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이윤택 감독에 쏠린 눈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열린 성추행 사실에 대한 사과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 이윤택, "법적 책임 지겠다"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지난 2월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열린 성추행 사실에 대한 사과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 이정민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의 고백을 시작으로 이어진 국내 '미투 운동(#MeToo)'이 한 달을 넘어가며 사회 전반, 계층과 분야를 가리지 않고 확산되는 모양새다. 법조계에서 문화계로, 그리고 체육계와 종교계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 운동을 통해 (실명이 언급된)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만 어림잡아도 약 25명 남짓이다. 하루에 한 명 꼴로 피해자들의 폭로가 나온 셈이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의 반응은 대체로 같았다. '사실 인정'과 '공개 사과' 등 피해자들의 요구는 분명했지만, 대부분은 해당 내용을 부인하거나 주어와 내용이 빠진 모호한 공식입장 발표로 일관했다. 법적 대응하겠다는 자세를 보인 이들도 있다. 언론은 본질을 파기 보다 폭로와 해명을 여과 없이 실어 나르며 사실상 선정적인 진실 공방 구도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문화계 인사 중 가해자로 지목된 몇 인물들의 대응 방식을 통해 우리 사회 '미투 운동'의 흐름을 짚어봤다.

폐쇄 집단의 군림자들 

문화계 인사 중 가장 파장이 컸던 이는 단연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전 예술감독 이윤택 연출가다. 전통과 역사, 그리고 실력을 자랑하는 극단의 상징이자 그간 많은 상업영화 배우들을 배출한 곳이기에 충격도 그만큼 컸다. 지난 18년 간 단원들을 성추행, 성폭행했다는 진술이 이어졌지만 최초 폭로가 나온 2월 14일부터 5일 간 이윤택 연출은 침묵했다.

그 사이 복수의 피해자들이 구체적 사례를 더 제시하자 그제야 19일 기자회견을 열어 공식입장을 밝혔다. "관습적으로 일어난 아주 나쁜 행태"라며 "법적 책임을 지겠다"고 했지만 성폭행 부문에 대해선 인정하지 않았다. 이후 해당 기자회견이 사전 리허설을 거쳐 진행된 일종의 '쇼잉'이었음이 드러나며 대중적 공분이 극에 달했다. 피해자 19명은 지난달 28일 이윤택 연출가를 강간 치상 등의 혐의로 검찰 고발했으며 서울중앙지검은 2일 해당 건을 "여성아동범죄수사부(부장 홍종희)에 배당했다"고 밝혔다.

 조민기는 뒤늦게 사과했지만, 그의 추잡한 행각들은 계속해서 밝혀지고 있다.

조민기는 뒤늦게 사과했지만, 그의 추행들이 계속해서 밝혀지고 있다. ⓒ 윌엔터테인먼트


배우 조민기는 침묵이 아닌 부정을 택했다. 2월 20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청주대 연극영화학과 학생의 글을 통해 교수로 재직 중이던 학교에서 성추행 등의 혐의로 교수직을 박탈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졌으나 조민기는 소속사를 통해 "명백한 루머이며 성추행으로 인한 중징계 역시 사실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 입장은 만 하루가 지나지 않아 뒤집혔다. 실명을 밝힌 연극배우와 해당 학교 학생들의 폭로가 이어지며 성폭행 혐의까지 더해졌다. 소속사는 "관련 증언들에 대해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으며 현재 출연 중인 드라마에서 하차한다"는 입장을 전했고, 26일 전속 계약 해지 사실을 알렸다. 이어 27일 조민기는 소속사를 통해 "진심으로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리며 앞으로 제 잘못에 대하여 법적, 사회적 모든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후 일부 언론에선 심야 시간 제자에게 보낸 부적절한 모바일 메신저 내용을 보도하기도 했다. 조민기는 3월 중 경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뒤이어 조재현에 대한 폭로도 이어졌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초성으로 공개된 그의 최초 혐의는 한 스태프에 대한 추행이었다. 이후 한 배우가 직접 조재현의 실명을 거론하며 추가로 성폭력 사실을 폭로한 지 만 하루가 지나 조재현은 장문의 사과문을 통해 "처음엔 사실과 다른 면이 있어 해명하려고 했으나 곧 다른 제보자의 인터뷰가 이어졌다"며 "오만하고 추악한 행위들과 이를 회피하려고 했던 자신이 괴물 같고 혐오감이 있었다.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입장을 전했다.

이후 그는 자신이 맡고 있던 DMZ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 집행위원장직과 경성대학교 교수직을 내놓는 등 신변을 정리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피해자들의 고백이 이어졌고, 한 학생에게 보낸 모바일 메신저 내용까지 공개되며 대중의 질타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대중은 SNS 계정 등을 통해 조재현의 딸에 대해 성희롱을 하는 등 또 다른 가해 행위를 하기도 했다.

 배우 오달수·조재현도 미투 폭로에 휩싸였다.

배우 오달수와 조재현. ⓒ 오마이뉴스


일단 부정, 사과할 땐 모호하게

배우 최일화는 일종의 '자진 신고'로 미투 운동의 또 다른 양상을 낳았다. 지난 2월 26일 최일화는 소속사를 통해 "저 또한 배우의 한 사람으로서 성추행 사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며 "저로 인해 상처받으신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 앞으로 자숙과 반성의 시간을 갖겠다"고 밝혔다. 이 입장문과 함께 그는 자신이 출연 중이거나 예정이었던 드라마와 광고 건에서 하차했으며, 한국연극배우협회 이사장직, 세종대 교수직 등에서 물러난다고 덧붙였다.

일종의 선제 고백이자 방어였지만 이 입장문 직후 최일화에게 성폭행을 했다는 피해자가 등장하며 사안이 확대됐다. 이에 대한 최일화의 공식 입장은 없었다. 2일 영화계에선 그가 <신과 함께2>에도 출연한 사실이 알려졌다. 제작사는 다른 배우로 재촬영을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다.

배우 오달수는 초기엔 부정하다가 뒤늦게 사과한 경우다. 극단 연희단거리패 출신으로 30년 가까운 경력 동안 다양한 작품을 해온 오달수는 일명 '천만요정'으로 불릴 정도로 최근 작품활동이 활발했다.

그러나 14일 온라인 기사에 한 피해자가 댓글 형식으로 오달수를 암시하는 글을 올리고, 21일 이것이 기사화 되면서 오달수의 성폭력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어 26일 댓글을 단 피해자가 직접 등장해 "성추행뿐만이 아닌 성폭행도 했다"고 말할 때까지도 오달수는 "그런 일은 없다"며 전면 부인하는 태도를 보였다. 분위기가 반전된 것은 한 연극배우가 실명을 밝히며 인터뷰에 응하면서다.

오달수는 28일 장문의 입장문을 통해 "모두 제 탓이고 어떤 비난도 감수하겠다"며 사과의 태도를 보였으나, 자신을 지목한 피해자A씨에게 "이미 전 덫에 걸린 짐승이다. 잠시나마 연애감정이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진정한 사과문이 아니라는 논란을 낳았다. 영화 <신과 함께2> 제작사는 최근 그의 분량을 통편집해 다른 배우로 대체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밖에도 그가 출연한 작품의 제작사들은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분량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왜 이제서야 터져나오나

국회 찾아온 남궁연 의료사고로 사망한 고 신해철씨 동료 남궁연씨가 한국환자단체연합회와 함께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의료분쟁 조정절차 자동개시제도(신해철 법, 예강이 법)를 위한 법안 심의를 촉구 기자회견에서 눈을 감고 있다.

음악가 남궁연. ⓒ 이희훈


음악가 남궁연은 보다 강경한 자세였다. 지난 2월 28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남궁연의 초성을 공개하며 1년 전 한 프로젝트의 참여를 권하는 자리에서 성추행을 당했다는 고발글이 올라왔다.

이에 대해 남궁연은 2일 오전 법률대리인을 통해 "사실 무근이며, 당사자를 무고죄로 고소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하지만 2일 복수의 매체에 따르면 아내를 통해 피해자와 통화하며 회유를 시도한 정황이 드러났다. 회유가 실패하자 강경 대응 자세를 취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는 대목이다. 배우 오달수 측 역시 첫 번째 공식 입장문에서 '무고죄'를 언급하며 피해자를 사실상 압박한 바 있다. 법적 판단과 별개로 남궁연의 이러한 태도로 대중들 사이에서 논란이 확대되는 모양새다. 

이처럼 이어지는 폭로에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의 태도는 다양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도대체 왜 이런 일이 길게는 수 십 년 넘게 이어졌으며, 지금까지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는지다. 여기엔 피해자와 가해자 주변에서 사건을 수수방관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고백과 폭로의 '미투 운동'에 연대와 지지, 나아가 자정작용을 함께 고민하려는 '위드 유 운동'이 더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언론 역시 사실 공방의 기계적 나열이 아닌 성폭행 등의 권력형 범죄가 이어지는 이유를 짚고, 선정적 보도를 자제하는 자세를 가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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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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