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죄> 포스터

영화 <원죄> 포스터 ⓒ MSK 컨텐츠


2017년 영화 <원죄>는 문신구 감독의 사명감에서 비롯됐다. 문 감독은 70~80년대 정치, 노동 얘기부터 90년대 성 이데올로기 등을 거쳐, 이번 작품에서는 종교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이 주제를 영화에 녹여내기 위해 10년에 걸쳐 종교와 신학에 관한 공부를 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다. 기자는 2월 6일 서울 서초구 소재 한 카페에서 문신구 감독을 만나 민감한 주제를 어떤 방법으로 영화에 담아냈는지 들어봤다.

-영화 <원죄>는 어떤 이야기를 다뤘나.
"나는 원래 시대적인 이슈를 다루는 작품을 많이 해왔다. 과거 여러 이슈들에 관해 이야기한 것과 마찬가지로 현재 세계적으로 종교적인 문제가 제일 큰 이슈라고 생각했다. 기독교, 천주교 등 교파를 떠나서 종교를 찬양하거나 홍보하는 영화는 많이 제작됐다. 하지만 종교가 아닌 기본적인 '신앙'에 관한 문제를 다루는 작품은 드물다고 생각했고, 신앙에 관해 얘기하기 위해 영화 <원죄>를 만들었다."

-사회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종교적 소재에 주목한 이유가 궁금하다.
"영화 <원죄>는 메인 카피에 '하나님'이란 단어를 쓴다. 이 단어 하나만으로도 종교계가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 하지만 기본적인 신앙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나름대로 오랜 준비를 했다. 아무 근거 없이 영화를 구성했다거나 논리적, 신학적으로 곡해해 제작에 임하지 않았다. 오히려 잘못 흘러가고 있는 종교계에 경종을 울리겠다는 마음으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소재에 주목했다. 오늘날 종교가 많은 이들에게 배척되고 선망이 아닌 저주의 대상이 돼가고 있는 것 같다. 때문에 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싶었다."

-영화의 전체적 분위기와 콘셉트를 소개해달라.
"남자 주인공 상문(백승철 분)은 수녀 에스더(김산옥 분)를 저주의 대상으로 삼는다. 자신이 저주받았다고 생각하는 상문이 에스더를 저주함으로써 그가 믿는 절대적인 하나님에 대해 저항하는 것이다. 이렇듯 어두운 사람이 주인공이다 보니 극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둡게 보일 수 있다. 애초에 '처절하게 짓밟힌 사람이 처절하게 대항하는 모습'을 담아내고 싶었다. 이를 통해 관객들이 자신 안의 또 다른 모습, 또 하나의 수녀 에스더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문신구 감독 2018년 2월 6일 서울 서초구 소재 한 카페에서 직접 찍은 문신구 감독의 사진.

▲ 문신구 감독 2018년 2월 6일 서울 서초구 소재 한 카페에서 직접 찍은 문신구 감독의 사진. ⓒ 채송현


-어디에서 촬영했고, 장비는 어떤 걸 썼는지.
"촬영은 군산과 부산 기장에서 이뤄졌다. 군산은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을 위주로 로케이션을 가졌다. 특히 아메리카타운이란 철거 예정 미군 기지촌이 주요했다. 부산 기장은 성전 야외세트 때문에 선택했다. 야외 오픈 세트가 있는 기장에서 보름 정도 작업했다. 성전은 영화의 내용 때문인지 섭외가 잘되지 않았다. 결국 극 중 성당 신을 성당이 아닌 교회에서 찍었다. 교회 목사님이 영화의 의도를 듣고 흔쾌히 빌려줬다. 모든 촬영은 캐논 5D Mark Ⅲ 1대로만 진행됐다."

-시간적 배경에 따라 흑백과 컬러로 변화를 줬다.
"개인적으로 4K 등 최신 기술을 바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날이 발전하는 기술들이 현실을 분명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왜곡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가장 무채색으로 본질을 쫓아가는 것이 영화의 주제와도 상통한다고 생각했다. 영화에서 컬러는 현실에 와있는 것이고, 원 이야기는 흑백으로 칠했다. 좀 더 본질을 나타내기 위해 화면을 구상했다."

-영상에 롱컷이 많던데.
"영화적 기교를 최대한 줄이고 싶었다. 있는 그대로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빅 클로즈업이 들어가는 것을 피하고 롱컷으로 분위기를 표현했다. 되도록 기술·기교를 피하고, 색도 배제하고 모든 장치에서 탈피함으로써 주제를 효과적으로 살린 것이다."

-영화의 결말이 충격적이다. 뭘 의미하는 걸까.
"아버지의 생명을 억지로 지탱하고 있던 딸 혜정(이현주 분)이 직접 그의 생을 마감하며 동반자살 한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이 불평을 가지고 산다. 신세를 한탄하고, 억울해 하고, 고통받고 살아가는 사람이 정말 많다. 이는 진정한 '신앙이 아닌 '종교'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사랑을 베푼다. 교회의 성전을 키우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구원물품을 보내는 등 겉모습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극 중 혜정은 수녀 에스더가 자신을 보살피기 위해 접근할 때 얘기한다. '왜 우리를 불쌍하게 여기고 보호의 대상으로 생각하느냐'고. 도움을 준다고 해서 고통받은 사람들이 모든 것을 치유 받지 않는다. 진정으로 사람으로 대접하고 사랑으로 안아줘야 한다."

-엔딩 신에 현대무용이 나오더라.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 건가.
"상문과 그의 딸 혜정은 평생 자신들의 삶을 저주받았다고 여기며 신에 대한 반감을 품고 살았다. 현대무용 신은 마지막에 이르러 그들이 세상, 신과 화해하는 장면으로 고통에서 풀려나 해방돼 활짝 웃는 모습이 담겼다. 어떤 사람은 시사회에서 화면이 어둡고 웃음소리가 계속 나와 소름 끼친다고 말했다.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영화 <원죄>의 한 장면.

영화 <원죄>의 한 장면. ⓒ MSK 컨텐츠


-<원죄>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
"70~80년대 정치, 노동에 관한 작품을 만들었을 때 경찰에게 쫓긴 적은 있으나 사람들로부터 좋지 않은 시선을 받아본 적은 없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미란다>와 같은 성 관련 영화를 찍으며 많이 힘들었다. 영화로 인해 온 세상이 나를 파렴치한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고 심지어 내 아이들도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할 정도였다. 이겨내기 매우 어려웠지만 잘 해결했다. 이런 경험이 있기에 이번에는 걱정이 별로 되지 않는다. 사실 영화가 가진 문제의식에 대해 어떤 반응이 나타날지 잘 모르겠다."

-배우 캐스팅 과정도 궁금하다.
"수녀 에스더 역을 찾기 위해 1500명의 오디션을 진행했다. 수녀의 이미지에 가장 적합한 느낌을 찾으려 했는데 마땅한 이가 없었다. 결국 촬영 열흘 전에 우연히 소개로 알게 된 김산옥을 보고 배역에 어울린다고 느껴 바로 캐스팅했다. 혜정이 역할은 리얼리티를 가져가기 위해 대학로에서 소문난 연극배우인 이현주에게 맡겼다. 상문 역의 백승철은 이 작품에 참여하기 위해 2년을 기다렸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 상문이 정말 목이 불편한 사람이냐고 물어볼 정도로 연기를 잘해줬다."

-기억나는 촬영 에피소드가 있는지?
"상문이 에스더의 방에 들어가는 6분 12초의 가장 긴 쇼트가 있다. 이 쇼트의 촬영이 있기 일주일 전부터 연기자들에게 NG 없이 원 커트로 가자고 말했다. 때문에 일주일 동안 철저하게 준비했다. 워낙 추운 날씨에 몸이 다 젖어있는 상태이기에 리허설을 할 시간도 없었다. 모든 스태프가 초긴장 상태였다. 백승철이 김산옥을 내려다보며 물을 뚝뚝 떨어트렸다. 이는 의도하지 않았던 부분으로 김산옥이 자신의 몸에 떨어진 물방울에 의식하며 반응을 보였다. 의도치 않았던 자연스러운 디테일이 살아난 것이다. 작은 화면에서 보면 잘 나타나지 않는데 영화관의 큰 화면에서 보면 세밀한 반응을 알 수 있다."

-다음 작품으로 어떤 걸 준비중인가.
"시나리오를 이미 써둔 것이 있다. 시나리오가 여러 개가 있어 어떤 것부터 시작할지 모르겠다. 이번 영화와 비슷한 주제인 '신앙의 탈종교'에 관한 연작으로 반응을 보며 순서를 정할 예정이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종교라는 단체가 신앙의 모습을 왜곡시키는 경우가 있다. 이번 연작을 계기로 내가 욕을 먹더라도 종교계가 자성의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영화는 영화다. 신학적인 이야기를 펼치면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매우 어려울 수 있다. 그렇기에 영화적 이야기로 끌고 간 것이다. 영화를 보며 하나님을 모르는 관객들도 가슴 속에 무언가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깊은 신앙심을 가진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주제다. 주제를 오해하지 않고 상처 입은 사람들의 마음에 치유가 됐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2018년 4월호 월간 비디오플러스에 기사로 게재될 예정입니다.
문신구 문신구 감독 원죄 영화 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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