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 ⓒ 청년필름


김명민·오달수 주연의 <조선명탐정> 시리즈가 이번엔 귀신 문제를 다뤘다. '흡혈괴마의 비밀'이란 부제가 붙은 이번 편은, 남편과 아들의 목숨을 정적들한테 빼앗긴 왕세자빈(김지원 분)의 영혼이 흡혈귀가 되어 복수를 꾀한다는 내용이다.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유사한 일이 있었다. 세조(수양대군)가 피의 숙청을 벌이며 조카 단종을 몰아낸 뒤였다. 세조의 꿈에 귀신이 나타났다.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 권씨였다. 전 의령현감 서유영이 지은 <금계필담>에 따르면, 현덕왕후의 귀신은 낮잠 자는 시동생의 꿈에 등장해 저주를 퍼부었다. 

"시숙은 왕위를 빼앗고 내 아들까지 죽였으니, 나도 시숙의 아들을 죽이겠소."

세조가 자기 아들 단종을 죽였으니 자기도 세조의 장남인 의경세자(덕종 추존)를 죽이겠다는 저주였다. 조선 전기 관료인 이자(李耔)의 <음애일기>에 따르면 세조가 꿈을 꾼 해는 1457년이다. 단종이 왕위를 빼앗기고 상왕으로 물러난 지 2년 뒤였다.

1457년에 의경세자가 먼저 죽고 단종은 직후에 죽었다. <금계필담>에서 현덕왕후의 귀신이 말한 바에 따르면 단종이 먼저 죽고 의경세자가 나중에 죽지만, 실제로는 반대였다. 꿈을 꿀 당시 단종은 아직 살아 있었다. 살해 위기에 처해 있었을 뿐이다. 세조의 꿈 이야기가 입으로 구전되는 과정에서, 이 꿈 당시에 단종이 사망한 걸로 와전된 듯하다.

현덕왕후 귀신의 저주는 그대로 실현됐다. 의경세자는 시름시름 앓다가 만 19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세조가 꿈을 꾼 지 얼마 뒤였다. 왕실의 재앙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의경세자가 죽은 뒤 형을 대신해 후계자가 된 예종은 왕이 된 지 1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예종 역시 스무 살로 죽었다. 조카를 죽이고 피의 숙청을 벌인 세조도 이렇게 단단히 벌을 받았다. 

세조의 꿈에 나타난 귀신, 현실에서 이어진 고통

세조는 또 다른 고통도 겪었다. <금계필담>에 따르면, 세조의 딸도 왕실 비극에 회의감을 느껴 궁궐을 떠나버렸다. 그 뒤 신분을 감추고 민가에 숨어 살았다. 현덕왕후 귀신이 퍼부은 저주 이상으로 세조는 단단히 벌을 받았다.

<금계필담>에서는 현덕왕후뿐 아니라 아들 단종의 귀신도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말한다. 당황한 강원도 영월부사 앞에 나타나 자기 시신을 수습해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한다. 이렇게 두 모자가 한을 풀고자 귀신의 모습으로 등장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는 게 <금계필담>의 이야기다. 

 현덕왕후와 문종의 무덤인 현릉.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에 있다.

현덕왕후와 문종의 무덤인 현릉.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에 있다. ⓒ 김종성


<조선명탐정> 속의 흡혈귀 세자빈 이야기도 그렇고 <금계필담>이나 <음애일기> 속의 현덕왕후·단종 귀신 이야기도 그렇고, 이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현대인들은 '옛날 사람들은 귀신의 존재를 실제로 믿었나 보다'라는 느낌을 갖기 쉽다. 옛날엔 지금보다 과학이 덜 발달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귀신의 존재를 믿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조선시대를 포함한 옛날 사람들이 덜 과학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귀신의 존재를 더 많이 믿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도 상당히 과학적이었다. 귀신의 존재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어느 시대건 간에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의심하기 마련이다. 옛날 사람들도 합리적 사고를 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은, 지식과 문화를 선도한 선비들의 사고방식에서 잘 드러난다.

사서오경 중 하나인 <예기>의 교특생(郊特生) 편에서는 "혼은 하늘로 돌아가고 백(魄)은 땅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죽으면 육신은 썩지만 영혼은 하늘로 올라간다고 말한 것이다. 이처럼 유교에서도 영혼과 귀신의 존재를 인정했다. 사대부들이 사당에서 조상신을 모신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겉으로만 그랬을 뿐, 귀신과 영혼을 철저히 믿은 것은 아니다. 현덕왕후 귀신과 단종 귀신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것을 사실 그대로 믿지는 않았다. 귀신과 영혼을 입에 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 시대에 많은 것과 마찬가지다.

유교에서는 '사후 세계는 실증할 수 없는 영역이므로 판단을 보류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과 육체가 분리된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기는 했지만, 구체적 판단은 보류했던 것이다.

<논어> 선진(先進) 편에 따르면, 공자는 제자 계로(季路)가 죽음의 의미를 묻자 "삶에 대해서도 모르면서 어떻게 죽음을 알겠느냐?"고 대답했다. 사후 세계를 부정한 것은 아니지만, 정확한 실체를 알 수 없다는 이유로 유보적 입장을 취한 것이다.

그래서 <논어> 술이(述而) 편은 공자의 사상적 특징과 관련해 "선생님께서는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말씀하시지 않았다"고 정리했다. 괴력난신은 괴이·용력(勇力)·패란(悖亂)·귀신의 줄임말로서 비정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의 총칭이다. 인간의 지성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공자가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스승인 공자가 이랬기 때문에 선비들도 귀신이나 영혼에 대해 유보적 태도를 취했다. 사당에서 조상신을 숭배하고 글을 통해 귀신 이야기를 하면서도, 내심으로는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던 것이다. 지식과 문화를 선도하는 선비들이 이랬기 때문에, 귀신과 영혼을 있는 그대로 신봉하는 인식 체계가 널리 확산될 수는 없었다. 그런 인식 체계는 비주류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영화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의 스틸컷. 비밀을 간직한 여인 월영 역을 맡은 김지원은 기존의 김명민, 오달수와 좋은 호흡을 보여 준다.

영화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의 스틸컷. ⓒ (주)쇼박스


조선시대 귀신이 무조건 통한 건 아니었다

조선 전기에 해당하는 중국 명나라 때, 소설 <서유기>가 나왔다. 소설 속의 삼장법사는 승려들과의 토론에서 "마음이 생기면 온갖 마귀도 생기고, 마음이 사라지면 온갖 마귀도 사라지는 법"이라고 말했다. 마귀나 귀신이 마음에서 생긴다고 말한 것이다. 소설은 시대 분위기를 반영한다. 귀신에 대한 이 시대의 인식 중 하나가 삼장법사의 입을 통해 소설에 표출됐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귀신에 대한 옛 사람들의 인식은 현대인들과 아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귀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이 오늘날보다 많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사람들은 지식이나 문화 방면에서 사회를 선도하는 입장에 있지 않았다.

사실, 우리 시대의 각종 서적에도 귀신이나 영적 존재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종교적 색채를 띠는 책들에 그런 이야기가 많다. 존경받는 직업군인 승려나 목사들의 입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자연스레 나온다. 

이런 풍경을 근거로 후세 사람들이 우리 시대를 본다면, 그들은 '21세기 사람들도 귀신의 존재를 사실로 받아들인 것 같다'고 판단할지 모른다. 우리가 '옛날 사람들은 귀신을 믿었다'고 판단하는 것도 별반 다를 바 없다.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농업 사회였다. 농업 사회는 하늘과 땅의 과학적 이치에 민감하다. 자연 법칙을 모르면 농사를 잘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 법칙에 어긋나는 관념은 농민들한테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런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옛날 사람들도 귀신과 영혼을 무작정 믿지 않았다. 그들도 현대인들만큼이나 그것을 의심했다.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옛날 사람들이라고 해서 비과학적 인식에 빠져 살았던 것은 결코 아니다.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 현덕왕후 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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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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