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통 과자인 '유과'를 사람으로 표현하면 어떤 모습일까. 저마다 다양한 묘사를 할 수 있겠지만, 어느 모바일 게임의 경우에는 '아슬아슬할 정도로 짧은 스커트를 입은 긴 머리의 젊은 여성'이었다.

모바일 게임 '요리차원'이 지난 2월 28일 국내 서비스를 시작하고 사전예약을 받는다고 알렸다. '요리차원'은 중국의 게임회사 자오루(zhaolu)가 개발했으며, 중국에서는 이미 지난해에 출시해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홍보 자료에 따르면, '요리차원'은 사용자가 셰프가 돼 '식령(음식에서 태어난 정령)'들과 함께 음식물쓰레기로 오염된 세계를 정화해 나가는 콘셉트의 게임이다. 홍보 문구에서는 "도너츠, 나폴리피자, 마카롱, 월병, 김치 등 세계 각국의 요리를 미소녀화 한 수집형 RPG"라고 쓰인 부분도 보인다. 이른바 '미소녀 수집형 RPG'가 게임의 장르라는 것이다.

사물을 의인화한 캐릭터, 일부는 과한 노출로 성적 대상화 우려

 플레로게임즈가 최근 출시한 게임 '요리차원'의 캐릭터 소개.

플레로게임즈가 최근 출시한 게임 '요리차원'의 캐릭터 소개. ⓒ 플레로게임즈


음식에서 태어난 정령이 게임 속 캐릭터들인데, 나라별 음식을 의인화한 것이 인상적이다. 예를 들면 중국의 캐릭터는 월병과 동파육, 스웨덴은 수르스트뢰밍, 일본은 덴푸라가 사람으로 묘사되는 식이다.

게임 속에서 한국을 나타내는 캐릭터는 돌솥비빔밥, 떡볶이, 유과 등이다. 캐릭터의 공통점은 모두 소녀에 가까운 어린 여성이라는 점이다. 각 음식의 특징을 포착해 각각 다른 성격과 외모의 사람으로 의인화했다. 한국의 '유과'나 중국의 '동파육' 캐릭터의 경우 가슴 부분이 강조됐으며, 다른 캐릭터의 경우 허벅지 등 다리가 노출된 경우도 있다.

이런 겉모습에 '미소녀 수집형 RPG'라는 게임 설명, 캐릭터 묘사까지 추가되면서 누리꾼으로부터 '성적 대상화'라는 비판을 받았다. 일부 캐릭터 묘사에는 "어려 보이는 외견과 달리 어른들의 말투를 사용하며 요염한 매력을 뽐내면서"라거나 "평소에는 빈틈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겨드랑이 부분이 약한 것 같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음식을 젊은 여성으로 그려놓고 "요염한 매력"이나 "겨드랑이가 약하다"라는 표현이 더해지자 성적으로 대상화했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특히 한국 캐릭터 '유과'는 타이트한 상의에 가슴이 강조됐고 짧은 스커트로 허벅지까지 노출된 모습이다.

 최근 사물을 의인화한 모바일 게임들. 왼쪽부터 '요리차원', '벽람항로', '소녀전선'

최근 출시된 게임 중 사물을 의인화한 모바일 게임들. 왼쪽부터 차례로 '요리차원', '벽람항로', '소녀전선'. 각각 요리와 함선, 총기류를 사람으로 묘사했다. ⓒ zhaolu, X.D. 글로벌, Longche


물론 이런 묘사가 '요리차원'에만 나온 것은 아니다. 최근 모바일 게임의 한 축은 '미소녀의 모에화'인데, '모에화'란 '특정 사물을 귀엽거나 섹시하게 의인화하는 것'을 뜻한다. 게임 '요리차원'이 음식을 사람으로 묘사했다면 '벽람항로'는 함선을, '소녀전선'은 총기류를 사람으로 묘사한 게임이다.

공통점이라면 모두 요리와 함선, 총을 젊거나 어린 여성으로 표현한 부분이다. 노출이 없고 수줍음을 많이 탄다는 식으로 성격을 설명하면서 '소녀'라는 점을 강조한 캐릭터들도 있다. 하지만 일부 캐릭터는 과할 정도로 특정 신체 부위를 드러내며 성적인 매력을 부각한다. 캐릭터 옆에 '천천히 드세요♡' 혹은 '나의 지휘관이 되어주세요'라는 문구를 덧붙이기도 한다.

'게임인데 뭐가 문제냐'라고 하기에는...

게임 속 여성캐릭터를 성적 대상화 해서 벌어진 논란은 이전에도 있었다. 지난 2017년 7월, 국내 게임회사 넥슨이 만든 슈팅게임 '서든어택2'의 사례 중 하나였다.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 '미야'와 '김지윤'이 전투를 배경으로 한 게임인데도 지나치게 노출이 심하고 가슴이 크게 묘사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짧은 탑과 핫팬츠를 입고 강남역에서 총격전을 벌이는 홍보 영상이 나오자 비판이 거세졌고, 이에 넥슨 측은 캐릭터를 삭제하기로 결정했다(관련 기사 : 넥슨, '선정성 논란' 서든어택2 여성 캐릭터 2종 삭제). 하지만 캐릭터 삭제로 넘어가기엔 이미 논란이 커진 상황이었다. 사용자와 누리꾼의 비판이 이어지면서 결국 넥슨은 출시 23일 만에 '서든어택2' 서비스 종료를 발표했다.

 선정성 논란이 제기된 게임 '서든어택2'의 여성캐릭터

선정성 논란이 제기된 게임 '서든어택2'의 여성캐릭터 ⓒ 넥슨


그렇다면 캐릭터 삭제와 게임 서비스 중단의 극단적인 사례가 있는데도 왜 '여성 캐릭터 모에화'가 계속되는 걸까? 이에 관해 게임업계에서는 사용자가 남성 중심이라는 논리를 펴곤 한다. 실제로 국내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상대적으로 온라인 게임을 더 많이 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온라인 게임의 남성 사용자(51.2%)의 비율이 여성(25.2%)의 두 배에 가까운 수준이다(한국콘텐츠진흥원, '2016 게임이용자 실태조사 보고서').

한혜원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는 젠더 정체성을 인식하지 않고 게임을 만드는 풍토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게임 콘텐츠와 게임 문화에 관해 연구한 한혜원 교수는 이에 관해 저술한 책 <엘리스 리턴즈>에서 "남성의 성적 욕망을 게임에 표면적으로 반영하는 순간, 여성 플레이어는 그들의 욕망은커녕 존재 자체가 아예 배제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성 소비자가 적고 남성 소비자가 많다는 이유로 여성 캐릭터가 대상화된다는 논리는 정당하지 않으며, 반대로 이런 콘텐츠 때문에 여성 소비자가 게임의 핵심 소비 그룹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의미다.

한혜원 교수는 게임 회사가 성차별적 태도나 편향적인 자세로 게임을 기획·개발하려는 의도가 없다고 하더라도, 젠더 정체성을 인식하지 않는 풍토가 문제라고도 지적한다. 결론적으로 기획 과정에서 젠더 의식이 고려되지 않기 때문에 게임 캐릭터에 관한 비판이 나오는 셈이다.

문체부가 발간한 '2017년 e스포츠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e스포츠 산업규모는 지난해 830억을 돌파하며 2016년보다 14.9% 증가했다고 한다. 스폰서 시장 규모는 스포츠 부문에서 축구, 야구에 이어 3위에 오르기도 했다. 또한 모바일 게임은 스마트폰 보급률이 오르면서 대중의 일상적인 취미 생활로 자리 잡은 분야이기도 하다.

한혜원 교수는 책에서 "게임은 상업적인 상품인 동시에 문화적인 자산"이라고 말한다. 이어 "문화적 패러다임을 형성하고 인간의 가치관에 영향을 준다"라고 덧붙였다. '캐릭터 몇 개가 무슨 문제냐'라고 하기엔 모바일 게임이 하나의 문화가 된 시대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지 않고도 성공한 사례로는 여성 모험가 '라라 크로포트'의 노출을 줄인 2015년작 게임 <툼 레이더>나 노인 여성 저격수 '아나'가 등장하는 <오버워치> 등도 있다. 이제 더 이상 게임에서 여성 캐릭터의 옷을 벗기는 게 당연하지 않은 시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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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차원 서든어택2 모바일게임 여성캐릭터 성적대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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