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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숍에서 데려왔든, 입양으로 데려왔든 각자의 이유로 반려동물을 키우게 되었고, 키우면서 서툴고 미숙한 자신의 모습에 화도 나고 부족한 스스로를 자책한다. 하지만 그런 자신에게 끝없는 사랑을 보여주는 반려동물을 보며 마음의 위안과 위로를 받는다.

자신보다 작고 약한 존재인 줄 알았는데 되려 자신보다 크고 강한 반려동물에게 많은 깨달음을 얻고 반려동물과 지내는 소소한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옮긴다. 그렇게 서서히 변해가는 자신을 발견하며 예전에 미처 몰랐던 유기동물과 동물복지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고 평범하기만 했던 자신이지만 이렇게 책까지 내게 되었다는 이야기.

이게 내가 읽은 대다수의 반려동물 관련 에세이다. 글과 함께 건강 상식을 다룰 수도 있고 그림과 사진을 함께 실을 수도 있지만 내용의 맥락은 비슷하다. 자칫 '나만 재미있는 이야기' 혹은 '반려동물 양육 에세이'로 끝나버릴 수도 있다.

신간 입고 과정에서 에세이 분야를 보게 될 때면 '내가 아는 그 이야기'라는 마음에 입고 결정을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 이미 비슷한 류의 책들은 우리 책방에 많이 입고되어 있고 다른 책과의 차별점도 찾기 어려워 입고를 하더라도 입고 권수는 낮은 편이다.

그러다 한 에세이의 신간 소식을 보았고 제목에서 느껴지는 분위기 탓인지 너무 발랄한 커버 이미지 때문인지는 몰라도 왠지 '내가 아는 그 이야기' 일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크게 기대하지 않고 입고를 하였고 늘 그렇듯 한번 훑어보려 책 한 장을 넘겼다.

"왜 개를 비롯한 반려동물들은 그토록 사랑하는 걸까. 이런 의심을 품는 것도 당연한 것이, 나를 비롯한 인간은 실패한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모든 것을 망친다. 우리를 만든 창조주도 어쩌면 완벽한 존재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인지 창조주는 우리에게 너무 많은 힘을 주어버렸다. p.11"


보통 자신의 이야기나 자신의 반려동물 이야기로 첫 장을 시작하기 마련인데 뭔가 거창하게 창조주까지 들먹이며 인간과 개에 대해서 정의를 내린다. 내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것만은 기대가 생겼고 다행히 맞아떨어졌다.

김현진 에세이 ㅣ 루아크 출판
▲ 동물애정생활 김현진 에세이 ㅣ 루아크 출판
ⓒ 심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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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00년대 초반에서 2010년 즈음까지 저자와 연을 맺은 동물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 동물 친구들은 대부분 유기동물들이었고 몸도 성치 않은 동물들이라 자칫 무겁고 어두워질 수 있지만 저자의 발랄한 문체와 담담함으로 밝게 이끌어 간다.

본인이 1000원 더 싼 중국산 콩 두부를 사 먹을 땐 개들도 싼 사료를 먹으며 대강대강 살았다는 에피소드를 말할 때도, 기구한 운명을 지닌 동물들에 대한 가슴 아픈 이야기를 할 때도 특유의 발랄함은 있지만 동물을 향한 연민도 함께 전해진다. 가슴을 후비는 듯한 자신의 개 이야기를 할 때는 책 너머 저자의 슬픔이 그대로 전해질 정도로 절절하다.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뜨고 보니 피웅덩이에서 개가 날뛰는 소리였다. 나를 핥았다가 끙끙대다가 어쩔 줄 몰라했다. 피가 덜 번진 장판 위에도 온 방을 날뛰느라 덩어리진 피가 묻은 개 발자국이 흥건했다. 의식이 가물가물해지는 와중에 개와 눈이 마주쳤다. 줄리아노는 내 얼굴을 계속 핥았다. 개는 다리까지 피에 푹 젖어 있었다. 그때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 117p


마치 내가 겪은 일 마냥 눈앞에 선명한 잔상들이 나타나고 가슴속 깊숙이 대못 하나가 박히는 기분이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을 한 인간에게 그 슬픔을 덜어줄 방법이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신은 자신을 대신해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헤매고 있을 불완전한 생명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용기를 주게 하기 위해서 개를 만든 게 분명하다.

저자는 자신과 동물들의 이야기 외에도 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일침과 가족을 향한 연민도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나쁜 아빠의 표상처럼 술을 마시거나 바람을 피우거나 도박을 하진 않았지만 다단계 사기에 속아 카드빚에 시달렸고, 사례금 한 푼 나오지 않고 경제적으로 궁핍한 개척교회 목사인 아빠와 사사건건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그토록 미워했던 아빠이지만 자신만의 방법으로 아빠를 이해해 보려는 과정도 담겨 있다.

김현진 에세이 ㅣ 루아크 출판
▲ 동물애정생활 김현진 에세이 ㅣ 루아크 출판
ⓒ 심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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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는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다른 이에게 공감을 사고 지지를 얻기까지는 쉽지 않다. 원래도 에세이를 잘 안 읽는 타입이고 에세이를 읽고도 큰 공감을 받지 못 한 적이 대부분이었던 터라 이 책을 읽기도 전에 '또 내가 아는 그 이야기겠거니' 아는 척 결론 내렸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 책은 저자가 동물을 통해서 사랑을 알게 되고 치유받은 과정을 너무 명확하게 써 내려간 에세이로 삶으로부터 고통 받았던 자신을 유일하게 구원해준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다.

가슴절절한 슬픔을 밖으로 꺼내기까지 얼마나 긴 과정과 큰 용기가 필요했을지 짐작된다. 용기를 내준 저자에게 감사하다. 언젠가 '김현진 작가'를 만날 날이 있다면 '이 책을 몰라봐서 미안했다'라고 전하고 싶다.

끝으로 인간들 곁으로 와준 동물친구들을 더 애정하는 생활을 이어 나가리라 다짐해본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반려인과 반려동물을 위한 반려동물 전문서점 <동반북스>의 지기입니다.



동물애정생활

김현진 지음, 루아크(2017)


태그:#반려동물, #유기동물, #동물, #김현진, #동물애정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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