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하루하루 충격적인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연극계 '미투' 이야기다. 유명 연출가 이윤택에 대한 고발을 필두로 남성 연출가, 교수 등에 대한 폭로가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봇물이 터지듯 쏟아지는 외침은 그동안 연극계가 얼마나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집단이었는지를 보여준다.

뒤이어 유명 배우 조민기의 성추행 의혹이 불거졌다. 역시 '미투' 운동의 일환으로 밝혀진 사실이었다. 그런데 하루 종일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건 가해자 조민기의 이름이 아니라 피해 사실을 폭로한 연극배우 송하늘 씨의 이름이었다.

 송하늘 씨의 폭로 이후, 피해자의 정보를 알리고 자극적인 묘사를 일삼는 기사들이 이어졌다.
 송하늘 씨의 폭로 이후, 피해자의 정보를 알리고 자극적인 묘사를 일삼는 기사들이 이어졌다.
ⓒ 네이버 기사 갈무리

관련사진보기


피해자가 누군지, 왜 궁금하신가요?

'미투' 운동의 큰 특징 중 하나는 피해자들이 직접 피해 사실을 폭로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언론에 먼저 제보를 하거나 취재를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SNS에 #MeToo 해시태그를 달고 성폭력을 고발하고 있다. 많은 이들은 자신이 실제로 사용하던 SNS를 통해 실명으로 글을 작성한다.

지난 20일 새벽 올라온 유명 배우 조민기에 대한 폭로도 마찬가지였다. 청주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연극배우 송하늘 씨는 청주대학교 교수였던 조민기의 성추행을 폭로했다.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저는 청주대학교 연극학과를 졸업하고 이제 막 대학로에 데뷔한 신인 배우입니다'로 시작하는 장문의 글을 올렸다. 해당 글은 3만 5천 개의 '좋아요'를 받으며 큰 화제를 모았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언론사들은 송하늘 씨의 폭로글을 인용하며 그의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을 썸네일(대표 이미지)로 내걸었다. 일부 언론사는 가해지목인인 조민기와 피해호소인인 송하늘의 사진을 나란히 게시하기도 했다. 22일 현재 송하늘씨는 프로필 사진을 삭제한 상태다.

긴 폭로글 중 자극적인 부분만을 찾아내 제목으로 삼은 곳도 있었다. '배에 올라타 로션을 발랐다', '자고 가라며 옷을 꺼내줬다' 등 성추행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부분이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피해 사실을 다시 상기시킬 수 있는 서술이다. 읽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클릭을 유도하고, 트래픽을 높여 광고 수입을 높이기 위한 어뷰징 기사들이 대부분이다.

 미투
 미투
ⓒ pixabay

관련사진보기


'나도 당했다'가 아니라 '나도 고발한다'

이러한 흥미 위주의 기사들로 피해를 입은 건 송하늘씨만이 아니다. 배우 진서연씨는 연출가 이윤택의 성폭력 사실이 드러나자 자신의 SNS에 비판하는 글을 남겼다. 이후 '진서연의 의미심장한 글', '배우 진서연 논란 급부상' 등 마치 그도 성추행 피해자라는 인상을 주는 보도들이 이어졌다. 그러자 진씨는 SNS에 '성폭행 피해자로 오해받거나 비슷한 경험이 있는 것처럼 낚시글을 쓰는데, 이러니 피해자들이 더 나설 수 없게 되는 것'이라며 추측성 기사를 쓰는 기자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연극인 커뮤니티 '대학로X포럼' 페이스북 그룹에는 '기자들이 많이 볼 것 같으니 여기에 쓴다'며 보도행태를 비판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연출가 이윤택의 성추행을 폭로한 김수희 씨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기자들은 피해자 찾기를 멈추라'는 글을 올렸다.

'미투' 운동이 언론에 기대지 않고 개인들이 목소리를 내는 방향으로 진행된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조차 언론을 신뢰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일까. 최영미 시인의 증언으로 '문단 내 성폭력'이 재점화 됐던 지난 2월 초, JTBC 뉴스룸 인터뷰에 나선 문화예술계 미투 활동가 탁수정씨는 이렇게 당부하기도 했다.

"최근에 그런 보도들을 보면서도 피해자 찾기 그리고 폭로하는 사람 찾기. 이런 것들에 몰두하고 피해자를 소비하고자 하는 언론들의 모습들을 많이 봤어요. 그런데 피해자들은 그 이후의 삶이 있거든요. 그 이후에도 경제생활을 하고 밥 먹고 잘 자야 하는데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지나가면 그때 그만이거든요.

가해자들 같은 경우에도 잠잠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어요. 그래서 저희는 피해자들을 보호하는 데도 좀 언론이 신경을 써 주셨으면 좋겠고. 피해자에 대한 관심보다 그걸 좀 더 줄이고 그건 관심과 지지로써, 응원으로서 해 주시고."

'미투'의 의미는 '나도 당했다'가 아니라 '나도 고발한다'이다. 누가 어떤 피해를 당했는지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가해자가 누구이며 어떤 구조가 이들의 가해를 가능케 했는지를 물어야 한다. 피해자가 누구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얼마나 끔찍한 일을 당했는지를 낱낱이 보도하고 또 찾아보는 것은 순간의 분노만을 가져올 뿐,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기자와 독자 모두의 성숙한 태도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댓글7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사회학과 언론을 공부하는 여성 청년. 페미니즘, 노동, 철거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읽고 쓰는 삶을 지향합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