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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가을, 방포해변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하늘을 배경으로 피마자 나무가 올곧습니다.
 지난 가을, 방포해변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하늘을 배경으로 피마자 나무가 올곧습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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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기사 : 찍으면 그림이 되고 멈추면 추억이 되는 곳)

바람이 참 드세게도 붑니다. 곧게 뻗은 나뭇가지들이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모양입니다. 저마다 생긴 대로 춤을 춥니다. 오른쪽으로 돌다 바로 서는 녀석, 왼쪽으로 돌다 다시 오른쪽으로 기우는 녀석, 한 바퀴를 돌고나서 원위치로 서는 녀석, 시끄럽게 소리를 내며 흔드는 녀석, 소리가 너무 컸나 놀라서 솔방울을 땀방울처럼 흘리는 녀석...

분명히 바람은 비슷한 세기로 한쪽에서 불어와 한쪽으로 가건만 나무들은 같은 춤을 추지 않는 것이 는실난실합니다. 생김새와 나뭇가지들의 놓임새, 크기와 굵기의 차이일까요. 나무 종류에 따라 다른 것일까요. 같은 종류의 소나무라도 다 다른 춤을 추고 있네요.

하긴 사람들도 같은 시련을 당한다고 다 넘어지거나 나뒹구는 건 아니지요. 때로 인생의 역경이 그를 더욱 야무진 인생으로 바꿔놓기도 하죠.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식상한 멘트가 아니어도 충분히 공감하는 것이죠. 갑자기 이런 내용을 교훈하는 시구들이 마구 떠오릅니다.

나무는 춤을 추고, 나는 시를 읊고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 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 일부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담쟁이는 말없이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없는
저것은 절망의 싹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 도종환 <담쟁이> 일부

 방포해변, 하늘과 땅이 조화롭습니다. 거친 돌들이 해변에 깔려 있습니다.
 방포해변, 하늘과 땅이 조화롭습니다. 거친 돌들이 해변에 깔려 있습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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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모두 도종환 시인의 시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평창 동계올림픽 때문에 한창 바쁜 그분 말입니다. 좋아하는 시인 중에 한분인 도종환 시인이 이런 교훈을 담은 시를 많이 지은 까닭일까요. 어쨌든 도종환 시인의 시들만 떠오르네요. 이유는 저도 모릅니다. 허.

우리의 삶이나 생물의 세계가 다 마찬가지라는 이치를 깨닫게 하는 발걸음입니다. 아무리 여며도 칼바람은 뜨듯한 내 품을 너무 사랑합니다. 마구마구 자꾸자꾸 파고듭니다. 시린 바람의 뺨을 내 작은 가슴으로만 감내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내 가슴이 그의 냉랭한 뺨을 녹일 만큼은 뜨거워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게 죄스럽습니다.

두에기해변과 방포해변 사이의 언덕은 교훈 없이 못 넘어

나무들의 흔들림을 보며 어느 책에서 보았던 또 하나의 글귀도 떠오르는 군요. 오늘은 왠지 시와 글이 나를 위로하는 날인가 봅니다. 두에기해변과 방포해변 사이의 둔덕은 여러 모로 넘기 힘든 코스인가 봅니다. 육체의 어려움보다 더 야무진 교훈을 담은 길이어서 그렇다는 생각입니다.

나무가 성장하는 원동력은 흔들리기 때문이다.
오직 살아있는 나무, 살아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나무만이 흔들린다.
흔들리는 나무라야 쓰러지지 않으려고 더 깊은 뿌리를 내린다.
깊은 뿌리는 많이 흔들려 본 경험 덕분이다.

- 유영만 <나무는 나무라지 않는다> 중


 곧게 뻗은 나뭇가지들이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모양입니다. 저마다 생긴 대로 춤을 춥니다.
 곧게 뻗은 나뭇가지들이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모양입니다. 저마다 생긴 대로 춤을 춥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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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었군요. 그래서 이리 호들갑스럽게 흔들어댔군요. 살아있음을 증명하려고 혹은 살아가려는 안간힘으로. 그들이 이리 바람을 기회로 흔들어대므로 뿌리는 더욱 깊이 파고들어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겠지요. 그 어느 때보다 세찬 바람이 싫기만 한 나와는 달리 식물들은 더 아름다운 삶에의 몸부림을 춤사위로 엮는 힘이 있습니다.

얼핏 부끄러움이 스칩니다. 나무들은 바람을 성장의 기회로 삼는데 나는 아직 찬바람이 호되고 무섭기만 합니다. 아마도 난 아직 멀었나 봅니다. 안면송들의 흐드러진 춤사위를 감상하며 더불어 겨울 칼바람의 삭을 줄 모르는 정열과 조우하며 한발 한발 언덕을 넘습니다.

시간적으로는 단박에 넘을 수 있는 언덕입니다. 안면도의 해변과 해변을 이어주는 길은 대부분 두에기해변과 방포해변을 잇는 길처럼 이렇게 언덕이 있답니다. 그 언덕이 좀 낮은 곳도 있고 좀 높은 곳도 있지만 모두가 그리 헐레벌떡 숨차게 올라야 하는 높은 산은 아닙니다.

그런데 유독 두에기해변과 방포해변을 넘는 안면송 가득한 이 길은 오래 걸립니다. 타박타박 앞만 보고 걸을 수 없기에 그렇습니다. 글로도 이전 글인 '찍으면 그림이 되고 멈추면 추억이 되는 곳'에 이어 두 번이나 쓰고 있으니까요.

더군다나 이번에는 칼바람이 뺨을 때리니 더욱 앞으로 나가기가 버거운 날카로운 발걸음입니다. 무심히 앞으로 가자니 바람이 뒤로 밀고, 발걸음을 또박또박 떼자니 안면송의 춤사위가 너무 아름다워 정신을 홀립니다.

아! 이러다가 여기서 머물고 마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뭐, 그러면 어떻습니까. 굳이 앞으로 가는 것만이 인생길이겠습니까. 가다가 힘들면 주저앉았다 가고, 지나는 이들의 시름 어린 소리에 귀도 기울이고, 울부짖는 이웃의 울음도 함께 토닥이고... 그런 게 인생길이지 않습니까.

언덕을 넘는 길이라고 뭐가 다르겠습니까. 좀처럼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발걸음이지만, 교훈 하나만큼은 듬쑥하잖습니까. 내 여물지 못한 발걸음이, 아니 발걸음을 더디게 만드는 자연의 속살거림이, 속도에 길들여진 우리네 인생을 질타하는 듯합니다.

쉬어 가라고. 아무리 힘들어도 결국은 가게 될 테니 주눅 들지 말고 굳세게 가라고. 속도보다는 삶의 질을 택하라고.

 평소에는 이처럼 가지런히 하늘을 올려다보던 안면송이 바람이 불자 저마다의 춤사위를 선물합니다.
 평소에는 이처럼 가지런히 하늘을 올려다보던 안면송이 바람이 불자 저마다의 춤사위를 선물합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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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안면도 뒤안길]은 글쓴이가 안면도에 살면서 걷고, 만나고, 생각하고, 사진 찍고, 글 지으면서 들려주는 연작 인생 이야기입니다. 안면도의 진면목을 담으려고 애쓸 겁니다. 계속 함께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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