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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버스 회사 차고지
 한 버스 회사 차고지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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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하는 버스기사를 위로하기 위해 동료들이 십시일반 모아 주는 전별금이, '족쇄'가 되어 버스기사를 괴롭히고 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아래 한국노총)을 탈퇴하면, 전별금을 받을 권한을 박탈 당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버스기사 대부분은 한국노총에 가입돼 있다.

이 때문에 버스기사들은 노조에 불만이 있어도 자유롭게 탈퇴할 수 없다. 그동안 낸 돈을 돌려받을 수 없어서다. 결국 이 전별금이 복수노조 설립, 자유로운 노조 선택 등 법으로 보장된 노동자의 권리를 가로막고 있다.

퇴직자에게 지급하는 전별금 액수는 노조가 자체적으로 정하다 보니 회사마다 다르다. 조합원 450여 명 규모인 안양 보영운수의 경우, 1년을 근무하면 243만 원 정도의 전별금이 적립된다. 10년을 근무하면 2430만 원 정도가 적립되는데, 이 직원이 퇴직하게 되면 조합원 450여 명이 갹출해서 2430만 원을 지급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별금 제도에 버스기사들의 불만이 높다. 지난 12일 보영운수 직원 A씨는 기자와 인터뷰에서 "노조가 조합원 보호를 거의 하지 않고, 조합장을 간선제로 선출할 정도로 비민주적 운영을 하는데도 대부분이 선뜻 탈퇴하고 다른 노조에 가입하지 못한다"라고 밝혔다.

이어서 그는 그 이유로 전별금을 지목하며 "다른 노조로 가더라도 전별금을 지급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전별금에 대한 버스기사들의 불만이 담겨 있는 설문지를 보면, 전별금을 포기할 수 없어서 노조를 탈퇴 하지 못한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만큼 버스기사들이 한국노총을 탈퇴하는 데는 상당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보영운수에는 전별금을 포기하고 한국노총을 탈퇴해 민주노총에 가입하거나 자체적으로 새로운 노조를 설립한 버스기사가 34명이나 된다. 기자와 인터뷰를 한 A씨도 그 중 한 명이다. A씨 등 버스기사들이 전별금을 포기하면서까지 한국노총을 탈퇴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A씨는 "전별금을 포기하는 게 억울했지만 임금의 2%나 떼어 가는 노조가, 무리한 운행 강요, 부실한 식사 등으로 인해 조합원들 불만이 폭발 직전인데도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 것에 분개해서 탈퇴했다"라고 밝혔다.

이들이 포기한 전별금은 한 명당 적게는 15만 원에서 많게는 2000만 원이나 된다. 이들은 조만간 한국노총 보영운수 측에 강력하게 전별금 반환을 요청할 계획이다.

"전별금 포기 억울했지만, 참다못해 포기했다"

전별금 갹출이 생계를 위협할 정도로 과다한 것도 큰 문제다. 퇴직자가 몰리는 달에는 45만 원이 넘는 돈을 전별금으로 낸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전별금 문제에 대한 사실 확인과 반론을 듣기 위해 한국노총 보영운수 지부 관계자와 15일 오후 전화 통화를 시도했다. 통화는 됐지만, "제가 답변할 사항이 아니"라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다.

전별금 문제는 이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로 인해 곳곳에서 갈등이 발생했다.

경남여객 기사들은 지난 2015년 '전별금 반환 소송'을 벌였다. 전체 기사 540명 중 270명이 새로운 노조에 가입하자 한국노총 측에서 전별금을 못 주겠다고 나왔기 때문이다.

이 소송은 버스기사들이 패소하는 것으로 끝났다. 버스기사들은 대부분 다시 한국노총으로 돌아갔다. 전별금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울산에서도 지난 2013년 전별금 반환 소송이 벌어졌지만, 이 소송 역시 법원은 노동조합(한국노총)의 손을 들어 주었다.

지난 2012년 전남 금호고속 노동자들이 제기한 전별금 반환 소송은 조금 양상이 달랐다. 법원은 전별금 일부를 지급하라는 내용의 화해 권고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그 이후로 상황은 더 나빠졌다.

한국노총이, 노조를 탈퇴하면 전별금 받을 권한을 박탈하는 조항을 만든 것은 지난 2011년 한 버스회사 내에 복수노조가 허용되고 난 이후부터다.

이와 관련해 우리나라 양대 노총 중 하나인 민주노총 버스노조 관계자는 15일 오후 기자와 통화에서 "전별금은 일종의 위로금이다. 노조 탈퇴 여부와 관계 없이 동일하게 지급해야 한다"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태그:#버스 기사, #전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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