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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가상화폐) 규제를 놓고 찬반 논란이 뜨겁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가상화폐) 규제를 놓고 찬반 논란이 뜨겁다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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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연말부터 한국사회를 뒤흔들어온 네 글자다. 내게 '비트코인'이라는 말에 떠오르는 생각은 두 글자로 압축된다.

'모순.'

사람들은 뜨겁다 못해 폭발한 만큼의 관심을 쏟으면서도, 비트코인(암호화폐)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또는 작동하지 않는지)를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대다수의 관심사는 '지금 투자하면 돈을 벌 수 있는지'에 쏠려 있다.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암호화폐에 대한 설명을 찾아 보면 '블록체인'이나 '노드' 같은 기술 용어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대중들에게 그 내용을 설명할 책임이 언론과 전문가들에게 있지만, 이들에게도 이해 가능하고 합리적인 설명은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일부는 암호화폐를 '사기극'이라고 비판하고, 반대편은 '기술적 가능성에 대한 무지'라고 반박한다. 예컨대 최근 유시민은 가상화폐 열풍에 대해 "엔지니어들의 아이디어로 나타난 수많은 이상한 장난감 갖고 사람들이 도박하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이에 대해 정재승은 "블록체인이 어떻게 전세계 경제시스템에 적용되고 스스로 진화할지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되받으며, 투기는 부적절하지만 "정부가 거래소를 폐쇄하는 방식은 최악의 문제 해결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신문과 방송은 두 사람의 논박으로 지면과 화면을 채우면서도, 그 주장이 얼마나 합리적인지 논평하기보다 '중계'하기 바빴다. 보수언론은 규제 가능성을 언급하는 정부를 비난하기 여념이 없으며, '선진국들은 암호화폐 시장자율에 맡기는 게 대세'라느니, '선진국에서는 4차 산업혁명의 기폭제가 될 수 있는 블록체인 기술 육성에 여념이 없다'는 식의 주장을 늘어놓고 있다. 

극과 극의 주장 사이에서 다수의 시민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정부가 규제 방향을 잘 잡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낙연 총리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 하나인 것은 아니"라고 지적하며, 암호화폐 투기 과열을 규제하는 것이 블록체인 기술 발전을 저해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런 상식적인 이야기를 '전문가'를 자임하는 사람들로부터 듣기가 왜 그리 어려운가.

'선진국'들도 암호화폐를 규제한다

앞으로 자세히 살피겠지만, 암호화폐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수많은 서비스 가운데 하나일 뿐이며, 그것도 무시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닌 불완전한 서비스에 지나지 않는다. 블록체인 기술은 다양한 영역, 예컨대 민감 정보의 유실과 해킹 방지, 대체 인증수단, 소규모 창작자들의 저작물 보호 등에서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근거 없이 떠도는 '선진국 탈규제론'도 근거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암호화폐 거래소는 신고만 하면 누구나 설립할 수 있는 반면, 미국은 엄격한 허가제로 운영되고 있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암호화폐 거래소가 영업을 시작한 뉴욕은 이미 2015년에 광범위한 규제 내용을 담은 '비트라이센스(BitLicense)'를 마련했으며, 이에 따라 암호화폐의 발행, 보유, 전송, 거래, 3자에 의한 관리 등 모든 활동이 규제 대상이 되었다.

법무부가 가상화폐거래소 폐쇄를 추진하겠다고 밝히자 가상화폐 관련주들이 11일 동반 급락했다. 사진은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에스트레뉴빌딩에 있는 가상화폐 오프라인 거래소 코인원블록스의 대형 전광판에 표시된 동반 급락한 비트코인 시세표를 시민들이 바라보고 있다.
▲ '어디까지 내려가나...' 법무부가 가상화폐거래소 폐쇄를 추진하겠다고 밝히자 가상화폐 관련주들이 11일 동반 급락했다. 사진은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에스트레뉴빌딩에 있는 가상화폐 오프라인 거래소 코인원블록스의 대형 전광판에 표시된 동반 급락한 비트코인 시세표를 시민들이 바라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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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미국 법무부가 '비트인트턴트'의 창립자이자 '비트코인 재단' 부회장이었던 찰리 슈렘을 구속한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비트인스턴트는 재무부에 최초로 등록된 비트코인 거래소였으며, 암호화폐의 30%를 거래하던 막대한 회사였다. 문제는 이 회사를 통해 거래된 자금이 마약 거래 등의 용도로 사용되었으며, 슈렘이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슈렘은 2년형을 선고 받았고, 결국 회사는 문을 닫았다. 미국은 암호화폐 거래 행위뿐 아니라, 거래된 화폐의 용도까지도 문제삼고 있는 것이다. 이런데도 미국이 암호화폐를 '시장자율에 맡기고 있다'며, 정작 아무런 기준도 마련되지 않은 한국에서 정부가 '규제'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를 문제삼는 것이다.

규제 여부를 따질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시민들의 재산과 권리 보호다. 이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는 거래소들을 폐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며, 여기서 '블록체인 기술' 운운하며 반대하는 것은 스스로 기술적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애초에 암호화폐는 거래소에서 현금으로 거래할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쉽지 않지만, 암호화폐의 작동 방식과 한계를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이 암호화폐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더불어 투자자들이 쏟아부은 돈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암호화폐는 '거래소 교환'용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암호화폐의 기원을 말할 때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가명의 프로그래머가 쓴 2009년 논문을 언급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정부와 금융기관을 배제한 화폐제도에 대한 논의는 이미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되었다. 예컨대 데이비드 차엄은 1989년에 '디지캐시(DigiCash)'라는 전자화폐 회사를 설립했으며, 닉 재보는 1998년 '비트 골드'라는 암호화폐를 제안하기도 했다.

다수의 프로그래머들이 암호 기술자였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화폐에 대한 발상은 젊고 분방한 프로그래머들의 '사이퍼펑크(Cypherpunk)' 문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국가 감시에 대한 극도의 반감으로 인해 화폐거래의 '익명성'에 가장 큰 무게를 두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들의 아이디어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극소수였고, 결국 암호화폐에 대한 논의는 시간 속에 묻혀버렸다. 

이 과거의 논의를 현실로 이끌어 낸 것은 2008년 미국 금융위기와 나카모토의 9페이지짜리 논문이었다. 대형 금융기관이 파산하고, 정부가 손을 쓰지 못하는 초현실적 상황의 도래가 '정부나 금융기관을 배제한 화폐 제도'에 새로이 관심을 갖게 만든 것이다. '나카모토'의 정체는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한 명이라는 설도 있고 집단이라는 말도 있지만, 논문에서 일관되게 '우리'라는 주어를 쓰는 것을 보아 복수가 참여한 협업의 결과임을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 기존의 아이디어들을 결합하고 개선했다는 점에서도 한 개인의 성과는 아니었다. 나카모토의 논문을 보면, '3자 개입 없이'와 '금융제도를 통하지 않고'라는 말이 끝임없이 반복되며, '익명성'에 대해서는 아예 '프라이버시'를 별도 섹션으로 떼어 설명하고 있을 정도다.

이 사실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지금 암호화폐 거래소는 '3자 개입 없이', '금융제도를 통하지 않고', '익명으로 거래한다'는 조건을 모두 위배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의 금융기술 전문기자이자 <디지털 골드>의 저자인 나타니엘 포퍼는 이 모순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거래소의 근본적인 문제는 비트코인이 벗어나고자 했던 바로 그 낡은 금융 제도로 회귀한다는 점이다. 거래소에서 현금거래를 하는 순간, 거래자의 돈과 개인정보를 보유한 3자에 의지하는 것이며, 바로 여기서 온갖 보안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비트코인이 지닌 모든 장점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암호화폐를 사토시의 제안에 충실하게 운영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기, 해킹, 야반도주 등 거래소가 암호화폐를 둘러싼 문제의 중심에 서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기존 제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제안된 화폐가 오히려 기존의 문제에 새로운 문제를 더하고 있는 것이다. 

암호화폐는 주식이 아니다. 현재 암호화폐의 가장 큰 문제는 화폐가 화폐 기능을 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며, 그로 인해 투자가치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주식을 발행한 회사가 제 기능을 하면 주식의 가치가 상승하지만, 암호화폐가 제 기능을 하는 순간부터 투자 가치는 사라져버린다. 암호화폐에 투자하는 것은 자유지만, 이 사실만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암호화폐가 유용하게 쓰일 가능성은 없을까? '블록체인' 기술이란 대체 무엇일까? 다음 글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태그:#암호화폐, #비트코인, #정재승, #유시민, #4차산업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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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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