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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는 태어난 홀, 짝수의 해에 암 검진 안내장을 우편으로 보낸다. 내가 태어난 해는 홀수, 남편은 짝수 해여서 매년 암 검진안내장을 받는다. 직장에 근무할 때는 특성상 의무적으로 매년 1회 검진을 받았다. 그때마다 X-선 촬영을 했다. 결과가 나오면 의사로부터 매번 들었던 말이 있다.

"폐에 흔적이 있는데, 결핵 앓으셨어요?"

30년도 더 전의 얘기다. 학력고사(현재의 수능) 두어 달을 앞두고 나는 밤새워 공부를 하고 있었다. '이쁜(?) 나이에 시집이나 가면 딱 좋으련만...' 혼자 중얼대는 엄마 말을 한 귀로 흘리며 나는 노량진 학원가에서 살다시피 했다.

늦은 밤,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기진맥진한 몸은 완전 녹초가 되었다. 시험 날짜는 다가오고 남들은 졸업하고도 남을 나이에 시작했으니 열심히 하고 싶었다. 여느 때처럼 그 날도 식구들이 잠든 시간, 책상에 앉아 있었다. 감기 기운인 듯 기침이 나면서 불편한 뭔가가 올라왔다. 객혈이었다. 잠든 엄마를 깨울까 하다가 이른 아침에 말씀드렸다.

"아이고, 너두 참 무던하다. 목구멍에서 피가 넘어오는데 이제서 말을 해. 걱정이 안 되든?"

걱정이 왜 안 되었을까마는, 내 상황을 안다 해도 엄마가 그 한밤중에 할 수 있는 건 걱정하는 것 말고 무엇이 또 있었을까. 엄마는 공부고 뭐고 당장에 보건소에 가야 된다며 택시를 불렀다.

"우리 애가 밤에 각혈을 했어요. 얼른 좀 봐주세요."

다급한 엄마와 달리 보건소 관계자는 느긋했다.

"9개월 동안 하루에 한 번도 빠짐없이 약을 꼬박 챙겨먹어야 해요."

처방은 의외로 간단했다. 어릴 적 기억에 혹은 사진 속에 나는 또래 친구들에 견줘 살 집이 없었다. 초등, 중등 때도 빼빼 말라서 엄마표현에 의하면 '꼬챙이에 옷 입혀 놓은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잘 의식하지 못했는데, 습관처럼 무심코 큼, 큼 내 뱉는 내 기침소리에 엄마는 '쟤는 밭은기침을 늘 하고 다닌다'면서 걱정했다.

그때부터였을까? 이미 오래 전 내 안에 잠재된 결핵균은 20년도 훨씬 지나 밤새는 날이 반복되자 면역력이 약해지면서 드러난 것 같았다. 결핵균이 몸속에 들어온다고 해서 모두 결핵에 걸리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나는 9개월 동안 보건소 약을 다 먹고 완 치판결을 받았다. 이후 X-선을 찍을 때마다 의사는 그때의 흔적을 언제나 확인시켰다.

얼마 전, 보건증이 필요해서 보건소에 갔다. 접수를 하고 몇 가지 진료를 받았다. 빠질 수 없는 게 X-선 촬영이었다. 일주일 후, 핸드폰으로 문자가 왔다. 보건증 발급 전에, 담당자와 상담이 필요하니 전화를 하란다. 담당자는 내 흉부에서 이상이 보여 의사와 상담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보건소에서 검진받기 6개월 전에 병원에서 종합검진을 했고 별 다른 이상소견이 없었다고 하자, 그 병원에 가서 촬영한 X-선 사진을 복사해오라고 했다. 사진은 별도의 비용을 내고 시디로 구워 다시 보건소에 들렀다.

담당의사를 만났다. 시디를 확인한 보건소담당의사는 화면으로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영상의학과가 있는 병원에 가서 CT(전산화단층촬영검사)를 찍어오세요" 한다.

"6개월 전, 엑스레이 결과가 비활동성이라고 나왔는데 꼭 씨티를 찍어야 하나요?"
"네!"

의사는 단호했다. 화면에 나타난 한 쪽 폐의 어느 한 지점을 가리키며 다른 쪽과 비교해보라고 한다. 전문가와 달리 내 눈으로는 썩 구분이 되지 않았다. 의사는 아무래도 이것만 갖고는 판단을 내릴 수 없단다.

별로 내키지 않아하는 내 마음을 알았는지 의사는 CT촬영이 비교적 안전하고 그동안 병원에서 검진 받은 X-선 촬영에서 찾을 수 없는 병변을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또 3차원 영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인체 장기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해준단다.
    영상의학과에서 흉부 CT 를 찍다
 영상의학과에서 흉부 CT 를 찍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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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의사가 써준 의뢰서를 들고 보건소에서 좀 떨어진 종합병원 영상의학과에서 CT촬영을 했다. 말로만 들었던 CT촬영, 옷을 갈아입고 기계의 둥근 통 안으로 들어가는 좁고 길쭉한 침대에 누웠다.

간호사의 말에 따라 두 팔을 위로 올리고 방송에서 나오는 대로 숨을 들이마시면서 멈췄다 내쉬길 반복했다. 내 가슴 위로 레이저 포인트 같은 빛이 두어 번 둥글게 지나갔다. 방사선발생장치가 있는 기계 속에 들어가 있다는 생각에 맘이 편치 않았다.

걱정하는 내게 간호사는 '요즘 기계는 방사선발생치가 예전보다 많이 줄어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잠시 후, 영상의학과 의사와 CT로 찍은 걸 확인했다.

"별 다른 이상은 없고 지나간 흔적입니다."

CT촬영 검사비는 5만원 미만이었다. 병원(영상의학과)을 나서면서 찜찜했던 마음이 가벼웠다. 작년 여름, 직장의 업무 특성상 야간업무와 당직으로 무척 힘들었다. 고민을 거듭하며 내린 결론은 퇴직이었다.

나는 '내가 그때 너무 힘들었나? 그래서 폐에 다시 이상이 온 건 아닐까?'라고 잠시 의심했다. 하지만 평소 내 건강을 의식해서 먹는 것도 잘 챙긴다. 약골이란 말을 들어도 기침을 하거나 감기 한번 걸리지 않고 지난 겨울을 보냈다. 영상의학과에서 받은 시디를 들고 난 다시 보건소 담당의사를 만났다.

"CT로는 이렇게 흉부를 가로로 자른 횡단면을 다 볼 수 있어요. 한 번 앓던 흔적이라고 소견이 적혀 있네요. 시디는 갖고 가시고 여러 번 오시느라 애쓰셨어요. 그래도 한 번쯤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어요."
   보건소에서 받은 보건증
 보건소에서 받은 보건증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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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결정으로 보건증이 나왔다. 검진결과지에 '활동성폐결핵 없음'이라고 인쇄되었다. 굳이 CT까지 찍어야하는지 불만스러웠는데 이왕에 한 검사였다. 또 전문의가 봐야만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온종일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녔더니 미세먼지로 입 안이 버석거린다. 아침저녁으로 기온차가 크다. 일교차가 심하면 면역력도 약해진다고 의사가 말했다. 내 건강상태를 다시 점검하며 집으로 걸어가는 길목에 봄기운이 새롭다.

덧붙이는 글 | 유어스테이지에도 송고합니다.



태그:#결핵검진, #CT촬영, #엑스레이, #영상의학과, #면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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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면을 줘보게, 그럼 진실을 말하게 될 테니까. 오스카와일드<거짓의 쇠락>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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