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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에 지친 어느 날,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집어든 책 한 권이 저를 지옥에서 구해줬습니다. 작가의 한 문장에 고민이 풀리고 고뇌가 치유됐습니다. 아플 때 '약'이 돼준 책들을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밤공기가 서늘한 냄새를 풍기기 시작한 지난해 늦여름 저녁,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호프집에 갔다. 맥주 몇 잔으로 다들 술기운이 불콰하게 올랐을 즈음, 표정이 한껏 달뜬 한 친구가 스마트폰을 높이 들고 셀카 모드로 단체 사진을 찍었다.

그 친구는 한동안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보며 손가락을 바삐 움직이더니 갑자기 피식 웃었다. 내 시선이 반사적으로 그쪽을 향하자 친구는 몸을 기울여 노란 바탕의 메신저 채팅창을 보여줬다. 조금 전 찍은 사진과 함께 친구의 애인이 보낸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

"이 아줌마는 누구야?"

사진 속 친구들의 외모에는 자신감이 묻어났다. 광이 나는 얼굴에 정돈된 머리, 핫팬츠가 잘 어울리는 늘씬한 몸... 그들 중 유일한 엄마인 나는 숨이 죽은 배추처럼 생기가 없었다. 바빠서 스킨케어는커녕 베이비로션도 못 바르다 보니 가부키처럼 화장이 붕 떴고, 임신했을 때 찐 살이 여태 안 빠져 턱선이 흐릿했다. '이 아줌마'는 나를 가리키는 말이자, 어쩌다 이렇게 변했냐는 뜻이 담긴 탄식이었다.

당황한 나는 일단 해명부터 했다. "애 키우면 운동할 시간이 없다", "10kg 아이를 안고 일하려면 뭐라도 먹어야 힘을 쓴다"... 그런 하소연을 늘어놨던 기억이다. 그러자 다른 친구가 안타깝다는 듯한 얼굴로 조언을 건넸다.

"너를 포기하지 마, 여자는 가꾸고 관리해야 해."

이제 나는 여자가 아닌 걸까

아줌마와 포기. 두 단어가 목에 걸린 가시처럼 마음에 콕 박혔다. 나는 그들의 친구지만 그들과 다른 사람이 된 듯했다.
 아줌마와 포기. 두 단어가 목에 걸린 가시처럼 마음에 콕 박혔다. 나는 그들의 친구지만 그들과 다른 사람이 된 듯했다.
ⓒ KBS <고백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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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와 포기. 두 단어가 목에 걸린 가시처럼 마음에 콕 박혔다. 나는 그들의 친구지만 그들과 다른 사람이 된 듯했다. 우리 사이를 갈라놓은 건 엄마가 된 이후로 변해버린 나의 외모였다. 더는 그들과 어울리지 않는 내 몸이 그 순간만큼은 너무 싫었다.

사실 그날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두려웠다. 아끼는 이들의 얼굴을 보는 기쁨보다 그들과 비교하며 겪는 괴로움이 더 클 것 같았다. 그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다. 출산 후 처음으로 사교모임에 나가는 날, 모처럼 외출복을 꺼내 입었는데 맞는 옷이 하나도 없었다. 내 몸은 여전히 임부복 사이즈였다. 임신 전에 입던 스키니진에 억지로 다리를 구겨 넣어봤지만 금세 포기했다. 바지 곳곳에 소시지처럼 불룩 튀어나온 허벅지살을 보고 괜히 기분만 상했다.

결국 펑퍼짐한 임부원피스에 레깅스를 입고 약속장소로 향했다. 다림질로 곱게 펴진 블라우스 사이에서 분유 자국이 선명한 나의 '시녀룩'(엄마들이 애 볼 때 입는 옷을 뜻하는 은어)이 유독 튀었다.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닌 것 같다'는 어색함은 '왜 살을 못 뺐나'라는 자괴감으로, '여자로서의 인생은 끝났다'는 자기혐오로 이어졌다.

<다이어트와 성정치>는 서문에 실린 저자(한서설아)의 이야기에 이끌려 고른 책이다. 그도 나처럼 자신의 몸을 미워하는 마음 때문에 이 책을 쓰게 됐다고 한다. 여성학을 공부하고 페미니즘을 만나면서 '여자'로서 그동안 "고통받던 문제들이 점차 이해되고 풀려나갔"지만, 몸을 향한 혐오에서는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었다는 고백이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언제나 몸은 나를 필요 이상으로 규정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여자의 몸을 갖고 있다는 것,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몸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나라는 존재를 정의하고 평가하는 데 너무나도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중략) 외모라는 문제는 어렵사리 가지게 된 자아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라는 공든 탑을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을 만큼 언제나 위력적이었다."


남녀 불문하고 외모가 중요한 시대다. 여자들이 자신을 가꿔야 하는 것처럼 남자들도 립틴트를 바르고 다이어트를 하며 외모를 관리하는 요즘이다. 그런데 친구가 내게 충고했듯, 왜 여전히 여자만을 콕 집어 '가꾸고 관리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걸까.

능력 좋아도 뚱뚱하면 '0점' 되는 세상

한서설아 <다이어트의 성정치>
 한서설아 <다이어트의 성정치>
ⓒ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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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소위 '남자답다', '여자답다'라고 인정받는 과정에서 외모가 차지하는 비중 자체가 성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남성들은 사회적 기준에 꼭 들어맞는 외모가 아니더라도 학력이나 계층 등의 요소가 뛰어나면 '그래도 공부를 잘하니까', '직업이 좋으니까'라는 식으로 인정받을 수 있지만, 여성들은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여성은) 이상적인 외모를 갖고 있지 못하면 아무리 다른 사회적 자원을 가지고 있어도 남자들의 시선에 의해서 '여자'로 감지되지 못하며 오히려 다른 자원의 가치까지 폄하되는 경우가 많다. (중략) 못생긴 여자가 공부를 잘하면 독한 여자라는 소리를 듣는다는 농담 등은 여성이 가진 다른 자원의 가치를 '외모 수준'에 따라 평가하는 사회적 시선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나만 해도 그랬다. 집에서는 아이 양육에 무심하지 않은 엄마로, 회사에서는 주어진 일을 잘 해내려는 월급노동자로 어느 때보다 분주한 일상을 살아내는 중이다. 서툴게라도 일과 육아를 병행해낼 때면 '그래도 잘 해내고 있다'는 성취감과 보람을 느끼곤 한다. 성실하게 능력을 키워 가면 여자, 엄마, 노동자로서 모두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다.

나의 기대는 불어난 몸과 시류를 따라가지 못하는 외모로 한순간에 무너졌고, 남은 건 '자기관리가 안 되는 애 엄마'라는 꼬리표였다. 저자의 지적대로 외모의 위력은 나의 일상이 지닌 가치를 "너무나 간단하게 무화"시켰다.

출산 전만 해도 '여자다운' 외모를 쉽게 되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원래 특별히 다이어트를 하지 않아도 적당히 먹고 열심히 움직이면 적정한 몸무게가 유지되는 체질이었으니까. 임신으로 15kg이나 쪘지만 아이가 방을 빼면 자연스럽게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애를 낳고 달라진 건 내 몸이 아니라 몸의 메커니즘이었다. 분명 깨어 있는 동안 아이에게 분유 타 먹이고, 안아서 재우고, 젖병을 닦고, 청소기를 돌리며 쉼 없이 움직였다. 밥 한술 뜨려 할 때마다 아이가 안아달라고 울어서 끼니를 제때 챙겨 먹지 못했다.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는데도 불어난 몸무게가 쉽게 줄지 않았다.

반면 TV나 잡지에 나오는 연예인 엄마들은 하나같이 늘씬했다. 애를 낳은 지 반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예전 몸매 그대로였다. '바쁘고 부지런하게 살아도 살이 안 빠진다'는 억울함은 완벽한 외모를 지닌 그들 앞에 설 때마다 무색해지는 듯했다.

우리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았다

저자는 나를 포함한 많은 출산 여성들이 이 같은 좌절감을 겪고 있다고 전한다. "출산 후 몸무게가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데도 대중매체를 통해 '아가씨 같은 아줌마'의 이미지가 부상하면서 큰 압박감을 가지게 됐다"는 지적이다. 결국 사회가 떠받드는 외모의 기준에서 탈락한 엄마들은 '게을러서 뚱뚱하다'는 시선에 억울해하면서도 "사회적 시선을 통해서 자신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좌절하고 죄의식"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포기한 아줌마'로 정의된 그날 이후, 잠을 줄이고 없는 시간을 쪼개 외모에 신경 쓰려 노력했다. 나갈 때는 꼭 유행하는 옷과 화장품으로 치장했고, 저녁에는 바나나, 방울토마토, 삶은 달걀 같은 것들을 먹으며 군살을 빼보려 했다. 아줌마로 불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쳐도 '자신을 포기했다'는 말만큼은 듣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돼도 이전의 나를 지킬 수 있다는 믿음에 금을 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외모 관리 프로젝트'는 B형독감에 걸리면서 시작한 지 약 3개월 만에 중단됐다. 아픈 몸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일주일 동안 다시 내 삶의 우선순위를 점검했다. 일과 육아로 점철된 일상에서 오롯이 나만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무인도에 갈 때 꼭 가져가야 할 물건들을 추리듯, 나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꼭 지켜야할 것들만 노트에 정리해보기로 했다. 잠, 책, 가족과의 식사, 친구와의 만남, 나만의 일터...

시대가 요구하는 몸이 아니더라도 가치 있는 삶이라고, 우리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시대가 요구하는 몸이 아니더라도 가치 있는 삶이라고, 우리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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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알았다. 난 나를 포기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엄마라는 역할로 위태로워진 나의 자아와 시간, 역사를 지키고자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분투했다. 자투리 시간이 생길 때면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마음을 다잡았고, 가족·친구들과 대화하면서 사람과 단절되지 않으려 했다. 사회가 요구하는 외모를 되찾는 것보다 다른 일상이 좀 더 시급하고 간절했을 뿐이다. 세상이 채찍질하는 속도와 기준에 맞춰 살던 나는 어느새 그 궤도에서 벗어나 나만의 속도와 기준으로 살아가는 법을 익혀가고 있었다.

"여성들이 외모 때문에 겪는 고통에서 해방되고 진정한 자아 존중감을 가질 수 있기 위해서는 여성에게 육체에 대한 강박을 안겨주는 이 사회의 권력에 끊임없이 딴지를 걸지 않으면 안 된다. 저항 없는 치유는 불충분할뿐만 아니라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내리는 결론이다. 일부러 살을 찌우고 거적때기를 입고 다니며 '외모 파업'을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여성의 가치와 정체성을 외모로 재단하는 사회의 시선"을 향해 개인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시대가 요구하는 몸이 아니더라도 가치 있는 삶이라고, 우리는 우리를 포기한 게 아니라고.


다이어트의 성정치

한서설아 지음, 책세상(2000)


태그:#다이어트, #아줌마, #다이어트와성정치, #주간애미, #산후 다이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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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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