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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
 미투 운동
ⓒ 한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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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출신의 30살 여성 A씨는 취업을 하며 3년 전 당진에 자리 잡았다. 일을 하면서 알게 된 50대 남성 B씨는 어느 날 A씨에게 타지에서 고생이 많다며 밥을 사주겠다고 말했다. 평소 일에 대한 조언도 많이 해주고, 아버지처럼 편안하게 대해줬기 때문에 전혀 의심 따윈 없었다.

저녁식사를 하며 기분 좋게 한 잔, 두 잔 술잔이 비워졌다. 약간의 취기가 올랐을 때 B씨는 친구가 짓궂은 장난을 했다며, A씨 옆으로 다가와 친구가 보내 준 야한 동영상을 보여줬다. B씨는 "세상에 이런 걸 보내는 친구가 어디 있냐"며 황당하다는 듯 웃었다. 20대였던 A씨는 어른들이 이런 동영상을 서로 주고받는다는 걸 처음 알았다. A씨는 "이게 뭐냐"며 "당황하셨겠네요"라고 말하며 애써 동영상을 보지 않으려고 눈길을 돌렸다. 

이후 B씨는 자신이 아내와 관계를 하지 않은 지 오래됐다, 남자친구가 있느냐, 등등 사적인 이야기들을 자꾸만 꺼냈다.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허벅지에 손을 올리거나, 손을 잡거나, 어지러운 듯 기대거나 하는 행동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이런 일을 처음 겪은 A씨는 불편함을 느꼈지만 정답게 시작했던 술자리 분위기를 깨는 게 어려웠다.

농담으로 친근하게 이야기하는데,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예민한 사람'이 되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야 하는지, 그만 하라고 정색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모호하게 술자리를 끝내고 나와, 한 잔 더 하자는 B씨를 뿌리치고 다급하게 택시에 올랐다.

집에 돌아온 A씨는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평소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았던 사람에게서 느낀 배신감도 컸지만, 내가 왜 단 둘이 저녁을 먹었을까, 술을 마셨을까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을 느꼈다. 다음 날 아침, B씨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잘 잤냐'고 문자를 보냈다. 소름이 끼쳤다.

최근 A씨는 서지현 검사가 안태근 전 검사장의 성추행을 폭로한 뒤, 몇 년 전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괴롭다고 했다. A씨는 '나도 그런 일이 있었다'며 목소리를 내고 싶은 마음이 들어 SNS에 글을 썼다가, 용기가 나지 않아 다시 지우는 일을 며칠째 반복했다.

아직도 다 치유되지 못한 상처 속에서 가까스로 잊고 살았던 A씨는 최근 미투 운동이 이어지면서 다시 마음이 무거웠다. 이제라도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돼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여전히 잘 살고 있는 가해자를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주변에서는 종종 "피해자가 여지를 줬으니 '그런 일'을 당한 것 아니겠느냐", "미투가 지겹다", "(농담처럼) 이제 여자들과는 술도 못 마시겠다"라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니, 피해자들의 아픔을 공감해주지 못하는 사회에 절망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일부 남성들이 미투 때문에 일상적인 생활이 의식돼 불편하다고 토로하지만, 많은 여성들은 어느 자리에서나, 무슨 일이 일어날지 늘 긴장하고 불편을 껴왔기 때문이다.

미국발 '미투' 한국사회 강타

위 사례는 지역에서 살고 있는 한 여성이 실제로 겪은 일을 기반으로 피해자가 드러나지 않도록 일부를 각색한 내용이다. 

미국에서 시작한 미투 운동이 한국사회를 강타했다. 미투(#Me Too) 운동으로 전국이 떠들썩한 요즘,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폭로에 이어 배우와 영화감독 등의 추악한 모습이 만천하에 알려졌다.

더불어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정무비서 성폭행 문제가 불거지면서 지역주민들과 공직자들은 그야말로 '집단멘붕' 상태에 빠졌다. '인권'을 힘주어 말하던 안 지사에게 배신감을 느꼈고, 큰 상처를 받았다. 

그러나 성폭력의 경험은 TV 속 유명인들과 그의 주변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성폭력의 피해가 여성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성폭력에 더 취약하고, 쉽게 노출될 수 있는 여성들에겐 거의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회사 회식이나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노래방에 갔다가, 거절하는데도 끝끝내 블루스를 추자면서 손을 잡아끄는 경우, 남편(또는 남자친구)과의 잠자리 등 사생활을 캐묻거나 불쾌한 성적인 농담을 이어가는 경우, 악수를 하는데 갑자기 손가락으로 손바닥을 긁어 불쾌감을 주는 경우, 만나고 싶지 않아 피하는데도 집 앞에서 몇 시간이고 기다리면서 두려움마저 느끼게 하는 경우….

일상의 폭력… 남의 일이 아니다

'이것도 성추행이야?'라고 놀라워 할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많은 여성들은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이러한 상황에서 불쾌함을 느낀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완강히 거부할 수 없는 수많은 상황들을 마주하곤 한다. '싫다'는 표현이 '내숭 떤다' 혹은 '비싸게 군다'는 식으로 표현되는 건, 그래서 철저히 남성중심적인 사고방식이다. 싫다고 하는 건 정말 싫은 거다. 

특정인과 특정계층에서 이 같은 성폭력이 일어나는 게 아니다. 형사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직장 내 성희롱의 실태와 예방'에 관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150명 중 절반에 가까운 45.2%가 '한 번이라도 성희롱을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행위로는 외모·몸매에 대한 성적 비유나 평가가 가장 많았으며, 이어 음담패설이나 성적농담, 손을 만지거나 잡으려는 행위, 회식자리에서 술을 따르도록 강요한 행위 순으로 나타났다. 회사 외에도 학교에서도 데이트라는 이름으로 강제로 스킨십을 하거나, 아동의 경우 형제와 친척, 심지어 아버지로부터 성추행을 당하는 경우도 많다.

"피해자 유발론…2차 가해"

지금까지는 이 문제에 대해 누구도 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여성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미투 운동을 통해 개인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동참의 물결을 만들었다. 일각에서는 "피해자가 성폭력을 유발한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피해자가 옷을 야하게 입어서, 혹은 늦은 시간에 돌아다녀서, 아니면 무엇인가를 얻어내려는 목적으로 다가간 '꽃뱀'이라는 둥 여러 이유로 '성폭력 피해자 유발론'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이것 또한 2차 가해에 해당한다. 피해자들은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 끊임없이 자신을 자책하고, 검열한다.

신순옥 당진가족성통합센터장은 "미투 운동을 '피해자 유발'의 관점에서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피해자가 어떤 사람이든 '성폭력 피해가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신 센터장은 "그런 시각이 2차 피해를 유발하고 있다"며 "의식하지 못한 일상에서 사소하게 지나친 일들로 가해자 또는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잘못된 시각에 대해 한 번쯤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미투 본질에 집중해야"

한편 미투 운동 본질에 대해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김남철 연세심리상담소장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신상을 알아내고 구체적으로 어떤 피해를 당했는지 자극적인 피해사실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왜 미투 운동이 일어났는지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남성 혐오 또는 남녀 갈등을 남기는 미투 운동이 아닌 민주사회로 나아가는, 변화하는 사회를 위한 미투 운동이 지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당진시대>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당진, #미투, #충남, #성희롱, #성추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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