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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에 지친 어느 날,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집어든 책 한 권이 저를 지옥에서 구해줬습니다. 작가의 한 문장에 고민이 풀리고 고뇌가 치유됐습니다. 아플 때 '약'이 돼준 책들을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Met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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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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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을 기억한다. 평소처럼 저녁을 먹은 뒤 뉴스를 틀어두고 한쪽에서 딸아이와 인형 놀이를 하던 중이었다. 손석희 앵커 옆으로 한 여성이 앵글에 잡혔다. 서지현 검사였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성추행 피해를 당했다고 고백했다.

놀랍고 생경했다. 그가 공개한 내용이 새로웠던 건 아니다. 모자이크 처리 없이 카메라 앞에 서서 가해자의 잘못을 추궁하는 모습, 그리고 '꼭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나왔다'며 꺼낸 메시지가 낯설었다.

"범죄 피해자분들께 그리고 성폭력 피해자분들께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것을 얘기해 주고 싶어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나 역시 여성으로 자라면서 생애주기마다 '사소한'(스스로 사소하다고 여긴) 성희롱과 성추행을 겪어왔지만 서지현 검사처럼 대응한 적은 거의 없다. 적극적으로 항의하거나 사과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해보지 못했다.

고등학교 때, 발등에 거울을 붙이고 치마 속을 훔쳐보려는 남자 애들을 발견하면 피하기 바빴다. 한 번도 '뭐 하는 짓이냐'고 따져 묻지 못했다. 선생님들은 성추행의 기회를 엿보는 남학생들에게 잘못을 묻고 주의를 주기보다는 여학생들에게 '조심하라'고 일렀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대학을 다니던 어느 여름 날,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중년 남성의 팔꿈치가 내 가슴 쪽을 오르락내리락했다. 겁을 먹은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옆 칸으로 피했고,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에게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 친구는 수화기 너머로 내게 충고했다.

"그러니까 옷 좀 제대로 입고 다녀. 파인 거 입고 다니니까 그런 일을 당하지."

대학 졸업 후 국회 인턴 비서로 근무했을 때였다. 기혼 남성인 한 보좌관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셋째 부인"(둘째 부인도 아니고 자그마치 셋째!), "마누라"라고 부르곤 했다. 자연스럽게 어깨에 손을 올리는 등의 스킨십은 기본이었다. 한번은 내 표정 관리가 안 됐는지 그가 무안한 얼굴로 말했다.

"네가 매력이 있으니까 장난도 치는 거지."

그때도 나는 '그러지 말라'고 거절하지 못했다. 괜히 얘기했다가는 사무실 분위기만 해칠 거고, 더는 일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컸던 기억이다. 그렇게 나는 아무 말 못하고 조용히 넘어가곤 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닐 테니 문제없다, 사회생활 하다 보면 한 번씩은 겪는 일이다'라고 자기최면을 걸면서.
  
서지현 검사도 언론 인터뷰에 나서기 전까지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을 당한 것은 아닌가' '굉장히 불명예스러운 일을 당했구나'라는 자책감에 괴로움이 컸다고 털어놨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깨닫는 데 8년이 걸렸다고 한다. 왜 나는, 여성들은 잘못하지 않았는데도 위축되며 책임을 자신에게 돌려야 했던 걸까.

'저항'보다 '예방'을 배웠던 지난 날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동아시아)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동아시아)
ⓒ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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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관계 속에서 겪는 사회적 폭력 역시 병을 유발할 수 있다'는 사회역학의 관점으로 각종 질병을 진단한 책이다.

성폭력 문제를 다루진 않았지만, 책에서 소개하는 '아픔을 말하거나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사연이 내 의문에 답을 줄 수 있겠다 싶었다.

저자인 김승섭 고려대 교수는 사회적 폭력에 노출된 약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표현할 적절한 언어를 가지지 못할 때가 많다고 했다. 그렇기에 차별을 경험해도 과연 자신의 경험이 차별이었는지 판단하는 일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차별에 익숙해져버린 사람일수록 차별을 인지하기가 더욱 어렵다"라고 지적하면서 다양한 인종을 대상으로 진행된 한 실험 연구를 소개했다.

"미국 사회에서 약자인 흑인, 여성, 아시아인들이 차별을 경험했을 때, 그 경험을 차별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잘못 때문에 차별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차별을 있는 그대로 인지하는 것보다 심리적으로 불편함이 덜하기 때문이라고 연구는 설명합니다."

돌이켜보면 나는 가해자에게 어떤 말로 맞서야 하는지를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었다.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예방하는' 방법만을 몸에 익혀왔다. 어른들은 늘 내게 '혈기왕성한' 남학생을 피해 다니고, 대중교통에서 '변태'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가리고, 직장에서 성희롱을 당하지 않기 위해 처신을 잘하라고 충고했다.

그래서였을까. 실제로 그런 일을 당하면 '내가 예방하지 못해서 생긴 일'이라고 여기며 나 자신에게 잘못을 돌리곤 했다. 부끄럽지만 남성이 내 치마 속을 엿보거나 "마누라"라고 부르며 어깨에 손을 올리는 게 성폭력인지 헷갈렸다. 내게 수치심을 주는 짓은 분명했지만, 상대가 '짓궂은 장난'이라고 하니 넘어가도 되지 않을까 망설였다. 피해자임에도 나도 모르는 새 가해자의 언어를 체화해 간 것 같다.
  
왜 어른들은 내게만 '언제 어디서나 조심하라'로 가르쳤던 걸까. 한창 놀고 싶던 시절에는 부모님의 그런 양육 태도가 불만이었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밤에 나가서 못 놀았고, 외박도 일절 허락되지 않았으니까.

통금과 외박금지를 강요하던 부모님을 이해하게 된 건 나 역시 어른이 되고 나서다. 사회에 나와 보니 성폭력 사건 가해자 10명 중 1명이 구속될까 말까 했고, 피해자가 도리어 '꽃뱀'으로 몰리는 상황이 벌어지곤 했다. 그런 일에 대응했을 때 내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 시절 부모님도 맞서기보다 조심하도록 가르치는 게 더 빠르고 확실하다고 판단했을 테다. 그래서 나도 현실을 깨달은 뒤로는 부모님이 잔소리하지 않아도 알아서 가방에 호루라기를 넣고 다니고, 밤늦게 택시 탈 때는 언제든 바로 전화 걸 수 있도록 112를 눌러두는 습관을 들였다.

어느덧 딸아이의 엄마가 된 나는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고백으로 시작된 미투운동을 지켜보면서 상상해본다. 과연 아이에게 '조심하라'는 말보다 '맞서라'는 말을 더 많이 해줄 수 있을까. 내 아이가 서지현 검사처럼 정면대응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도울 수 있을까. 미래마저 내가 살아온 현실과 다르지 않다면, 솔직히 아이가 홀로 싸우도록 두지 못할 것 같다.

성폭력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3.8 여성의 날 '미투 운동' 지지와 성폭력 근절을 위한 YWCA행진이 8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거리에서 한국YWCA연합회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 한국YWCA '미투 운동' 지지 장미행진 3.8 여성의 날 '미투 운동' 지지와 성폭력 근절을 위한 YWCA행진이 8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거리에서 한국YWCA연합회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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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더더욱 미투운동 '그 이후'에 조심스레 기대를 걸어보게 된다. 가해 남성의 폭력에 더는 침묵하지 않기로 결심한 여성들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아이의 미래가 달라질 수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한국에서 10만 명당 13.1명이던 자살률(1997년)이 17년 후 두 배 이상(2014년 27.3명) 늘어났음을 언급하며 "무엇이 5천만 인구가 살아가는 이 공동체를 그토록 잔인한 사회로 바꾸어놓았을까"라고 질문을 던진다. 개인이 자살했을 때 원인을 찾으려 하듯이, 한 사회의 자살률이 급격히 증가했을 때 이 공동체에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검토해야 한다는 의미다.

"고통은 근본적으로 개인적인 것입니다. (중략) 그러나 그 고통이 사회 구조적 폭력에서 기인했을 때, 공동체는 그 고통의 원인을 해부하고 사회적 고통을 사회적으로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개개인이 무장을 해서 스스로를 지키는 방식은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사회적 원인을 가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해결책이 필요하니까요."


우리 사회가 이러한 문제의식을 미투운동에도 적용했으면 한다. 여성 개개인의 고백 내용에만 주목하기보다는 왜 이렇게 많은 여성이 연달아 자신의 상처를 꺼내놓는지를 물어야 한다는 뜻이다.

여자들이 운이 나빠서 나쁜 남자를 만난 게 아니다. 남자들이 운이 나빠서 들킨 게 아니다. 구조적 문제가 만들어낸 일상적 참사의 단면이 드러났을 뿐이다. 이 공동체 속 여자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무엇이 그들을 성폭력으로 내몰았는지 묻는 게 먼저 아닐까.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라는 이 책의 부제처럼, 우리도 정의로운 관계를 위해 성폭력의 사회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미투운동이 내 아이에게 '남자 조심하라'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미래로 이어지길 바라본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김승섭 지음, 동아시아(2017)


태그:#미투운동, #아픔이길이되려면, #성폭력, #성평등, #주간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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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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