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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8월 페이스북 페이지 '성판매 여성 안녕들 하십니까'가 페이스북 코리아에 의해 통보 없이 삭제되었고 1141명의 연서명을 받아 복구됐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이 알려지며 사건을 다룬 기사들에는 성판매 이슈에 대한 반감과 몰이해에 기반한 성판매자/성노동자에 대한 혐오 발언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 기획을 통해 각 필자는 당시 달린 악플들을 유형별로 분류하여 하나씩 답변합니다. -기자말

2편 그 무엇도 목소리를 막을 수는 없다

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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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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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있었던 페이스북 '성판매 여성 안녕들하십니까' 페이지 삭제 사건 이후 집필해온 책이 드디어 나왔다. <나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창녀'를 어떻게 생각하고 또 얼마나 혐오하는지 다시 한 번 마주하였다. 많은 댓글들 중 눈에 띄는 레파토리는 이것이었다.

"UFC 선수가 옥타곤에서 맞으면 아프다고 징징거리냐?"

UFC 하니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작년 8월, 세계적인 UFC 선수인 코너 맥그리거가 무패의 전설을 자랑하는 은퇴한 복싱 선수 플로이드 메이웨더에게 복싱룰로 시합을 신청했다고 한다. UFC는 거의 모든 공격이 가능하지만, 복싱은 오직 주먹으로 상체 부위만 타격할 수 있다. 이런 룰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맥그리거는 자신만만하게 상대를 도발했다. 세기의 대결로 불리는 이들의 시합을 생중계로 지켜보기 위해 스포츠 채널을 결제하고 아침 일찍 일어난 이들도 있다고 했다. 결국 메이웨더는 TKO승으로 맥그리거를 이겼고, 메이웨더는 3억 달러 (3381억 원), 맥그리거는 1억 달러 (1127억 원)의 수입을 올렸다.

맥그리거는 본인의 주 전공도 아닌 룰로 싸워서 TKO 패를 당할 정도로 주먹질을 당했다. 그러나 그는 아프다고 징징대거나 메이웨더를 폭행죄로 형사 고발하지 않았다. 그 싸움을 지켜보는 그 누구도 경찰에 신고해서 싸움을 말려달라고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동의된 사항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싸운 장소는 링 위였다. 격투기 선수는 링 위에서 최선을 다해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어 관객들의 욕망을 충족시켜준다. 룰은 정해져 있다. 그 룰을 벗어나지 않은 한에서 아플 수 있고 부상도 입을 수 있다. 맥그리거와 메이웨더는 이 모든 사항에 동의하여 기꺼이 관객들이 즐길 수 있는 스포츠 씬을 연출해낸다. 현란한 스포츠 기술들을 감상하고 그 결과를 예측해가며 실시간으로 짜릿함을 경험하기 위해 관객들은 기꺼이 돈을 낸다.

그렇다면 장소를 조금 옮겨보자. 만약 링 밖이었다면 어떨까? 일어나기는 힘든 일이지만 링 밖에서 심판도 없고 룰도 없이 맥그리거가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했다 치자. 그때도 그는 UFC 선수니까 아프다고 말할 수 없으며 고소도 하지 않을까? 이를 지켜보던 사람이 재밌게 폭행 장면을 관람했다고 천만 원쯤 주고 가면, 맥그리거는 어차피 본인의 직업이고 돈도 받았으니까 불평해서는 안 되나?

위 두 상황의 차이는 간단하다. 링 위에서는 심판과 룰의 개입에 따라 일정한 보호 장치가 있다. 어느 정도 부상을 당할 위험요소가 있지만 어떤 제한 장치 안에서 어떤 일까지 일어나며 얼마 정도의 보수가 약속되어 있는지 모두 아는 상태에서, 폭행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부분적으로 포기하는 공간이 바로 링 위이다. 이 포기는 일시적이고 제한적이다. 특정한 공간과 특정한 시간, 특정한 룰 아래라는 조건이 명확하다.

성노동 역시 같은 기제로 성립한다. 페미니스트들은 성행동에는 양 당사자의 '적극적 동의Enthusiastic consent'가 수반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 개념을 통해 비로소 성적 자기결정권 개념이 성취되었다. 모든 사람은 성적 자기결정권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때에 원하는 성행동만을 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성노동자는 그 권리를 일정 부분 포기하여 상대의 욕망을 충족시켜주고 그 대가로 돈을 받는다. 샤를로트 셰인Charlotte Shane은 이를 '비적극적 동의 unenthusiastic consent' 라는 단어로 표현하였다(관련 링크).

유흥업소 종업원은 별로 재미있지도 않은 자리에서 즐거워하는 척 연기하며 분위기를 띄운다. 셔츠룸이나 오피에서의 '애인모드'는 매력적이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 '오빠'에게 다정하게 "오늘도 힘들었지, 오빠?"와 같은 식으로 연기를 한다. 멜리사 지라 그랜트에 따르면 성노동자는 단순히 성적 행동을 하고 싶은지에 따라 '동의'하는 게 아니라, 수행되는 상황에 따라 '비적극적 동의'된 사항의 범위를 협상한다. 이를테면 아래와 같다.

"좋아요. 20달러에 무릎 위 춤을 춰주죠. 첫 노래가 끝난 뒤 노래 하나가 더 나올 때까지 내가 계속 있기를 원한다면 20달러를 더 내야 해요. 개인 방에서 춤 춰주기를 원하면 그건 50달러예요." 맬리사 지라 그랜트, 《Sex Work: 성노동의 정치경제학》, 여문책, 2017, 158쪽

따라서 성노동 현장은 성노동자의 옥타곤이다. 그 위에서 정해진 룰에 따라 정해진 권리를 포기하고 고객의 욕망을 만족시켜주며 그 대가로 수익을 얻는다. 어떤 권리를 포기하여 무엇을 할 것이고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지 명확히 아는 상황에서 두 당사자의 계약이 이루어진다.

당신이 돈을 냈다고 '폭력'이 허용되는 건 아니다

문제는 고객이 이미 정해진 룰을 어기기 일쑤라는 점이다. UFC의 옥타곤은 개방된 공간이어서 룰이 위반되는 경우는 명백하다. 옥타곤 밖에서는 누구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맞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보편적인 상식이 있고 법의 보호를 받는다. 그러나 성노동은 보통 밀폐된 공간에서 일어난다. 술집이나 노래방은 CCTV로 감시되어 최소한의 위험은 피할 수 있다 쳐도, 고객과 단둘이 오피스텔이나 모텔방과 같은 공간에 있게 되면 고객이 룰을 어겨도 보호받을 장치가 단 하나도 없다. 사전에 약속되지 않은 거의 모든 룰 위반은 성노동자 개인에게 치명적인 위험으로 다가온다.

혹자는 이에 대해 '국가가 정해놓은 법률이라는 룰을 먼저 성노동자가 어겼다'고 반론하리라 예상한다. 성노동의 불법성에 대해서는 이 시리즈의 이전 편을 참고하기를 바란다(관련 링크). 성매매특별법으로 '보호'되고 있다는데도 성노동자는 늘상 위험에 처해있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성구매자 중 상당수가 성노동자에게 콘돔 없이 성관계를 갖자고 조른다고 한다. 강제로, 급기야는 몰래 콘돔을 빼고 성관계 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성노동자는 실제적인 성병 감염 또는 임신의 위험에 처한다. 성병에 감염되거나 임신을 하는 것에는 동의한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또 다른 위협은 몰카 (몰래카메라) 촬영이다. 성노동자의 사진과 동영상을 동의 없이 촬영하여 유포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때로는 허락하지 않은 영역까지의 스킨십을 끈질기게 요구하고 강간을 하기도 하지만 강간을 당했다는 성노동자의 호소는 손쉽게 기각된다. '어차피 그런 일 하는 애'기 때문에 강간에도 관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어 폭력과 인격 모독은 예삿일이고, 직접적인 폭력을 행사하여 폭행, 협박, 심한 경우 살해까지 일어나기도 한다. 성노동자에게 돈을 주는 척 주지 않고 달아나거나, 성노동자 개인의 지갑을 뒤져 신분을 확인하거나 현금을 훔쳐 달아나기도 한다. 이들의 신상이 유출될 경우 사회적 낙인이 찍히는 문제도 심각하다.

이뿐 아니라, 성노동자를 보호해야 마땅한 고용자도 성노동자에게 여러 종류의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가령 성형 수술을 받지 않았다고 왕따를 시키기도 하고, 부장이 직접 일수와 사채를 소개해주기도 한다. 성노동자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경제 활동은 구매자와 판매자 간의 단순한 돈거래가 아니다. 이들을 둘러싼 알선자와 성형, 미용산업, 대부업 전체가 손을 잡고 성노동자를 착취하는 데 일조한다. 그만두겠다는 여성의 신상정보를 다니던 학교의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려버려서 성노동 말고는 다른 일이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린 일도 있었다.

사람들은 성노동자에게 '쉽게 돈을 많이 버는 주제에 그 정도는 감수하라'고 한다. '사이즈'라고 불리는 외모 조건과 서비스의 내용에 따라서 성노동자의 수익은 현저히 달라지는데, 무엇을 기준으로 성노동자들은 쉽게 고수익을 올리는 사람들로 취급받는가? 쉽게 돈을 벌기 때문에 위에서 나열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은 성노동자와 고객의 '룰' 안에 그러한 위험이 당연히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위험수당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한다. 더 어렵고 위험한 일일수록 하려는 사람이 적고, 따라서 더 높은 보상이 약속되었을 때 그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그 일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이다.

항공편이나 호텔을 예약할 때도 취소할 가능성이 있는 티켓은 더 비싼 가격이 팔린다. 판매자 입장에서 손실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규정화되어 있다. 이들 사이에 미리 정해진 룰이 정당하게 설계되었는지, 또한 그 룰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가 모두 중요하게 고려된다. 위에서 언급한 메이웨더와 맥그리거의 경기, 그리고 그들의 수입에는 모두 위험 요소가 있었다. 패배할 수도 있었고, 부상을 당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높은 수입은 그들이 처했을지도 모르는 위험 때문은 아니었다. 전세계적으로 '어그로' 를 끌며 결투를 신청하던 맥그리거는 이미 그런 계산을 끝낸 후였고, 그 신청을 받아들이던 메이웨더 역시 승산과 수익을 충분히 계산한 후였다. 이들은 자신들이 어떤 역할을 수행하여 어떤 반응을 이끌어낼 것이고 그러면서 어떤 룰이 지켜질 것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적어도 경기 전날 밤 집에 가던 메이웨더를 맥그리거가 뒤에서 습격하는 일이 없을 거라는 신뢰를 갖기에 모든 조건이 충분했다.

당사자들의 '징징거림'은 더 많이 나와야 한다

앞에서 이야기한 '비적극적 동의'를 다시 상기해보자. 성노동자는 돈을 받고 성구매자의 욕구 충족에 종사한다. 이를 위해서 돈이 오가지 않은 자연스러운 상태에서는 원하지 않았을 성적 행동까지도 가능하게 한다. 성노동자가 자발적으로 동의한 범위까지만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성노동자와 고객의 '룰'이고, 약속받은 근무환경에서 약속받은 보호조치를 이행할 것이 성노동자와 업소 사이의 '룰'이다.

성노동자의 수익은 룰의 내용에 따라서 더 높아지거나 낮아질 수 있다. 누구나 일자리를 구할 때는 계약 조건을 꼼꼼히 따진다. 보수, 근무환경, 야근 시간과 업무 분위기, 모두 미리 알고 선택하고 싶어 한다. 성노동자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룰이 지켜져야 한다는 당위는 성노동자의 수익이 얼마나 되는지와 상관이 없다.

부당하지 않은 룰이 설정되어야 하고, 그 룰은 지켜져야 한다. 이 당연한 이야기가 성산업에서 성립하지 않는 원인 중에는 정보와 권력의 부재가 우세하다고 생각한다. 성노동에 대한 정보는 너무 부족하고, 이들은 파편화되어 있다. 빈곤한 이들은 이러한 위험요소를 예상하지 못하고 알음알음 알바몬 같은 사이트를 찾아가 성노동에 유입되는 경우가 많다.

같은 일을 하는 동료들이 얼마나 받는지는 비밀인 경우도 많다. 그러니 뭔가 싫은데도 이게 당연한 건지, 이 보수가 정당한 것인지 알 길 없이 무방비해진다. 피해 경험을 거치며 노하우를 쌓아가지만 이미 많은 착취를 당한 이후이다. 때로는 목숨을 잃는 등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건너버리기도 한다. 만약 이런 모든 룰이 지켜지지 않을 것을 미리 알았다면 성노동을 선택하지 않았을 이들도 있을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노동을 하고자 하는 이들은 할 수 있는 한 위험에 대비할 것이다.

그래서 성노동 당사자의 경험담 공유는 의미가 있다. 어디까지 동의할 수 있을지, 어떤 일을 겪을지 미리 알게 되면 어떤 룰을 정하고 어떤 안전장치를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다. 인터넷에 난무하는 카더라와 대상화된 이미지가 아닌 당사자의 목소리를 누군가는 생전 처음 들었을 것이다. 피해 경험담을 공유하면서 성노동을 시작하려는 이들과 하고 있는 이들, 그리고 성노동 비당사자들은, 성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당사자들도 서로의 목소리를 듣고 노동 환경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비로소 인권을 지켜내기 위한 정치적인 목소리를 함께 낼 수 있을 것이다.

성노동자들의 더 많은 '징징거림'을 듣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에이미황씨는 <나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의 공동저자입니다.



태그:#성노동, #나도말할수있는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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