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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여자의 명절’과 ‘남자의 명절’, ‘부부의 명절’ 기획을 통해 어떻게 하면 보다 성평등한 명절을 보낼 수 있을지 모색해 봅니다. 또한 ‘싱글의 명절’을 통해 가족 중심 명절에서 벗어나 조금 다르게 명절을 보내는 이들을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설날은 할머니집 말고 남의 집에서'. 이게 무슨 막돼먹은 불효자식 같은 이야기란 말인가. 설이면 자고로 할머니가 끊임없이 내어주는 주전부리에 배가 불뚝 나오거나, 오지랖이 태평양이신 친척들의 친절한 남 걱정에 배가 불러야 하는 게 아닌가.

어머님의 등짝 스매싱을 불러올 만한 이 이야기는 '남의 집 프로젝트'와 '딴짓'이 함께하는 설 프로젝트다.

'남의 집 프로젝트'는 남의 집 거실에서 집주인의 취향을 나누는  낯선 사람들의 모임이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역시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의 집에 모여 책을 읽거나 함께 영화를 본다(남의 집 프로젝트 페이스북).

과정은 간단하다. 자신의 취향을 모르는 사람과 나누고 싶은 호스트가 '남의 집 프로젝트' 문지기에게 대문을 열고 싶다고 연락을 한다. 그럼 문지기는 홈페이지 예약을 통해 남의 집을 방문할 게스트를 모집한다. 약속한 날짜에 호스트의 집에 모여 집주인의 취향과 관련된 활동을 함께 한다.

책이나 영화뿐만이 아니라 집주인이 모아둔 '찌라시'를 구경하거나 난데없이 조식을 함께 먹고 헤어지기도 한다. 다 그날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하는 일이다. 40년 전이었으면 간첩들의 작당 모의라고 의심받을 만큼 해괴한 이 모임을 이번엔 민족의 대명절, 설에 한다.

집에 가기 싫은 청년들, 남의 집으로 '대피'

 남의 집 프로젝트 진행 장면
 남의 집 프로젝트 진행 장면
ⓒ 남의집프로젝트 김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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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설 남의 집 프로젝트 주제는 나를 포함한 '딴짓 시스터즈' 작업실에서 희곡을 리딩하는 것이다. 딴짓 시스터즈는 또 누구냐고? 독립잡지 <딴짓>을 만드는 3명의 여자다. <딴짓>은 '밥벌이에서 자유로울 순 없지만 우리는 그래도 나를 위한 무엇이 필요해!'라며 딴짓을 권장하는 잡지다.

<딴짓>에서는 의미있는 삶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이들을 모두 '호모딴짓엔스'라고 부른다. 낮에는 무역회사에 다니지만 밤이면 살사를 추는 댄서, 보험 영업으로 돈을 벌지만 플로리스트가 되는 꿈을 키우는 청년, 편의점에서 포스를 찍는 연극인들이 모두 호모딴짓엔스다.

딴짓 시스터즈 집 거실을 낯선 이를 향해 활짝 열어놓고는 내심 고민했다. 과연 가장 큰 명절이라는 설에 '할머니 집'이 아니라 '남의 집'에 올 사람이 있을까? 우리집엔 전도 없고 떡도 없고 심지어 설의 화룡점정이라는 세뱃돈도 없는데?

그러나 세상엔 역시 이상한 사람이 많다는, 그리고 그 이상한 사람들은 더 이상하게도 내 주변에 더 많다는(내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못 하고) 가설을 증명이라도 하듯 조금씩 사람들이 모였다. 결국 모집 마감 때엔 정원인 6명의 두 배에 가까운 이들이 딴짓 시스터즈의 집에 방문하기를 원했다. 모두 20대에서 30대 사이의 청년이였다.

어라? 나야 가족이 차례를 지내는 것도 아니오, 가야 할 할머니집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이 젊은이들은 명절에 할머니집에 가지 않는 걸까? 딴짓 시스터즈의 치명적인 매력에 홀린 것은 아닐 테고(제발 그랬으면) 혹시 내려가기 싫은 걸까?

지난해 추석, 서울 마포구 독립서점 '퇴근길 책한잔'에서 명절대피소를 운영하던 생각이 났다. 명절에 갈 곳 없는 청년들을 위한 피신처란다. 윷놀이 대신 '흙수저로 태어나 금수저를 이겨보는' 수저게임을 했단다(나도 나지만 퇴근길 책한잔 사장님도 참...).

이 때 파고다 어학원도 고향에 가기 두려운 취준생들을 위한 '명절대피소'를 운영했다. 명절마다 갈 곳 없는 젊은이들이 PC방과 카페에 몰린단 기사가 줄줄이다.

청년들은 왜 명절에 고향에, 친척 집에 가기 싫은 걸까? 왜 핏줄로 엮였다는 '친척'을 두고 혈액형도 다른 생면부지 '남의 집' 거실에서 노는 걸까?

'남의 집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한 청년은 지원 동기에 이렇게 적었다.

"설에 해서 더 좋아요. 집에 안 갈 핑계가 필요했거든요. 이름까지 '프로젝트'가 붙으니 왠지 회사일 같기도 하고요."

우리집 대문 활짝 엽니다, 가족 말고 남에게

 이대 독립서점 <퇴근길 책한잔> 명절 대피소
 이대 독립서점 <퇴근길 책한잔> 명절 대피소
ⓒ 퇴근길책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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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맞이한 첫 번째 설이 기억난다.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의례적인 안부 인사가 오갔다.

"회사는 잘 다니고?"

고모의 질문에 거짓말을 할 수 없어 솔직하게 그만두었다고 답했다가 온 가족의 친절한 걱정을 들어야만 했다. 그 좋은 회사를 왜 그만두었냐는 이야기부터 요즘 젊은이들은 인내심이 없다는 불평, 나이도 찼는데 결혼은 언제 할 것이냐는 걱정까지.

물론 이제까지 누구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안 들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타인이 그런 말을 할 땐 "남이사" 한 마디로 잊어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친척들은 '남'도 아닐 뿐더러 말을 잘못했다간 애꿎은 부모님만 자식 잘못 키웠다는 욕을 먹을 수도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 내 삶의 철학을 구구절절 설명할 에너지도 없었다. 주제가 2년째 취업 준비중이라는 사촌 동생의 이야기로 넘어갈 때까지 나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여야만 했다.

'결혼 언제 할 거니(고모님 소개나 해주시고 말씀해주세요)'와 '취업은 했니(사촌 동생도 곧 졸업이죠?)', '연봉은 얼마니(노후 대비는 잘 하고 계십니까)'에 우리는 지쳤다. 그런 질문 안에는 정해진 삶의 미션에 대한 독촉이 숨어있다. 너는 취업, 결혼, 출산, 육아, 승진에 대한 의무가 있고 우리는 그것을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는 함의다. 왜? 우리는 가족이니까!

그러나 우리에게 더이상 가족은 기존 세대처럼 가까운 존재가 아니다. 친구에게 너와 가까운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30명의 이름이 넘게 나오도록 친척의 이름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기쁜 일이 있을 때 친척보다는 친구에게 먼저 알린다. 속상한 일이 있을 때도 술 한 잔 함께 기울여 주는 건 고모나 사촌이 아니라 동기나 동료다.

때론 남의 집 프로젝트와 같은 이벤트에서 한 번 본 누군가일 수도 있고 동호회에서 만나 서로 닉네임만 부르는 사이일 수도 있다. 핏줄보다 가치관이, 공감이 더 중요하다.

이젠 좀 혼자 있고 싶다. 손이 닿을까 말까 한 적당한 거리에서 각자 외롭고 싶다. 서로의 삶에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지만 뜻이 맞을 땐 누군가와 함께 해도 좋겠다. 고독하고 싶지만 청승 떨고 싶진 않다. 삶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싶지만 '내가 해봐서 아는데'류의 조언은 정중히 사양하겠다.

젊은이들 사이에는 익명으로 서로의 취향만을 나누는 채팅방 '고독한 ○○○' 시리즈가 유행한다. 개인 신상을 숨긴 채로 '덕질'만 함께 하는 채팅방이 많다. 모르는 사람과 대화 없이 앉아 혼밥, 혼술을 즐기는 문화도 있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낯선 사람과 함께 하는 이런 문화가 기성 세대에게는 낯설 수도 있겠다.

제 영역을 지키면서 자신의 관심사를 조금씩 타인과 나누는 것. 강아지보단 고양이에 가까워 보이는 이런 성향이 요즘 젊은이들에겐 더 어울리는 것 같다. 그래서 '핏줄'로 이어진 가족보다 '관심사'로 이어진 남이 더 편한지도 모르겠다. 민족의 대명절인 설에 만나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리하여 설엔 우리집 대문을 활짝 연다.

오라! 물보다 진한 피에 지친 청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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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밥 벌어 먹고 사는 프리랜서 작가 딴짓매거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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