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여정.

배우 윤여정. ⓒ CJ엔터테인먼트


환갑이 훌쩍 넘은 나이에 첫 예능 출연. 분명 신선했다. 배우 윤여정이 tvN <꽃보다 누나>에 등장했을 때 말이다. 그것도 평소 뉴스 보는 게 취미이고, 기껏해야 독서로 소일거리 하는 이 '까칠한' 배우의 예능이라니.

4년 전 윤여정은 동료 배우 김자옥, 김희애, 이미연 등과 함께 크로아티아 곳곳을 누볐다. 이미지나 주변 상황을 개의치 않는 시원한 모습에 시청자들은 환호했고, 이에 힘입어 해당 시리즈는 흥행했다. 그리고 3년이 지나 <윤식당>에 다시 출연한 그를 두고 주변에선 "이제 예능이 익숙해지셨나"라는 질문들을 많이 한다.

윤여정의 철학

그렇게 물었다간 "익숙해지긴 개뿔!" 이라는 불호령이 떨어지곤 한다. 여전히 예능은 그의 입장에선 "맞지 않는 옷"이며 매번 끝마칠 때마다 "다신 출연 안 한다"는 말이 나오는 장르다. 그럼에도 그가 세 편의 예능에 출연한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분명하다. 바로 나영석 피디다. <꽃보다 누나>를 통해 윤여정을 꾀는데(?) 성공한 나영석에 대해 윤여정은 남다른 신뢰와 애정을 갖고 있다. 3년 전 <오마이뉴스>와 만난 자리에서 윤여정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능 출연 얘기가 나왔을 때 난 분명이 No! 라고 했다. 배우가 연기로 평가받는 건 당연해서 칭찬이든 비평이 나오든 불만이 없는데 예능에서 내 실제 모습을 두고 어떤 댓글이 나온다고 해보자. 얼마나 스트레스인가. 그런 게 싫다고 나영석 피디에게 말했다. 연기로 평가받을 수 있는데 왜 굳이 실생활 가지고 욕을 먹을 일을 해. 나 조용히 늙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윤여정은 나 피디의 설득에 넘어갔다. 이를 두고 그는 "나 피디가 날 함락시켰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내 아들 보다 한 살이 어린데 그의 진정성과 진지함에 반했다"며 "어디서 배운 척하고 그걸 써먹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승낙 이유를 밝혔다.

이후 나 피디가 본색을 드러낸 걸까. 윤여정은 녹화를 마친 이후 "나영석 피디가 내 모든 걸 써먹으려 했다. 그 모습에 반했다"고 전했다. "나영석이 한번 크게 망해봐야 하는데, 그래야 더 성숙해지지"라며 "<삼시세끼>도 사실 망할 줄 알았는데 안 망했다. 내 세대에선 볼 수 없는 신선한 감각을 가진 새로운 세대였다"라고 애정(?) 가득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윤식당2>의 한 장면

tvN 예능 <윤식당2> 출연에 대해 윤여정은 "나영석 때문"이라 이유를 밝혔다. ⓒ tvN



70대 4차원 배우 

그리고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으로 다시 만난 윤여정은 여전히 "(예능이) 익숙해지긴! 예능에 출연해서 좋은 거 하나 없다"라고 기자에게 힘있게 말했다. 초지일관이었다. 그럼에도 <윤식당>에 연이어 출연한 건 "역시 나영석 때문"이었다.

"<윤식당> 때 너무 고생을 해서 어느 날 제작진들 불러내서 이 아이디어 누가 냈냐고 묻고 싶을 정도였다(웃음). 나영석이니 출연한 거지. 역시나 댓글 보니까 뭐 비위생적이다, 늙었는데 왜 나오시냐 등의 반응이 있더라. 매니저가 알려줘서 보게 는데 '너희도 늙어봐!'라고 달 뻔했다! 

맞다. 예전에 나영석도 한번 망해봐야 한다고 했었지. 근데 아직 안 망하더라. 이유를 이번에 알 것 같았다. 그는 굿 리스너(listener)더라. 그 정도면 새끼 작가도 많고, 여러 아이디어가 나올 때 '그건 이래서 안 돼, 저건 저래서 안 돼' 이럴 텐데 그는 다 들어준다. <윤식당>도 이진주 피디 아이디어더라. 나영석 것이 아니다. <알쓸신잡>은 양정우 피디 아이디어였고. 그들이 기획하면 나영석이 섭외를 해주더라. 내 조건이 '나영석 아니면 안 한다'였거든."

 배우 윤여정과 나영석 피디.

배우 윤여정과 나영석 피디. ⓒ 이정민


내친 김에 <윤식당>에 얽힌 에피소드를 더 물었다. "이번에 보니까 나영석이 (현장에서) 자주 없어지더라"며 "나랑 정유미랑 둘이 얼굴이 하얘지면서 고생하는데 현장에서 도망가고 없어!"이러며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첫 회 보고 거의 기절했다. 우리가 저렇게 좋은 동네에서 촬영했구나 싶어서. 나랑 유미는 (요리하느라) 담벼락만 보고 있었거든. 아마 내 문제도 있을 거다. 내가 원래 일을 즐기면서 못한다. 스스로를 혹사시키는 타입이라. 그걸 보고 이우정 작가도 놀랐다고 하더라. 원랜 내가 '요리 안 해! 서진이 네가 해' 이러는 걸 예상하고 구성했다고 하던데 내가 봉두난발하고 너무 열심히 하니까 당황한 거지. 날 띄엄띄엄 본 거지. 

얼마 전에 <썰전>에 안철수 당대표가 나왔는데 왜 정치하는지 묻는 질문에 '자기가 즐거워서 하는 일은 아마추어고 싫어도 하는 건 프로다'라고 하더라. 그 말 듣고 내가 진짜 프로인가 싶었다. 나름 위안을 얻었지(웃음)."

 tvN <꽃보다 누나>의 한 장면.

tvN <꽃보다 누나>의 출연자들. ⓒ CJ E&M


"내가 너무 나영석 피디를 띄워주나?"라고 재치 있게 기자에게 반문하던 윤여정은 "시청률이 초반에 너무 잘 나와도 걱정이다. 내려가는 길밖에 없으니까"라고 제법 출연진다운 반응을 보였다. 

이런 그를 두고 동료 배우 이미숙이 붙인 별명이 있으니 바로 '70대 사차원 배우'다. "이미숙이 내게 '윤 선생님 말씀하는 건 제가 백 살이 돼도 못 알아먹는 게 많을 것'이라고 하더라"며 윤여정은 "사람이 그런 거 아니겠냐. 변하기도 하고 똑같기도 하고, 촬영 현장 역시 예상에서 항상 벗어나는 것 아니겠나"라는 나름의 철학을 덧붙였다.

예측할 수 없는 배우 윤여정의 다음 행보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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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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