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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아홉 가지를 잘 하고 술 하나 때문에 잘 한 것이 다 소용 없어져요."

아내가 한 말이다.

"엄마, 아빠랑 이혼하면 안 돼?"

아이가 한 말이다.

"영이 저거는 죽는 게 더 나아."

돌아가신 아버지의 말이다.

술을 마시면서 이 정도로 가족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줄 몰랐다. 술을 마시고 폭력을 휘두른 적도 없고 취하면 조용히 잠을 잤기에 가족들이 받는 스트레스의 정도를 가벼이 생각했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의외로 그 강도가 강했다.

남들 다 마시는 술을 난 좀 더 많이 마시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술을 끊고 나서야 술 마실 때를 돌아보게 되었다. '오죽했으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 이혼했다. 그리고 아내는 재혼했다. 가끔 아내는 전 남편에 대해 이야기 한다.

"당신 그때 술 마시고..."
"왜 자꾸 전 남편 이야기를 해. 전 남편 이야기하면 기분 좋을 재혼한 남편이 어디 있어."

'이게 무슨 말이야'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아내는 내게 '다른 남자와 사는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한다. 잘못 하는 한 가지를 끊으니 잘하는 일만 10가지 모두를 하는, 새 남자가 된 것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 아내는 그것을 '재혼했다'고 표현한다.

남들 다 마시는 술을 난 좀 더 많이 마시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술을 끊고 나서야 술 마실 때를 돌아보게 되었다.
 남들 다 마시는 술을 난 좀 더 많이 마시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술을 끊고 나서야 술 마실 때를 돌아보게 되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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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마실 때 아내는 잔소리가 심했다. 20년을 넘게 살았으면 술 마시는 것에 대해 포기할 때도 되었건만,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만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신혼 때 들었던 잔소리를 25년 동안 들었으며, 포기하기는커녕 잔소리의 강도는 더 심해졌다. 나도 잔소리 듣기가 짜증이 났다. 그래서 내가 먼저 이혼하자는 말을 할 때도 있었다.

"난 당신 잔소리 듣기 싫어. 이제까지 들었던 잔소리도 지긋지긋한데, 죽을 때까지 그 잔소리 듣고 살고 싶지 않아. 우리 이혼해. 난 절대 술 못 끊어."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옛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잔소리를 더 심하게 했고 술 때문에 우리 부부는 격렬하게 싸웠다. 아내는 말했다.

"난 절대 당신 하고 이혼 못해. 당신은 술만 아니면 정말 좋은 사람인 줄 알아. 내가 당신 술 끊게 하고 말거야. 아이들도 있는데 이혼이란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마."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정말 아내가 싫었고 산 속에 들어가서 술을 실컷 마시며 혼자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난 절대 술을 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몸은 망가졌다. 혈압이 220까지 올랐으며 배는 올챙이배처럼 볼록해졌고, 얼굴은 주독이 올라 항상 벌겋게 되어 있었다.

그러다 술을 끊었다. 술을 끊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으나, 망가진 몸보다 가족들을 돌아보게 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노모의 안타까운 눈망울이나 아이들과 아내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 것이다.

술을 끊으려고 했지만 40년 동안 마신 술을 하루아침에 끊을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다. 잠들려고 아무리 뒤척여도 잠이 오지 않아 결국 술을 찾았다. 알코올 중독이었다. 그 말을 듣기 전에는 내가 알코올 중독에 빠졌다는 것을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알코올 중독자는 낮이나 밤이나 시도 때도 없이 술을 달고 사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나는 최소한 낮술은 거의 마시지 않았고 일을 끝낸 후 저녁에 술을 마셨기에.

누군가의 조언으로 병원을 찾아갔다. 의사가 나에게 알코올 중독이라는 처방을 내렸다. 그리고 알코올 중독은 병이며 치료를 해야 된다고 말했다. 병은 고치면 된다고 했고, 약을 처방해주었다.

"약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약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술을 끊겠다는 의지입니다."

의사가 처방을 해준 약을 먹으니 잠을 잘 수 있었다. 낮에는 막노동을 하여 몸이 지칠 대로 지치게 만들었고 밤에는 의사가 준 약을 먹었다. 피곤한 몸에 약까지 먹으니 그렇게 잘 수 없던 잠을 잘 수 있었다. 하루도 소주를 마시지 않은 날이 없었는데, 소주를 마시지 않아도 잠을 잘 수 있게 되었고 며칠이 지나자 술을 끊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문제는 그 동안 축척된 인간 관계였다. 술을 좋아했기에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술친구였다. 오후 5시만 넘으면 술을 먹자는 전화가 왔다. 처음엔 술 거절하는 것이 엄청 힘들었다. 하지만 과감하게 전화 오는 지인들에게 술 끊었다는 이야기를 하며 술자리에 나가지 않았다. 그 중에는 술은 안 마셔도 되니 그냥 모임에 참석만 하라는 전화도 있었지만, 가서 술을 마시지 않을 자신까지는 없었다.

그래서 그런 제의를 거절하기 시작했다. 지인들은 며칠이나 가나 두고 보자는 말을 아주 쉽게 내뱉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전에 술 끊는다고 큰 소리를 친 후 다시 술을 마신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한 달 넘게 술 마시자는 요구를 거절하자 그런 전화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3개월 정도 지나자 아예 그런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다.

술은 마시지 않아 좋았지만 친구들이 끊겨 외로움을 느꼈고 술을 마시던 저녁 시간에 할 일이 없어 심심했다. 처음에는 어찌할 줄 몰라 안절부절 했지만,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쓰기는 어릴 때부터 술만큼이나 좋아했다. 하지만 술을 마신다고 글을 쓸 시간을 만들지 못 했다. 그러다 술을 끊으니 비로소 내가 좋아했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술 마시던 시간을 카페에서 책을 읽고 글 쓰는 시간으로 바꾸었다.

글을 쓰자 술 마시던 과거의 내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아내가 반대를 했으며, 아들이 이혼하라고 까지 했는지, 아버지가 나는 죽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을 했는지. 그 추한 모습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술을 끊은 지 3년. 아내는 말한다.

"나는 세상에 못 할 것이 없어요. 당신 술도 끊게 만들었는데 내가 뭘 못 하겠어요."

왜, 진작 술을 끊지 않았을까. 이렇게 새 세상이 펼쳐지는데. 술 마시느라 보낸 세월에 아쉬움이 많지만 무엇보다 가슴 치게 하는 아쉬운 일은 아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이다. 이제 다 커버린 아들. 더 이상 어린 시절이 없는 아들, 아들과 함께 할 시간을 술로 보낸 못난 아빠.

늦었지만, 아직 완전히 늦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아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려고 노력한다. 나처럼 술에 찌들어 세월을 보내는 아빠가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술과 이별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돌아보기를 간절히 바란다.


태그:#알코올 중독, #술, #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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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한 이야기가 아닌 생활 속에 벌어지는 소소한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들꽃은 이름 없이 피었다 지지만 의미를 찾으려면 무한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 들꽃같은 글을 쓰고 싶네요.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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