부당노동행위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미 노조파괴 시나리오에 대한 공소시효가 한 달도 남지 않아 형사고소조차 못했다.

반면, 저항한 노동자에 대한 민형사 처벌 과정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파업을 했던 간부는 모두 징계받거나 해고됐다. 평조합원들도 형사처벌은 물론 30억원의 손배압류 대상이 됐다.

과정도 허술했다. 현장검증을 두 번 했는데 나는 당사자인데도 현장검증에 참여한 적이 없다. 원래는 누가 실질적으로 무엇을 했는지 회사가 검증을 해야 한다. 그러나 제대로 당사자 검증 없이 두루뭉술하게 묶어서 금액을 청구하고, 농성기간만큼을 계산적으로 나눠 금액을 책정했다. 수백억원어치 파손을 했다고 하는데, 나는 파손을 한 기억이 없다. 그런데 누구도 나에게 파손에 대해 질문하지 않았다. 그저 그 장소에 있었다는 것으로 유죄가 됐다. 오로지 질문은 하나였다.

"누가 주도했는가?"

불법에 저항한 건 '우리'다

이제는 담담히 대답할 수 있다. 누가 주도한 게 아니라 내 의지로 저항했다. 회사는 불법을 저질렀고, 우리는 불법을 불법이라고 말했을 뿐이다. 나 뿐 아니라 손배압류 당사자들과 지회는 책임 질 것이 있으면 책임을 지기로 했다. 다만 회사도 노조파괴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길 바란다. 정부도 노조파괴행위를 노동3권 부정으로 보고 엄단하길 바란다. 국회도 손배가압류라는 노동3권을 방해하는 악법을 철폐해주길 바란다. 노동자들이 생존을 위협받아가며 떠맡은 책임을 회사도, 정부도, 국회도 제 역할을 통해 책임을 져야 한다.

KEC지회 단체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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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하루하루를 보내는 조합원들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지회 조합원들은 나를 '집사'라고 부른다. 소소하게 지회 사무실에서 동료들의 사소한 '수발'을 들어준다고 이런 별명이 붙었다.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생각하지 않고, 동료들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었다. 얼마나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지 알기 때문에.

2016년도 10월 임금압류 시작 이후 벌써 4번의 명절을 보냈다. 그나마 동료들이 마음을 모아 명절에 소규모라도 지회차원에서 지원을 한다. 연말정산에 기부영수증을 떼어주는 일도 내 업무인데, 당사자 아닌 분들이 조합비를 두 배로 내고 있었다. 어떤 조합원은 출산휴가 다녀와서 업무복귀를 했는데, 조합비를 2배를 내겠다고 했다. 여성노동자는 임금도 적은데, '제가 토요일에 나와서 두 번 일하면 돼요'라고 했다.

회사 전체적인 분위기가 많이 개인화하는 문화가 생겼는데, 우리 조합원들은 여전히 '우리'로 뭉쳐있다. 파업의 경험 이후에 줄기차게 회사가 가했던 비인간적인 행태들, 정리해고, 임금삭감, 구조고도화까지, 사원을 배제한 회사의 경영방침이 우리를 오히려 뭉치게 했다. 그 힘으로 오늘도 하루를 버텨낸다. 

KEC지회를 대상으로 한 전례없는 임금압류가 실시된 것이 뒤늦게 알려지며,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한 연대기금 모금이 설을 앞두고 시작됐다. 모금은 3월 31일까지이며 시민참여도 가능하다.
 KEC지회를 대상으로 한 전례없는 임금압류가 실시된 것이 뒤늦게 알려지며,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한 연대기금 모금이 설을 앞두고 시작됐다. 모금은 3월 31일까지이며 시민참여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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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본 글은 손잡고(www.sonjabgo.org)홈페이지에도 중복게재합니다.



태그:#손배가압류, #KEC지회, #노조파괴, #복수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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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구미 (주)KEC에 있는 민주노총 금속노조소속 지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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