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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은 한국교회 세습 문제가 사회를 시끄럽게 했다. 한국 최대 규모의 장로교회 중 하나인 명성교회 세습 문제는 개신교 언론뿐 아니라, jtbc와 같은 언론들에서도 연일 보도가 됐다. 명성교회의 세습 반대는 신학대학원생, 원로 목사들까지 나섰다. 그러나 명성교회는 세습 반대파의 의견을 묵살했다. '교회 내 여론'을 통해 세습방지법까지 편법으로 어겨가면서 명성교회는 세습을 강행했다. 그렇다면 왜 여기에 주목해야 하는가?

명성교회 세습 인터뷰 명성교회 세습에 대한 <Jtbc> 뉴스룸 인터뷰 장면 캡쳐
▲ 명성교회 세습 인터뷰 명성교회 세습에 대한 <Jtbc> 뉴스룸 인터뷰 장면 캡쳐
ⓒ JTBC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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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에도 세습은 존재했었다

한국교회의 세습이 시작된 것은 1960년대부터였다. 설훈 목사의 박사학위 논문에 따르면, 공식 문서 상에서 개신교 교회에서 세습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60년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쟁점이 되지 않았다. 이때는 교회 역시도 가계를 물려받는 정도로 여겨졌었다. 교회개혁실천연대 자료를 보면, 1970년대 이래 모두 131개 교회가 가족 세습을 했다. 대표적인 사례로서는 도림교회가 1973년에 유병관 목사를 후임으로 아들 유의웅 목사를 청빙했었다. 1980년대에도 간혹 있기는 했지만, 세습에 대해서 문제로 삼지는 않는 분위기였었다.

1960~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세습이 문제가 될 리 없는 것이었었다. 1960년대의 목사 아들이 목사가 되는 것은 부모의 직업을 그대로 물려받은, 즉 '가업을 이어받은 경우'가 상당수였었다. 결정적으로 1970년대까지 목회자가 교회를 물려받는 것이 과거에는 '가난'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목회자는 실제로 상당히 가난한 직업이었다. 목회자는 '사명감'을 가져야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1970년대의 목회자가 해왔던 일들과 현재는 다른 수준이었다. 이 때문에 사회적으로 1960년대~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교회를 물려받는 것은 오히려 강한 각오를 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2001년, 광림교회로부터 생긴 일

한국 개신교에서 세습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외환위기를 전후로 해서부터였었다. 외환위기 이후 특히 1997년에 충현교회에서 큰 문제가 한 번 터졌었다. 성도 3만 명의 충현교회는 1997년에 김창인 목사의 아들 김성관 목사가 제4대 담임목사로 청빙되면서 교회 분쟁이 생겼다. 청빙 과정에서 불법 문제가 불거졌으나, 충현교회의 성도가 급감함으로써 문제가 마무리됐다. 신현균 목사(성민교회)와 오관석 목사(서울중앙침례교회)가 교회를 물려줬지만, 사회적으로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직접적인 문제가 된 것은 2001년 광림교회에서부터였었다. 광림교회의 일부 신자들이 교회에 대해서 직접적인 반대 의견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이 기독교언론과 시민단체들이 연대하게 되면서 세습이 본격적인 쟁점이 되기 시작했다. 특히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들에 대해서 한국사회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반발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한국 사회에서 세습 문제에 민감해진 부분이 있다면, 재벌세습에 대한 부분과 북한의 세습에 대한 여론이었다. 광림교회 세습 반대를 이후로 하여서 세습은 큰 문제들이 되었다. 2000년대의 대형교회의 세습이 이어지면서, 2010년대에는 개신교 교단들이 세습방지법을 제정하였다.

세습, 지금에 와서 무엇이 문제인가?

교회 역시 세습 시에 엄청난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는 집단이다. 한국교회는 대형화되고, 기업화되었다. 1980년대 이후 한국교회의 급성장은 교회의 대형화를 가지고 왔었다. 한국교회는 1980년대 이후부터는 양적으로 급성장을 이루어 냈다. 양적인 성장이 이루어짐에 따라서 교회는 하나의 '기업'으로까지 성장하였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게 남편 직업감 순위 10위에 목사가 올랐던 점이다. 목사의 아내는 명예뿐 아니라 경제적인 윤택함도 누릴 수 있는 자리로서 부상했던 것이다.

기독교계의 세습은 단순히 교회를 물려주는 형태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기독교계의 세습은 단순히 교회를 물려주는 형태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단체를 물려주거나, 패러처치(parachurch- 범교회 교단)나 기업의 형태를 물려주기도 한다. 기독교 단체인 CCC의 김준곤 목사는 사위인 박상민 목사에게 단체를 물려줬다. 기독교계 기업을 물려준 것은 조용기 목사의 사례가 있다. 조용기 목사는 <국민일보>를 아들(조희준, 조민제)에게 물려주었다. 종교의 지위를 물려주는 세습은 이렇게 행하여지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세습의 문제는 무엇일까. 우선 신학적인 측면에서는 교회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사유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단순히 이러한 측면은 비기독교인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 아니다. 세습이 가지고 있는 문제, 즉 사회적으로 '부의 대물림', '지위의 대물림' 등의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다시금 고민하기 위해서다. 교회에 대한 세습을 반대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금수저, 흙수저' 논란 등의 절망감이 청년 세대를 아프게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습'은 심각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지위가 평생을 간다는 절망감이 사회 전반에 걸쳐서 나오고 있다. 귀속신분에 대해서 나오는 탄식이 사회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교회 세습을 극복하는 과정은 '귀속신분 절망사회'를 극복하는 데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 한국 사회 발전과 함께했던 조직인 교회에서 엿볼 수 있는 악질적 문화 중 하나는 세습이다. 교회 세습의 부작용은 사회적으로 그대로 적용이 된다. 귀속신분이 평생을 결정한다는 사회적 절망감, 그리고 기회를 박탈하는 엇나간 문화가 교회 안에 담겨 있다. 이는 한국사회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를 극복하는 과정이 우리 사회가 가진 악습을 극복하는 과정일 수 있다.

사회적 압력, '계란으로 바위 치기'만은 아니다.

한국교회의 세습을 쟁점화시킨 주요한 주체 중 하나는 시민사회였다. 세습 문제의 핵심이 됐던 2001년 광림교회 세습 사건 때에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기독시민사회연대 등 10여 개 기독교계 민간단체들이 광림교회의 세습을 쟁점화시켰다. 외환위기 이후는 시민사회가 성장했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시민사회의 부상은 이러한 사회적인 문제를 여론화시키는 데 있어서 기여를 했다. 

개신교의 시민사회 운동은 크게 두 가지 분파로 나뉘어서 진행이 되었다. 첫 번째는 급진주의적인 분파고, 두 번째는 온건한 복음주의 계파다. 급진주의 계파는 민중운동, 마르크스 운동 등의 운동방식을 수용을 했다. 온건한 복음주의 계파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경제정의실천연합 등의 시민단체를 설립하여서 운동을 진행하게 된다. 온건한 사회참여 운동 내에서 발생한 시민운동은 사회의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이렇게 성장한 기독교시민단체들은 사회 전반에 걸쳐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이중에서도 복음주의 계파에 속한 단체가 기독교윤리실천위원회와 경제정의실천연합이다. 복음주의 계파에 속한 단체들은 재벌과 교회 세습 반대 운동 등을 진행하게 된다.

이 측면에서 고민해봐야 한다. '반대 측의 여론화가 과연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하는 회의감만을 가질 게 아니다.  한 이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계란으로 바위 치기'인 것만은 아니다. 점진적이긴 해도, 교회는 변화하고 있다. 2000년대 세습방지 운동의 결과로서 2010년대의 교단들이 하나씩 세습방지법을 제정하였다. 교회는 상당히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집단이다. 사회 이슈가 반영되기 어려운 폐쇄적인 곳이다. 그런 교회에서조차 사회적으로는 이슈가 못됐던 개신교회의 문제가 사회적 여론으로서 문제가 됐다. 부와 명예를 그대로 '그대로 세습하는' 엇나간 관습을 극복하는 데 교회 세습방지 운동은 그 실마리를 제기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교회 세습에 관심가져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움을 얻은 글

강영안. 2013. '한국교회와 교회세습'.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 발표자료
강인철. 2012. '개신교 지형: 보수헤게모니 확장' <민주화와 종교>. 한신대학교 출판부

설 훈. 2017. '한국 개신교회의 종교권력과 교회세습에 대한 비판적 고찰'. 성공회  대학교 대학원 신학과 박사학위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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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간 공공정책, 종교 등을 주제로 글을 써왔습니다. 청년모임 배움품앗이에 참여하고 있고, <한국교회 청년이 떠나고 있다>의 공저자로 글을 한 편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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