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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과 24시간 연결된 시대, 그럼에도 '단절'을 선택하는 삶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저마다의 방법으로 스마트폰과 거리를 두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피처폰  스마트폰 세상으로 도피하던 나는 반대로 스마트폰이 없는 세상으로 도피를 도모했다.
▲ 피처폰 스마트폰 세상으로 도피하던 나는 반대로 스마트폰이 없는 세상으로 도피를 도모했다.
ⓒ 신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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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폰(스마트폰이 아닌 휴대전화기, 일명 '효도폰')을 사용한 지 일 년 반이 넘었다. 다가오는 7월, 2년간의 약정기간이 끝나는데 계속 피처폰을 쓸지, 스마트폰으로 돌아갈지 고민이다.

나를 지켜보던 남편은 잘 터지지 않는 고물 전화기는 그만 쓰고(이거 15만 원이나 주고 산 새 상품이었는데?) 스마트폰을 사라고 종용한다. 허구한 날 노트북으로 인터넷에 접속하면서 스마트폰 안 쓰기가 뭔 소용이냐며 비웃기도 한다.

스마트폰만 들고 다니지 않을 뿐, '디지털 디톡스'와는 하등 상관 없는 나의 '스마트폰 없이 살기'. 그럼에도 예전으로 돌아가기엔 망설여진다. 다시 스마트폰의 노예가 될 모습이 뻔하므로. 

답답하고 무기력한 삶, 스마트폰에 중독됐다

아기를 낳고 종일 이야기 나눌 사람 없이 고립 생활을 하던 나에게 스마트폰은 바깥세상을 연결하는 유일한 고리였다. 아기 돌보기는 혼이 빠지게 정신없지만 그럼에도 순간순간 찾아오는 무료함이 있다. 예쁜 내 새끼라도 함께 있는 시간이 늘 즐겁지는 않으니까. 그럴 때마다 스마트폰에 접속해 다른 세상으로 도망갔다. 영혼의 탈출이랄까.

스마트폰 보는 시간이 쉬는 시간이라고 말하곤 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아이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고, '좋아요' 개수 확인하고 댓글 달리면 답해주느라 분주했다. 이비인후과 정보가 궁금해 맘카페에 들어가면 목적은 방향상실. 부부싸움 고민글에 댓글로 같이 싸우고 육아우울증 글엔 눈물짓곤 했으니. 스마트폰 작은 화면 속에 살며 울고 웃었다.

아이를 재운 후에도 눈 벌겋게 스마트폰을 들여다봤다. 기저귀를 주문하려 했는데 왜 아이허브 사이트에서 헤매고 있는지, 내복을 사겠다면서 왜 리넨 방석 커버를 주문하고 있는지는 나도 모를 일이다.

아기에게 젖 먹이는 동안 스마트폰이라도 들여봐야 졸지 않고 젖을 제대로 물릴 수 있었는데, 스마트폰으로 각성된 뇌 때문에 눈꺼풀이 내려앉아도 잠들지 못해 괴로웠다.

답답하고 지루하던 삶에서 스마트폰은 작은 세상은 자극과 재미를 주었지만 더 피곤해지고 무기력해졌다. 그러다 아기가 크자 스마트폰을 보겠다고 뺏어갔다. 가끔 나도 숨 돌리자며 쥐여줬지만 스마트폰은 세 살배기가 쓰기에도 어렵지 않고 '스마트' 했다. 편한 시간은 잠시 뿐, 스마트폰을 뺏기지 않으려고 울고불고 떼쓰는 아이와 실랑이 벌이는 게 더 힘들어졌다.

스마트폰, 까짓거 안 쓰면 그만이잖아  

 '스마트폰이 없다면 생활이 어떻게 달라질까?'
 '스마트폰이 없다면 생활이 어떻게 달라질까?'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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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기간이 맞지 않아 세 달간 아이와 친정집에 신세를 지던 때, 친정 엄마는 나에게 "헌구한 날 스마트폰에 고개 처박고 애를 방치한다"는 억울한 누명을 씌웠다.

"그거 없으면 못 살겠구만."
"흥, 이까짓 스마트폰 안 하면 되잖아?"

스마트폰 없이도 보란 듯이 잘 살 수 있다며 홧김에 피처폰으로 바꾼 것이 발단이었다. 아날로그적 삶을 찬미해서도 별 대단한 신념의 결과도 아니었다.

'스마트폰이 없다면 생활이 어떻게 달라질까?' 육아에 치여 살던 때, 무료한 나날의 타개책으로 일상을 재정비할 프로젝트가 절실했다. 신체의 일부처럼 붙어 지내던 스마트폰과 결별하면 삶에 어떤 낯설고 새로운 긴장이 생길지 궁금했다.

더 고립되고 단절될까, 나라는 사람은 완전 잊힐까. 가학적이긴 해도 순전히 그 이유로 설렜다. 스마트폰 세상으로 도피하던 나는 반대로 스마트폰이 없는 세상으로 도피를 도모했다.

첫 2, 3주는 금단 증상을 겪었다. 스마트폰이 없자 막간의 공백에 무료함과 지루함이 훅, 치고 들어왔다. 30초 기다림조차 길게 느껴져 안절부절못했다. 볶음 요리를 하다가도 스마트폰을 보느라 태워 먹기 일쑤였는데, 가스 불 앞에 서서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수증기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시간이 참으로 더디게 흘렀다. 놀이터에서 모래 놀이에 심취한 아이에게 장단 맞추고 있노라면 꾸벅꾸벅 졸음이 밀려왔다.

가장 당혹스러울 때는 스마트폰 없는 기다림의 시간. 병원에서 대기하거나, 약속 장소에서, 또는 버스 안에서 꼼짝없이 한 자리에 있어야 할 때였다. 압도적인 무념무상, 강제 사색의 시간이 주어졌다. 몸이 배배 꼬였다.

지독한 방향치라서 목적지를 300미터 앞에 두고 헤맨 적도 허다했다. 누군가 선물해준 모바일 쿠폰을 쓰지 못했고 각종 모바일제휴카드를 통한 할인 혜택도 누리지 못했다.

피처폰을 들고 다닌 지 일 년 반

버스에서 책읽기  폐쇄된 대중교통은 책 읽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스마트폰이 있을 땐 하지 못한 고농축 독서 경험을 했다.
▲ 버스에서 책읽기 폐쇄된 대중교통은 책 읽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스마트폰이 있을 땐 하지 못한 고농축 독서 경험을 했다.
ⓒ 신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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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이 없는 시간은 밀도 있는 시간으로 서서히 바뀌었다. 폐쇄된 대중교통은 책 읽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오로지 한 가지 행위에 집중하며 몰입한 적이 언제였던가. 스마트폰이 있을 땐 하지 못한 고농축 독서 경험을 했다.

잠들기 전 눈이 벌게질 때까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버릇은 책을 읽다 조는 증세로 바뀌었다. 스마트폰으로 각성되어 쉬고 싶어도 쉬지 못했던 뇌는 책이라는 수면제를 접하며 숙면을 취했다. 2년 동안 다섯 권도 읽지 않았는데 일주일에 한 권씩 읽게 됐다.

SNS 사용도 자연스럽게 줄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알림 확인하느라 손가락도 마음도 번다했는데, 노트북으로만 가끔 보니 세상 편해졌다. 처음엔 허전하고 심심하기도 했다. 종일 말할 사람도 만나는 사람도 적은 사람에게 알림은 '존재의 부름'이었으니, 생일 축하한다는 쇼핑몰 문자 메시지만 받아도 고맙고 반가웠다.

일상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싶어 안달 나던 마음은 생각보다 빨리 접혔다. 나의 상태를 다수에게 떠벌리지 않아도, 실시간으로 자극적인 뉴스를 접하지 않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카카오톡을 바로 확인하지 않아도 큰 불편함이 없었고 SNS를 끼고 살지 않아도 세상 소식에 뒤처지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짤막한 감정 배설 대신 차분히 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말이 차오를 때마다 즉각적으로 SNS에 내뱉기보다 삭히고 묵혀 500자 이상의 글로 꿰었다. 1년간 A4용지 200페이지 넘는 글을 쓰게 됐다.

자투리 시간마다, 지루할 틈 없이 자극을 주던 스마트폰이 사라지자 이상한 변화가 나타났다. 시간이 '또박또박' 흘러갔다. 뉴스피드와 하이퍼링크가 쏟아지는 세상에선 단 1분 동안에도 홍수 같은 정보를 접했지만, 1시간을 들여다봐도 기억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 스마트폰 없는 시간엔 한 번에 하나밖에 못한다. 시간은 모래시계처럼 정직하게 조르르, 차곡차곡 쌓이고 흘렀다. 그렇게 증발하지 않은 시간은 꽉 찬 충족을 선사했다. 

적당히 타협하면서 스마트폰 없이 살기  

나는 '디지털 삶' 자체를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좋아한다. 집 안에선 여전히 노트북이나 데스크톱 컴퓨터로 인터넷에 접속하고 쇼핑을 하고 은행업무를 하고 메신저와 SNS를 사용한다. 책 읽기를 좋아하지만 종이책의 물성을 고집하지 않고 전자책 리더기를 적극 추천하고 다닌다.

목소리 주고받는 전화 연락보다 문자 연락을, SNS로 맺어지는 피상적 관계와 적절한 거리감, 편리함을 좋아한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아이와 벌이는 실랑이가 줄었지만 컴퓨터로 유튜브 영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실토하자면 스마트폰도 가끔 쓴다. 3년 된 스마트폰이 책상 서랍 속에 잠들어 있는데 가끔 한 달에 한두 번 서울 갈 때 미리 지도를 스크린 캡처해 가져가고, 어린이집 보육료를 결제할 때, 업무 차 그래픽 작업을 하면서 모바일 해상도를 확인해야 할 때 꺼낸다. 스마트폰 없이 산다고 말은 하지만, 스마트폰을 완전히 거부하기엔 분명 불편한 점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스마트폰을 '언제나' 들고 다니고 싶지 않다. 요즘은 와이파이 없는 곳 찾기가 더 힘들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접속 상태'이다. 접속 가능한 상황에서 스마트폰을 켜지 않고 버티기란 참으로 어렵고 몰아치는 알람을 확인하지 않기도 어렵다.

손바닥 위에 올려지는 스마트폰은 노트북 같은 기계와 다르다. 스마트폰과 적정 거리를 유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엔 스마트폰을 손에 쥐자마자 그것은 신체의 일부가 되었고 눈을 뗄 수 없었다.

주말에 업무 연락을 받고 싶지 않을 때, 시끄러운 세상 소식에서 조금 떨어지고 싶을 때, 방해받지 않은 나만의 시간을 누리고 싶을 때가 있지만 스마트폰이 있으면 불가능했다. 스마트폰에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나 같은 의지 박약자는 서랍 깊숙이 넣어버리기 외에 방법이 없었다.

스마트폰에 중독되었지만 업무상 필요해서 없이 살 수는 없는 사람들에겐 이런 방법을 추천하고 싶다. 잠들 때만이라도 방 밖에 두거나 잠자리에서 멀찍이 놓기. 퇴근 후엔 과감히 전원을 끄기. 휴가와 휴일엔 잠시 두고 외출하기. 시간 확인이나 알람 때문이라면 1~2만 원 짜리 손목시계를 활용하기. 우리에겐 잠시라도 어딘가에 접속하지 않을 자유가 필요하다.

이 글을 쓰면서 약정기간이 끝나도 피처폰을 계속 쓰기로 결심했다.

덧붙이는 글 |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중복게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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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부 에디터. "쓰는 일에, 그렇게 해서 당신을 만나는 일에 나는 어느 때보다 욕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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