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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탉과 암탉의 기적

마을 초입 의자에 앉아 있는 노인
 마을 초입 의자에 앉아 있는 노인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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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한 옷을 입은 중년 부부가 초인종을 눌렀다. 안에서 기척이 들리자 부부는 서로 손을 맞잡고 눈을 맞추었다. 처음에는 불안하고 초조한 눈빛이 이내 희망과 격려로 변했다. 그들이 안내받아 간 곳은 식탁이었다.

식탁에는 윤기 흐르는 얼굴에 긴 수염을 기르고 법복을 입은 넉넉한 몸집의 남자가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맞은편에도 비슷한 몸집의 남자가 있었다. 법복 입은 남자가 힐끔 부부를 보더니 냅킨으로 입가를 닦으면서 물었다.

"무슨 일이요? 집에서 기르는 개라도 식사 시간을 피해서 일을 시키는 법이거늘, 이렇게 급하게 온 이유가 있을 것 아니오?"

허름한 옷차림의 방문객 남자가 낮은 음성이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 아들이 살아 있소. 그런 확신이 들었소. 성 도미니코(Sanctus Dominicus, 1170~1221) 이름을 걸고 감히 확신합니다."

법복 입은 남자가 방문객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당신 아들?" 부부를 한참을 보던 남자가 이제야 알겠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것과 동시에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입안에 든 음식물이 튀었다. 맞은편에 앉은 남자도 하인들도 따라 웃었다.

부부의 아들은 두 달 전에 교수형을 당했다. 그들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순례자였고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다음날 떠나려고 하는데 경찰이 그들을 가로막았다. 아들 배낭에서 여관집 물건인 황금잔이 나왔다. 재판관은 현행범으로 체포된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다른 순례자까지 도둑으로 몰 수 있어, 그의 죄는 더 꽤씸하다고 했다. 아들은 순례자를 자칭한 도둑이었다. 사형을 선고했던 재판관이 지금 식사를 하고 있는 법복 입은 남자였다.

부부는 누군가가 모함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방인인 그들 편을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들이 교수형을 당했지만 부부는 순례를 멈추지 않았다. 이것도 신의 뜻이라며 신을 의지하면서 순례를 마치기로 했다. 상처 입은 마음을 다스리며 되돌아오는 길에 부부는 확신을 얻었다. 자신의 아들은 무고하며 아직까지 살아있다고. 교수형 당한 곳에 다다를수록 그 확신은 더 커졌다. 꿈속에 성 도미니코(산토 도밍고)가 나타나서 재판관을 찾아가라는 말을 남긴 것은 전날 밤이었다. 부부가 똑같은 꿈을 꾸었다.

재판관은 닭요리가 있는 접시를 포크로 두드리며 말했다.

"나도 성 도미니코 이름을 걸고 확신하며 말하겠소. 이미 당신 아들은 이 접시에 있는 닭고기처럼 죽었단 말이오."

그때였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 접시에 담겨 있던 닭고기들이 일어나 큰소리로 울면서 식탁을 돌아다녔다. 재판관은 교수대로 달려갔다. 아들은 눈을 감고 있었지만 죽지 않았다. 그는 아들을 손수 내려주고는 사면했다. 부부의 아들은 누명을 벗었다.

잘생긴 아들에게 반한 여관집 딸이 그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신실한 그는 그녀가 가까이 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에 앙심을 품었다. 그의 배낭에 황금잔을 몰래 넣고는 도둑맞았다고 신고했다. 

위 이야기는 '수탉과 암탉의 기적(Miracle of the Coke and Hen)'이다.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에서 전해오는 전설 중의 하나이다. 세월이 흘러도 '성 야고보 길'을 따라 펼쳐지는 전설들 중에서 무척이나 사랑받고 있다. 무엇보다, '길 위의 성 도미니코(Saint Dominic of the Road)'라고 불리는 산토 도밍고와 관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성 도미니코는 자신의 인생을 순례자들의 실질적인 루트를 개발하는 데 평생을 헌신했던 인물이다. 순례길을 이루는 수많은 길과 다리를 만들고 산토 도밍고 데 칼사다에 있는 순례자 병원과 대성당까지 그의 손길이 닿았다. 지금도 대성당 내부에는 성 도미니코의 무덤과 라 막달레나(La Magdalena) 예배당, 제단 장식 등이 있다. 한 가지 믿기지 않는 전시물 중 하나는 성당 뒤쪽에 있는 닭장이다. 살아 있는 닭 두 마리가 여전히 성당 뒤쪽에서 노닐고 있다.

맥스가 시니컬한 이유

엉컹퀴가 있는 밀밭
 엉컹퀴가 있는 밀밭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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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프라에서 길을 나설 때 비는 말끔하게 그쳤다. 맥스와 나는 새벽어둠을 헤치고 걸었다. 산토 도밍고 데 칼사다(Santo Domingo de Calzada)까지는 밀밭 고개 마루를 넘고 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아소프라에서 산토 도밍고 데 칼사다까지는 15km 광활한 들판이었다.

어둠에 쌓인 들판. 붉은 갈기 같은 구름을 품은 코발트 하늘. 햇볕이 비쳤다면 아름다운 풍경보다는 걷는 힘듦에 더 집중했을 것이다. 그늘 한 점 던져 줄 나무 한 그루 없는 들판이었다. 들판 길을 걷는 동안 등 뒤에서 해가 서서히 떠올랐지만 구름에 가려 있었다. 이런 날은 조금이라도 더 걸어야했다. 어제 발을 충분히 쉬었다. 걷는 동안은 아프지 않았다. 아픈들 어떡할까, 다들 발가락 두세 개 정도는 물집이 잡혀있을 것을. 하지만 장비가 하나 더 필요했다.

스틱!

광활한 밀밭 사이로 난 길
 광활한 밀밭 사이로 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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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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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을 계획했을 때 이곳에서 완주할 동안만 사용할 싼 스틱을 사려고 했다. 하지만 등산하는 것도 아닌데 굳이 필요할까 싶었다. 내 판단이 틀렸다. 장거리 걷기이고 더군다나 10kg 정도 되는 배낭을 늘 메고 다녀야 했다. 무게 분산이 필요했다. 등산을 하는 것도 맞았다. 목적지까지 1000m 넘는 고지를 세 번이나 올라야 하고 오전에 지나왔던 시루에나(Ciruena)도 730m나 되었다.

조금 걷자 들판 너머로 도시 초입이 보였다. 눈으로 볼 때에는 5분이면 도착할 것처럼 보이지만 두 시간 정도는 걸어야 골목으로 들어설 수 있는 거리였다. 나는 맥스에게 말했다.

"맥스, 나는 스틱이 필요해. 스포츠 매장을 찾아야할 것 같아. 이곳은 제법 큰 도시이니, 있겠지? 인터넷 검색하니 큰 마트에서 살 수 있다고 나와 있어." 

"그래? 잘 됐군. 나도 신발 밑창을 교환하려고 했어. 너무 닳아서인지 발바닥이 딱딱해서 걷는 것이 불편하거든. 가는 길에 있을 거야. 찾아보자. 그런데 너 아니? 이곳에 왜 이렇게 닭 형상이 많은지?" 

나는 순례길이 완성된 데에 기여한 성 도미니코와 '수탉과 암탉의 기적'에 관해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그는 전설 속 재판관처럼 크게 웃었다.

"너는 그것을 믿니? 얼마나 황당해? 아직까지 그 닭들이 살아있다고 하잖아? 지금도 대성당에 가면 한 쌍의 닭이 있다고? 매번 죽으면 다른 닭으로 바꾸겠지. 통통하게 살이 찌면 요리도 해서 먹을까?" 

누군가에게 화풀이해야 하는데 참다가 내게 역정을 한꺼번에 쏟아놓는 듯, 그의 말투는 시니컬했다. 나는 조금 언성을 높여 따졌다.

"전설이잖아, 전설. 오랜 시간 말로 전해오면서 보태고 보탠 이야기. 사람들의 바람이 어느 정도 적용되고 재미있게 변형된 이야기. 그 이야기에는 권선징악이 대부분이지만 그것 또한 사람들의 염원이 반영된 거잖아. 그리고 이 길을 만든 성 도미니코에게 공을 돌림으로써 그 사람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존경 받는지를 알게 하려고 하는 것도. 너는 너무 시니컬하지 않니? 매사에 너무 냉정해. 가볍게 듣고 웃고 넘길 일도 꼭 그렇게 비평적인 잣대로 평가해야 해?" 

나는 며칠 동안 그에 대해 생각했던 것들을 쏟아 퍼부었다. 이미 쏟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었다. 담담하게 맥스가 반격하기를 기다렸다. 역시나 그는 나를 보며 비꼬듯 말했다.

"야, 너에게 미니 문학 강의를 들을 줄은 몰랐는 걸?" 

그리고는 잠시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그를 앞서 가버릴까 하다가 그 옆에 멈췄다. 여전히 해는 구름 뒤에 있었다. 골목 끝에서는 어둠이 어슬렁 거리고 있었다. 드디어 그가 한 발을 떼며 말을 이었다. 조금 전과 달리 가시 빠진 음성이었다.

"실은 내가 말하고자 한 것은 그 전설에 있지 않아. 요즘 세태를 비꼬는 거야. 세상이 온통 분장한 가부키 배우들처럼 미화되고 있어. 아니, 겉치레가 심하다고 할까. 일종의 광고 열풍이라고 할까. 이미지가 범람하고 있다는 말이야. 그 중에 스토리도 포함되니 내가 좀 예민하게 대응했던 것은 사실이야." 

"그렇게까지 너는 냉정하니, 이미지 이면의 것들을 볼 수 있잖아? 이미지에 휩쓸리는 인생을 사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격하게 반응할 필요가 있니?" 

"그렇지, 나 혼자 그것을 안다고 해도 소용이 없어. 무의식이 은근히 거기에 물들어 가. 그리고 주변 사람들도." 

조금 말을 끊던 맥스는 나를 돌아보다가, 조금 머뭇거리다가, 마저 말을 했다.

"오랜 이웃이 있었어. 혼자 사시는 할머니셨어. 어렸을 때는 그분이 나를 참 많이 챙겨주셨어. 정원 한쪽에 꽃을 가꿨는데 그 꽃이 참 예뻤어. 그런데 한 1년 전부터 전혀 화단 손질을 하지 않으신 거야. 어머니가 그러시더군. 온종일 TV 앞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고. 나는 궁금해서 할머니 집에 가봤지. 어머니가 싸준 스프를 들고 말이야. 

할머니는 정말 TV 앞에서 꿈쩍도 안 하셨어. 그런데 화면 속에는 그녀가 결혼할 때 찍었던 화면이 계속해서 돌아가고 있는 거야. 할머니의 정신 연령이 20대로 되돌아간 거지. 그래서인지 늙어버린 현실을 받아들이질 못했어. 거울을 보는 것을 끔찍해 했으니깐. 내가 들어 가자, 나를 알아보지 못했어. 그 분은 한 달 뒤 요양원으로 가셨어. 치매라고 하더라. 

그런데 지금 나는, 극단적으로 말해서 그 할머니와 같은 현상에 처한 것 같아. 내 본모습이 어떤 것인지 모르겠어. 연구원으로 일하다보면 그 일만 매달려야할 것 같지만 여러 사람을 만나서 인터뷰를 하고 그것을 통계를 내야하거든. 어찌했든 인터뷰를 성공시켜야 했어. 진실이 아닌 말들을 많이 쏟아내야 할 때가 많았지. 나를 덧입히기도 하면서도 말이야. 그런 일을 계속 반복하다보니깐 내 본모습이 사라져버렸어. 상대방에게만 나를 맞추려는 '나'를 발견했어." 

나는 맥스의 말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좀 더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거울을 보던 어느날, 내가 묻고 있었어. '너는 어디에 있니?'라고. 어느 순간, 상대방도 나도 신뢰하지 않고 있었어. 그저 객관적인 통계 수치로만 존재하고 있었으니깐." 

맥스는 나를 보며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나도 어색하게 웃다가 물었다.

"그래서 걷게 된 거니?" 

맥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때마침 우리는 스포츠 매장 앞에 도착했다.

꽃이 만발한 들판
 꽃이 만발한 들판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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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은 이제야 영업을 시작하려는 여자 종업원의 활발한 움직임이 밖에서도 보였다. 문 앞에서 맥스가 나를 보며 씩, 웃었다.

"비록, 재판관의 집 초인종을 누르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순례길에서 제일 고생하는 발의 복지를 위한 이곳의 적절한 판결을 기다려 봅시다."

그리고는 유리문을 힘껏 밀고는 먼저 들어가라면서 옆으로 비켜섰다.

나는 스포츠 매장에 들어가자마자 신발을 벗고 맨발로 상품을 구경했다. 제일 싼 스틱은 하나에 10유로였다. 처음에는 그것을 사려고 했다. 하지만 묵직하면서 무게가 꽤 나갔다. 집에서 사용하던 것은 가벼운 티타늄 재질이었다. 손아귀에서 자연스럽게 비교가 되었다. 싼 스틱은 제대로 사용도 못하고 짐이 될 것 같았다.

고민 끝에 하나에 44.95유로 하는 스틱 두 개를 샀다. 앞으로 20일이 넘는 길을 나와 함께 걷게 될 '산티아고 스틱'이었다. 여자 점원을 독차지하듯 질문을 이어가던 맥스는 신발 밑창 대신 스포츠 샌들을 샀다. 그는 등산화에서 샌들로 바꿔 신고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등산화를 가방에 넣었다(나도 그때 맥스처럼 스포츠샌들을 사야했다).

샌들로 바꿔 신은 맥스는 발가락 사이에 시원한 공기가 들어온다면서 좋아라했다. 그는 여느 때처럼 가볍게 먼저 걷기 시작했고 새 스틱을 손에 쥔 나는 탁! 탁! 소리를 내며 맥스를 뒤따랐다. 말하지 않아도 애써 돌려 말해도 무슨 말인지를 금방 파악하는 것. 벌써 둘은 서로를 파악하는 관계가 되었을까. 많은 말을 쏟아낸 맥스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듯 뒤돌아보지 않고 앞서 갔다. 나는 일부러 그를 부르지 않았다.

레데시아야 델 카미노 Bar(배낭과 새로 산 스틱)
 레데시아야 델 카미노 Bar(배낭과 새로 산 스틱)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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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는 저런 말랑한 속살을 들키지 않으려고 시니컬한 외피를 둘렀을까. 그의 반바지 아래로 까맣게 탄 종아리, 먼지 묻은 긴 양말 아래로 새로 산 스포츠샌들이 자박자박, 산토 도밍도 데 칼사다를 벗어나고 있었다. 나는 뒤돌아봤다. 영원한 생명을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할 수탉과 암탉. 그것은 생물적인 수명이 아닐 것이다. 이름 모를 천사들의 힘. 성 도미니코처럼 미래의 누군가를 위해서 자신의 생애를 바친 희생정신. 그 정신의 계승일 것이다. 긍정적인 교감일 것이다.

나는 오래전에 읽었던 <파이 이야기>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소설 속 배경이 겨울이어서 좋았다. 눈 쌓인 풍경이 시원하게 내 앞에 펼쳐졌다. 나는 다리가 아팠지만 조금 전보다 시니컬한 이미지의 외피를 벗어 던진, 한 걸음 더 진실에 다가간 순례자가 된 것 같았다. 종교는 없지만 신에게 감사하고 싶었다. '신의 존재가 (힘듦의) 최고의 보상인 것'처럼 말이다.

"신이 나와 아주 가까이 있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 캐나다에서였다. 시골로 친구를 만나러 갔을 때였다. 겨울이었다. 넓은 땅을 혼자 거닐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밤새 눈이 내린 후, 햇살이 맑고 화창한 날이었다. 집으로 다가가다가 고개를 돌렸다. 숲이 있고, 숲속에 작은 빈터가 있었다. 바람일까, 아니 어느 동물이 나뭇가지를 흔들었다. 눈송이가 와르르 떨어질 때, 햇살이 비쳐들었다. 금빛 눈가루가 햇살 가득한 빈터에 쏟아질 때, 나는 성모 마리아를 보았다.

왜 성모님이었을까. 모르겠다. 성모님에 대한 마음은 그리 크지도 않았는데, 아무튼 그분이었다. 피부가 창백했다. 흰 드레스와 파란 망토 차림이었다. 옷에 주름이 많이 잡혀 있던 것이 아직도 기억난다. 성모님을 봤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봤다는 의미는 아니다. 물론 성모 마리아가 몸과 색을 갖고 있었다. 난 그분을 봤다고 느꼈다. 걸음을 멈추고 눈을 가늘게 떴다. 그분은 아름답고 위풍당당했다. 내게 사랑 넘치는 미소를 지어주었다. 잠시 후 그분은 날 떠났다. 두려움과 기쁨으로 가슴이 뛰었다.

신의 존재는 최고의 보상인 것을." - 얀 마텔 <파이 이야기>, 작가정신, p95


벨로라도 알베르게에서 바라본 풍경
 벨로라도 알베르게에서 바라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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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은 2017년 6월 13일에 걷기 시작해서 7월 12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습니다. 30일만의 완주였습니다. 그 다음 날, ‘세상의 끝’이라는 피니스테레와 묵시아까지(100km)까지 내처 걸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34일 동안 900km 여정을 마쳤습니다. 몇 십 년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34일의 여정은 짧을 수 있으나 걸으면서 느꼈던 것들은 제게 인생의 축소판처럼 다가왔습니다. 움츠린 어깨를 펴게 하고 긍정적인 미래를 내다보게 했습니다. 이곳에서 34일 간의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시간들을 도란도란 풀어놓으면서 함께 공유하려고 합니다.



태그:#산티아고 순례길 , #프랑스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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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문학박사. 저서로는 소설집 《기차가 달린다》와 《투마이 투마이》, 장편소설 《죽음의 섬》과 《스노글로브, 당신이 사는 세상》, 여행에세이로는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물공포증인데 스쿠버다이빙》 등이 있다. 현재에는 광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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