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멈춤의 여유

나바레테를 떠나며
 나바레테를 떠나며
ⓒ 차노휘

관련사진보기


"맥스가 맥주 세 병을 사와서 냉장고에 넣더라. 너, 알았니?"

애주가인 연석이 흥분해서 내게 말했다.

"정말? 그 친구 술 좋아하지 않잖아? 너라면 모를까, 세 병을 다 마실 수는 없을 텐데?"
"그러니깐. 그거 우리에게 한 병 씩 주려고 하는 것 아닐까?"
"김칫국부터 마시지 말자, 우리?"

하지만 나는 연석을 보며 싱긋 웃었다.

알베르게에서 식사하거나 같이 길동무하며 걷다가 잠깐 쉬면서 간식 등을 먹을 때 대부분의 서양인들은 자기 배낭에서 음식을 꺼내서 자기 것만 먹고 마신다. 아무리 친하게 이야기하고 걸어왔던 사람이 바로 옆에 앉아 있어도 먹어볼 거냐고 예의상이라도 묻지 않는다. 스펜서도 맥스도 그랬다. 그런데 그런 식사자리에 한국 사람이 한 명이라도 끼면 그 다음부터는 달라진다. 사과 한 개라도 너 이것 좀 먹을래? 라고 묻는다.

여명 속에서도 보이는 노란 화살표
 여명 속에서도 보이는 노란 화살표
ⓒ 차노휘

관련사진보기


함께 식사 준비를 하고 나눠 먹고 마시는 문화가 아직까지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있다. 맥스와 걸었을 때도 알베르게에서 연석을 만나면 간단하게 식사 준비를 했다. 넉넉하게 음식과 맥주를 사와 마른 빵을 먹는 맥스에게 함께 먹자고 했다. 흔쾌히 맥스는 승낙했다. 아소프라(Azorfra)에서 셋은 또 저녁식사를 함께 하기로 했다. 맥스가 장을 보면서 맥주 세 병을 산 것을 연석이 본 것이다.

아소프라에 묵게 된 것은 결론적으로 나 때문이었다. 나와 맥스가 계획한 곳은 나바레떼에서 총 40km에 있는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였다. 무리해서 가려고 했다. 오전 열한 시 즈음 길거리 Bar에서 잠깐 쉰 게 결정적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걷는 내내 왼쪽 새끼발가락이 따끔거려서 신경 쓰였다. 멈춰서 살펴봐야지 하다가도 맥스 발걸음에 보조를 맞추느라 늑장을 부릴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드디어 터질 것이 터졌다. 물집으로 가득 차서 퉁퉁 부어 있던 왼쪽 새끼발가락에 붙여 놓았던 밴드 접착면이 마찰 작용에 칼날 역할을 했다. 그곳이 찢겨져서 진물이 흐르고 있었다. 새끼발가락은 물론 엄지와 검지 사이, 오른쪽 엄지와 검지 사이도 물집이 잡혔다. 곧 터질 듯이 탱탱하게 부풀어 있었다. 막상 벌겋게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 발가락을 보자 다시 양말을 신고 신발 속으로 구겨 넣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나는 또 결정을 해야 했다. 

여기서 멈추느냐, 더 가느냐.

아소프라 Bar에서 바라본 풍경
 아소프라 Bar에서 바라본 풍경
ⓒ 차노휘

관련사진보기


맥스를 뒤돌아봤다. 맥스는 콜라를 마시면서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고 있었다. 내가 아프다고 해서 누군가의 발걸음을 붙들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맥스 앞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그를 집중시켰다.

"맥스, 나는 더 이상 무리하면 안 될 것 같아. 너는 오늘 네가 목표했던 곳으로 가. 나는 여기에서 멈춰야겠어."

맥스와 걷기 시작할 때부터 이런 시간을 생각하고 있었다. 목적의식이 강한 맥스였기에 함께 걷는 시간이 며칠 되지 않을 거라고. 이런 말을 하는 데에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나는 쉬기로 결정하자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2분 거리에 공립 알베르게가 있고 바 앞 벽에 슈퍼마켓이 항상 열려있다는 푯말이 보였다. 걸었다면 적군이었을 강렬한 햇볕은 야외 카페 의자에 앉아서보니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다.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오늘 넉넉하게 발을 쉬게 한 다음 내일 또 출발하면 되었다.

손목시계를 보던 맥스가 나를 봤다.

"아, 나도 여기서 머무를까? 계속 거리를 저축했으니 괜찮을 것 같아."

'거리 저축'은 맥스의 작전이다. 예를 들면 오늘 그의 계획은 36km 걷는 것이다. 하지만 날씨가 좋으니(폭염과 비 오는 날을 대비해서) 4,5km를 더 걸어 다음 날 거리를 단축시킨다는 뜻이다. 하지만 내일도 비가 오지 않는다면 걸어야할 거리는 더 늘어난다. 계속해서 '저축'하다보면 26일 완주가 아니라 더 일찍 그곳에 도착할 수 있다.   

의외의 맥스 반응에 이번에는 내가 좀 고민에 빠졌다. 이런 모습을 처음보기 때문이다. 출발지와 도착지만 같지 걸을 때는 서로 컨디션에 맞게 속도를 조절했다. 맥스는 발걸음이 빠르니 빨리 걷고 나는 20~30 걸음 뒤쳐져서 걸었다. 어떨 때는 해찰을 부리느라, 일부러 더 늦을 때도 있었다. 어김없이 앞서 가던 맥스가 언덕 아래에서나 마을 초입에서 기다렸다. 함께 바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음료수를 마시고 함께 또 출발했다. 나는 맥스가 먼저 갈 수도 있다는 것을 늘 염두하고 있었지만 그는 나를 기다렸다. 한번은 스틱을 제과점에 놔두고 온 적이 있었다. 한참을 걸어서 내가 네 스틱 어디 두었냐고 물어서야 그가 찾아왔다. 짧은 시간이지만 은근히 정이 들었을까. 

아니면 좀 외로운 것일까. 나는 그를 처음으로 찬찬히 훑어보았다. 172cm 키에 왜소한 체구. 멕시코계 피가 섞인 듯한 검은 피부와 곱슬머리, 30대 초반이지만 벌써 정수리 부분에서 머리카락이 빠지고 있었다. 연구원으로 근무했다고 하니 사교성보다는 혼자만의 시간에 익숙한 것일까. 하지만 그것은 아닌 것 같았다. 맥스는 만담가였다.

아소프라 알베르게 입구(왼쪽)
 아소프라 알베르게 입구(왼쪽)
ⓒ 차노휘

관련사진보기


여유를 부리며 야외 의자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걸을 때는 사람들이 지나쳐가면 긴장했다. 내 걸음이 느린 것에 자책했다. 더 이상 걷지 않고 있을 때도 그랬다. 오전에 걸으면서 따라잡았던 독일인 여자 순례자가 알은 체를 하며 지나갔다. 그녀는 한참 뒤에 쫓아오던 순례자였다. 순간 맥스는 걷고 싶은 충동이 인 듯했다. 몇 분 전에 이곳에 머문다던 그가 10km 지점에 있는 시루에나까지 가본다며 벗어놓은 양말을 신었다. 그때였다. 한국인 연석이 바에 도착한 것이.

연석은 십년 신은 등산화 밑창이 너덜거려 신발을 새로 샀다며 새 신발 때문에 발바닥에 물집이 잡혀 걷기가 힘들다고 했다.

"그럼, 여기서 쉬어갈래? 나도 여기에서 쉬려고 하는데. 맥스는 좀 더 걷는다고 하고."
"아니야, 나도 여기서 쉬어야겠어."

일어서려던 맥스가 주춤거리더니 앉았다.

실은 그들도 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명분이 필요했는지도. 나를 핑계 삼아 남았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혼자 걷기 위해서 온 순례자는 어느 나라 사람 가릴 것 없이 개성이 아주 강하며 철저하게 하루 걸을 거리를 정하고 온다는 것이다.

나는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미안하기도 했다. 그동안 마시지 않았던 생맥주가 간절히 당겼다. 내가 한 잔씩 사겠다며 생맥주를 돌렸다. 시원한 맥주를 마시면서 바로 옆으로 지나가는 순례자들을 봤을 때에야 긴장을 놓을 수 있었다. 옆 테이블에 있던 헝가리 커플도 우리 대화 속으로 들어왔다. 

새벽의 소고(小考)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는 듯한 낮은 코골음과 함께 쏴! 소리가 밤의 정적을 깼다. 몇 시나 되었을까. 주위를 둘러보았다. 손만 뻗으면 만져질 거리에 맥스가 자고 있었다. 나는 몸을 뒤척거렸다. 하지만 소리가 나지 않도록 아주 조심했다. 방에 침대 두 개만 있다. 트윈룸인지 알지 못했다. 리셉션 직원이 둘이 같이 왔냐고 해서 그렇다고만 말했을 뿐이다. 그녀는 나와 맥스를 짝 지워 침대를 주었다. 방 하나에 침대가 딱 두 개뿐이었다. 연석 옆 침대에 순례자가 아직 오지 않았지만 연석이 있는 침대로 옮긴다 해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맥스가 베란다 쪽으로 머리를 눕히자 나는 반대방향으로 머리를 두었다. 애써 어색한 표정을 짓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내가 샤워를 하고 낮잠을 자는 동안 맥스는 동네 한 바퀴를 돌았고 연석은 바에서 맥주를 더 마셨다. 저녁 식사 시간에 맞춰서 온 맥스는 냉장고에서 맥주 세 병을 꺼내서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식탁에 올려놓았다. 우리는 맥스의 배려에 환호성을 터트렸다. 저녁 식사를 하고 났을 때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쏟아졌다. 마치 우리나라 가을 태풍 같았다.

'ㄱ' 자 건물이었다. 1층 식당 건물 한쪽이 전면 유리였다. 콘크리트 정원 한가운데에 개구리가 헤엄치기 좋을 정도로 작은 풀장이 있었다. 작은 풀장에 파문이 일었다. 하지만 걷고 난 뒤라 맥주를 마시면서 여유롭게 바깥을 구경할 수 있었다.

어느 시골 마을 길
 어느 시골 마을 길
ⓒ 차노휘

관련사진보기


나는 눈을 감았다. 낮은 코골음 외에도 벽 너머에서 황소 한 마리는 때려잡을 코골음이 들렸다. 그리고 쏴, 하는 소리가 여전히 들렸다. 풀장 물을 밤새 교체하는 수돗물 소리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직까지 물러가지 않은 비바람과 겹쳐서 나를 잠 못 이루게 하는 것이다.

나는 예민했다. 애써 예민함을 외면하고 있었지만 새벽이면 어김없이 깨어 혼자서 뒤척거렸다. 한 방에서 자는 여러 명의 사람들이 내뿜는 한숨과 코골음이 공중에서 리듬을 만들었다. 눈을 감고 있으면 음표가 그려졌다. 낮 동안의 노곤함을 밤새 무의식들이 수다를 떠는 듯했다. 언성이 높은 것도 있고 한결 평온한 것도 있었다. 이런 화음조차 나는 오래 감상할 시간이 없었다. 다른 사람보다 삼십분이나 한 시간 정도는 일찍 일어나야 했다. 걸으면서 땀으로 젖을 몸, 아침은 고양이 세수로도 족했다. 아침 식사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발 상태를 점검하고 소독하고 밴드를 붙여야 했다.

반대로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실 끼운 바늘로 물집을 터뜨려야 한다. 미리 항생제도 한 알 먹는다. 샤워할 때는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 양쪽 발바닥을 타일에 야무지게 대고 물이 흥건하게 바닥에 고이더라도 머리부터 물줄기를 받아 거품을 많이 낸 바디샴푸로 샤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샤워할 때면 왼쪽 발에 물이 들어가지 않게 비닐로 감싸야 한다. 샤워하고 나면 그것도 소용없다. 봉지 안에 물이 들어가지는 않지만 습기가 차서 물집이 터진 그곳에 물기가 묻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상태로 샤워를 하고는 소독을 하고 햇볕에 말리는 것이 최선이다. 걷기 시작한 첫날, 론센스바예스에서 샌들을 버리고 팜플로나에서 조리를 샀다. 그 조리를 아직까지 제대로 신어 보지 못했다. 알베르게에서는 거의 맨발로 다닌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전날 나바레테 알베르게에서도 내가 신발을 신고 있지 않자 맞은편에 근사하게 생긴 스페인 노인 분이 와서 보자고 했다. 보여줬더니 그것은 아주 작은 상처에 불과하다고 하루 이틀 사이면 나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나을 경우는 걷지 않고 쉴 때이다. 땀 찬 운동화 속에서 하루 예닐곱 시간을 양말 사이에서 또 얼마나 투쟁하겠는가. 어찌 상처가 아물까.

나는 다시 눈을 감는다. 4시 10분. 맥스는 4시 40분에 알람을 맞춰놓았다. 같은 삼성 제품이라 알람 소리가 같다. 그는 출발 약속 시간을 정확히 지켰다. 그의 기척이 잠잠해지자 벽 너머에서 다시 강렬한 코골음이 들린다. 바람이 제법 세찬지, 휘이잉 말울음 소리도 덩달아 박자를 맞춘다. 이러한 소란스러움도 아침이 되면 신기하게도 조용해진다. 나는 시간을 가늠해본다. 길 위에서의 일주일을 보낸 지금, 무엇을 잃고 얻었는가.  

길 위의 신발
 길 위의 신발
ⓒ 차노휘

관련사진보기


길 위의 신발2
 길 위의 신발2
ⓒ 차노휘

관련사진보기


인생이란 저 멀리 저 지평선 너머 더 먼 곳까지 나아가는 욕망을 키우는 것이 아닐까. 그 욕망을 실천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목적지라는 것은 다가가면 다가간 만큼 물러서니 인생이란, 신기루만 보다가 끝나는 길 위의 여정이 아닐까.

설렁, 신기루만 보다가 끝나는 길 위의 여정일지라도 괜찮았다. 하루라는 시간이 있고 그곳에 내가 걸을 거리가 있다면 얼마든지 도전할 수 있었다. 걷는 자체에 나는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늘 현재진행형으로 말이다.

나는 맥스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일어나 침낭 안에 전날 꺼내놓은 자질구레한 것들을 쓸어담고 출입구 옆에 둔 배낭을 들었다. 주방 불을 켜고 차분차분 짐을 싸고 발바닥 상태를 점검한 다음 밴드를 붙이고 양말을 신고 신발을 신으며 되었다. 그러면 오늘 걸어야할 거리를 가늠할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은 2017년 6월 13일에 걷기 시작해서 7월 12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습니다. 30일만의 완주였습니다. 그 다음 날, ‘세상의 끝’이라는 피니스테레와 묵시아까지(100km)까지 내처 걸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34일 동안 900km 여정을 마쳤습니다. 몇 십 년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34일의 여정은 짧을 수 있으나 걸으면서 느꼈던 것들은 제게 인생의 축소판처럼 다가왔습니다. 움츠린 어깨를 펴게 하고 긍정적인 미래를 내다보게 했습니다. 이곳에서 34일 간의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시간들을 도란도란 풀어놓으면서 함께 공유하려고 합니다.



태그:#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 #순례자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소설가이자 문학박사. 저서로는 소설집 《기차가 달린다》와 《투마이 투마이》, 장편소설 《죽음의 섬》과 《스노글로브, 당신이 사는 세상》, 여행에세이로는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물공포증인데 스쿠버다이빙》 등이 있다. 현재에는 광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