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하비 와인스타인이라는 걸출한 미국 영화제작자가 있었습니다. '갱스 오브 뉴욕', '펄프 픽션', '캐롤', '킬빌' 등을 만들었고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신뢰하는 제작자이고 헐리우드에서 가장 '힘이 센' 제작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사람이었지요.

그런데 이 사람이, 평소 여배우들에게 성폭행을 일삼고 항의하면 돈으로 무마했다는 의혹이 터져나왔습니다. 이 사람의 만행은 뉴욕타임즈에서 특집기사식으로 상세히 다루어졌습니다. 여배우들이 그가 가진 영화계 내 영향력에 짓눌려 경찰에 신고 한 번 제대로 못하는 동안, 더 이상 감출 수 없을 정도로 피해자의 수가 늘어났답니다.

김해에서 현직 여성경찰이 '성범죄, 갑질없는 직장에서 일하고 싶습니다'라고 써진 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그 여성경찰은 성희롱을 당한 후배가 신고할 수 있도록 돕다가 조직 안에서 불이익을 입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솔직히 이 기사를 보고 그리 놀랍지도 않았습니다. '터질 게 터졌구나' 이 정도였죠. 왜냐하면 맘속으로 수도 없이 상상해 보던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나도 1인시위라도 하고 싶다' 이런 마음이 든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설마... 팀장님이 날 여자로 보겠어? 내가 잘 못 느낀 거겠지. 우연히 스친 거겠지.'

아버지뻘이었던 그 팀장이 의도적으로 이상한 행동을 한다는 걸 알게 된 건 그 찝찝한 기분을 3회 이상 연속으로 느낀 후였습니다. 김해 여경 사건을 다룬 기사를 읽으면, 저간의 사정이 눈 앞에 그려집니다.

이런 일은 꽤 많을 겁니다. 헐리우드의 하비 와인스타인의 수법도 영화계 내에선 전 세계적으로 흔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미국 사회가 우리 사회는, 가해자 주변인들이 폭로 이후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서 차이가 발생합니다. 동료 배우 엠마 왓슨은 "나는 성추행을 당한 모든 여성 편에 서 있다"며 응원의 목소리를 냈고, 알리사 밀라노는 성폭력이 어디서든 항상 일어나고 있는 범죄임을 알리고자 "성폭력을 당한 분들은 이 트윗에 'me too'라고 응답해 주세요."라는 트윗을 올렸습니다. 이 글은 헐리웃을 흔든 '미투 운동'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많은 여성들이 이에 용기를 얻어 각자의 SNS에 '#MeToo(나도 당했다)'태그를 달고 자신의 경험을 풀어냈습니다.

지난해 가을, 하비 와인스타인 사태가 일어난 후 개최된 골든 글로브상 시상식에서는 남배우들도 피해 여배우들에 대한 연대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동참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와 친분관계에 있었던 배우, 감독들이 자성의 글을 sns에 남겼습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미국 사회가 부럽기 시작했습니다. 피해자의 주변인들 뿐만 아니라, 가해자의 주변인들까지도 피해자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었으니까요.

성폭행 사건을 둘러싼 주변인들의 시선과 태도에 의해 그 사건의 성격이 달라질 수도 있고 가해자가 피해자로 둔갑하는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사실 성희롱, 강제추행 같은 흔한 성범죄들은 그 속을 들여다보면 권력 관계에서 오는 문제입니다. 약자가 강자를 희롱하거나 추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쉽게 말해 자신보다 상대적으로 약자인 이들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문제인 것이지요.

가해자의 주변인들이 가해자가 내뱉는 부적절한 언행에 대해 나무라는 분위기만 만들어도 가해자들은 위축될 것입니다. 나쁜 버릇은 주변에서 지적하고, 야단치고, 시정을 요구하여야만 고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헐리우드의 하비 와인스타인이나, 여경에게 성희롱을 하고 추행을 하는 남자 경찰이나, 그들 주변에 있는 분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잔소리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장 까칠한 사람, 예민한 사람이라는 부정평가를 받더라도,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자기 확신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이회림 선생은 현재 경찰에 재직중입니다.



태그:#미투, #성범죄, #권력관계
댓글

인권연대는 1999년 7월 2일 창립이후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에 따라 국내외 인권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인권단체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