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하는 노선영 19일 오후 강원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8강전에서 한국의 김보름(왼쪽부터), 박지우와 팀을 이룬 노선영이 결승선을 향해 역주하고 있다.

▲ 최선을 다하는 노선영 19일 오후 강원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8강전에서 한국의 김보름(왼쪽부터), 박지우와 팀을 이룬 노선영이 결승선을 향해 역주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여자 팀추월 대표팀 논란이 폭로전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는 가운데, 가장 먼저 발벗고 나서 이번 사태를 수습해야 하는 대한빙상경기연맹이 제대로 된 대응을 하고 있지 않아 공분이 더 커지고 있다.

김보름(25·강원도청)과 백철기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 감독은 지난 20일 오후 강원도 강릉시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대표팀 논란과 관련해 공식 사과했다.

백 감독은 "전날 노선영이 두 바퀴를 남기고 맨 뒤로 빠져 버티겠다고 자청했다"고 밝혔지만, 같은날 저녁 노선영 선수는 SBS와 한 인터뷰에서 "(나는)직접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다. 전날까지 2번째 주자로 들어가는 것이었으나 경기 당일 워밍업 시간에 처음 들었다"라고 정면 반박했다.

감독 등이 기자회견을 한 지 불과 몇 시간만에 반박 내용이 나오면서, 이번 사태는 폭로에 폭로를 거듭하는 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번 사태의 중심에 있는 빙상연맹은 21일 오전 현재까지 이에 대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모든 사건의 시초는 '빙상연맹 때문'

동생을 위한 레이스 마친 노선영 19일 오후 강원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8강전에서 한국의 박지우, 김보름과 팀을 이룬 노선영이 레이스를 마친 뒤 숨을 고르고 있다.

▲ 동생을 위한 레이스 마친 노선영 19일 오후 강원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8강전에서 한국의 박지우, 김보름과 팀을 이룬 노선영이 레이스를 마친 뒤 숨을 고르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달 노선영 선수의 팀추월 참가 불가가 알려지면서 대한빙상경기연맹의 안일한 행정이 드러났다. 올림픽을 불과 몇 주 앞둔 상황이었지만, 빙상연맹은 국제빙상연맹(ISU)의 팀추월 규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동안 팀추월에 주력하며 개인 종목 출전권을 획득하지 못했던 노선영 선수는 갑작스럽게 '평창에 출전하지 못하게 됐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고 선수촌에서 나와야 했다.

동생이었던 고 노진규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은퇴도 미루고 4년을 다시 준비했던 노선영은 올림픽을 불과 3주 앞두고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충격을 받고 말았다. 노선영은 여러 매체를 통해 눈물로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리고 그는 "이승훈과 김보름 등 선수들이 한국체육대학교에서 특별 훈련을 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지난해 12월 이후 팀추월 훈련을 해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명색이 팀추월인데 '팀'이라는 단어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이미 조직력이 붕괴돼 있었던 셈이다.

나흘 후 러시아 선수가 도핑 징계를 받아 IOC로부터 평창 출전을 불허 받았고, 이후 노선영은 ISU로부터 추가쿼터를 받아 출전할 수 있게 됐다. 빙상연맹은 그제야 사과문을 발표했다. 김상항 회장은 노선영의 부모를 만나 직접 사과했고 평창에 출전해 줄 것을 요청했다. 결국 노선영이 고심 끝에 이를 수락하면서 좌초됐던 여자 팀추월은 극적으로 되살아나는 듯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 보니 이미 회복하기는 너무 늦은 상태였다. 20일 경기에서 김보름과 박지우(19·한국체대)는 두 바퀴를 남기고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고 결국 노선영은 이들과 한참 떨어진 채 결승선을 통과했다. 어디에서도 팀 동료를 배려하거나 하나된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노선영은 고개를 떨군 채 눈물을 흘렸고, 여기에 김보름과 박지우가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모든 책임을 노선영에게 떠넘기는 듯한 발언을 해 사태는 급격히 악화됐다.

결국 이 모든 일은 빙상연맹의 행정착오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일각에선 두 선수의 과거를 언급하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지만, 최소 노선영이 선수촌을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일만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이 정도까지 사태가 악화되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 이번 사태에서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 백 감독뿐만이 아니라 연맹조차 하나된 팀워크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오히려 선수들이 따로 떨어져 훈련을 하는 것을 사실상 방관했다는 점이다.

이번에도 뒤로 빠진 빙상연맹

기자회견장 앉은 김보름-백철기 감독 2018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팀 추월 경기에서 팀워크 논란이 제기받은 한국 김보름 선수와 백철기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 감독이 20일 오후 강원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서 의혹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 기자회견장 앉은 김보름-백철기 감독 2018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팀 추월 경기에서 팀워크 논란이 제기받은 한국 김보름 선수와 백철기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 감독이 20일 오후 강원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서 의혹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21일 기자회견에는 김보름과 백철기 감독만 참석했고 빙상연맹측 관계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또한 현장에서 김보름과 백철기 감독이 '미안하다'라는 말보다는 변명에 가까운 얘기만 하면서 오히려 화를 더 키운 셈이 되고 말았다.

물론 김보름과 백철기 감독이 이번 사건의 가장 직접적인 당사자이기에 이들이 기자회견에서 입장을 밝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들이 소속돼 있고 이들을 관리하는 연맹은 기자회견 자리만 마련해줬을 어떠한 입장도 사과도 내놓지 않았다. 사건이 발생한 지 어느덧 3일이 됐지만 연맹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특히 이번 사태가 나오면서 과거 '쇼트트랙 파벌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전명규 연맹 부회장(현 한체대 교수)이 또 다시 거론되고 있다. 전 부회장이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때 남자 쇼트트랙 성적 부진을 책임지고 사퇴했지만, 지난해 다시 돌아오면서 이미 한 차례 논란이 됐다.

그런데 여기에 노선영의 폭로로 한체대 출신 중 특정 선수들에 대한 특혜 의혹이 제기되면서, '한체대 교수인 전 부회장으로부터 지시를 받거나 특혜를 받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연맹이 과거에 논란이 있었던 인물을 다시 고위급 임원에 배치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빙상연맹은 선수들이 메달을 따거나 국제대회를 열 때마다 성과를 내세우며 언론 홍보를 진행해왔다. 그러나 정작 선수들이 피해를 입거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늑장대응, 일방적인 통보 등에만 그치고 있으며 사과 또한 하지 않고 있다. 아무리 자신들의 성과를 홍보하더라도, 이러한 사태가 났을 때 그대로 방치하거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

아쉬움에 고개 숙인 노선영 19일 오후 강원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8강전에서 한국의 김보름, 박지우와 팀을 이룬 노선영이 레이스를 마친 뒤 결과에 아쉬워하자 보프 더용 코치가 위로하고 있다.

▲ 아쉬움에 고개 숙인 노선영 19일 오후 강원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8강전에서 한국의 김보름, 박지우와 팀을 이룬 노선영이 레이스를 마친 뒤 결과에 아쉬워하자 보프 더용 코치가 위로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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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김보름 여자 팀추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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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스포츠와 스포츠외교 분야를 취재하는 박영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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