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네자키는 스스로 범인임을 밝히고 피해 유족을 찾아간다.

소네자키는 스스로 범인임을 밝히고 피해 유족을 찾아간다. ⓒ ㈜비에이엔터테인먼트


영화 <22년 후의 고백>은 범인이 나타나 스스로 "내가 바로 살인자다"라고 밝히고 시작하는 드라마라는 점에서 보통의 범죄물을 넘어서려는 시도를 한다. 그간의 범죄물은 사건이 일어나고 범인을 추적하는 스토리로 전개됐다. 범인이 이미 특정된 색다른 설정에서는 어떻게 이야기가 동력을 얻어 발전할지, 결국 감독은 어떤 통찰과 메시지를 전하려는지 관객이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소네자키(후지와라 타츠야)는 대담하게 책을 쓰고 출판기념회를 열어 1995년 몇 달간 일어났던 '도쿄 연쇄교살 사건'의 범인이 자신이라고 밝힌다. 소네자키의 말투와 행동은 죄책감과 두려움을 모르는 사이코패스 그 자체다. 당시 범인을 잡지 못하고 상관만 잃었던 수사관 마키무라(이토 히데아키)는 다시 사건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소네자키의 행동에 유족들은 분노하며 슬픔과 무력감에 잠긴다. 스타 기자 센도(나카무라 토오루)는 자신이 진행하는 뉴스쇼에 소네자키를 출연시키려 한다.

그는 프리랜서 기자였던 시절부터 사건을 추적해왔고, 자신의 대사처럼 이 사건의 취재와 보도를 통해 명성을 얻었다. 밀착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 되고, 전쟁 르포를 출판하고, 유명 뉴스쇼의 진행자가 될 정도로 성공했다.      

이렇게 영화는 시작부터 살인범을 드러낸 뒤, 그를 중심으로 수사관과 기자, 피해 유족을 등장시켜 사건을 전개해 나간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은 이미 공소시효가 끝나버린 살인사건 앞에 '법치'와 '사적 복수' 사이에서 갈등한다. 5명이나 죽이고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자신의 유명세에만 집착하는 살인마를 사적으로 처단하고자 하는 욕구는 피해자에겐 당연한 감정일 수 있다. 감독은 관객을 이야기 속으로 깊숙이 개입시키며 과연 이 사건에서 사적 처단과 법정주의 중 무엇이 옳은지 끊임없이 묻는다. 그만큼 영화는 감상자의 호기심과 관심을 단단히 붙들어 놓는다는 점에서 성공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반전부터 선정적인 저널리즘에 대한 비판까지

 경찰 수사관 마키무라와 연쇄살인범 소네자키는 TV 생방송 뉴스쇼에 동반 출연한다.

경찰 수사관 마키무라와 연쇄살인범 소네자키는 TV 생방송 뉴스쇼에 동반 출연한다. ⓒ ㈜비에이엔터테인먼트


이 영화는 스릴러 범죄물이라는 점에서 나름의 '반전'이 마련돼 있는데, 누군가에겐 놀라운 반전일 수 있지만 또다른 누군가에겐 예측 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특히 한국 원작이 따로 있기에 관객의 흥미는 덜할 수 있다(국내 원작에서 설정만 빌려왔을 뿐 전개와 캐릭터는 사뭇 다른 것 같다).

하지만 반전 자체보다는 영화란 원래 상투적이지 않은 전개과정이 더 중요하다. 원인과 결과(인과성)에 따라 정교하게 나열되는 정보와 사실들의 탄탄한 구성, 그에 따른 개연성과 설득력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이 영화도 이야기가 진전될수록 양파껍질을 까듯 하나하나 교묘한 사실이 드러나고 중요한 정보들이 나열되면서 스토리를 잘 직조해 나간다. 억지스럽다는 느낌은 별로 없다.

특히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떠오르는 몇몇 장면이 있다. 살인범과 형사가 직접 맞닥뜨리는 TV 생방송 뉴스쇼 장면이라든가, 주인공들이 다시 한 번 모이는 후반부의 별장 장면 등이 그것이다. 그만큼 인상적이고 잘 조율됐다. 이리에 유 감독은 넓은 프레임을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 무엇을 넣고 뺄지 잘 아는 능력 있는 연출자다. 이 영화의 화면들은 장면마다 꽉 차 있고, 허술하다거나 비어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또 영화에는 방송용 카메라나 포터블 카메라, CCTV 화면을 통해 대상물을 보여주는 장면이 특히 많다. 또다른 화면을 통해 피사체를 한 번 더 걸러서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생중계' 혹은 조작 없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공개'한다는 의미를 갖는 것 같다. 진실보다 외피에 집착하는 선정적인 저널리즘에 대한 비판으로도 읽힌다.

이해할 수 없는 사이코패스의 내면, 단순하게 표현한 영화

 도쿄 연쇄교살 사건의 범인 소네자키는 화려한 출판기념 기자회견을 연다.

도쿄 연쇄교살 사건의 범인 소네자키는 화려한 출판기념 기자회견을 연다. ⓒ ㈜비에이엔터테인먼트


언제부턴가 문학과 영화 등에서 사이코패스의 연쇄 살인을 많이 다루고 있다. 실제로 19세기 말부터 현실 사회에 연쇄 살인이 등장했고, 그동안 수많은 학자와 예술가들이 연쇄살인마의 심리를 연구하고 분석해왔다. 하지만 살인자의 내면은 그 어떤 이론이나 심리학 분석으로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많은 이론과 가설이 있지만, 그것들은 살인의 심리를 부분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언정 전체를 완전히 드러내주진 못했다. 그렇게 연쇄 살인은 현대사회의 악몽으로 자리잡았다.

이 영화에도 살인을 저지르는 사이코패스가 등장한다. 그런데 사이코패스의 내면과 행동을 비교적 어렵지 않게 관객에게 설명한다. 대중 영화에선 뭐든 쉽고 명료하게 설명하는 편이 좋지만, 너무 단순한 도식화가 아닌가 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과연 그러한 트라우마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의심하는 이들도 있을 듯하다.        

국내에서 비교적 자주 만들어지는 장르가 스릴러물이다. '미스터리'나 '서스펜스' 기법을 가미해 해마다 비교적 많은 수의 스릴러물이 제작되는데, 완성도가 낮고 스토리가 허술한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런 가운데 국내에서 공들인 '노작'이 일본에서 리메이크된 예는 많지 않은 것 같다. 박시후·정진영이 주연한 원작 <내가 살인범이다>(2012)를 본 관객이라면 양 작품을 비교해가며 더 재밌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연쇄살인 공소시효 사이코패스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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