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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1987>이 보여주듯 1987년 대한민국의 역사는 박종철 열사의 사망으로 시작한다. 민주화의 불씨는 6월 항쟁을 통해 격렬하게 타올랐으며, 대통령 직선제를 정착시킨 6.29 선언을 통해 수십 년 동안 이어진 군부독재의 마침표를 찍어낸다. 그러나 김대중, 김영삼 후보의 단일화 불발로 인해 전두환과 함께 하나회를 결성한 노태우 전 대통령이 당선되는 아이러니를 남기기도 한다.

 왼쪽 위부터 1987년 서울 드림랜드 개장 MBC 뉴스, KBS 만화영화 <떠돌이 까치>, 프로야구 투수
 최동원과 선동열의 모습.

왼쪽 위부터 1987년 서울 드림랜드 개장 MBC 뉴스, KBS 만화영화 <떠돌이 까치>, 프로야구 투수 최동원과 선동열의 모습. ⓒ MBC/KBS/롯데자이언츠/기아타이거즈


한편 서울 강북구에 서울 최초의 놀이공원인 드림랜드가 개장하였으며, <떠돌이 까치>와 <달려라 호돌이>가 국산 애니메이션으론 최초로 TV에 방영되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씨받이>에 출연한 배우 강수연이 이탈리아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해태 타이거스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선동열과 최동원의 처절한 명승부도 이때 탄생했다.

 1987년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앨범들.

1987년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앨범들. ⓒ (사)한국음반산업협회/KBS Media


그렇다면 격동의 1987년엔 어떤 노래들이 사랑받았을까. 당대 최고의 인기를 얻은 프로그램 KBS <가요 톱10>의 기록들을 살펴보자. 데뷔곡 '바람 바람 바람'으로 단숨에 스타가 된 김범룡이 '카페와 여인'으로, 이선희가 양인자-김희갑 콤비의 '알고 싶어요'로 절정의 인기를 구가했다. 현이와 덕이로 활동하던 장덕의 '님 떠난 후'가 히트하며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초석을 마련했고, 데뷔 이후 10년간 무명의 시기를 지내야 했던 이치현과 벗님들이 '사랑의 슬픔'으로 단숨에 인기 밴드가 되었다. 또한 김학래의 '하늘이여'가 대박을 치며, 싱어송라이터의 노래들이 대중을 사로잡은 해로 기록된다.

 영화 < 1987 >에서 연희(김태리)는 삼촌 병용(유해진)에게 마이마이를 선물 받고 기뻐한다.

영화 < 1987 >에서 연희(김태리)는 삼촌 병용(유해진)에게 마이마이를 선물 받고 기뻐한다. ⓒ CJ 엔터테인먼트


그리고 그해 8월, 싱어송라이터 열풍의 방점을 찍은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영화 < 1987>에서 연희(김태리)가 삼촌 한병용(유해진)에게 선물 받은 마이마이로 듣던 '가리워진 길'의 주인공 유재하다. 한양대학교 작곡과에 재학 중이었던 그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건반주자로 음악 활동을 시작, 1987년 여름에 서울음반(현 로엔 엔터테인먼트)을 통해 데뷔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를 발표한다. '지난날'을 비롯한 음반의 여러 수록곡들이 라디오에서 큰 인기를 얻었으나, 그해 11월 그는 교통사고로 인해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난다.

 유재하의 데뷔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는 그의 유작이 됐다.

유재하의 데뷔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는 그의 유작이 됐다. ⓒ 유재하음악재단/KingPin


소위 뽕이 없는 그의 창법과 화성에 대한 풍부한 지식으로 주조한 '클래식스러움'에 당시 방송 및 음악 관계자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지만 현재의 평가는 상당히 다르다. 멜로디 중심으로 소비되던 당시 발라드의 편법에서 벗어나 작곡과 작사, 심지어는 편곡까지 홀로 담당하여 완성한 <사랑하기 때문에>는 싱어송라이터의 자주(自主)를 실현한 앨범이라 평가받는다. 작품을 대하는 그의 태도와 정성은 유희열과 이적, 윤종신, 이상은 등 현재의 음악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또한 1989년에 시작되어 조규찬, 강현민, 방시혁, 정준일 등 음악가들을 배출한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의 성과도 그가 남긴 유산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작곡가 이영훈과 가수 이문세의 모습, 이문세 <사랑이 지나가면> 앨범 커버.

작곡가 이영훈과 가수 이문세의 모습, 이문세 <사랑이 지나가면> 앨범 커버. ⓒ 이영훈홈페이지/(주)벅스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의 영원한 별밤지기, 이문세도 1987년의 추억 중 하나이다. 이미 이전의 '소녀'와 '빗속에서'로 히트를 기록한 적 있는 이문세-이영훈 콤비는 4집 <사랑이 지나가면>으로 최고의 역량을 선보인다. '사랑이 지나가면', '이별이야기' 등 이영훈이 만들고 이문세가 부른 세련된 팝 발라드 트랙들이 큰 사랑을 받아 그해 골든디스크 대상을 수상하기까지 이른다. 한국 발라드의 기념비적인 작품인 <사랑하기 때문에>와 <사랑이 지나가면>이 모두 1987년의 위대한 기록들이다.

 1987년에는 당대 최고의 그룹사운드였던 시나위와 들국화도 있었다.

1987년에는 당대 최고의 그룹사운드였던 시나위와 들국화도 있었다. ⓒ (주)동아엔터테인먼트/RIAK


그룹사운드의 1987년은 어떠했을까. 김종서의 고음을 무기로 내세운 시나위의 2집 < Down And Up>이 발매, 수록곡인 '새가 되어가리'와 '빈 하늘'이 히트하며 한국 헤비메탈의 명반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2년 전인 1985년에 발표한 <들국화 1> 이후 인기를 이어오던 들국화가 멤버간의 균열과 갈등 끝에 해산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들국화의 등장과 동시에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오던 음반기획사 동아기획은 김현식을 비롯해 시인과 촌장, 한영애, 어떤날 등 한국 음악사에 굵직하게 기록된 걸출한 음악가들과 함께 전성기를 맞이한다.

 영화 1987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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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17일 현재, 권력에 부딪치며 신음한 30여 년 전 대한민국을 그린 영화 < 1987 >이 6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성황리에 상영 중이다. 그 시기를 함께한 이들은 물론, 당시를 경험하지 못한 관객들 또한 1987년의 그날들에 함께하지 못한 부채의식과 죄책감 그리고 감사를 통감하며 눈물을 흘린다. 경험하지 못한 시대에 대한 노스탤지아, 이는 예술이 부리는 가장 매력적인 마법일 것이다. 1987년을 수놓았던 노래들을 들으며 당시를 추억해보는 건 어떨까.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대중음악웹진 이즘(www.izm.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1987 유재하 이문세 가요 시나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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