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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천면 선흘리
▲ 낙선동 성터 조천면 선흘리
ⓒ 김흥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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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흘리, 북촌리
▲ 지도 위 지점 선흘리, 북촌리
ⓒ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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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의 기억, 선흘리

그해 겨울, 눈이 참 많이 내렸다. 무심하게 내린 눈이 한라산을 덮고 오름을 덮고 들판까지 하얗게 삼켜버렸다. 하지만, 70여 년 전 그날의 기억까지 덮을 수는 없었다.

1948년 겨울, 제주는 짙은 죽음의 땅이었다. 계엄령과 함께 시작된 초토화 작전으로 마을 95%가 불에 타고 희생자의 대부분이 이때 발생한다. 제주의 마을은 해안마을, 중산간마을, 산간마을로 나뉜다. 1948년 10월 해안선 5km 이상의 모든 곳을 불태워 없애는 초토화 작전이 시작되자 산간, 중산간 마을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린다. 최근 제주 핫 플레이스로 알려진 동광, 소길, 선흘, 송당 등이 전부 해당한다.

선흘리는 대표적인 중산간 마을이다.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선흘곶자왈이 마을을 감싸고 있고, 주민 대부분은 농사와 목축을 병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지 중산간에 산다는 이유로 이들은 너무도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다. 토벌대들이 들이닥치자 이들은 곶자왈 내 자연 굴로 숨어들었다. 도틀굴(반못굴), 목시물굴, 대섭이굴 등이 은신처가 되었다. 하지만 이 역시도 발각됐고, 그 곳에 숨어있던 대부분은 남녀노소 구분 없이 총살됐다.

동백동산
▲ 먼물깍습지 동백동산
ⓒ 김흥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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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동백동산을 중심으로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트레킹 코스를 따라 걷다 만나는 도틀굴에는 이날의 흔적이 남아있다. 그러나 굴 입구가 쇠창살로 막혀있어 출입은 불가하다. 선흘곶에서 빠져나와 마을 입구로 들어서면 아담한 학교운동장과 만날 수 있다. 함덕초등학교 선흘분교장이다. 운동장 한편에 세워진 오래된 공덕비들에서 알 수 있듯이, 마을의 뜻있는 분들의 노력으로 세워진 학교였으나 4.3으로 잠시 폐교가 된다. 이후 무장대 토벌을 위해 군인들이 주둔하며, 마을 사람들이 고초를 겪게 된다.   

마을회관을 끼고 마을 한끝 어귀에 가면 독특한 나무를 만날 수 있다. 팽나무 밑동에 후박나무 가지를 품은 나무다. '불칸낭'으로 불리는 이 나무는 초토화 작전 당시 불에 타버린 팽나무였다. 덩그러니 속이 빈 채로 밑동만 남아있었는데, 어느 날 후박나무가 싹을 틔우며 지금의 모습을 하게 되었다.

낙선동은 선흘 본동에서 해안 쪽으로 내려온 알선흘 마을이다. 4.3 유적지 안내 간판을 따라 들어가면 옛 성터에 당시의 전략촌을 재현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마을을 빙 돌아 쌓은 성터 담에 얼기설기 지은 함바집들이 수용소처럼 조성돼 있다. 4.3 당시 선흘 자연부락들이 모두 불타 없어져 버리자, 살 곳이 없던 사람들이 1956년 통행 제한이 풀릴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이즈음 선흘에 가면 붉은 동백꽃을 만날 수 있다. 통꽃으로 툭 떨어지는 모습에서 4.3 당시의 서늘한 죽음과 닮아 4.3의 상징이 되어버린 꽃이다. 하얀 눈밭에 떨어진 붉은 동백꽃에서 슬픔을 지울 수 있도록 진상규명의 진실에 성큼 다가갈 수 있길 바란다.    

오랜 세월 숨죽인 채 "억울하다"고, "아프다"고 소리도 쳐보지 못한, 북촌리

특별해서 아픈 그날, 북촌리

제주의 겨울엔 제사가 참 많다. 그리고 북촌리의 겨울은 더욱, 유독 특별하다. 마치 명절을 지내듯 같은 날 동네 곳곳이 제사를 지낸다. 음력 12월 18일 400여 명의 신위를 같이 올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평화공원으로 조성된 너븐숭이 기념관은 아픔이 서린 공간이다.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으로 세상에 알려졌지만, 오랜 세월 숨죽이며 "억울하다"고, "아프다"고 소리도 쳐보지 못한 그런 곳이다. 4.3 진상규명 운동을 통해 알려진 그날의 진실은 참혹했다. 70여 년 전 겨울 무장대에 의해 군인 2명이 살해된 것에 대한 분풀이로 군인들은 북촌리 주민 400여 명을 총살했다. 그리고 그 장소는 집결지였던 북촌초등학교 운동장과 근처의 너븐숭이 그리고 옴팡밭(우묵하게 파진 밭)이었다.

오랜 세월 동네 사람들은 동네 어귀를 지날 때마다 가슴 미어지는 울음을 틀어막으며 마음을 쓸어내려야 했다. 이젠 버젓이 위령 공간이 조성되고 추모의 공간이 되었지만, 아직도 이날의 기억을 전하는 일은 힘겹게 다가온다. 하지만 잔혹한 역사의 반복을 없애기 위해 잊지 않으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북촌마을은 제주의 전형적인 농어촌마을이다. 마을 포구까지 가는 길의 구불구불한 올레길과 올망졸망한 밭들이 정겹게 다가온다. 하지만 조금만 눈여겨보면 그날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큰길에 세워진 비석에도 총알 자국이 선명하다.

조천면 선흘리
▲ 불칸낭 조천면 선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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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마을 어귀의 팽나무가 을씨년스럽다. 200년, 300년의 세월을 지나며 숱은 사연을 묻어왔던 이 나무들의 뭉툭한 가지에 4.3의 진한 슬픔이 같이 새겨져 있는 듯하다. 새봄이 되어 파릇파릇 가지가 돋을 즈음이면 팽나무의 울음소리도 희망의 소리로 변모하길 바란다. 70주년을 계기로 역사가 바로 설 수만 있다면, 분명 가능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조미영씨는 여행작가입니다. 이 글은 제주 4.3 범국민위의 <4370신문> 2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선흘리, #북촌리, #제주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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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는 2018년 제주 4·3 70주년을 맞아 아픈 역사의 정의로운 청산과 치유를 위해 전국 220여개 단체와 각계 저명인사로 구성된 연대기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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