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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먹어야 산다.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고, 본능이자 숙명이다. 배가 고파서 먹고, 더러는 눈으로 즐기기도 한다. 좋은 사람과 나누는 음식은 행복하다. 하지만 음식을 사냥하는 일은 살아 있는 것을 해하고, 취하기 때문에 다분히 폭력적이다. - 팸플릿 중에서
전북도립미술관(관장 김은영)에서 오는 2월 4일까지 <음식사냥> 전을 개최한다. 먹는 것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인 "음식이란?" 물음표를 던지면서, 작가들이 음식을 낯설게 응시한 후 창의적 상상력으로 자유롭게 해석한 "음식상상", 음식으로 얽힌 사회상과 살기 위해 음식사냥을 멈출 수 없는 인간의 폭력성에 대해 묻는 "얽히고 설킨 사람살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관람객을 맞고 있다.

좌 : 부추.  성연주.  디지털 프린트.  2009.  / 우 : 바나나.  성연주.  디지털 프린트.  2010.
 좌 : 부추. 성연주. 디지털 프린트. 2009. / 우 : 바나나. 성연주. 디지털 프린트. 2010.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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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매일 식탁에 오르는 오이소박이, 갓김치, 파김치가 그것이 되기 전까지 흙에서 자라는 온전한 생명체였다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하고 먹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밭에서 키운 각종 채소들은 당연히 인간을 위해 키워진 것들이지만 먹이사슬의 최고점에 있는 포식자는 단 한 번도 그들의 생명을 맘껏 취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적은 없었다.

좌 : 파김치. 하영희.  수채화.  2009.  /  우 :  오이소박이.  하영희.  아크릴화. 2014
 좌 : 파김치. 하영희. 수채화. 2009. / 우 : 오이소박이. 하영희. 아크릴화. 2014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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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상징으로 대표되는 네잎클로버는 도시화로 인해 아파트 단지나 대형건물 주변 토양이 산성화 된 곳에서 주로 발견된다고 한다. 신재은작가는 작품 'BLACK –270s'를 통해 환경오염으로 인해 병든 네잎클로버를 행운을 가져온다고 믿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 한다.

좌 : 분리 : 3개의 다리.  b-cone.  영상.  2015  /  우 : BLACK-270s.  신재은.  목재, 인공태양, 신도시의 흙, 트레이, 변이된 클로버.  2017.
 좌 : 분리 : 3개의 다리. b-cone. 영상. 2015 / 우 : BLACK-270s. 신재은. 목재, 인공태양, 신도시의 흙, 트레이, 변이된 클로버. 2017.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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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추구하는 정신세계를 미적인 요소로 표현하는 전통 산수화에 인간의 욕망을 투영한 하루.K작가의 '맛있는 산수', 부조리한 사회에서 느끼는 108가지 인간적 번뇌를 형상화한 '프라이'는 지난해, AI와 살충제 달걀 파동을 경험한 현대인들에게 끝이 없는 욕망이 무엇을 망가뜨리는가에 대한 경고를 보내고 있다.

맛있는 산수.  하루.K.  한지에 수묵채색.  2017
 맛있는 산수. 하루.K. 한지에 수묵채색. 2017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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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  이호철.  FRP주형물.  2017
 프라이. 이호철. FRP주형물. 2017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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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조림 통으로 스스로 들어가 햄이 되어버리는 박철호 작가의 '자살돼지'나 태어날 때부터 다리 하나가 잘못되어 절단 수술을 한 후 2년간 키웠지만 경제적인 투자가치를 따져야 하는 농장 주인으로서는 더 키울 수 없었던 사연을 지닌 b-cone 작가의 '분리:3개의 다리'라는 작품을 보면서 "어떤 나라의 위대함과 도덕성은 그 나라가 동물을 대우하는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 간디의 어록을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자살돼지.  박철호.  혼합재료.  2017
 자살돼지. 박철호. 혼합재료. 2017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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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도살장.  성병희.  캔버스에 아크릴.  2017.
 나의 아름다운 도살장. 성병희. 캔버스에 아크릴. 2017.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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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지 않고는 살 수 없다. 먹어야 산다. 또 즐거워야 한다. 즐거움의 행위가 일방적이어서는 곤란하다는 문제에 봉착한다. 동물들과 비교해 열등한 신체를 가진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 채집과 수렵과 가축과 채소를 키우는 방식을 택해 살아왔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재래시장의 소규모 판매가 아니라 싼 값을 내세워 대량구매를 부추기는 마트와 줄어드는 가족수에 반비례로  대형화 되어가는 냉장고의 용량으로 우리의 욕망을 부풀린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전북도립미술관의 학예연구팀의 이문수 학예실장이 답했다.

"이번 전시는 음식에 대한 아포리즘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일상에서 만나는 음식을 맛보고, 다시 현대미술로 재해석 해 본 것이죠. 살기 위한 음식사냥을 멈출 수 없는 인간이기에 대상에 대한 폭력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희 전북도립미술관에서 기획한 <음식사냥> 전을 관람하신 분들은 한 번 쯤 '더 적은 폭력'으로 살아갈 수 있는 데에 대해 같이 고민했으면 하는 바람이 큽니다."

좌 : 비빔밥 이야기.  김진욱.  캔버스 위에 유채.  2010.  / 우 : 감사의 마음.  기유경.  장지에 채색.  2012
 좌 : 비빔밥 이야기. 김진욱. 캔버스 위에 유채. 2010. / 우 : 감사의 마음. 기유경. 장지에 채색. 2012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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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가 못 되어 달걀과 고기를 반찬으로 준비할지라도 그것이 살아 있는 동안 생명체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충분히 누린 후 밥상에 오르기를 바란다. 닭이 땅을 헤집으며 모래에 목욕하고, 돼지는 진흙에 몸을 부비며 살게 해주어야 먹이사슬 최고의 포식자의 위치에 있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아닐까.

음식재료와 음식, 그것이 관계를 맺는 사람살이에 대해 다양한 장르를 통해 관람객에게 관람과 사유의 즐거움을 준비한 전북도립미술관은 올해 4월에는 중국 베이징 쑹좡의 미술가들과 기획전을, 7월에는 인도네시아 현대미술과 전북지역 작가들을 중심으로 <변방의 파토스>전을 준비하고 있어 지역 미술 활성화에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b-cone. 기유경. 김원. 김진욱. 박성민. 박은주. 박철호. 성병희. 성연주. 신재은. 심혜정. 심홍재. 양광식. 이보름. 이호철. 조경희. 하루.K. 하영희. 한윤정. 황인선 - 참여작가 20인


태그:#음식사냥, #전북도립미술관, #이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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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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