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과 스웨덴 평가전, 2018년 2월 4일 인천 선학국제빙상장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과 스웨덴 평가전, 2018년 2월 4일 인천 선학국제빙상장 ⓒ 박진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모든 게 사상 최초다. 그 불가능의 영역에 도전한다.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이야기다. 우선 한국과 북한 모두 동계올림픽 출전 자체가 사상 최초의 일이다. 올림픽에 남북 단일팀이 출전하는 것도 올림픽 역사상 처음이다.

사실 평창올림픽도 출전하지 못할 뻔했다. 아이스하키는 올림픽 개최국의 자동출전권 제도가 정착이 안 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회 때마다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이 개최국 자동출전권 여부를 결정해 왔다.

당초 IIHF는 한국의 전력이 세계 강호들과 차이가 크다며 자동출전권 부여에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IIHF는 지난 2014년 9월 한국 남녀 아이스하키 대표팀에게 올림픽 개최국 자동출전권을 부여하는 결단을 내렸다. IIHF는 "정몽원 대한아이스하키협회 회장의 적극적인 지원, 관계자들의 헌신적 노력, 절대 포기하지 않는 한국인 특유의 근성을 보였던 것 등이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 최종 결정에 매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외국인 감독·선수 영입' 조건으로 얻은 '평창 출전권'

그러나 IIHF가 그냥 자동출전권을 부여한 건 아니었다. 몇 가지 전제 조건을 내걸었다. 정몽원 대한아이스하키협회 회장은 지난 2016년 11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파젤 IIHF 회장이 3가지 조건을 얘기했다"고 밝혔다.

그는 전제 조건에 대해 "(한국 대표팀에) 외국인 감독과 코치를 데려오라는 게 첫 번째, 외국인 선수 7명을 데려오라는 것이 두 번째였다. 포지션도 정해줬다. 골리 1명, 수비수 3명, 공격수 3명이었다. 마지막 조건은 예산을 재편성하라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정 회장은 그 조건들을 받아들였고, 적극 실천에 옮겼다. 정 회장은 "우리가 귀화 선수를 많이 보유한 데에는 이런 애로사항이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격려해줬으면 한다"고 토로했다.

만약 IIHF가 다른 결정을 했다면, 한국 아이스하키는 남녀 모두 평창올림픽 출전이 어려웠을 가능성이 높다. 대표팀의 전력을 감안할 때, 올림픽 예선전을 통과해서 본선 출전권을 따내는 건 '하늘의 별 따기'만큼 험난하기 때문이다.

최종 예선전까지 최소 2~3단계의 예선전을 거쳐야 하는데, 모두 조 1위를 해야만 통과할 수 있다. 또한 상위 단계로 올라갈수록 한국보다 실력이 월등한 유럽 강호들과 대결해야 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평창올림픽이 끝나면 언제 다시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미국-캐나다 양강... 단일팀, B조 2위 안에 들어야 '메달 도전'

단일팀이 평창올림픽 본선에서 상대해야 할 팀들도 객관적인 전력에서 크게 앞서 있다. 모두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는 세계 정상급 팀이다.

남자 아이스하키가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의 불참 선언으로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평창올림픽에 대거 불참한 것과 달리, 여자 아이스하키는 최정예 멤버들이 출전한다. 여자 아이스하키는 평창올림픽에 집중하기 위해 올해 세계선수권 1부 리그(톱 디비전) 대회까지 생략했다.

서로 격려하는 남북단일팀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선수들이 4일 인천 선학국제빙상장에서 스웨덴과의 평가전을 앞두고 경기장에 들어서며 서로 격려하고 있다.

▲ 서로 격려하는 남북단일팀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선수들이 지난 4일 인천 선학국제빙상장에서 스웨덴과의 평가전을 앞두고 경기장에 들어서며 서로 격려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현재 여자 아이스하키는 세계랭킹 1위 미국과 2위 캐나다가 '절대적 양강'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는 미국이 최강자다. 미국은 지난 2013년 세계선수권부터 2017년 세계선수권까지 4회 연속 1부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반면, 캐나다는 4회 연속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러나 동계올림픽에서는 정반대로 캐나다가 절대 강자다. 캐나다는 지난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부터 2014년 소치 올림픽까지 4회 연속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번 평창올림픽에서 5회 연속 금메달에 도전한다.

동계올림픽에서 여자 아이스하키는 총 8개 국가가 출전한다. 평창올림픽 참가팀 구성 방식은 개최국(대한민국)과 2016년 세계랭킹 5위까지 6개 국가는 올림픽 본선에 자동 출전했다. 6개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은 무려 4단계의 예선전을 거쳐 최종 예선전(2개조)에서 우승한 2개 국가만이 본선 출전권을 획득했다.

올림픽 본선은 세계랭킹 순위에 따라 A·B조로 나뉘어 조별 예선을 펼친다. 평창올림픽도 A조는 세계 최정상급 4팀이 편성됐다. 미국(1위), 캐나다(2위), 핀란드(3위), 러시아(4위)가 속해 있다. B조는 남북 단일팀(22~25위)과 스웨덴(5위), 스위스(6위), 일본(9위)이 포함됐다.

A조는 1~2위가 4강전으로 직행한다. A조 3~4위는 B조 1~2위와 6강전 치르게 된다. 반면, B조는 1~2위만 6강전에 진출하고, 3~4위는 5~8위 순위 결정전으로 내려간다.

6강전은 A조 3위-B조 2위, A조 4위-B조 1위가 단판 승부를 벌여 승자가 4강에 진출한다. 그리고 4강전에서 A조 1~2위와 맞대결한다. 따라서 단일팀이 메달에 도전하려면, B조 2위 안에 들어 6강전에 진출해야 한다.

단일팀은 오는 10일 오후 9시 10분 강릉시 관동하키센터에서 스위스와 B조 조별 예선 첫 경기를 치른다. 이어 12일 오후 9시 10분에 스웨덴, 14일 오후 4시 40분에 일본과 경기를 펼친다.

단일팀 상대, 모두 세계 정상급... '1승'도 쉽지 않다

단일팀이 평창올림픽 조별 예선에서 맞붙는 3팀은 모두 세계 최고 레벨인 1부 리그에 속해 있다. 반면,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는 이제 3부 리그에 진입했고, 북한은 4부 리그에 있다. 객관적인 전력 차이를 감안하면, 1승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IIHF가 주관하는 세계선수권 대회는 매년 열린다. 다른 종목의 세계선수권과 가장 크게 다른 부분은 국가별로 등급을 매겨 같은 등급의 국가끼리 대회를 따로 열고, 등급별로 승강제를 적용해 매년 승격과 강등을 하는 팀이 생긴다는 점이다.

남자 아이스하키는 세계 최고 레벨이자 1부 리그 격인 '톱 디비전(16개국 참가)'부터 디비전1 A그룹(6개국)과 B그룹(6개국), 디비전2 A그룹(6개국)과 B그룹(6개국), 디비전3 그룹(7개국)까지 총 6부 리그로 나누어 대회를 각각 따로 연다.

여자 아이스하키도 톱 디비전(8개국)부터 디비전1 A그룹(6개국)과 B그룹(6개국), 디비전2 A그룹(6개국)과 B그룹(6개국)까지 총 5부 리그로 나뉘어 대회를 펼친다.

단일팀이 평창올림픽에서 상대하는 스웨덴은 2002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동메달, 2006 토리노 올림픽 은메달, 2010 밴쿠버와 2014 소치 올림픽에서 연속 4위를 차지했다. 스위스도 소치 올림픽에서 스웨덴을 4-3으로 꺾고 동메달을 획득했다.

단일팀이 1승 상대로 꼽고 있는 일본도 만만치 않다. 일본은 험난한 올림픽 예선전에서 유럽 강호들을 모두 물리치고 본선 출전권을 획득했다. 또한 지난해 세계선수권 2부 리그에서 5전 전승을 거두며,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1부 리그로 승격했다. 평창올림픽에서도 메달을 목표로 할 정도로 세계적 수준의 실력을 갖추었다.

한국 급성장·분위기 최고·홈팀 이점 '이변 기대'

​그러나 한국 아이스하키도 최근 몇 년 동안 눈부신 성장세를 거듭했다. 남자 아이스하키는 지난해 4월 우크라이나에서 열린 2017 세계선수권 대회 2부 리그(디비전1 A그룹)에서 3승 1패로 준우승을 차지하며, 사상 최초로 세계 최고 레벨인 1부 리그(톱 디비전)로 승격하는 감격의 드라마를 썼다. 특히 아시아 국가 중에 유일하게 한국만 1부 리그로 진입해 의미가 더욱 컸다.

그에 따라 한국 남자 대표팀은 올해 5월 캐나다, 러시아, 미국 등 세계 16강이 겨루는 2018 세계선수권 1부 리그(덴마크)에 출전한다. 남자 아이스하키는 실력적으로도 올림픽에 나설 자격을 어느 정도 갖췄음을 입증한 것이다.

여자 아이스하키도 최근 몇 년 사이에 급성장했다. 2013년 세계선수권 5부 리그에서 우승하면서 4부 리그로 올라갔고, 4년 만인 지난해에는 3부 리그로 승격했다.

특히 지난해 4월 강원도 강릉에서 열린 2017 세계선수권 대회 4부 리그(디비전2 A그룹)에서 5전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3부 리그(디비전1 B그룹)로 승격했다. 이는 여자 대표팀이 2004년 세계선수권에 첫 출전한 이후 사상 최고 성적이다. 북한은 이 대회 4위에 그쳐 승격에 실패했다.

박종아, 단일팀 첫 골!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박종아 선수가 4일 인천 선학국제빙상장에서 열린  스웨덴과의 평가전에서 골을 성공시키고 있다.

▲ 박종아, 단일팀 첫 골!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박종아 선수가 지난 4일 인천 선학국제빙상장에서 열린 스웨덴과의 평가전에서 골을 성공시키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한국 여자 대표팀은 오는 4월 열리는 2018 세계선수권에서 3부 리그(이탈리아)에 출전하고, 북한은 4부 리그(슬로베니아)에서 경기를 펼친다.

한국 아이스하키의 짧은 역사와 열악한 저변을 감안하면, 남녀 모두 기적과 같은 성과다. '비인기 종목'이라는 설움과 수많은 시행착오를 딛고 거둔 결과라 더욱 값지다.

특히 단일팀은 지난 4일 스웨덴과 평가전 이후 전문가와 언론 등으로부터 경기력과 조직력, 팀 분위기가 '생각보다 좋다'는 호평이 줄을 잇고 있다.

지금의 좋은 분위기와 여세를 몰아 올림픽 특수성과 홈팀의 이점까지 십분 활용하면, 단일팀이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기적의 드라마'를 쓰지 말라는 법도 없다. 올림픽에서는 세계랭킹도 중요하지만, 이변도 많이 일어나는 무대이다.

설사 6강 진출에 실패해도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가 국제무대에서 한 단계 올라서는 계기가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세계 정상급 팀들과 올림픽 무대에서 직접 겨뤄 내용 있는 경기를 펼친다면, 그 자체로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국제경쟁력 향상에 큰 모멘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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