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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방송을 통해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폭로를 처음 접했을 때 두가지 생각에서 착잡했다. 상위 1%의 권력을 쥔 검사가 성희롱을 당했다는 점, 그리고 더 큰 힘에 의해 은폐되었다는 사실 앞에서 검사도 저럴진대 보통사람들이 억울함을 호소하고 구제 받는 일이 얼마나 어렵겠느냐는 암담함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최고의 수재들만 모였다는 검찰 조직에서 수도 없이 검찰 개혁안을 내놓았지만 단 한번도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다는 점, 그래서 이번 폭로 파문도 찻잔속에 태풍으로 그치고 말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그것이었다.

서지현 검사의 용기 있는 폭로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고발은 국회의원, 대학교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감춰 놓고 말하지 못했던 성폭력, 성희롱 피해를 고발하는 미투(#MeToo)운동에 동참함으로써 여성인권과 성범죄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재계로 확산되는 미투 운동은 관습적이고 반복적으로 이뤄지던 성희롱 문화를 고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의미 또한 크다. 서 검사의 폭로와 미투 운동 이후 우리 사회가 자성과 자정의 시간을 거친다면 지금보다는 나은 미래가 될 것이라는 희망도 없지 않다.

'여성 배려' 강조한 안태근·썩은 과일 도려 내겠다던 최교일

'여성에 대한 배려는 비단 회식 등 일상생활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아직은 소수이고 약자인 여성 법조인이 미래 한국의 법원, 검찰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열린 마음으로 '유리천장'을 없애는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 

창원지검 통영지청 소속 서지현 검사가 강제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해 의혹을 받는 안태근 전 법무부 정책기획단장. 사진은 대구고검 차장검사 시절 모습.
 창원지검 통영지청 소속 서지현 검사가 강제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해 의혹을 받는 안태근 전 법무부 정책기획단장. 사진은 대구고검 차장검사 시절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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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현 검사가 성추행 당사자로 지목한 안태근 전 검찰국장은 2011년 7월 18일 법률신문에 '외통부 남자화장실 실종사건' 이라는 칼럼을 써서 여성법조인에 대해 배려를 주장한다. 늘어나는 법조인이 많아지는데 여자화장실을 늘리는데 그칠게 아니라, 여성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법원, 검찰의 남성 위주의 유리천장을 열린마음으로 거두자는 게 글의 요지다. 서지현 검사가 폭로한 장례식장 성추행이 2010년 10월에 일이였으니, 9개월 후 쯤 쓴 글이다. 성추행의 피해자로서 괴로운 시간을 보냈을 서지현 검사가 이 칼럼을 보았다면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상상조차 잔인한 일이다.

'내가 자네를 이렇게 하면 그게 추행인가? 격려지. 피해자가 가만히 있는데 왜 들쑤셔'라며 임은정 검사를 호통치며 사건을 은폐한 이로 지목된 자유한국당 최교일 의원은 2011년 8월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취임사에서 "과일의 상한 부위를 그냥 놔두면 과일 전체가 썩고 옆 과일까지도 썩게 된다"며 스스로 잘못에 관용을 베풀기보다 가혹한 감찰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나 도려지고 내쳐진 것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였다. 예전 성추행 삼진아웃제 시행으로 성범죄의 강력한 처벌을 추진했던 최교일 의원. 안태근 검사의 성추행을 덮은 것은 제 식구 감싸기가 아니면 해명되지 않는 일이다.

검찰이 성범죄로 비난의 대상은 되었던 것만해도 한두번이 아니다. 2010년 4월 MBC PD수첩은 부산 건설업자의 스폰서 검사 성접대 의혹을 폭로했다. 전현직 57명의 검사가 연루되었지만 기소된 4명 외에는 모두 내사종결·무혐의처분됐다. 2012년에는 법무부 출입기자들과 회식 자리에서 여 기자들을 성추행한 최재호 부장검사에게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2013년에는 김학의 법무부차관이 별장 성접대 영상으로 취임 6일만에 낙마했다. 검찰은 5개월의 수사 끝에 무혐의 처리했다.

2014년에는 이진한 검사가 성추행 혐의에도 불구하고 대구지검 서부지청장에 임명되어 논란이 일었다. 같은 해 김수창 제주지검장이 대로변에서 음란행위를 하다가 틀통나 망신을 자초한 일도 있었다. 2015년 3월에는 부장검사가 회식자리에서 후배 여검사를 아이스크림에 빗대는 성희롱 발언으로 사직했고, 6월에는 부장검사가 후배 여검사의 손등에 입을 맞춘 사건이 회자되었다. 검사가 가해자가 된 성범죄 사건이 해마다 일어났고 검찰은 그 때마다 무혐의로 처리하거나 은폐하고 축소했다. 반복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키워왔던 셈이다.

'섹검'만 바로잡겠다고?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검찰 로고 .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검찰 로고 .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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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검찰의 허물에서 성희롱·성추행 사건은 일부분일 뿐이다. '떡검'이라고 놀림받는 이유도 '견검'이라고 조롱당하는 이유도 직접적인 성추문과는 관련이 없다. 2005년 7월 MBC에 의해 삼성이 검찰 간부들에게 거액의 떡값을 전달해 왔다는 사실이 발혀지면서 '떡검'이 기업에 편의를 봐주고 뒷돈을 받는 검찰의 줄임말 정도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13년이 지났지만 검찰은 부끄러운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 오히려 스폰서 검사, 벤츠 검사 등 부적절한 대가를 챙긴 검사들의 사건이 더해져 '떡검'은 비리검찰의 대명사처럼 불리게 되었다.

입에 올리기도 민망한 '견검'이라는 별명도 있다. 검찰이 정권의 사냥개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는 국민들의 생각이 반영된 검찰의 또다른 오명이다. 되집어보면 검찰은 유신시대부터 지금까지 정의를 수호한 것이 아니라 정권을 수호하면서, 힘을 얻어 스스로의 꽃길을 만들어 왔다. 죽은 권력은 가차없이 물어 뜯었고, 살아있는 권력 앞에서는 꼬리를 흔드는 애완견에 불과했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 과정에서 우병우 민정수석의 하수인으로 전락했던 검찰은 역사와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공동정범이나 다름없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 이후 검찰이 분주하다. 검찰 내에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을 꾸리고 2월 4일 서검사를 피해자 및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셀프 조사라는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 민간인이 주도하는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을 위한 조사위원회'를 구성해서 검찰 조사단의 상위기구로 두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법무부는 검찰과 별개로 '성희롱·성범죄대책위원회'를 꾸리고 권인숙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을 위원장으로 위촉했다.

발빠른 대응과 민간이 참여하는 대책위원회 구성. 이번에는 변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없지 않다. 하지만 검찰 조사단장을 맡은 조희진 검사장이 과거 임은정 검사의 성폭력 폭로에 대해 폭언과 막말로 무마했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검찰의 개혁의지를 의심케하는 일들도 생겨나고 있다. 수없이 반성하고 개혁을 다짐했던 검찰조직의 성희롱과 성추행 사건들이 다시 반복되고 되돌려진 이유는 칼을 쥔 쪽조차도 제식구 감싸기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떡검' '견검'이라는 꼬리표를 못떼는 검찰이 '섹검'이라는 오명 하나 바로 잡는다고해서 하루아침에 정의의 수호자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우스운 이야기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 내용은 충격적이다. 그러나 지난 10여년만 되집어 보더라도 이 사건보다 더 큰 충격으로 국민을 몰아넣은 사건도 한둘이 아니다. 그때마다 대책위를 꾸렸고 민간의 참여를 유도해 거듭나는 검찰이 되겠다고 했다. 그러나 '섹검' '떡검' '견검'이라는 꼬리표 중 단 하나도 떼지 못했다. 스스로의 개혁을 장담할 수 없는 권력기관, 정권과 국민 모두가 나서지 않으면 검찰은 제살이 아니라 손톱 하나도 제대로 잘라내지 못한다. 

검찰은 대체 불가하다. 가전제품이야 마음에 안들면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있지만 우리 검찰이 마음에 차지 않는다고 미국이나 일본의 검찰에게 검찰의 소임을 맡길 수는 없는 일이다. 섹검, 떡검, 견검이라고 불리는 검찰이 있는 나라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국민이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가 단지 '섹검' 이라는 오명 지우기로 끝나서는 안된다. 검찰을 정의의 수호자, 국민의 대변자로 바꾸려면 촛불로 적폐정권을 몰아낸 열정과 끈기가 필요하다. 정권이 나서고, 국회도 나서고, 국민 모두가 나서야 한다.


태그:#서지현 검사, #검찰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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