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방송된 <MBC 스페셜> '2018 언니가 살아있다' 편 캡처.

지난 8일 방송된 '2018 언니가 살아있다' 편 캡처. ⓒ MBC


현재 방송되고 있는 TV 예능 프로그램 87개의 출연자 성별을 분석했다. 그 결과 출연자들 성비율은 남성 72.4%, 여성 27.6%로 각각 나타났으며, 87개 프로그램 가운데 25개에는 여성 출연자가 아예 한 명도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세계 여성의 날이었던 지난 8일 방송된 <MBC 스페셜> '2018 언니는 살아 있다' 편에서 밝힌 내용이다. '명랑 관찰 다큐'를 표방한 이날 방송에서는 앞서 언급한 통계처럼 남성들이 장악하고 있는 TV 예능 프로그램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성 희극인들의 도전과 애환 그리고 연대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방송에서 개그우먼 김영희는 "채널은 많아졌는데 여성 희극인들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그렇지 않다"고 토로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와 관련해서는 고참 개그우먼 이성미의 발언이 귀에 쏙 들어왔다. 남자들이 무리지어 나오는 프로그램이 대세가 되면서 여성 희극인들이 뒤로 밀려나는 형국이 됐다는 것. 그 배경에는 예쁜 외모의 여성 연예인을 홍일점, 즉 소위 '꽃'처럼 활용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것이 주된 요지였다. 즉, 지금 예능 프로그램에서 여성의 역할이 극히 제한돼 있다는 의미다.

 지난 8일 방송된 <MBC 스페셜> '2018 언니가 살아있다' 편 캡처.

지난 8일 방송된 '2018 언니가 살아있다' 편 캡처. ⓒ MBC


필자 역시 그 주장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라는 생각도 했다. 이성미가 말한, 남자 출연자가 무리지어 나오는 프로그램은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KBS 2TV <해피선데이-1박2일>과 같은 '리얼리티 예능'을 가리킨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시청률을 핑계로 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을 양산하는 방송국의 안일한 자세에 더 큰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날 방송분을 통해 가장 주의 깊게 본 부분은 시청자들이나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이 관성적으로 여성 희극인에게 부당한 성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는 내용의 발언들이었다. 여성 희극인들이 특히 외모와 관련된 지적을 많이 받고 있다는 점,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은 뒤에는 사회 분위기 상 시댁 눈치를 보게 된다는 점, 나아가 착한 며느리 혹은 현모양처와 같은 구시대적인 성 역할까지 요구받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스꽝스러운 연기를 꺼리게 된다는 것, 결국 선택할 수 있는 개그의 폭 자체가 좁아진다는 점 등이 지적됐다.

 지난 8일 방송된 <MBC 스페셜> '2018 언니가 살아있다' 편 캡처.

지난 8일 방송된 '2018 언니가 살아있다' 편 캡처. ⓒ MBC


물론 따지고 보면 남성 희극인들도 이와 비슷한 고민을 할 수도 있고 또 그들만의 특정한 성 역할을 요구받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예능 프로그램을 비롯한 방송에서 남성 희극인과 여성 희극인에게 각각 들이대는 평가 기준은 분명 상이하다. 이들 각각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규모와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필자는 이런 불균형의 상황이 불순한 의도로 기획됐다거나 특단의 대책으로 쉽게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다만 이날 <MBC 스페셜> '2018 언니는 살아 있다' 편이 담고 있는 내용을 교훈 삼아, 예능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송국과 뉴스를 만드는 언론 그리고 이를 수용하고 소비하는 대중들이 각각의 위치에서 이런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실행하는 데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좋은 날이 오는 그날까지 여성 희극인들의 도전과 건투를 빈다.

 지난 8일 방송된 <MBC 스페셜> '2018 언니가 살아있다' 편 캡처.

지난 8일 방송된 '2018 언니가 살아있다' 편 캡처.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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