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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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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의 모 초등학교에서는 가정통신문이 10개 나라의 언어로 나간다. 중국, 태국, 몽골 등 나라 이름을 외치며 한 학생이 가정통신문 바구니를 들고 지나가면, 나머지 학생들은 해당 언어의 가정통신문을 집어 든다. 다문화가정의 자녀가 전체 학생의 절반 이상 재학하고 있는 학교라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비단 일부 초등학교만의 일은 아니다. 2015년 전국다문화가족실태조사에 따르면, 결혼이민자 귀화자 수는 2012년 대비 7.52% 증가한 304,516명에 이른다. 국제화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인 만큼 학교에 입학하는 다문화가정 학생의 수는 앞으로 늘면 늘었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우리의 정책과 인식은 과연 이러한 변화를 잘 따라잡고 있을까?

여성가족부에서는 결혼이민자를 대상으로 다문화가족 지원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한국어 교육과 상담 지원 서비스 등으로 이루어진 다문화가족 지원사업은 집합교육과 방문교육의 두 가지 형태로 이루어지는데, 특히 방문교육에 대한 수요가 높다. 많은 결혼이민자가 어린 자녀를 양육하고 있거나 대중교통 이용이 불편한 읍면지역에 거주하고 있어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가서 교육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문화가족 지원사업의 시행은 매우 훌륭한 정책이다. 대다수의 선진국에서는 이민자 및 귀화자의 적응과 융화를 돕기 위한 다양한 복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복지 프로그램은 결혼이민자 개인에게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결혼이민자가 속한 지역 공동체와 결혼이민자의 주변인, 특히 자녀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2015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결혼이민자 중 여성은 81.5%를 차지한다. 아직도 대부분의 가정에서 주 양육자가 여성인 현실을 고려하면, 결혼이민자의 한국어 구사 능력은 다문화가정 자녀의 한국어 구사 능력과 직결된다. 많은 다문화가정에서 결혼이민자 어머니가 아이에게 자신의 모국어를 가르치지 못하게끔 억압하는 것이 현실이다.

아이가 결정적 시기에 어머니의 모국어로도 한국어로도 필요한 만큼의 언어 입력을 받지 못한 경우, 언어 발달 지연이 나타날 수 있다. 적절한 진단과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언어 장애로 이어질 수 있고, 언어 장애까지 이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언어 구사 능력이 또래보다 낮은 경우 학습 부진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2015년 기준 전 국민 취학률은 초등학교 98.5%, 중학교 96.3%, 고등학교 93.5%인데 비해, 다문화가정 자녀의 취학률은 초등학교 97.6%, 중학교 93.5%, 고등학교 89.9%로 학교급이 올라갈수록 격차가 커지는 것을 알 수 있다. 학교 시스템으로부터 배제와 차별을 겪고 학교를 벗어난 다문화가정 자녀에게, 학교 밖에서 길을 찾는 일이 녹록할 리 없다. 결국 이렇게 누적된 소외는 사회문제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현행 제도는 이러한 문제를 예방하고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결혼이민자 귀화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85%가량이 한국생활에서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주된 어려움은 언어문제(34.0%), 외로움(33.6%), 경제적 어려움(33.3%), 자녀양육 교육문제(23.2%) 등이었다.

집안에 어려움이 있을 때나, 일자리 또는 자녀교육에 대해 질문할 것이 있을 때, 또는 몸이 아플 때, 30% 이상의 결혼이민자가 도움이나 의논을 요청할 사회적 관계를 갖고 있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2년 조사에 비해서도 증가한 수치로, 어려움이 있을 때 의논하거나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다는 응답이 전반적으로 늘어 사회적 소외가 심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현행 제도가 다문화가정의 요구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은 특히 방문교육 서비스의 운영 실태를 보면 명백하게 드러난다. 가정 방문교육은 전체 결혼이민자의 40.7%가 이용한 경험이 있고, 교육 지원 및 서비스 요구에 대한 점수도 5점 만점에 3.11점으로 높게 나타나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문교육 서비스는 입국 5년 이하의 결혼이민자와, 중도입국 자녀 중 외국에서 태어나 성장하다가 부모의 재혼에 따른 신분상의 변화로 부모를 따라 동반 입국하는 국제결혼 재혼가정 자녀만을 대상으로 하여 신청이 까다롭다. 뿐만 아니라 단 10개월 동안만 방문교육을 받을 수 있고, 10개월의 기간이 끝나면 재신청할 수 없다.

정규교육과정 12년간 매일 몇 시간씩 영어공부를 해도 영어로 일상 회화를 나누는 일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육아 및 가사노동에 시달리며 일주일에 4시간씩 한국어를 배운다고 해서 1년 만에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기 어려움은 명백하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는 센터에서 실시하는 집합교육을 대안으로 제시하지만, 갓난아기를 업고 하루에 대여섯 번 운행하는 농어촌버스를 기다려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한국어를 배우러 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열악한 현실 속에서 결혼이민자는 한국어 학습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다문화가족은 '시혜의 대상'이 아니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는 매년 방문교육지도사의 수를 감축하고 있다. 결혼이민이 감소세에 접어들어 대상자가 줄어들고 있다는 명분이지만, 방문교육 대상자를 '방문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입국 5년 이하의 결혼이민자'로 제한하고 있는 정책의 불합리함을 제고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결혼이민자의 현실과 요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력이 바로 11년간 동결된 임금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방문교육 서비스를 제공해 온 방문교육지도사이다. 방문교육지도사는 한국어를 지도할 뿐 아니라, 한국 문화와 생활에 대해 알려주고, 가족간의 관계에 대해 조언하며, 결혼이민자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한국 적응을 돕는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다문화가정과 결혼이민자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는 정작 현장의 경험과 생각을 반영할 의사소통 창구조차 마련하지 않고 있다. 현행 다문화 정책이 얼마나 근시안적인지를 증명하는 단적인 예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다문화정책은 결혼이민자와 다문화가정을 기껏해야 '시혜의 대상', 심하게는 '예산과 행정력을 잡아먹는 골칫거리' 정도로밖에 보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이것이 다문화를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틀은 아니다. 사회의 다양성이 증가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라 축하할 일이다.

우리 반에는 베트남에서 온 어머니와 한국에서 태어난 아버지를 둔 학생이 있다. 사회 수업을 할 때 베트남에 대한 내용이 나오면 이 학생이 자신감 있게 발표를 도맡아 한다. 아이가 습득한 베트남의 언어와 문화, 역사에 대한 이해를 교사인 내가 따라갈 수 없다. 다른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궁금한 점을 질문하고 생생한 대화를 나눈다.

아이가 전해주는 베트남의 모습은 책에서 읽고 배울 수 있는 어떤 지식보다 실감나고 흥미진진하다. 아이에게 한국과 베트남의 문화를 고루 알려주려 노력한 아이의 부모님과, 자신감 넘치게 두 문화를 모두 긍정하는 아이가 자랑스럽고 존경스럽다.

다양한 국가의 문화적 배경을 가진 다문화가정 학생들은 우리 문화를 풍요롭게 해주는 든든한 자원이다. 다문화를 긍정하고 장려하는 토양을 마련한다면, 다문화가정 학생들만 혜택을 보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학생들이 다름을 받아들이고 어우러지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이제는 다문화가정을 우리 사회에 빨리 동화시켜야 할 이질적 존재로 보는 '반쪽짜리 다문화정책'에서 벗어나, 다양한 문화가 서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배우고 발전하는 '온전한 다문화정책'을 고민해야 할 때이다. 전폭적인 정책적 지원은 그 첫걸음이다.


태그:#다문화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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