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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 작은 마을에 귀농해 10년을 살아오면서 도시에서는 잘 몰랐던 '마을'을 체험해왔다. 인구유출로 인해 고령화와 과소화에 직면한 농촌의 현실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각했다. 내가 사는 곳만 해도 20여 가구 남짓에 우리집 세 녀석이 동네 아이들의 전부일 정도니 마을의 미래를 생각하면 암담하기만 하다.

축소를 너머 소멸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이른, 게다가 도시에 비해 경제-의료-교육-복지 인프라가 절대적인 열세에 놓여 있는 시골농촌에서 마을공동체 만들기는 사실상 생존이 달린 중대한 문제다.

도시는 어떠한가? 삶의 질 하락면에서는 도시도 만만치않다. 신뢰와 협동 대신 경쟁과 파괴의 원리가 지배하는 대도시의 삶은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결국 도시든 농촌이든 '마을공동체'는 대한민국에서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반드시 이뤄야 할 절체절명의 과제다.

불안한 시대가, 자본주의에 지친 삶들이 다시 '마을'을 호출하면서 어느새 마을은 대세가 되었다. 마을 담론들이 쏟아져나왔고 지자체들은 경쟁적으로 마을만들기 사업에 뛰어들었다. 파이는 커졌지만 관 주도의 탑-다운 방식으로 인한 부작용도 속출했다.

오죽하면 마을은 행정이 투입한 '트로이의 목마' 같다는 자조섞인 말이 나오겠는가. 마을만들기 사업들의 오류를 되짚고 옥석을 가리고 마을공동체의 대안적 모델을 만들어가는 여정 그 어디쯤엔가 지금의 '마을'이 있다.

협치의 달인, 다시 마을속으로!

<마을정부를 말하다> 표지 .
▲ <마을정부를 말하다> 표지 .
ⓒ 행복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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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마을정부를 말하다>를 주목한 건 저자의 이력 때문이다. 성미산 마을활동가 출신인 지은이 유창복은 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장과 서울시 협치추진단장을 역임했다. 박원순 시장과 함께 도시형 마을공동체 만들기를 이끌면서 24개 자치구 342개 동에서 '서울시 찾아가는 동 주민센터'(아래 찾동)라는 민관협치 모델을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한 마디로 유창복은 대한민국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마을 전문가다. 지역마다 성공과 실패가 교차하고 있는 한국형 마을공동체 만들기에 그는 과연 어떤 해법을 가지고 있을까. 저자는 "내가 생각하는 마을공동체의 회복은 '사람' 중심의 가치 회복과 '신뢰의 관계망'을 재구축하는 것"(140쪽)이라며 "도시에서 '마을'을 활성화한다는 것은 주민들 사이의 커뮤니티를 촉진하고 지역사회 속에서 다양한 커뮤니티들 사이에 네트워크를 활성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146쪽)고 설명한다.

마을이란 시공간을 오랫동안 함께 하며 사람들이 맺어온 관계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느슨한 관계'를 선호하는 현대인들이 만드는 21세기의 마을은 전통적인 모습과는 사뭇 다른 형태를 보인다. 농촌이 마을공동체의 전통적인 인프라를 상실한 채 점점 사라지고 있다면, 도시는 물리적 밀착도보다는 추구하는 관심사에 따라 만남과 흩어짐이 유연한 '네트워크' 방식으로 마을에 접속 중이다. 다양한 형태의 관계망들이 그물처럼 얽히면서 대안적 생활양식을 창출해가는 그곳에 '마을'이 있다. 마을공동체는 개방적이고 역동적인 과정의 언어다.

마을을 통한 새로운 관계맺기는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유창복은 이 지점에서 정부의 역할이 있다고 본다. 주민들이 모여 대화하는 과정을 지원하며, 주민들 스스로 동네의 의제를 찾아내고, 주민들에게 이를 결정하고 해결할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주민들과 행정이 한 테이블에 앉아 함께 논의하고 협의하고 조정하고 타협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마을을 운영해간다. 관 주도의 하향식 방법이 아니라 민 주도의 상향식 의사결정을 통해 마을을 만드는 구조를 정착시키는 것이다. 민이 주도하고 민이 결정할 때 행정은 이를 존중하고 필요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저자는 서울시에서 일하는 동안 '찾동' 사업을 통해 민주도의 역동적이고 새로운 협치모델의 성공 가능성을 봤다고 한다. 그는 "이 사업은 동마다 배정된 사회복지담당 공무원과 동네를 잘 아는 우리동네 주무관이 함께 짝을 이루어, 한편으론 종합적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동네의 여러 관계망들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162쪽)고 설명한다.

찾동 사업의 차별성은 참여하는 주민들에게 일의 권한을 전적으로 일임했다는 데 있다. "주민들이 정책과 재정에 대한 권한을 가지면 그 권한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 협력이 일어나고 협력의 결과로 주민관계망이 확장되고 두터워지며 삶의 질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을 현실로 확인했다"(168쪽)는 것이다.

협치를 너머 자치로 : 마을 민주주의의 길

시골농촌과 달리 도시는 일터와 삶터의 분리가 큰 편이다. 매일 1~2시간씩 걸려 다른 동네로 출퇴근 하는 도시민들은 사는 곳보다는 일하는 곳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아파트라는 주거형태, 1인 가구, 장시간 노동, 일터와의 괴리 등 도시형 마을만들기는 까다롭고 복합적인 요소들을 반영해야 한다. 

도시형 마을공동체가 '동호회' 수준 이상의 기능을 하려면 먼저 사회경제적으로 마을이 '절실한' 사람들이 주인이 되는 마을 만들기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마을은 사회경제적으로 고립된 약자들이 연대하고 협동의 힘으로 삶을 재생시켜나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 마을이 주민들의 '복원력'을 향상시키는 훌륭한 거점으로 될 때, 마을은 한철 유행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삶 속에 튼튼히 뿌리 내릴 수 있다.

국가에 기대는 차원을 넘어, 주민들의 자치와 자립의 힘으로 관계지향적이고 대면적인 복지전달체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웃이 이웃을 돌보는 신뢰와 연대, 호혜에 기초한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고 나눔과 돌봄을 일상화해야 한다.

마을이 지속가능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마을에서의 삶'이 가능해야 한다. 자치를 이야기하면서도 마을에 자치적인 의사결정구조가 없고, 자급을 말하면서도 자원은 모두 외부에서 조달해야만 하는 신세라면 마을공동체를 제대로 꾸려나갈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지속가능한 마을공동체를 탐색하다보면 필연적으로 '마을자치'를 만나게 된다. 마을단위에서부터 생활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주민자치의 힘으로 마을을 운영한다면 마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공화국'이 될 것이다. 협치는 자치로 완성되어야 한다.

"함께 청원하고 댓글을 달고 대화를 나누는 시민들 사이에 직접적이고 대면적인 유대가 만들어져야 삶의 공간에서 실질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동네 골목길을 변화시키고 어려운 이웃의 생활을 더 낫게하고 내 삶의 터전을 지키는데 함께 나서면서, 지방정부의 정책을 변화시키고 더 나아가 중앙정부가 이런 변화를 반응하게 만드는 정치의 패턴이 새롭게 만들어져야 한다. 과거의 정치가 전국적인 정당과 정치인이 몇 개의 대안을 내놓고 평범한 시민들이 그 가운데 고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면, 앞으로의 정치는 삶의 현장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대안이 모이고 합쳐서 전국적 정책이 되고 전국적인 정당과 정치인이 이를 반영하게 만드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중략)...나는 이러한 새로운 정치의 구조를 만드는 출발점이 '마을'이 되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전국의 구석구석에 자리한 마을, 그 마을을 구성하는 주민들이 함께 만드는 변화가 작은 벽돌처럼 모이고 쌓여서 대한민국 정치라는 거대한 집을 새로 짓는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107쪽)

저자는 "헌법에 명시된 국민주권이라는 것이 우리나라 헌정체제의 가장 큰 원칙이자 규범이라면, 그 구체적인 존재 양태와 미시적 기초가 주민자치라는 걸 깨달았다"(172쪽)며 국가 민주주의와 마을 민주주의의 접합점을 찾는다. 이로부터 도출해낸 '마을정부'라는 개념은 향후 한국형 마을공동체 만들기 운동의 새로운 어젠다가 될 수 있을 듯하다.

루게릭병으로 죽어가던 순간까지도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고 외쳤던 토니 주트는 "오늘의 문제는 '경제의 과잉'에 있다기 보다는 '정치의 소심증'에 있다"고 했다. 유창복의 '마을정부론'이 그가 새로운 정치적 도전을 준비하고 있는 지역에서 앞으로 어떻게 구현될지 궁금하다. 기대를 갖고 지켜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마을정부를 말하다>(유창복 지음 / 행복한책읽기 펴냄 / 2018.02. / 16,500원)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마을정부를 말하다

유창복 지음, 행복한책읽기(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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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에디터만 아는 TMI'를 연재합니다. 그림책을 좋아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 2019년 성교육 전문가와 함께 하는 대화집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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