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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교통, 그리고 대중교통에 대한 최신 소식을 전합니다. 가려운 부분은 시원하게 긁어주고, 속터지는 부분은 가차없이 분노하는 칼럼도 써내려갑니다. 교통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전하는 곳, 여기는 <박장식의 환승센터>입니다. - 기자 말

4월 29일 대천역에 정차한 새마을호 열차에 시민들이 탑승하고 있다.
 4월 29일 대천역에 정차한 새마을호 열차에 시민들이 탑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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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철도의 왕자인 새마을호가 4월의 마지막 날 익산 - 장항 - 용산 구간 마지막 운행을 끝으로 긴 여정의 마침표를 찍는다. 1969년 '관광호'라는 이름으로 운행을 시작해 1974년 새마을호로 이름을 바꾸며 무려 49년간 달려왔던 새마을호의 영광 역시 ITX-새마을에 전권 위임한다. 한국철도공사는 5월 1일 이후 장항선 새마을호에 객차형 ITX-새마을 열차를 투입한다.

새마을호는 대한민국을 수십 년간 대표했던 특급열차로 전국의 하루 생활권을 연 혁신적인 열차로 평가받는다. 특히 현대의 열차에서 보기 어려운 특급 편의시설과 넓은 좌석은 새마을호의 트레이드 마크로 자리 잡았을 정도였다. 새마을호가 첫 운행부터 49년, 새마을호라는 이름으로 달린 44년의 과거부터 현재까지 짚어 보았다.

태생부터 DNA가 달랐던 열차

새마을호는 1969년부터 관광호라는 이름으로 운행을 시작했다. 74년 이후로는 '직각형 새마을호'라는 이름으로 전국 곳곳에 편성되어 운행했다. (Wikimedia Commons, CC-BY-3.0)
▲ 새마을호의 전신 '관광호' 새마을호는 1969년부터 관광호라는 이름으로 운행을 시작했다. 74년 이후로는 '직각형 새마을호'라는 이름으로 전국 곳곳에 편성되어 운행했다. (Wikimedia Commons, CC-BY-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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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호라는 이름으로 새마을호가 첫 운행을 했던 1969년은 한국철도의 역사에 기록될 해라 할 수 있다. 당시 최선진국이었던 일본에서 모든 객차를 수입하였고, 귀했던 에어컨이 설치되고 서양식 변기가 설치되는 등 현대 기준으로도 최신예 열차가 투입되었다. 심지어 전용 살롱카가 있는가 하면 철도병원에서 나온 의사와 간호사가 차내에 배치되기까지 했을 정도였다.

이 열차는 서울과 부산을 4시간 45분에 달리며 전국 최초의 1일 생활권을 열었다. 특1등석에는 카페트가 깔리고 좌석마다 승무원 호출 벨이 달리는가 하면 '비지니스 석' 역시 마련되기까지 했다. 1등석 역시 현재의 새마을호 특실보다 적은 56개의 좌석으로 운행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첫 운행일에는 당시 귀했던 커피, 토스트, 캐러멜 등을 동원한 철도청의 행사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관광호의 요금은 특1등석이 4700원이었는데, 현재 물가로 환산하면 30~40만 원 정도 되는 비싼 요금이었다. 정차역 역시 서울, 대전, 대구, 부산 네 곳이었는데 이 때문에 김혜연의 '서울 대전 대구 부산'이라는 노래가 나왔다. 이렇듯 관광호와 초기 새마을호는 처음부터 무궁화호, 통일호와는 DNA가 달랐던 셈이다.

새마을호의 '비상', 한강의 기적 상징했다

88올림픽 평화열차로 운행중인 새마을형 PP동차. 새마을호 PP동차는 새마을호 전성기를 상징하던 '물건'이었다.(Wikimedia Commons, CC-BY-3.0)
 88올림픽 평화열차로 운행중인 새마을형 PP동차. 새마을호 PP동차는 새마을호 전성기를 상징하던 '물건'이었다.(Wikimedia Commons, CC-BY-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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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호는 1974년 새마을 운동과 함께 새마을호라는 이름으로 바뀌고, 호남선(광주, 목포)과 동해남부선(경주)에도 열차 운행이 시작되었다. 새마을호 태극실(특실)은 서민들의 선망이 되었으며, 1981년에는 국내 최초로 전산발매를 시작하며 편리하고 정확한 좌석 배정이 가능하게 되었다. 당시 컴퓨터와 전산장비의 가격을 생각하면 더욱 놀라운 점이다.

또한, 1974년부터 식당칸이 운행되기 시작하고, 80년대 프라자호텔이 식당칸을 운영하면서 호텔식 식사를 열차 내에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새마을호의 상징이었던 '함박 스테이크'는 물론 열차 안에서 그릴로 구운 안심 스테이크, 비빔밥, 백반 도시락이나 커피, 안주를 먹을 수 있었다. 심지어는 예약제로 코스요리를 먹을 수 있는 코스까지 운영했을 정도였다. 당시에는 고급 식사였던 롯데리아가 새마을호 스낵카에 입점하여 운영되기도 했다.

새마을호 특실에는 오디오 방송 서비스와 '깨우미 서비스'가 제공되었다.
▲ '깨우미 서비스'와 오디오 장치 새마을호 특실에는 오디오 방송 서비스와 '깨우미 서비스'가 제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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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인 '태극 마크'가 달린 태극실에는 다양한 서비스가 제공되었다. 컵홀더나 탁자뿐만 아니라 쭉 펼치면 침대를 방불케 하는 널찍하고 편안한 좌석이 있었다. 좌석 팔걸이마다 다섯 개 채널의 오디오 서비스도 제공되었고 위성방송으로 TV를 볼 수도 있었다. 승무원이 도착역에서 깨워주는 '깨우미 서비스'도 운영되었다. 차내 잡지 <레일로드> 역시 새마을호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새마을호의 전성기에 날개를 달았던 것은 새마을호 PP동차의 도입이다. 서울 올림픽에 대응하기 위해 1987년부터 도입된 PP동차는 쭉 뻗은 디자인과 폭발적인 가속력으로 한국철도를 상징하게 되었다. 특히 넓은 차체와 넓은 좌석은 당시 신칸센도 한 수 접고 들어갈 정도였다. 새마을호의 명성 역시 1987년과 2003년 사이 최정점을 찍기에 이른다.

KTX 개통 이후 멈춘 시간, 2006년에는 북한 다녀오기도

이랬던 새마을호는 더욱 빠르고 더욱 편리한 KTX의 도입과 함께 쇠락하기 시작했다. 2004년 KTX의 개통과 함께 요금이 인하되었고, 새마을호의 운행 횟수도 대폭 감축되어 하루 여섯 번 서울과 부산을 왕복하는 정도로 축소되었다. 프라자호텔 역시 새마을호 식당차에서 철수하고, 부침을 거쳐 2008년 새마을호 식당차가 사라지며 카페 열차로 대체되기까지 한다.

하지만 2007년 5월 남북의 열차가 서로의 역에 들어오는 시험운행을 했을 때, 새마을호 열차가 문산역에서 개성역을 오가며 처음으로 북한에 들어온 남한의 열차가 되기도 했다. 대통령 전용열차인 경복호 역시 현재까지도 새마을호 도색으로 운행되고 있을 정도로, 새마을호는 KTX 개통에도 불구하고 한국철도의 상징으로 남았다.

2012년 7월, 새마을호 PP동차가 검은 연기를 뿜으며 서울역을 빠져나가고 있다.
 2012년 7월, 새마을호 PP동차가 검은 연기를 뿜으며 서울역을 빠져나가고 있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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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KTX 개통 이후 점점 새마을호의 자리는 낮아졌다. 간이역인 임피역에 정차하기까지 하고, 관리가 잘되지 않아 철 지난 광고가 그대로 열차 안에 걸리는가 하면 좌석이 푹 꺼지거나 탁자에 오물이 묻어있기도 하였다. 새마을호 객차에서 불이 났다거나, 탈선되었다는 소식이 들릴 정도로 새마을호의 위상은 낮아졌다.

결국, PP동차가 2013년 1월 운행을 중단하고, 후계열차인 ITX-새마을 열차가 2014년 5월 첫 운행을 시작하며 세대교체의 서막을 알렸다. 주요 구간의 새마을호 역시 차례차례 운행을 중단하고 ITX-새마을로 교체되었으며, 장항선 역시 최후의 새마을호 열차가 4월 30일까지 운행하다가 운행을 중단하고 객차형 ITX-새마을 열차로 바뀌게 된다.

오늘 저녁, 마지막 커튼콜 열린다

새마을호 열차가 충남 서천군 장항선 일대를 달리고 있다.
▲ 석양 아래 달리는 새마을호 새마을호 열차가 충남 서천군 장항선 일대를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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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저녁 #1160 열차를 마지막으로 새마을호는 위대한 여정을 마친다. ITX-새마을이 2014년부터 4년간 차근차근 승계절차를 밟은 덕분에, 새마을호가 운행하던 모든 구간에서는 ITX-새마을 열차가 그 자리를 잇게 되었다. 비록 새마을호가 '날아다녔던' 경부선이나 호남선 대신 장항선에서 마지막 운행을 하지만, 새마을호는 외롭지 않게 마지막 운행을 하게 되었다.

여러 매체에서 새마을호의 마지막 운행을 조명하고, 마지막 운행하는 새마을호가 밤 11시에 마지막 역인 용산역으로 들어올 때쯤, 종운을 기념하는 큰 행사가 철도동호회 연합으로 개최된다는 소식도 들린다. 새마을호가 마지막 '커튼콜'을 여러 관객들의 환호 속에서 보내게 되는 셈이다.

낮은 북을 치는 듯 울렸던 거친 엔진 소리와 함께 달리고, 피리를 불듯 높은 기적 소리로 내릴 역을 알렸던 새마을호의 마지막 공연은 오늘 247.8km 구간의 공연을 마지막으로 끝난다. 하지만 모든 공연이 사람들에게 여운을 남기듯, 새마을호는 엄청나게 큰 여운을 한국 땅 전역에 퍼뜨리고 갔다. 이제 새마을호의 이름은 역사의 한 페이지 속으로 남게 된다.


태그:#새마을호, #새마을호 종운, #한국철도, #철도, #대중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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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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