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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과 24시간 연결된 시대, 그럼에도 '단절'을 선택하는 삶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저마다의 방법으로 스마트폰과 거리를 두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애물단지 스마트폰은 첫째 아이의 중학교 졸업 선물이었다. 실은 아이가 집을 떠나 다른 지역의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마련해준 것이다. 여태껏 단 한 번도 사달라고 떼쓴 적이 없었으니, 진학 문제가 아니었다면 아이는 지금도 스마트폰 없이 지내고 있었을 것이다.

스마트폰이 정말 신기하긴 했나 보다. 끼니를 잊을 만큼 온종일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렸다. 동봉된 매뉴얼의 도움도 받지 않고 친구들의 전화번호부터 이러저러한 애플리케이션까지 완벽하게 세팅해냈다. 아이가 스마트폰 사용에 익숙해지는 데는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스마트폰이 바꿔버린 우리 집 풍경

지금껏 몰입하며 즐거워했던 그 일들은 스마트폰이 주는 재미에는 도저히 상대가 되지 못한다.
 지금껏 몰입하며 즐거워했던 그 일들은 스마트폰이 주는 재미에는 도저히 상대가 되지 못한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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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상을 순식간에 집어삼킬 정도로 스마트폰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스마트폰이 없을 때는 하교 후엔 어김없이 방에 들어가 그 날 숙제를 하거나 책을 꺼내 읽곤 했다. 하다못해 침대 위에 뒹굴면서 좋아하는 만화책을 보다가 스르르 낮잠에 빠져들기도 했다.

학원도 안 다니겠다, 시간이 남아선지 이따금 하루가 길다는 푸념까지 늘어놓았다. 지루하다 싶으면 축구공을 챙겨 아파트 단지 내 공원에 나가 한두 시간 혼자 리프팅을 하다 들어올 때도 잦았다. 밤 10시면 어김없이 잠자리에 들었고, 침대에 눕자마자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

그러나 스마트폰을 갖게 된 순간 이 모든 건 아스라한 옛이야기가 돼버렸다. 어딜 가고 무얼 하든 손엔 아이의 손엔 스마트폰이 쥐어져 있다. 비 오는 날 우산 챙기는 걸 깜빡할지언정 스마트폰을 두고 집을 나서는 경우는 없다. 심지어 화장실에 갈 때조차 들고 들어갈 정도다.

시나브로 책과 멀어졌고, 즐기던 축구도 조금은 뜸해졌다. 스스로 '하는' 축구에서 '보는' 축구로 무게중심이 옮겨졌다고 고백했다. 저녁 밥상을 사이에 두고 각자 고개를 숙인 채 스마트폰을 응시하며 식사를 하는 씁쓸한 풍경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기도 했다.

필연적으로 가족과의 대화도 줄었다. 스마트폰이 멀리 떨어져 있는 이들과의 소통에는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정작 바로 옆 가족들과의 대화는 가로막는 형국이었다. 스마트폰이 아이에겐 세상과 소통하는 '문'일지는 몰라도, 가족에겐 '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이 된 여동생의 경우엔 더욱 심각하다. 오빠 것을 마련하면서 덩달아 스마트폰을 손에 쥐게 되었는데, SNS의 프로필 사진을 바꾼 지 한 시간도 안 돼 또 바꿀 만큼 집착이 심하다. '단톡방(모바일메신저 단체대화방)'에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라치면 한두 시간 정도의 수다는 기본이다.

스마트폰이 없을 땐, 방에 들어가 색종이를 오려 붙여가며 기발한 보드게임을 만들기도 하고, 초등학생용 학습만화를 반복해 읽으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친구들에게 줄 생일 선물을 일주일 전부터 포장을 하는가 하면, 엄마와 아빠에게 건넬 손편지를 정성스럽게 쓰기도 했다.

또, 요리와 관련된 어느 웹툰 만화책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고는 부엌에서 직접 만들어보겠다며 솜씨를 뽐내곤 했다. 오빠처럼 학원엔 전혀 다니지 않았지만, 심심할 겨를이 없이 나름 바삐 지냈다. 인터넷 게임은 고사하고, 거실의 컴퓨터를 켜는 날을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이젠 더는 가위질도, 풀칠도, 손 편지 쓰기도 하려들지 않는다. 싫증을 내고 귀찮아하는 눈빛이 역력하다. 지금껏 몰입하며 즐거워했던 그 일들은 스마트폰이 주는 재미에는 도저히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 '덕'에 문구점 가는 일도, 친구 집에 놀러가는 일도 크게 줄어들었다. 두 아이에게 스마트폰이 생긴 지 불과 한 달여 만에 생긴 변화다.

스마트폰 두고 피처폰으로 돌아간 아이, 왜?

스마트폰에 빼앗긴 아이들의 일상을 되찾기 위해서는 대책이 필요했다. 사줬는데 다시 빼앗을 수도 없고... 실랑이를 벌이다 한 발씩 양보해 사용 규칙을 정하기로 아이들과 합의했다. 명절 등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는 누구든 집에 들어오면 무음으로 설정하고, 거실로 사용 공간을 제한하며, 밤 9시 이후에는 일절 사용하지 않도록 했다. 아빠, 엄마도 예외 없다고 못 박았다.

규칙은 정했지만 이조차 각자의 양심에 맡겨야 하는 부분이어서 애초 선언적 의미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등하교 시간과 출퇴근 시간이 서로 다른 상황에서 안 지키면 그만이다. 그렇다고 아이들의 사생활도 있는데, 스마트폰을 매일 열어 사용 시간을 일일이 체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스마트폰 사용을 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이 이어졌다. 집안 분위기는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이 생긴 시점 이전과 이후로 확연히 달라졌다. 차라리 우리 가족 모두 스마트폰 대신 피처폰으로 교체할까를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스마트폰을 해지하고 서랍 속 낡은 피처폰을 다시 꺼내 사용하고 있다는 한 아이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지난해 우리 반이었던 고3 수험생으로, 대학입시를 앞두고 공부에 '올인'하려고 일부러 스마트폰을 해지했다고 한다.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분신과도 같은 스마트폰을 그처럼 자발적으로 없애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다수의 일반계고에서는 대개 고3이 되면 스마트폰을 학교에 아예 가지고 오지 못하도록 유도하지만 역부족이다. 아이들은 다른 건 몰라도 스마트폰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를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면서 푼다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익숙해지는 며칠 동안 조금 심심할 뿐, 딱히 불편하거나 아쉬운 건 없어요. 단지, 선생님이 숙제나 공지사항 등을 '단톡방'에 올려 '왕따 당하는' 일만 없다면, 이래저래 신경 쓸 일이 줄어 편한 것 같아요. 일단 스마트폰이 주머니 안에 있으면 저절로 손이 가거든요. 저희에게 스마트폰 사용은 꼭 '필요'해서가 아니라, 그저 '습관'일 뿐이에요. 친구들과 '카톡'하고 게임하는 것 말고는 딱히 쓸 일이 없어요. '스마트하게' 사용할 준비가 안 된 이들에게 스마트폰은 자칫 위험한 물건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스마트폰의 무분별한 사용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아이들에게 미치는 폐해는 스마트폰이 지닌 수많은 기능과 편리함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크다며, 그것을 약간의 기회비용쯤으로 여기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막상 끊고 보니 보이더라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병 주고 약 주는' 어른들

학생들이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는 모습
 학생들이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는 모습
ⓒ 청소년문화공동체 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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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마따나, 당장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제한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아이들이 즐겨 드나드는 SNS 속 난무하는 온갖 욕설과 비방, 선정적인 가십거리들로부터 일시 차단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특히 사고와 성찰의 시간을 마련해주려면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로부터 바쁜 아이들의 눈과 귀를 쉬게 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스마트폰은 건강한 또래의 형성을 방해한다. 학창시절은 아이들끼리 관계 맺는 방법을 배우고 익히는, 사회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다. 그런데 스마트폰이 대면 접촉의 기회를 차단하면서, 정작 사람들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어색해하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교육 현장에서 느끼곤 한다. 학교 교육의 '주적'은 대학입시가 아니라 스마트폰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학년 초 학교마다 스마트폰 과의존 상태를 알아보기 위한 사용습관 진단조사가 한창이다. 정부가 나서서 해당 학생을 찾아내 맞춤형 상담 치료를 제공해주겠다는 취지인데, 효과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조사가 형식적으로 이뤄질뿐더러, 찾아낸다고 한들 대다수의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상담 치료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병 주고 약 주는 꼴'이라 더더욱 미덥지 않다. 한쪽에서는 스마트폰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무한정 넓혀놓고선, 다른 한편에서는 과의존은 질병이라며 엄포를 놓는 격이니 말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신상'을 쏟아내며 아이들의 눈을 현혹하는 광고의 범람을 보면, 과연 우리 사회에 그럴 의지가 있기는 한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사실상 무방비 상태인 사회에 맞서 아이들을 스마트폰의 폐해로부터 지켜내는 건 온전히 가정과 학교의 몫으로 남았다. 급한 대로 사용 장소와 시간을 규제하는 방식으로 버텨내고 있을 뿐, 별다른 대책이 없는 실정이다. 스마트폰이 주는 '단맛'에 이미 길든 아이들에게 부랴부랴 실시하는 예방 교육은 하품만 나오게 할 뿐이다.

일부 학부모와 교사들은 스마트폰 구입과 사용 연령을 제한하는 법령이 서둘러 마련되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내놓고 있다. 성인이 될 때까지 흡연과 음주를 금지하듯, 스마트폰 사용도 법적 강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몇몇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스마트폰 사용연령 제한 국민 청원에 동참해달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실제로 미국 콜로라도 주에서는 한 아빠의 청원에 따라 13세 이하 어린이에게 스마트폰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입법이 추진 중이다. 물론, 스마트폰 없이는 한시도 못 견뎌 하는 어른들 또한 적지 않은 마당에 쉬이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일 수도 있다.

아무튼 학교에서 교사와 학부모가 서로 '폭탄 돌리기' 하듯 책임을 떠넘기는 상황에서, 고3 아이의 말마따나 아예 끊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일까 싶기도 하다. 기회가 닿으면 그의 경험담을 우리 두 아이에게 조곤조곤 들려주었으면 좋겠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거실 한쪽에선 초등학생 딸아이가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 있다.


태그:#스마트폰 중독, #청소년 스마트폰, #스마트폰, #학교 스마트폰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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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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