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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성균관대학교 호암관에 위치한 이국영 교수의 연구실에서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정년퇴임을 목전에 둔 이 교수는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인터뷰를 위해 반나절의 긴 시간을 할애했다.
 지난 3일 성균관대학교 호암관에 위치한 이국영 교수의 연구실에서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정년퇴임을 목전에 둔 이 교수는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인터뷰를 위해 반나절의 긴 시간을 할애했다.
ⓒ 서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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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 형태를 두고 여야 간 견해 차이가 크다. 야권은 여당의 대통령 중임제 개헌안에 대해 정권연장용이라고 비판했다.
"여당의 중임제 개헌에 대하여 정권연장의 술수라고 지적했던 것은 이해가 안 간다. 헌법 제128조 제2항에서 '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한 헌법 개정은 그 헌법 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 라고 규정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중임제 개헌을 추진해도 대통령을 재임할 수가 없다. 이런 조항을 알고도 그런 비판을 하는지 의문스럽다. 알고도 그렇다면 야당이 문대통령과 여당의 높은 지지도에 주눅이 너무 들지 않았나 싶다. 지지도의 고공행진이 흔들리기도 했고, 조만간 하향추세가 나타날 수도 있다. 또 차기 대선에서 누가 여당의 대선후보가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정권연장을 벌써부터 우려한다면 야당은 정말 패배주의에 젖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 그러면 현행 대통령제에서 단임 조항만 수정하면 되는가.
"대통령제가 지속된다면 단임 조항은 수정되어야 한다. 제3차 민주화 물결 이후 한국과 같은 신생민주주의 국가가 장기적인 1인 독재를 경험했기 때문에 단임 대통령제로 개헌을 한 경우가 많았지만, 이후 단임제의 결점 때문에 중임제로 개헌한 사례도 드물지 않다. 물론 오로지 중임제로만 수정해서는 안 된다. 탄핵정국의 정치위기에서 지금 여당인 민주당 지도부가 '거국중립내각, '대통령의 2선 후퇴', '책임총리' 같은 애매모호한 용어를 남발해서 위기 상황을 더욱 가중시켰다.

그 원인은 헌법에 총리와 국무회의의 위상이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헌법에서 국무회의는 심의기관으로 되어 있지만, 전 정부에서는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쓰는 필기회의에 불과했다. 현 정부에서도 총리와 국무회의의 위상이 얼마나 향상되었나. 과거나 마찬가지로 지금도 헌법에 없는 청와대수석보좌관회의가 더 중요한 정책결정을 한다는 지적도 있다. 따라서 국무회의는 심의기관이 아니라 의결기관이 되어야 한다. 또한 대통령에게 집중된 인사권, 특히 사법부에 대한 임명권이 제한되어야 사법부의 독립성이 보장될 수 있을 것이다."
 
- 국무회의가 의결기관이 된다면 의원내각제처럼 내각회의가 되는 건가?

"좋은 질문이다. 현재 여야가 정부형태의 유형인 대통령제·분권형 대통령제·의원내각제를 두고 왈가왈부하고 있는데, 우선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차이를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대통령제의 정부수반(首班)은 대통령이고, 의원내각제는 수상이다. 양자를 구분하는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의원내각제의 경우 의회가 정부수반의 해임권을 가지고 있고, 반면에 정부수반은 의회해산권을 가지고 있다. 대통령제의 경우 의회는 정부수반의 해임권이 없지만, 대통령도 의회해산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양자의 혼합형태인 분권형 대통령제에서는 일반적으로 의회는 총리의 해임권을 가지고 있지만 대통령의 해임권은 없다. 그러나 대통령이 의회해산권을 가지고 있는 국가도 있다. 이런 근본적인 차이점을 고려하여 국제학계의 일부에서는 한국을 이미 분권형 대통령제로 분류하고 있다. 이런 견해는 아마도 헌법에서 대통령과 총리의 권한이 외견상 부분적으로 분산되어 있고, 국회가 총리를 불신임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는 것 같다.

여하튼 국무회의 및 내각회의가 어떤 위상을 가지는가는 정부형태의 분류에서 부차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대통령제가 유지되면서 국무위원회의 위상을 격상시키는 수정도 가능할 것이다. 내각회의도 매번 의결을 하는 것은 아니고 주요 안건에 관해서만 의결을 한다."

- 분권형 대통령제는 대통령과 총리가 각각 안보·외교와 내치의 권한을 분담하기 때문에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 강하다.
"한국에서 거론되는 분권형 대통령제가 주로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경우인데, 개념의 혼란이 없어야 정부형태를 둘러싼 분쟁이 완화될 것이다. 순수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적 요소가 혼합된 정부형태에 대하여 정치권과 언론계에서는 분권형 대통령·이원집정제, 학계에서는 준대통령제로 부르고 있다.

하지만 각국의 실제 정치에서 작동되는 혼합정부형태는 이념형적 유형(대통령제-이원집정제=분권형 대통령제-의원내각제)으로 분명히 분류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여하튼 프랑스는 여소야대인 경우 이른바 '동거정부'가 구성되기 때문에 대통령과 총리의 권한이 실제로 분산된다. 그러나 한국과 다른 중대한 전제가 있다. 프랑스는 안보·외교정책에서 정당 간에 기본적인 합의가 있었다.

한국은 그런 기본적인 합의가 결여되어 있다. 지금 상황처럼 안보위기가 재연되고 확대되는 상황에서 대통령과 총리가 전혀 다른 이념을 가진 정당 출신으로 구성되면 어떤 상황이 오겠는가? 대통령은 문재인이고 총리가 제1야당 대표인 홍준표라면 어떻게 되겠는가? 항공모함이 마식령으로 올라갈 것이다. 또한 프랑스처럼 대통령이 국회해산권을 가지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추진한다면, 국민은 찬성하겠지만 아마도 야당은 질겁할 것이다.

국회가 혼합정부형태를 선택한다면 오스트리아 유형이 낫다. 오스트리아도 직선제로 대통령을 선출하지만, 대통령이 전통과 관례에 따라 자기 권한을 거의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의원내각제에 가깝다."

- 의원내각제는 어떤가?
"정치학자의 다수가 의원내각제를 선호한다는 여론조사도 있었다. 개인적 소견으로는 지난 2016년 6월 28일자 <오마이뉴스> 인터뷰(관련기사 : "박근혜 대통령, '긴급명령' 고려할 수도 있다") 에서 말했듯이, 의원내각제는 비례대표제의 강화가 아닌, 완전한 비례대표의 원칙에 따른 선거제도와 연계되어야 한다. 그러나 국민이 유신정권과 5공 정권의 악몽 때문에 대통령의 직선제를 선호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처럼 대통령을 직선으로 선출하되, 국정은 실질적으로 의원내각제로 운영하는 방식도 고려해 볼만하다. 의원내각제인 독일과 일본에서 한때 거론되었지만 성사되지 않은 수상의 국민 직선제도 가능하다."

-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를 연계할 다른 방안은 없는가?
"국회에서 현재 논란이 많은 정부형태의 유형은 사실상 1960년대 이전의 고전적 정부형태론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1990년대부터 국제학계는 '대통령제의 의원내각제화'에 주목하고 있다. 원래 순수한 대통제는 미국에서만 제대로 작동되었고, 1980년대 이전에 대통령제가 자유민주주의적으로 작동한 국가는 미국 이외에는 없었다. 그래서 중남미 국가가 민주화 이후 민주적 대통령제로 개헌을 했지만 국제 학계는 민주주의가 유지될지에 대해서는 비관적이었다. 현재 상황은 베네수엘라 같은 몇몇 국가를 제외하고는 민주적 대통령제가 유지되고 있다.

중남미에서 문제가 많았던 대통령제가 유지될 수 있었던 원인은 대통령제가 현실에 맞게 진화했기 때문이었다. 독일 학계는 이러한 새로운 유형의 대통령제를 '연정 대통령제'라고 부른다. 연정이란 연립정부의 준말이기 때문에 정확히 표현하면 연립정부형 대통령제이다. 연정은 완전한 비례대표제와 연계된 의원내각제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정부형태이다. 핵심은 연정이 대통령제에서도 가능하고, 연정이 일반화되어야 협치가 실질적으로 가능해지고 대통령의 권력집중도 억제될 수 있다."

- 한국에도 가능할까?
"정치권과 언론계는 이구동성으로 협치와 권력분산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다소간의 수정에 의해 현행 (중임)대통령제를 유지하는 개헌을 하더라도, 실제로 대통령의 권력집중이 완화될지는 의문이다. 헌법규범과 헌법 실제는 다르다. 현행 헌법처럼 권력을 규범적으로 분산시켜 놓아도 현실에서는 잘 작동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분산될 수 있는 제도가 요청된다. 그렇기 때문에 여야가 정부형태를 합의하더라도 완전한 선거의 비례대표원칙이 규정되지 않으면 협치와 다당제에 의한 연정은 불가능할 것이다. 여야는 고전적인 정부형태론에 집착한 소모적인 대립에서 벗어나 협치와 권력분산이 실질적으로 가능한 진화된 정부형태에 합의해야 한다."

- 자유한국당이 선거의 비례대표원칙에 반대하고 있지 않나.
"자유한국당의 현재 지지율이 지방선거나 차기 총선에서 2배 이상 되어야 민주당과 겨룰 수가 있지만, 현재 분위기를 보면 그런 대반전이 가능할지는 의문스럽다. 더구나 통합신당인 미래당과 자유한국당 사이에 치열한 지지율 경쟁이 예상되는데, 그런 경쟁은 현 선거제도에서는 여당인 민주당에게 유리하다. 자유한국당이 여당에 의해 괴멸되기보다는 오히려 자멸할 수도 있다.

역설적으로 우려되는 바는 오히려 민주당이 지금 지지율 우세를 고려하여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자유한국당 반대의 구실로 포기하는 것이다. 이미 민주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에 소극적이라는 언론보도도 나왔다. 물론 정치 도의상 그런 배신행위를 실제로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도 선거의 비례대표원칙에 따르는 하나의 유형이다. 아직도 일부 언론에서는 독일에서 비례대표제로 선출되는 의원이 전체 의석의 절반이라고 오해를 하고 있는데, 그런 기사를 쓰는 기자는 공부를 더 해야 한다."

- 만약 2월내에 국회가 개헌 합의를 못하면 대통령이 직접 개헌 발의를 하는 것은 어떻게 보나.
"국회가 합의를 못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반드시 개헌 발의를 해야 한다. 개헌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 때문에 발의를 안 하면 공약(空約)이 되어 버린다. 적폐청산도 중요하지만 공약의 공약화가 다반사가 되어 버렸던 구태정치는 정말 근절되어야 한다. 대통령의 발의안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삭제나 수정을 시도하거나, 중임대통령제만을 골자로 개헌 발의를 하면 국회에서 가결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런 정치적 실패를 자초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이나 여당의 지지도에 자신감을 가진다면, 과감하게 의원내각제 + 선거의 비례대표제원칙을 묶어서 개헌 발의를 하거나, 아니면 오스트리아 유형의 혼합정부형태를 중심으로 제안하면 야당도 별로 반대할 명분이 없을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연정 대통령제도 마찬가지이다. 발전된 현대의 정부형태론적 관점에서 보면 여야의 정부형태론 분쟁은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

대통령의 개헌 발의안에는 물론 헌법 조항의 중대한 결함 사항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그런 사항들을 일거에 수정하려는 시도는 정치적으로 관철되기 어렵게 되기 때문에 합의가 될 수 있는 부분을 이번 개헌으로 조정하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 될 수도 있다. 개헌을 둘러싼 소모적 논쟁을 넘어서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서 개헌을 자주 한다고 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인터뷰 ①] "이번과 같은 개헌 기회, 쉽게 오지 않는다"


태그:#비례대표제, #선거제도, #문재인정부, #대통령 중임제, #권력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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